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 반나절 (1)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좀 해결하고 싶어서요.”
올리버가 그리 말했다. 마치, 귀찮은 일을 한 번에 정리하겠다는 말투로.
상당히 부적절하다고 할 수 있었다.
올리버가 아무리 ABC 때 독보적인 활약을 하고, 그 셰이머스를 쓰러트렸다 해도 엔조이먼트는 우습게 봐서는 안 됐다.
특히, 올리버는 그 규모도 모르지 않는가?
감정적이었고, 부적절했다.
그런데, 우습게도 지금 포레스트는 아무런 걱정도 들지 않았다.
올리버가 해결하겠다고 말하자, 정말 해결될 것 같은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겼다.
너무나도 듬직해 보증이라도 서줄 수 있을 것 같은.
‘아냐, 안 돼.’
포레스트가 퍼뜩 정신을 고개를 획획 저었다.
이대로 가면 정말 위치를 말해줄 것 같았기에. 중개인에게 감(感)은 중요한 요소였지만, 그렇다고 감(感)으로만 일하지는 않았다.
감(感)은 그저 향신료고, 나머지 주재료는 이성(理性)이었다. 냉정하고 차분한 이성(理性).
특히, 정치와 결합 됐을 때는 더욱 그랬다.
“후우······. 데이브?”
“예, 포레스트 님.”
“자네와 거래하는 중개인으로서 말 좀 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얼핏 평소와 같은 모습. 그러나, 포레스트는 이전과 약간 달라진 이질감을 느끼곤 불안함이 생겼다.
단순히 기분 나빠 신경질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올리버가 그런 성격도 아니었고. 허나, 그렇기에 더더욱 불안했다.
피로를 느낀 포레스트는 의자 위에 앉으며 조에게 술이 있는지 물어봤다.
“생각할 게 많아지면 술이 좀 필요하거든. 혹시, 있나?”
조가 품 안에서 은색 힙 플라스크를 꺼내 내밀었다.
술이 급한 포레스트는 곧바로 뚜껑을 열어 목을 축였다.
“고맙네. 맛있군······. 회의 때 미처 말하지 못한 게 두 가지 있네. 첫 번째는 엔조이먼트의 규모고, 두 번째는 시(市)와 거래하는 내용이야.”
“안 좋은 이야기가 바로 그겁니까?”
포레스트는 놀랐다. 쿠키와 커피의 냄새를 맡느라 회의에 뒷전인 줄 알았건만······. 다른 의미에서 소름이 돋았다.
하긴, 올리버였으니까.
포레스트는 그렇게 납득하며 입을 열었다.
“우선, 엔조이먼트의 규모부터 말하지. 헤임달에서 알아낸 걸 기준으로 그 수가 100명이 넘어. 정확히는 118명.”
“숫자가 자세하군요.”
“넷 세일링(Net Sailing)이 이전과 비교가 안 된다니까. 여하튼, 엔조이먼트의 수만 118명이야. 엄청난 규모지.”
옆에 서 있던 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ABC때 참여해 엔조이먼트가 뭉치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았으니.
그때는 수십 명으로 숲을 살아있는 요새로 만들었다.
장기간에 걸쳐 준비했다 해도 엄청났다.
시(市)의 새로운 무력인 보안국과 크라임 펌, 파이터 크루, 핑크맨까지. 란다에서 알아주는 무력 집단이 네 개나 연합했음에도 올리버가 오기 전까지 뚫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 자릿수라······.
꾸준한 수련을 통해 강해지고, 용지매입 과정 수많은 승리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조라도 꺼려졌다.
“거기에 비소속 갱단까지 손을 잡았지. 문제는 한시적으로 잡은 거 같지가 않아.”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꽤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유지하려는 거 같다는 뜻이야.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파이터 크루가 크라임 펌과 확고한 계약을 맺음으로써, 비소속 갱단은 란다에서 입지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으니······. 그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비소속 갱단은 엔조이먼트와 손을 잡으려는 거 같아.”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올리버가 좋아할 만한. 사회의 화학적 반응이었으니.
허나, 올리버는 평소처럼 흥미를 보이며 질문하는 대신 차분히 비소속 갱단의 정보를 물어볼 뿐이었다.
“비소속 갱단 정보?”
“예······. 혹시, 모르십니까?”
“아냐, 아네.”
올리버의 물음에 포레스트가 답했다. 평소와 다른 올리버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바로 냉정을 되찾으며 비소속 갱단에 관해 설명했다.
주축과 규모, 구성 심지어 최근 무기 구입 내역까지 말이다.
이 역시 헤임달이 알아봐 줬다.
설명이 끝나자 올리버는 포레스트가 말해준 정보를 머릿속에 정리하며, 꺼낸 자료를 말없이 훑어보았다.
“······.”
너무나도 차분해 오히려 긴장감이 일었다.
“흠, 흠. 만약, 싸우게 된다면 ABC 때 이상이라고 할 수 있어. 엔조이먼트도 엔조이먼트지만, 비소속 갱단도 작심한 것 같으니. 그에 반해. 우린 병력이 모자라지.”
조와 마리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부족한 것은 부족한 거였으니.
올리버 역시 그것을 이해하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음······. 포레스트 님?”
“그래.”
“하실 말씀은 그게 전부인가요? 엔조이먼트의 규모요. 다른 더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 겁니까?”
“······없네.”
“그럼, 두 번째, 시(市)와 거래하는 내용에 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포레스트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평소 올리버답지 않게 대화의 흐름이 너무 빨랐기에. 호기심이 많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마치 빙 둘러 가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 반대였다.
허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엔조이먼트의 규모를 듣고도 그렇다 할 반응이 없는 올리버의 태도였다.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
의문투성이였지만, 포레스트는 일단 올리버의 이야기 흐름에 따라가기로 했다.
“엔조이먼트가 머리를 굴렸어. 셰이머스 때문에 자기들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걸 인지하더니, 시(市)에 제법 큰 거래를 제안했지.”
“뭘 제안했죠?”
“자기들을 받아주고 보호해주면 란다의 모범적인 시민이 돼, 시(市)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했네.”
“음······. 제가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시(市)가 좋아할 만한 제안 같지는 않은데요?”
“말뿐이라면 그렇지. 그 증거로 자신들이 보유한 드루이드의 지식을 일부 넘겨주고, 숲을 개간해 그곳에서 키운 약초와 열매, 나무 등 모든 물산을 시(市)에 독점 판매해주겠다고 했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지식도 지식이었지만, 드루이드가 키운 약초나 열매, 나무 역시 귀한 물건이었으니.
기본적으로 질이 높고, 드루이드만 재배 가능한 것도 있었다.
“새로운 기술(技術)과 귀물(貴物)에 늘 목마른 시(市) 입장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제안이지. 그래서 약초 무역과 엔조이먼트 체포 권리를 교환하려던 개혁파 드루이드도 무시하고 있어······. 얼마나 시(市)가 저들의 제안에 흔들리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이야기를 들은 올리버는 침묵한 채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할 뿐.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조가 질문했다.
“그것도 헤임달이 알려준 겁니까?”
“아니, 이건 카버 씨께서 알려주신 거야. 와서 넌지시 이야기해주더군. 시의원들이 상당히 관심을 보인다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유리하게 관계를 구축할지 고민하고 있다더군······. 아마, 그래서 이런 같잖은 수작을 부리는 거겠지.”
“수작이라면······. 노라 말씀입니까?”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릴 도발하는 데 성공했으니까.”
“도발이라면······?”
“말 그대로야. 우리가 먼저 공격해주길 바라는 거지. 그럼, 간을 보던 시(市)는 어쩔 수 없이 개입할 테고, 하기에 따라 짧은 시간 안에 안정적으로 란다에 정착할 수 있을 테니까.”
그저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포레스트는 자기 입으로 말하자 더욱 확신을 다졌다.
이거 외에는 없었다.
엔조이먼트는 영악했으니, 탐욕스러운 시(市)가 자기들을 포기하지 못할 것을 알 터였다.
지금 바로 받아들이지 않은 건 그저 우위를 차지하려는 장고(長考)일 뿐이니.
그런 와중에 올리버가 엔조이먼트를 친다?
짧으면 하루, 길게는 삼일 안에 개입할 게 뻔했다.
올리버는 시의 비공식 동맹이었지만, 애당초 동맹은 이익을 위한 관계. 아직 잡힌 물고기가 아닌 엔조이먼트의 손을 들어줄 터였다.
그렇게 시(市)가 개입하면 엔조이먼트는 자기들이 공격당한 것을 꼬투리 잡아, 시(市)와 우리에게 과한 요구를 할 게 뻔했다.
시(市)에는 높은 자율권을,
우리에게서는 X구역 상당 부분을.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그려졌다.
꽤 대단했다. 개혁파 드루이드의 득세와 특별법으로 상황이 나빠진 와중 이런 수작을 부리다니.
‘노라의 일을 이야기한다 해도 시치미 떼겠지······. 어쩐다? 싸우기도 어렵고, 이대로 가만두기도 찝찝한데. 시(市)도 자기 밥그릇 신경 쓰느라 어정쩡하게 굴 텐데.’
생각보다 복잡한 상황. 포레스트가 고심하는 그때, 올리버가 입을 열었다.
“포레스트 님. 제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의견 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의견? 뭔가?”
“즉, 지금 엔조이먼트를 치기 난감한 게 결국 시(市)가 엮여 있기 때문이죠? 드루이드의 기술과 산물을 원하는 시(市)요.”
“그렇네. 핵심은 그거지.”
“그럼, 그거 저희가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엔조이먼트 드루이드를 다 죽인 다음 그들의 지식이 담긴 서적을 시(市)에 주면 되잖습니까?”
“······.”
포레스트, 조, 마리. 모두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올리버가 누굴 죽인다고 한 적이 있던가? 그것도 전부?
“포레스트 님?”
“아······. 미안하네. 근데, 그건 불가능해.”
“어째서인지요?”
“드루이드는 자기 지식을 기록물로 보관하지 않아. 오직 머릿속에만 넣어두지.”
“······기억만 하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드루이드 전통이야. 지식의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한. 그렇기에 드루이드의 지식은 더욱 귀하고, 이를 뼈저리게 아는 드루이드들은 기록하지 않아. 그건 엔조이먼트도 마찬가지고.”
“음······. 머릿속에는 있다는 이야기죠?”
“······? 그렇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정답을 찾은 사람처럼.
“포레스트 님. 부탁 두 가지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뭔가?”
“하나는 아까 전 여쭤본 엔조이먼트들 위치를 말씀해주시는 거고, 다른 하나는 지금 시(市)로 가서 말씀 좀 해주십시오. 드루이드의 지식은 제가 챙겨서 넘겨줄 테니, 엔조이먼트를 치는 걸 그냥 지켜봐 달라고요.”
올리버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무 담담하게 했다.
세 개의 조직이 뒤얽힌 이 복잡한 상황을 그렇게 막무가내로 타개하려 하다니.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말하는 게 업(業)인 포레스트가 다시 한번 말문이 막혔다. 너무나도 묻고 따지고 싶은 게 많아.
“저기······. 아니, 그러니까······. 어떻게 드루이드의 지식을 넘기겠다는 건가?”
“설명하자면 좀 길어지는데 방법이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
포레스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올리버의 처음 보는 태도에 압도됐기에.
취하는 기분이었다. 좋은 술을 마시고 취하는 기분 말이다.
“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술이 조금 셌나 보군.”
포레스트는 조에게서 받은 힙 플라스크 뚜껑을 닫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줬다. 술은 충분히 마셨다.
“좋아. 믿겠네. 나는 믿어. 하지만 시(市)는 믿지 않을 거야. 그들이 믿기에 조금······. 상식 밖이거든.”
“괜찮습니다. 일단, 그걸로 달래주기만 하면 될 테니까요.”
“음?”
“포레스트 님이 시(市)로 가자마자 전 엔조이먼트를 칠 생각입니다. 그리고 반나절 만에 그들을 다 죽일 겁니다. 하루도 안 돼 전멸하면, 시(市)도 아무 말 하지 못하겠죠.”
이제는 말문이 막히는 걸 넘어 입이 벌어졌다.
확실히 그럴지도. 반나절만에 엔조이먼트 118명과 비소속 갱단을 다 죽이면 따지기 힘들었다. 아니, 그 이전에 누가 따질 수 있겠는가?
“자네가 강한 건 알고 있지만, 그게 가능한가?”
“아, 믿기 어려우시군요.”
솔직히 말해 그건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포레스트는 놀랍게도 올리버의 말을 믿었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올리버의 실력을 알고 있다 해도 이건 너무 상식 밖이었기에.
이래선 안 됐다. 중개인은 95퍼센트의 이성(理性)과 5퍼센트의 감(感)으로 일하는 존재.
최소한의 근거는 필요했다.
“······미안하지만, 보여줄 수 있겠나? 자네가 엔조이먼트를 반나절 만에 쓸어버릴 근거를. 만약, 근거를 보여주면 자네가 하자는 대로 하지. 할 수만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거 아니라는 듯. 그리곤 품에서 종이를 네 장을 꺼냈다.
포털 마법이 깃든 종이로, 바닥에 종이를 던지자 벌레의 날갯짓 같은 특유의 소리와 함께 보라색 포털이 허공에 꽃 피웠다.
이질적인 포털. 그곳에서 네 구의 송장인형이 나왔다.
불과 며칠 전 수리와 개조를 마친 송장인형-던칸과 셰이머스, 바토리 그리고 새롭게 제작된 듀란스.
테어도어의 살점을 완벽하게 이식한 던칸은 살점으로 이뤄진 톤파를 허공에 붕붕 휘둘렀고,
내장부품과 블랙마켓에서 구매한 드루이드의 시체 세포를 이식한 셰이머스는 메에에에에 울음소리를 냈으며,
바토리는 딱딱거리는 인면(人面)조끼와 가면을 쓴 채, 이십여 구의 마법사 송장인형을 이끌고 나왔다.
그리고 테어도어의 살점과 갈로스 기계장치를 이식받은 듀란스는 몸에서 마력 증기를 내뿜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떠신가요?”
올리버가 포레스트를 바라보며 물었다. 올리버의 검은 그림자가 꿀렁꿀렁 요동치며 방 전체를 에워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