445. 업(業) (1)
드루이드.
자연 그 자체를 숭배하고 지키는 존재.
비록, 파테르교에 비해 그 규모가 작고, 지역도 한정적이었으나, 그럼에도 그 위세는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버지 신만이 유일한 신이라 주장하고 파테르교에서 묵시적으로나마 그 존재를 인정하였으니.
도도한 드루이드 역시 아닌 척함에도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겨 제자들에게 늘 가르쳤다.
감자 한 포대로 사들인 아이들에게.
여성 드루이드 피오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현재 T구역의 주점 가수로 잠입해 있는 피오나 말이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왜 엔조이먼트가 됐는지 떠올려봤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도대체 뭐가 불만이라 숲을 떠나 도시로 도망친 걸까? ······어쩌면 전부 다일지도.
제비뽑기로 뽑혀 아버지의 손에 의해 감자 한 포대에 팔린 게.
해가 뜨고 질 때까지 쉬지 않고 행하는 고행과 수련이.
그 와중에 죽어 나간 동기들.
무엇보다 이렇게 노력함에도 평생 녹색 숲에 처박혀 한 번도 원치 않은 봉사와 의무에 매달려야 하는 게 불만이었다.
솔직히 너무하지 않은가? 평생에 걸쳐 인내하며 봉사하라니. 한 번도 원치 않던 일을 위해.
그래서 피오나는 다른 동기들과 함께 엔조이먼트로 넘어갔다.
평생 갑갑한 숲에 갇혀 살 바에는 차라리 목숨을 걸고 도시로 나가는 게 더 가치 있다고 판단해.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시로 나온 피오나는 지난 세월 누리지 못한 자유와 부를 만끽했다.
도시에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존재가 없었고, 드루이드의 힘과 미모는 너무나도 쉽게 부를 가져다줬다.
때때로 난감한 일도 있긴 했지만, 그 역시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먼저 도시로 나와 정착한 엔조이먼트들이 가느다라면서도, 쇠심줄보다 질긴 결속력으로 도와줬기에.
물론, 도움은 공짜가 아니었지만, 그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에서 도시와 엔조이먼트의 삶을 배울 수 있었기에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그렇게 피오나는 그린랜드를 벗어나 도시로 온 지난 몇 년간 천국을 맛봤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서 맛볼 수 없었던 풍족함을, 억압받던 시절 꿈꿀 수 없던 자유를, 새로운 세상에 배우고 적응하는 기쁨을 말이다.
허나, 모든 것은 끝이 있는 법. 그건 좋은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개혁파의 승리와 특별법의 통과로 엔조이먼트의 영광도 위기에 봉착했다.
허나, 피오나를 비롯한 엔조이먼트는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미 몇몇 동료들이 경찰과 파견 나온 개혁파 드루이드에게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자유가 무엇인지 알았기에, 사람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았기에.
그렇기에 피오나는 갑갑한 조직 생활에 염증이 남아있음에도 엔조이먼트의 새 조직에 가입해 란다로 들어왔다.
가장 안전한 곳이라 판단해.
그렇게 피오나는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기꺼이 쓰레기 노동자 구역의 가수로 위장 잠입해 주변의 비위를 맞추며 구역에 동화된 게 그 증거였다.
엔조이먼트의 자유와 자신의 자유를 위해.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거지?’
구속구에 묶인 피오나가 현실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분명, 자신들은 초인이란 이명을 가진 드루이드였는데, 숫자가 백 명이 넘는데, 동맹도 확보했는데, 어찌해 이곳에 잡힌 건지 이해가 안 됐다.
피오나는 본능적으로 현실을 부정하며 왜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계속해 고민했다. 아니, 도피했다.
분명, 작전대로 귀엽고 어리석은 소녀의 등을 살짝 떠밀고 이곳 요새로 대피했는데 말이다.
비록, 미완공된 건물에 불과했지만, 수십억에 달하는 방어장치와 무기, 100명이 넘는 드루이드가 있었기에 이곳은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해결사 데이브가 죽거나 치명상을 입으면 그걸 약점 삼아 협상하면 됐고,
데이브 측이 흥분해 덤벼도 시(市)가 개입해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말이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훌륭한 작전.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른 타이밍에 공습이 들어왔다.
이 요새도 감당이 안 되는 대규모 공습이 말이다.
하늘 위에서 수많은 대포가 떨어져 방어시설은 물론, 무수한 생명을 빼앗더니, 갑자기 괴물이 쳐들어와 요새 중앙까지 밀고가, 요새 중앙에서 대규모 범위 마법을 다중 시전했다.
그것은 공포였다. 정식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허나, 그보다 더 공포인 것은 갑작스러운 나무의 폭주였다.
요새를 강화하기 위해 곳곳에 심어둔 나무의 폭주.
위력은 둘째치고 드루이드의 지시를 따라야 할 나무가 드루이드를 공격한 것은 심리적으로 거대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줬다.
폭력, 맹수, 총 그런 1차원적인 공포가 아닌, 그보다 더 설명하기 어렵고 기분 나쁜······.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였다.
바로, 그때 대장이 명령했다.
셰이머스와 비견되고, 셰이머스 못지않게 명성과 부를 쌓아 백 명이 넘는 엔조이먼트를 집결시킨 울프가 말이다.
그는 피오나와 그 파트너 대릴 외 몇몇 엔조이먼트에게 먼저 후퇴하라고 했다.
란다에 숨은 다른 엔조이먼트에게 이 사실을 전해 각자 몸을 숨기라고.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명령.
피오나는 그 명령을 따랐다. 전투보다는 그 외의 분야에 특화된 자신이 있다고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그래서인가?’
피오나가 조용히 절망하며 생각했다. 자신의 파이터 크루라는 근본도 없는 흑마법사 집단에 붙잡힌 작금의 사태가 전투 훈련을 게을리했기 때문인가 고민했다.
바로, 자기 때문이 아닐-
-딱. 딱.
의문, 추억, 만족, 각오, 다시 의문을 빛내던 중 눈앞의 인형(人形)이 손가락을 딱딱 튕겨 피오나를 불렀다.
막 정신을 차린 탓일까? 아니면 혼란스러운 탓일까? 그것도 아니면 대장인 울프가 짓밟혀 죽었기 때문일까? 또 그것도 아니면 꿀렁꿀렁 요동치는 그림자 때문일까?
피오나는 한순간 눈앞에 선 데이브가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보였다.
아주 기괴하고, 불길하며, 공포스러운. 그것은 흡사-
“-피오나 님, 제 질문에 대답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생각으로 노라에게 절 독살하라고 등을 떠민 거죠?”
***
올리버가 자그마치 다섯 번이나 질문했다. 목소리에는 그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그만큼 궁금하다는 뜻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노라에게 자신을 독살하라고 등을 떠민 건지.
아니, 그렇지 않은가? 실패해도, 성공해도 노라는 큰 화를 입을 텐데.
올리버는 자신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 사건의 당사자에게 해답을 구했다.
뭔 생각으로 십 대 초중반의 소녀에게 그런 일을 맡긴 건지.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되기 했지만, 그래도 올리버는 혹시나 해 대답을 구했다. 자신도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해.
그러나 아무래도 그건 올리버의 착각인 듯했다.
혼란과 공포에 정신이 반쯤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한 피오나는 다섯 번째 질문은 제대로 인지했는지 반응을 보였다.
당혹, 무지, 억울함, 공포.
엔조이먼트 피오나는 올리버의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듯 당혹스러워하며, 동시에 노라에 관해 무지했고, 더 나아가 억울함을 빛내더니, 올리버를 보며 공포를 드러냈다.
그녀는 여전히 침묵했지만, 오히려 백 마디 말보다 더 좋은 대답을 해준 셈이었다.
피오나는 말 그대로 관심이 없었고, 생각이 없었다. 노라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는 거였다.
노라가 죽든 말든, 성공하든 말든.
꽤 당혹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군요······. 그렇군요.”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그토록 헤매던 대답을 들었기에.
뭐랄까······. 좀 그랬다. 무슨 대답이든 듣고 싶었지만, 막상 들으니······. 좀 그랬다.
가려움이 해소되긴커녕 더 심해진 느낌이었다.
신기하게도 올리버가 그 가려움에 괴로워하자 주변 사람들의 감정도 좋지 못하게 변했다.
긴장, 불편, 공포로······. 심지어 써드조차도.
다들 왜 이러나 올리버가 의문을 가지려는 찰나 포박된 한 드루이드가 소리쳤다.
남성 드루이드로 그는 여느 드루이드처럼 기골이 장대했다.
그는 다름 아닌 피오나가 T구역에 있을 때, 정보를 전하거나 받기 위해 술집에서 가끔씩 만난 드루이드 대릴이었다.
“웃기는 놈이구만, 이거!!”
조의 주먹에 다쳐 안색이 나빠진 대릴이 통증과 불길함,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무리해가며 소리쳤다.
피오나를 변호하고, 지켜주기 위해.
“네깟 놈이 뭔데, 감히, 우릴 심판하듯 그런 질문을 하나?! 앙!! 흑마법사 따위가!!”
그의 포효에 써드와 조, 마리가 움직이려 했으나 올리버가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고 싶었다.
올리버가 질문했다.
“흑마법사가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당연하지! 사람을 재료로 힘을 쓰는 놈들이 어딜 감히 건방지게!! 심지어 넌 시체도 욕보였잖아?!!”
엔조이먼트 대릴은 송장인형을 눈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자신을 짓누르는 공포에 저항하듯 더욱 악을 쓰며.
그러나 그와 별개로 말 자체는 제법 논리적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을 쥐어짜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얻으며, 괜찮은 시체는 가공해 사용하는 올리버가 노라를 언급할 자격이 있겠는가?
심지어 올리버가 그 오빠를 죽였는데······. 일하던 중이긴 했지만, 여하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릴이 다시 소리쳤다. 공포와 흥분에 떠밀려.
“애당초 그 꼬맹이가 걱정돼서 온 게 아니라, 네놈을 독살하려 했기 때문에 보복하러 온 거잖아?! 그러니까 역겹게 굴지 말라고, 빌어먹을!!”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올리버가 대릴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과거 인육 요리사가 했던 말과 중복되기에.
‘스스로의 정체만큼 자각을 못 한 듯하니 내가 알려줄까? 넌 사람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네겐 사람은 그저 흥미로운 감정을 만드는 생체 기계 같은 거지. 협박을 잘못했어. 널 여기 초대했을 때 소중한 사람을 위협하다니······. 나조차 있는 소중한 사람조차 네겐 없는데. 그저 소중한 감정만 있을 뿐. 아끼는 장난감처럼.’
썩 유쾌하지 못한 기억. 올리버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고, 주변 사람들은 물론, 흥분한 대릴마저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맛볼 수 있었다.
기분 탓이 아니었다. 목덜미에 돋은 소름이 그 증거였다.
이유는 당사자들도 몰랐다. 입꼬리가, 눈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인 정도로 다른 사람이라면 변화라고도 부를 수 없는 수준이었지만, 기이하게도 올리버에겐 엄청나게 큰 변화로 느껴졌다.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그 모습에 대릴을 포함한 모든 드루이드의 기가 꺾였다.
단순히 조와 마리에게 당하고, 포박됐기 때문이 아니었다.
올리버의 변화라고도 부를 수 없는 변화에 그냥 기가 꺾였다.
구속구 따위와 전혀 무관하게.
주변의 그러한 상태와 별개로 올리버는 돌처럼 굳어 계속해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해답을 얻은 듯.
“그게 맞네요.”
“······.”
“전 노라가 신경 쓰여서 온 게 아니라, 제가 신경 쓰여서 왔네요. 제가요.”
올리버가 자신을 두 번 되뇌었다.
그리고는 결정을 내린 듯, 허리 뒤쪽에 찬 나이프를 뽑아 들었다.
과거 윌레스에게서 선물 받은 노스랜드산 단검으로, 인육 요리사와의 전투 때 딱 한 번 사용한 물건이었다.
신기하게도 체크무늬가 박힌 단검의 날은 기이한 검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올리버가 자신의 피를 묻혀 흑마법을 사용했기에 이리 변한 것이었다.
올리버는 용의 비늘을 베어내고, 그 살에 수백 수천의 질병을 부여한 단검을 들고 대릴에게 다가갔다.
저벅. 저벅. 저벅.
그 모습에 주변에 멀찍이 떨어진 사람들조차 자연재해라도 마주한 듯 슬금슬금 피했고, 방금까지 피오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소리 지르던 대릴 마저 뒷걸음질 치게 했다.
단순한 죽음 이상의 공포를 느껴.
올리버가 대릴에게 다가가 원하는 바를 행하려는 그 찰나-
-탁.
누군가 올리버의 손목을 부드럽게 또 단호하게 붙잡았다.
한계까지 당겨진 고무줄 같은 긴장 속. 모두 올리버의 발걸음을 멈춘 사람을 바라봤다.
조였다.
“그만두시지요. 과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