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 무자비 (1)
피 웅덩이에서 솟아난 이십여 구의 송장인형.
그들은 퍼스트의 통제에 따라 마력을 끌어모으더니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시체의 끔찍한 고함과 함께 마법이 폭발. X구역 중부엔 때아닌 재앙이 들이닥쳤다.
낙뢰가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가 하면,
화염이 대지를 불태웠고,
새하얀 얼음 입자가 칼바람과 같이 퍼져 모든 것을 베고 얼렸다.
거기에 대지는 갈라지고 뒤틀려졌고.
그렇게 수많은 재앙이 동시에 일어나 주변의 모든 생명을 해하였다.
각종 화기로 무장한 비소속 갱단은 물론, 수십 명의 엔조이먼트까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요새 안 병력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걸로 끝일 터였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면 대부분 의지가 꺾이는 법이었으니.
허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엔조이먼트, 비소속 갱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공격 범위 밖에 있던 드루이드들은 요새를 뒤덮은 거대한 나무들을 조작해 피해를 수습했다.
자연의 힘을 머금은 나무를 이용해 낙뢰를 유도하는가 하면,
흙의 파도로 화염의 기세를 꺾고,
자연의 힘이 깃든 나뭇잎으로 얼음 입자를 정화, 몰아치는 칼바람을 막아냈다.
거기에 나무뿌리를 이용해 갈라지고 뒤틀린 대지까지 봉합하고 교정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자연이 오만한 마법사를 부드럽게 꾸짖는 것 같았기에.
허나, 부드럽다는 건 착각이었다. 엔조이먼트 역시 마법사들 못지않게, 탐욕스럽고, 과시적이었으니.
몰아치는 마법을 어느 정도 제압하자, 십수 명의 드루이드들은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그들의 주변 모든 나무의 성장을 촉진시켜, 가뜩이나 거대한 나무를 더욱 거대하게 만들었고 송장인형들이 있는 요새 중앙부를 통째로 매몰시키려 했다.
나무의 압도적인 크기와 질량으로······. 나쁘지 않았다.
스무 명의 마법사가 어떤 변수를 만들지 모르니, 거대한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가장 좋긴 했다.
그 증거로 퍼스트의 통제하에 있던 송장인형들은 점점 밀려오는 거대한 나무에 그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하고 중앙으로 몰렸다.
불로 태우고, 얼음으로 얼려도 축적된 자연의 힘으로 거대해진 나무는 이를 가볍게 무시했고, 낙뢰와 바람, 땅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나마 유의미하게 저항하는 건 송장인형-바토리에 들어간 퍼스트와 셰이머스에 들어간 써드뿐.
써드는 자연의 힘으로 엔조이먼트의 술법 통제권을 빼앗으려 했으나, 저항이 만만치 않자 계획을 바꿔 술사들을 탐색했다.
드루이드의 위치와 주술을 통제하는 핵심이 누군지 알기 위해.
빼앗는 것이 최고긴 했지만,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그냥 부숴버려야 했다.
“메에에에에에!”
써드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며 특정 방향을 가리켰고, 그에 퍼스트가 반응했다.
같은 창조주로부터 태어난 피조물은 곧 서로의 뜻을 이해.
퍼스트는 인면(人面) 조끼에서 혈액을 뽑아내 작은 말뚝을 연성. 써드가 가리킨 방향으로 말뚝을 투척했다.
놀랍게도 팔뚝만 한 말뚝은 건물만큼이나 거대한 나무를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엄청난 규모를 이겨내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고 말았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안 됐다. 애당초 그게 목적이었으니.
[혈폭(血爆)]
퍼스트가 영창하자 나무를 뚫고 들어간 피의 말뚝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것도 그냥 폭발이 아닌 피를 매개로 한 폭발을.
완벽한 구 형태의 핏빛 폭발은 피의 점성 탓에 폭발의 위력이 퍼지지 않고, 특정 범위로 압축돼 마치 지우개로 지우듯 해당 범위만을 깔끔히 파괴하였다.
그로 인해 몸통이 텅 비게 된 나무는 기우뚱거리더니 그대로 한쪽으로 쓰러졌다.
우직! 우지지직!! 쏴아아아아악!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와 잎이 서로 스쳐 마찰음을 냈다. 그때, 퍼스트가 소리쳤다.
“꺄아하학! 뚫었다!”
“간다!”
써드가 화답하며 나무가 쓰러져 빈 곳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나무가 무너지며 생긴 길 끝에는 나뭇잎 망토를 두른 드루이드가 서 있었다.
그가 현재 대규모 주술을 진두지휘하는 드루이드로, 저자만 죽으면 빈틈없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나무도 멈출 게 확실했다.
“어딜!”
“감히!”
나뭇잎 망토를 두른 드루이드 양옆에 있던 2명의 드루이드가 동시에 외쳤다.
여성과 남성으로, 한 명은 주변의 나뭇가지를 촉수처럼 움직여 써드의 진격을 저지했고, 다른 한 명은 나무 투창을 던져 공격을 가했다.
공격의 합을 봤을 때 상당 기간 호흡을 맞춘 것으로 추측됐으나, 써드는 송장인형-셰이머스의 힘과 반사신경으로 이를 정면 돌파했다.
번쩍!
그물처럼 얽히고 들어오는 나뭇가지를 힘으로 뚫고, 나무 투창을 박살 내며 진격하던 그 순간 주변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써드의 머리 위로 낙뢰가 떨어졌다.
방어용 낙뢰 마법.
송장인형-셰이머스에겐 치명적인 위력이 아니었으나, 전격 마법의 특성에 걸맞게 한순간 행동이 멈췄고, 그 틈에 써드 앞으로 보랏빛 마법진이 다수 형성되며 납탄 세례가 쏟아졌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공간 마법을 접목한 고정식 머신건으로, 고정식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 위력이 상당했다. 자연의 힘으로 강화한 육체에 탄흔을 남길 만큼.
“밀어.”
“붙여.”
낙뢰와 납탄 세례로 일시 멈춘 써드를 향해 아까 전 드루이드 둘이 다시 소리쳤다.
그들은 자연의 힘을 합쳐 나무뿌리와 흙더미가 뒤섞인 흙의 파도로 써드를 덮쳐 원래 자리로 밀어냈다.
“바보!”
“미안!”
되돌아온 써드를 보곤 퍼스트가 소리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부러진 나무가 다시 자라나 빈틈을 메꾸며, 송장인형을 파묻기 위해 전진했다.
써드는 바로 일어나 자연의 힘으로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술사의 숫자와 협동력 탓에 속도를 늦추는 게 한계였고, 퍼스트 역시 피가 부족해 그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꽤 아쉬웠다. 혈액만 충분했어도 해볼 만했을 터인데.
퍼스트와 써드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뒤에서 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가.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점점 공간이 좁아지는 다급한 상황에서 퍼스트와 써드는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
그곳에는 자신들의 창조주인 올리버가 칼로리바를 먹으며 서 있었다. 피 웅덩이를 통해 이동한 것.
갑작스러운 올리버의 등장에 차일드뿐 아니라 드루이드들 역시 놀랐으나, 그들은 오히려 이를 기회라고 생각하며 남은 힘을 모조리 끌어모아 나무의 진격에 박차를 가했다.
이대로 올리버를 해치운다면 싸움은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더욱 빨라진 나무의 진격에 마법사 송장인형 몇 구가 산산이 부서졌고,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진 순간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들어 땅을 가볍게 내리쳤다.
탁.
작게 울리는 소리. 쿼터스태프에 깃든 자연의 힘이 땅을 타고 주변 나무로 퍼졌다.
현재 엔조이먼트들이 통제하고 있는 자연에 힘에 비하면 한 줌도 안 되는 소량.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쿼터스태프를 통해 자연의 힘이 주입되자마자 주변 나무······. 아니, 요새를 뒤덮은 모든 나무가 올리버의 통제하에 들어왔으니.
“말도 안 돼······.”
방금까지 나무를 통제하던 드루이드가 중얼거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드루이드에게서 자연의 통제권을 빼앗아 오다니. 그것도 흑마법사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허나, 그러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올리버는 나무에 통제권을 행사, 방금까지 자신을 통제했던 드루이드들을 공격하게 했다.
거대한 나무는 마치 원래의 주인을 만나기라도 한 듯 더욱 사납게 움직이며 드루이드들에게 공격을 가했고,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드루이드들은 그 반격에 대응하지 못한 채 당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올리버가 말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다시 고생 좀 부탁드립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십여 구의 시체들이 다시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번개, 불, 얼음, 바람, 흙으로.
***
싸움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먼저, 살점 탄환으로 인해 요새의 중요 방어 시설 60퍼센트가 사용 불능이 됐고,
뒤이어, 송장인형-셰이머스가 단독으로 돌격해 적잖은 피해와 충격을 줬으니.
거기에 송장인형-바토리와 이십여 구의 마법사 송장인형의 마법 포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줬다.
보통의 경우라면 진작에 끝났을 수준.
그럼에도 엔조이먼트와 비소속 갱단은 저항했다.
그들 역시 나름 절박한 사정이 있었기에.
엔조이먼트는 특별법을 피할 곳이 필요했고, 비소속 갱단은 란다 뒷세계에서 좁아진 입지를 어떻게든 다시 확보해야 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어느 정도 빛을 보기도 했다.
요새를 뒤덮은 나무를 이용해 송장인형들을 전부 매몰시킬 뻔했으니.
송장인형의 성능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전과.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 웅덩이를 통해 나타난 올리버로 인해.
끔찍하게도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딱 한 번 두들기는 것만으로 주변 나무의 통제권을 빼앗아 반격을 가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흑마법사가 드루이드에게서 자연의 통제권을 빼앗았다.
드루이드의 손에 성장한 나무는 배은망덕하게도 그 거대한 몸체로 드루이드를 짓뭉개고, 뿌리로 후려치며, 나뭇가지로 붙잡아 산 채로 찢어발겼다.
드루이드는 저항하려 했으나, 장기간에 걸쳐 축적시킨 자연의 힘 탓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철저한 준비가 오히려 독이 된 것.
거기에 그것도 모자라 송장인형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당황한 드루이드들에게 무자비하게 공격을 가했다.
냉정하게 대응한다면 충분히 대응 가능했으나, 흑마법사에게 통제권을 빼앗겼다는 충격 탓인지 엔조이먼트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도미노처럼 픽픽 쓰러져나갔다.
무리도 아니었다.
감자 한 포대에 팔려 와 해가 뜨고, 지기까지 쉬지 않고 수련하며, 그 과정에서 반수(半數)의 동기가 목숨을 잃기까지 하였는데, 고작 흑마법사에게 자연의 통제권을 빼앗기다니.
그것은 노력을 넘어 인생 전부를 부정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인정 못 한다······. 나는 인정 못 한다!”
나뭇잎 망토를 두른 드루이드가 눈앞의 현실에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마법사 송장인형을 세 구 박살 내곤, 양옆을 지키던 사제(師弟)들과 같이 올리버를 향해 돌진했다.
아까 전 써드가 노렸던 자들로, 이번에 써드가 그들을 막게 되었다.
“저리!”
“비켜!”
양옆을 포진한 남녀 드루이드가 동시에 주술을 발동. 손에 쥔 나뭇가지에 자연의 힘을 부여해 거대한 기둥을 날려 보냈다.
분명, 저 송장인형은 아까 전부터 과시한 신체 능력으로 이를 부수려 할 터.
그때, 나뭇잎 망토를 두른 드루이드가 부서진 나무 파편을 이용해 끝장낼 계획이었다.
“응?”
틈을 노리며 상황을 지켜보던 나뭇잎 망토 드루이드가 소리 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기에.
써드는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두르는 대신 자연의 힘으로 나무 기둥을 붙잡아, 통제권 싸움을 걸어 나무를 갑옷처럼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나뭇잎 망토를 두른 드루이드는 당황하며 바로 공격을 가하려 했으나, 써드의 행동이 더 빨랐다.
놈은 몸에 두른 나무 갑옷을 한쪽 주먹에 집중시키더니, 육각 파성추 형태로 주먹에 둘러 나뭇잎 망토 드루이드를 향해 내질렀다.
후웅!
나뭇잎 망토를 두른 드루이드는 망토에 자연의 힘을 부여, 쿠션과 같은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써드의 파성추 주먹을 버티지 못하고 방어막 한쪽이 찢겨나갔다.
찢긴 나뭇잎 방어막 사이로 흘러내리는 붉은 피와 내장 조각에 보조하던 두 드루이드가 발광하며 달려들려 했으나, 검은 형상의 무엇인가가 그들을 덮쳤다.
푸욱······!
올리버의 그림자 촉수로, 날을 세우지 않은 뭉뚝한 형태였음에도 드루이드의 몸은 너무나도 쉽게 뚫려버렸다.
쇄골 아래부터 골반 위까지인 상체(上體) 전체가.
흡사, 터트려 죽인 것과도 비슷했다.
그 모습에 송장인형은 물론, 혹시나 해 주변에 숨어 상황을 지켜보던 비소속 갱들과 드루이드까지 얼어버렸다.
너무나도 흉흉한 모습이라.
당황한 건 올리버도 마찬가지였다.
“아······.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올리버가 안타깝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진심이었다. 왜냐면 물어볼 것이 있었기에.
정말로 제압만 할 생각이었건만, 인육 요리사의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흡수한 그림자는 술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드루이드를 짓뭉개 죽였다.
뭐, 아주 예상 못 한 건 아니었다.
인육 요리사와의 싸움 후, 과도하게 흡수한 에너지 탓인지 가끔씩 자기 멋대로 움직일 때가 있었으니.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이야······.
올리버가 힘이 넘치다 못해 요동치는 그림자를 조작해 드루이드의 몸 밖으로 그림자를 뽑아냈다.
뿌직.
뭉뚝하고 거대한 그림자가 빠져나오자, 뱃가죽, 내장, 장기, 척추, 등가죽이 깔끔할 정도로 뻥 뚫린 드루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 둘은 거대하게 뚫린 구멍을 보이곤 허물어졌다.
털썩.
“메에에에에. 여기.”
눈치 빠른 써드가 아쉬워하는 올리버 앞으로 나뭇잎 망토 드루이드를 끌고 왔다.
오른쪽 어깨에서 가슴까지 찢긴 드루이드는 대량의 피를 흘린 채 간신히 숨만 붙어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올리버가 창백한 드루이드에게 인사했다. 일단, 이게 예의였으니.
“전 T구역 30번 거리 해결사 데이브라 합니다. 질문이 있어서 그러는데, 대답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아······. 미친······. 대답해주면 살려줄 건가?”
“······예.”
“뭐가······. 하아······. 궁금하지?”
“엔조이먼트 중 T구역에 가수로 잠입한 여성 드루이드가 있다고 하던데······. 그분 지금 어디 계시죠?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요.”
아는 게 있는지 드루이드는 반응했다. 그가 출혈 탓에 헐떡이며 질문했다.
“뭐가······궁금한 거지······?”
“중요한 건······아니지만, 정말 궁금한 게 있거든요.”
“그래······? 좋아, 대답해주지······. 내 대답은······. 나가 뒤지라는 거다.”
그 말과 함께 나뭇잎 망토 드루이드는 가뜩이나 부족한 생명력을 쥐어짜 주술을 발동. 자신의 망토를 조작해 쇠줄보다 질긴 나뭇가지로 써드와 올리버를 포박했다.
당황한 써드가 끊으려 했으나, 드루이드가 생명력을 담보로 만든 나뭇가지는 좀체 끓어지지 않았고, 바로 그 타이밍을 노리고 누군가 접근해 왔다.
비소속 갱단의 우두머리인 괴인(怪人) 러셀이었다.
퇴역군인 출신의 그는 괴인(怪人)이라는 이명에 걸맞게 신체 개조뿐 아니라, 양 팔다리를 골렘 의수(義手)와 의족(義足)으로 대체하였다.
멀쩡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나,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마법을 쓰지 않고 저 멀리서 이곳까지 1초도 안 돼 이동해 회심의 일격을 노릴 수 있었으니.
크라임 펌과의 거듭된 충돌로 입지를 다졌던 그는 그 명성에 걸맞게 기회가 오자 망설이지 않고 올리버에게 주먹을 겨눴다.
기계장치와 돌로 이뤄진 최신식 군용 의수는 마력을 집중시켜 푸른빛을 발광하더니, 팔꿈치 추진체에서 폭발을 일으켜 올리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나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 자도 사람인 이상, 의도치 않게 강렬한 한 방을 맞으면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송장인형 대부분이 드루이드를 치기 위해 멀리 나간 지금이라면 더할 나위 없는 타이밍이었다.
꽈앙━━━!!
러셀의 주먹이 올리버의 얼굴에 닿으려는 찰나 거대한 충격파가 일어났다.
충격파만 봐도 머리 따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위력임을 추측할 수 있었으나. 올리버의 머리는 멀쩡했다.
나뭇가지에 붙잡히자마자 반사적으로 질병-강화계열 흑마법을 몸에 부여해 포박을 뜯고 러셀의 주먹을 막아냈기에. 한쪽 손만으로.
“드루이드 님.”
아까 전 드루이드처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얼어붙은 러셀을 앞에 두고 올리버가 말했다.
“거짓말한 것 알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괜찮습니다.”
“······?”
“저도 거짓말했거든요.”
그 말과 동시에 올리버는 러셀의 골렘 의수를 뜯어버렸다.
삐쩍 마른 몸이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괴력으로.
“저도 살려줄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