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39화 (439/633)

439. 나는? (3)

올리버는 볼 수 있었다.

단 1초 만에 수차례 변한 포레스트의 표정을.

감정과 정반대의 표정을 짓는 포레스트의 표정을.

회의에 참석한 모두 포레스트의 이변을 눈치채는 듯했으나 이내 감쪽같은 포커페이스에 별거 아니라 판단 내렸다.

감정을 꿰뚫어 보는 흑마법사 마리, 조, 스미스만 빼고.

그들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포레스트가 입을 열었다.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잠시 쉬었다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포레스트가 정회(停會)를 선언하자 다들 의아해하면서도 빠르게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장기간 이어진 회의 탓에 좀이 쑤셨기 때문.

덕분에 회의실에는 올리버를 포함한 포레스트, 조, 마리 그리고 노라만 남게 되었다.

씩씩해 보이던 노라는 꽁꽁 얼어붙은 채 바닥만 보았고,

포레스트는 올리버도 처음 보는 딱딱한 표정을 지은 채 가슴속에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상당히 의외였다. 이렇게 화낼 줄이야.

하지만 더 의외인 건 마리였다.

노라의 독살 시도를 듣고 크게 화낼 줄 알았건만, 그녀는 그렇게까지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물론, 화가 나긴 했지만, 꽤 침착하게 잘 다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조가 올리버 앞에 다가오며 말했다. 정확히는 노라와 올리버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거였지만.

노라를 지키려는 행동. 그는 현재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를 빛냈다.

미리 이 사태를 막지 못한 후회, 올리버와 노라에 대한 죄책감,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허나, 원망은 없었다. 이러한 사태를 만든 노라에 대한 원망은 말이다. 그저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가질 뿐이었다.

올리버는 눈을 감으며 커피와 쿠키의 냄새를 다시 맡았다.

“킁킁······. 일단, 확인부터 해보죠. 정말 쿠키와 커피에 혼합 독을 넣은 건지요. 냄새가 나긴 하나, 원래 제가 코가 좋은 편은 아니거든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올리버의 코는 좋지 않은 걸 넘어, 나쁜 수준이었다.

냄새나는 고아원과 메케한 광산에서 자라났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

그런데 기이하게도 지금 올리버는 섬세하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쿠키를 구성하는 밀가루, 버터, 달걀, 설탕, 소금, 초콜릿 칩, 코코아 가루 그리고 지금 커피에 들어간 장어꼬리초와 섞이면 상극의 독이 되는 복숭아엉덩이초의 냄새까지 말이다.

‘계속 허기가 져서 그런가?’

올리버가 꼬르륵거리는 배를 느끼며 생각했다. 그렇다 해도 이상했다.

밀가루, 달걀 등은 그렇다 쳐도 장어꼬리초와 복숭아엉덩이초의 냄새는 모르는데······. 기껏해야 책에서나 봤지.

그럼에도 올리버는 냄새를 맡자마자 그 약초임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실제로 맡아본 것처럼.

“조.”

올리버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노라 씨가 걸고 있는 목걸이 좀 가져와 주시겠습니까?”

부탁을 들은 조는 고개를 홱 돌려 노라를 내려다봤다.

목걸이란 단어에 그는 의문을 빛냈지만, 곧 의문은 식은땀으로 변했다. 올리버의 말대로 목걸이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마법 아이템인 거짓말쟁이 목걸이를.

최소 7주가 지난 태아의 심장으로 만든 흑마법 아이템으로, 심장에 감정을 부여해 한시적이나마 다른 감정을 품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물건이었다.

흑마법사를 속일 수 있는 유용한 아이템이지만, 사용 시간이 짧고 일회용인 주제 비싸 좀처럼 보기 드문 물건.

노라가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절대 아니었다.

“이걸로 확실해졌군.”

노라의 목걸이를 확인한 포레스트가 확언했다.

노라가 감정을 숨기는 흑마법 아이템을 차고 있었으니. 쿠키와 커피에 독이 검출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아이템을 빼앗기자마자 노라는 올리버에 대한 극도의 원망과 증오, 배신감까지 빛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리버에게 호감과 미소를 짓던 소녀가 말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무거운 침묵이 적막처럼 드리웠다.

조가 그 적막을 뚫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데이브 씨······. 이런 말 할 처지가 아닌 건 알지만, 제가 책임을 질 테니, 부디-”

“-조.”

“예?”

“혹시, 노라 씨가 절 왜 싫어하시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시는 거 같은데요.”

너무나도 차분한 올리버의 태도. 조를 비롯한 장내의 모두 아무 말도 못 했다. 방금 독살당할 뻔한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차분했기에. 주변 사람마저 차분해질 정도였다.

“······노라는 니코의 여동생입니다.”

조가 담담히 말했다. 올리버가 확인했다.

“저랑 조가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있던 두 분 중 한 분요?”

조는 살짝 놀라곤 고개를 끄덕였다.

웃기게도 조는 이 순간 고마움을 느꼈다. 올리버가 니코와 큰 턱을 기억해 준 것에 관해.

“음······. 왜 제게 말씀해주시지 않으신 거죠?”

“말할 타이밍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올리버는 납득했다. 하긴, 한창 용지매입으로 바쁜 와중 갑자기 노라가 니코의 여동생이라고 말하는 건 약간 이상했으니.

심지어 노라가 커피를 계속해 준비하는 와중에는 특히.

왜 조가 그토록 노라가 커피를 준비하는 걸 싫어했는지 알 거 같았다.

‘그냥 준비하게 내버려 두라고 한 내 잘못이기도 하네.’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노라에겐 왜 말하지 않았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도움받은 게······. 죄송합니다.”

조는 사죄로 말을 뭉갰다. 그러나 크게 문제는 안 됐다. 무슨 말인지 올리버조차 대충 이해가 됐으니.

노라에게 확실히 말하기 힘들 터였다. 자기가 약간 도움을 받은 게 자기 오빠를 죽인 사람이라니. 좀 그렇지 않은가?

“아, 배고파.”

생각하느라 허기가 심해진 올리버는 들고 있던 쿠키와 커피를 입에 넣어 씹었다.

“······!”

모두가 경악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노라마저.

스스로 독을 먹은 거였으니.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너무나 허기가 졌기에, 또, 왠지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느낌에 불과했지만, 다행히 그 느낌은 적중. 올리버에겐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모두 놀란 채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다.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보듯.

“조. 노라와 잠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올리버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탁했다. 조는 우려를 빛냈지만 이내 올리버의 얼굴을 보곤 조용히 길을 터줬다.

몇 걸음 앞에 선 노라.

올리버는 그녀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췄다. 대화를 나눌 땐 이게 예의였으니.

“노라.”

원망, 증오, 배신감, 공포를 빛내는 노라에게 올리버가 말을 걸었다.

“제가 미우신가요?”

미세하게 떨며 시선을 피하던 노라는 그 말에 반응해 올리버와 눈을 마주쳤다.

10대 초중반의 소녀는 올리버를 무서워했지만, 동시에 미워했다.

“······예. 미워요. 죽으면 좋을 정도로 미워요.”

진심.

“오빠를 죽였어요. 당신이요······. 큰 턱도 죽였고요.”

올리버는 침묵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근데······! 전 당신을 영웅이라 생각했어요. 당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했다고요! 우릴 도와준······.”

요동치는 감정. 노라의 목소리는 점차 떨렸다. 균열이 생긴 둑처럼.

“그런데 속였어요. 날 속였다고요······. 오빠를 죽인 사람을······. 난 영웅이라고······!”

이윽고 노라는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가 속인 건 자신이라고 말하려 했으나, 올리버가 손을 들어 그를 멈췄다.

“우선,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올리버가 차분히 말했다. 자신이 죽인 니코의 여동생에게.

“전 니코 씨에게 여동생이 있는 줄 몰랐거든요. 어쨌건, 불쾌하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또, 오빠 분을 죽인 것도 죄송······.”

올리버는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뭔가 걸리는 게 있어서. 곧 그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노라······. 사실 전혀 미안하지 않습니다.”

“······.”

“노라 당신에게 조금도 미안하지 않아요. 아······.”

올리버가 그답지 않게 탄성을 내며 자기 입을 덮었다.

노라의 감정에 조금도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기에. 그건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아주 아주 이기적인 슬픔.

올리버는 자신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소녀를 앞에 두고도,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슬픔을 느낄 뿐이었다.

***

인육 요리사와의 싸움 이후 올리버는 여러 가지 변화를 겪었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좋은 것은 질병계열 흑마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신체 능력을 비롯한 반사신경, 감각 기관이 몹시도 좋아졌다는 거였다.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던 거지만, 정신을 차리고 알아보니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질병-약화계열 흑마법과 독에 대한 강력한 내성이 생긴 것도 있었다.

엔간해서는 기별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몇 번 실험해보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이 변화가 마음에 드냐면 그건 아니었다.

인육 요리사와의 대화는 그만큼 불쾌했고, 그가 남겨준 허기 역시 올리버에게 적잖은 불편함을 선사해줬으니.

애당초 갈로스에서 일찍 돌아와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시체를 손질하며, 송장인형 강화 연구에 몰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바쁘게 지내면 잊힐까 해. 허나, 이러한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허기란 것은 생각보다 더 강한 것이었기에.

헌데, 웃기게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 허기를 잊을 수 있게 됐다. 유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섯······. 아니, 일곱 개인가?”

노라와의 대화 이후 고민에 빠진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그 사이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포레스트가 말을 걸었다.

“괜찮나?”

그는 올리버의 심상치 않은 반응을 보곤 정회(停會)한 회의를 폐회(閉會)하곤 X구역 유지(有志)들을 돌려보냈다.

덕분에 올리버는 얼추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예, 괜찮습니다. 포레스트 님. 저 때문에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여러분에게도요.”

올리버가 걱정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마리와 조에게 말했다.

“정말 괜찮나?”

포레스트가 중개인 특유의 감을 발동시키며 질문했다. 그도 그럴 게 올리버의 그런 반응은 처음이었으니.

뭐라 형용할 수 없었지만 불길했다. 엄청난 이익이 걸린 X구역 재개발 회의를 뒤로 미루고, 모든 일을 어그러트릴 뻔한 노라에 대한 처우도 잠시 뒤로 미룰 정도로 말이다.

마치,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과장되게 이를 데가 없는 표현이었지만, 그럼에도 포레스트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조와 마리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올리버가 답했다.

“예, 정말 괜찮습니다. 생각을 정리했거든요. 역시, 원점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원점. 알 수 없는 단어에 다들 물음표를 띄었다. 그러나 섣불리 묻지는 못했다. 본능이 그러지 말라고 시켰기에.

“조······. 노라에게 독이 든 커피와 쿠키 그리고 제가 자기 오빠를 죽였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셨나요?”

올리버가 그 독이든 커피와 쿠키를 먹으며 물었다. 배가 고파 그런지 쉬지 않고 입에 들어갔다.

“시장에서 만난 예쁜 언니라고 했습니다. 가게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고요······. 노래도 가르쳐 줬다고 합니다.”

“엔조이먼트구만.”

포레스트가 말했다. 확실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평생에 걸쳐 쌓은 중개인으로서의 경험과 감이 엔조이먼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급변하는 정세 때문에 란다에 정착하려 하며, 그 장소로 X구역을 목표로 삼은 엔조이먼트 말고는 없었다.

아무래도 굴뚝이 아니라 집 전체를 때울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돼······. 그때와 달리 엔조이먼트는 시(市)의 협력이 적극적으로 필요한데. 여차할 경우, 개혁파 드루이드에게 권한을 줘 잡아가라 할 수 있으니까.’

화를 가라앉히고 침착함을 되찾은 포레스트가 생각했다. 강력한 자치권을 자랑하는 란다였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례적이긴 했지만, 명분만 잘 가져다 붙이면 무리도 아니었으니. 성기사가 그 일례였고.

‘그런데 시(市)의 비소속 동맹인 데이브에게 이따위 수작을 부리다니. 자칫 시(市)의 비위를 거스를 있는데······. 아니, 그전에 이따위 수작으로 데이브를 해치울 생각한 건가?’

포레스트는 다 먹어치운 독 쿠키와 커피, 그리고 거짓말쟁이 목걸이를 봤다.

나름 철저한 준비였지만, 해결사 데이브를 해치우기에는 그래도 모자란 감이 있었다.

생각이 그 방향으로 가자 포레스트는 한 가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성공해도 그만이고, 실패해도 그만이 아니겠냐는.

충분히 가능했다.

포레스트가 수집한 엔조이먼트와 시(市)의 거래내용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포레스트 님.”

올리버가 상념에 빠진 포레스트를 불렀다. 포레스트는 그에 반응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까지 생각이 깊었던 모습과 대비되게 그는 뭔가 목표, 확신이 생긴 분위기였다. 아니면, 귀찮은 일을 빨리 끝내고 싶든가.

불길했다.

“왜 그러나?”

“혹시, 엔조이먼트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포레스트 님이라면 미리 조사하셨을 거 같은데요.”

정답. 허나, 바로 대답하진 않았다.

“왜 그러나?”

“급한 일이 생겨서 빨리 좀 해결하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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