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6. 개혁파 (2)
노라라는 소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말에 따라 건물 밖 거리로 나가자 파이터 크루와 마리의 수행원과 대치하고 있는 드루이드 세 명을 볼 수 있었다.
남성 둘과 여성 하나로 이뤄진 그들은 수십 명이나 되는 흑마법사들 앞에서도 당당히 서 있었다.
‘엔조이먼트······는 아니신 거 같은데?’
올리버가 드루이드의 모습을 살피며 생각했다.
타고난 분위기와 큰 키, 넘치는 생명력, 녹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볼 땐 드루이드는 확실해 보였지만, 엔조이먼트는 아니었다.
답답한 생활과 가혹한 수련에 지쳐 도시로 도망쳐온 엔조이먼트는 하나 같이 비싼 옷을 즐겨 입은 데 반해, 눈앞의 드루이드는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엔조이먼트처럼 녹색 머리카락만 가졌다 뿐, 투박한 모피 옷에 나뭇잎 망토, 녹색 면직물 망토 등. 그 복장이 소박하고 이질적이었다. 특히, 거대도시 란다에서는 더욱.
처음 보는 타입의 드루이드. 포레스트가 그들의 정확한 정체를 밝혀주었다.
“이거 참 신기하군요······. 란다의 진짜 드루이드가 방문하다니요.”
“진짜 드루이드?”
올리버가 저도 모르게 따라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마리가 올리버의 곁에 살짝 붙어 속삭였다.
“그린랜드에서 수련 중인 드루이드를 칭합니다.”
그린랜드. 연합왕국에 속한 땅 중 하나로, 가난하지만 일부는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받은 지역이었다.
가령, 드루이드가 직접 다스리는 땅이라던가.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올리버가 알기로 그 드루이드들은 자연과 수련에만 관심이 있기에 그린랜드 밖으로 나오지 않고, 또, 나오기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그대가 혹시 포레스트요?”
드루이드 중 가운데 서 있는 남성이 말했다.
중년의 그는 덩치가 가장 컸으며, 길게 기른 수염과 머리카락은 흡사 맹수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위압감이 남다른 그를 상대로 포레스트는 차분히 대화를 이어갔다. 중개인 특유의 수완과 배짱으로.
“그렇습니다. T구역 30번 거리의 중개인 포레스트라 합니다. 그 명성도 드높은 드루이드를 만나 영광입니다.”
“빈말이라도 듣기 좋구만······. 드루이드 피어스요.”
“개혁파시겠군요.”
“이제 그러한 구분은 의미 없소.”
“아, 신문에서 봤습니다. 전통파와 대립이 종결됐다고······. 그럼, 특별법 때문에 온 거겠군요?”
특별법? 올리버는 알 수 없는 대화에 고개를 갸웃댔다. 개혁파와 전통파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드루이드는 크게 세 부류로 나뉘었으니.
오랜 전통에 따라 자연을 숭배하고, 선대의 가르침을 따르자는 전통파.
시대에 발맞춰 인간을 우선으로 삼아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하자는 개혁파.
그딴 건 모르겠고 자신을 가장 우선시하며 개인의 자유와 쾌락을 좇는 엔조이먼트.
참고로, 전통파와 개혁파는 이념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했으며, 덕분에 엔조이먼트는 그 틈을 타 그린랜드를 벗어났다고 했다. 자신들의 욕망을 실천하기 위해.
그런데 특별법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올리버가 갈로스를 떠난 사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맹수를 닮은 피어스가 입을 열었다.
“일을 의뢰하러 왔소······. 그전에 데이브란 자가 누구요?”
“접니다.”
포레스트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올리버가 한쪽 손을 들어 대답했다. 호기심이 동해 반사적으로 움직인 것.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고, 피어스는 길쭉한 다리로 올리버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단순한 행위임에도 상당히 위압적.
조와 마리는 걱정을 빛내며 올리버 주변으로 모였지만, 올리버는 괜찮다며 손을 들었다.
피어스는 올리버 앞에 멈춰 서더니, 자기 턱을 매만지며 올리버를 살펴봤다. 그의 손은 곰을 연상케 할 정도로 두껍고 강인해 보였다.
“······삐쩍 말랐군.”
“일이 좀 있었거든요.”
“네가 정말 셰이머스······. 그 애송이를 쓰러트렸나?”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포레스트가 끼어들었다.
“거절하겠습니다.”
“거절? 무슨 의뢰를 할 줄 알고 거절하겠다는 거지? 돈이라면 충분히 챙겨왔소. 도시 인간들은 돈을 좋아하니까.”
“물론, 압니다. 드루이드는 아주 부유하니까요.”
포레스트와 피어스가 주고받은 한마디에는 묘한 경멸이 깔려있었다.
“그리고 왜 드루이드가 여기 왔는지도 짐작이 됩니다. 그린랜드에서 도망친 드루이드. 엔조이먼트를 잡아 달라는 거겠지요?”
정답이었는지 피어스는 반박하지 않았다. 침묵을 통해 대답을 확인한 포레스트는 자연스럽게 올리버와 피어스 사이로 들어가 거리를 벌렸다.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듯.
피어스는 뒤로 물러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아시는구려.”
“그게 아니면 드루이드께서 이런 도시로 나올 일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의뢰는 거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올리버는 살짝 놀랐다. 평소 포레스트답지 않은 결정이었기에.
일에 관해서는 진지하고 성실한 그는 어떤 의뢰가 들어와도 일단 조사부터 하였다. 물론, 이런 결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X구역 재개발이라는 큰 사업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 중개인 일까지 병행하는 건 무리였다.
‘단순히 그거 때문만은 아닌 듯하지만.’
올리버가 포레스트의 감정 상태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드루이드 개혁파에게 경계심과 우려, 께름칙한 감정을 빛냈다. 그것도 상당히.
“거절하는 이유가 뭐요?”
“저와 여기 있는 친구들 모두 작은 사업을 준비 중이라 한동안 의뢰는 받지 않을 예정입니다······. 원하신다면 실력 좋은 중개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재개발 사업을 말하는 건가?”
피어스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포레스트는 살짝 놀랐고, 피어스는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숲에서 수련만 한다고 드루이드가 세상 물정 모른다고.”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지······. 미안하지만, 그건 아주 큰 착각이요. 중개인. 드루이드만큼 세상을 잘 아는 자도 없소. 우린 세계수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배우거든. 과거와 현재, 심지어 미래까지.”
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세계수를 가장 잘 다루는 것은 다름 아닌 드루이드였으니까.
자신감 넘치는 마법사들조차 세계수와 관해서는 자신들이 드루이드보다 못하다는 걸 인정한 게 그 증거였다.
“우린 그대가 중개인이 되기 전 뭘 했는지 알고, 중개인은 언제 됐으며, 누구의 도움을 받고, 언제 왕성히 활약했고, 언제 일선에 물러나, 언제 다시 왕성히 활동했는지도 알고 있소. 심지어 누구 덕분인지도 알고.”
피어스는 올리버를 봤다.
“대단하시군요. 말의 요점은 잘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의 요점은 우리 드루이드가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거요.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그렇기에 적잖은 수의 엔조이먼트가 이곳 X구역을 노리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피어스는 진심이었다. 엔조이먼트가 X구역을 노리고 있었다. 허나, 포레스트는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다.
“우린 엔조이먼트를 다시 그린랜드로 데려가는 게 목표고, 그대들은 안전하게 이곳을 재개발하는 게 목표지. 그러니 서로 협력하는 게 어떻소? 데이브란 저 해결사가 시(市)의 비공식 동맹이라던데, 엔조이먼트에 관해서 우리가 움직일 수 있게, 시에 허락을 구할 수 있지 않소? 그럼, 그쪽 일도 훨씬 수월할 텐데?”
꽤나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목표가 묘하게 겹쳤으니, 협력해도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드루이드라는 초인과 손을 잡으면 더 수월할지도.
그러나 포레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누구보다 합리적인 그가.
“감사한 말씀이긴 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건 저희 일이니 저희가 해결하고 싶군요.”
단호한 태도와 감정.
포레스트는 행동으로 보나 감정으로 보나 드루이드와 엮이기 꺼려했다.
상대하는 드루이드조차 알 수 있을 정도로.
피어스는 난감한 듯 곰 같은 손으로 턱을 긁적였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군. 란다 사람들은 손익이 빠르다고 하던데?”
“그리고 주도적이지요.”
“주고받는 것도 확실하다고 들었지······. 좋은 정보를 줬는데, 보답할 생각은 없소?”
“음, 틀린 말은 아니군요. 원하시는 게 뭐 있으신지?”
“음······. 셰이머스를 쓰러트린 그 실력을 보고 싶구만.”
피어스가 올리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돌풍과 함께 사라져, 올리버의 등 뒤에 나타났다.
엄청난 속도로 이동한 것.
마리, 조를 비롯한 모두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고, 그 사이 피어스는 손을 홱 하고 휘둘렀다. 올리버를 낚아채기 위해.
허나, 그의 손은 올리버에게 닿지 못한 채 허공에 멈췄다.
올리버가 세운 쿼터스태프에 가로막혀.
꾸구구구구······.
밀지도 밀리지도 않은 채 올리버의 쿼터스태프와 드루이드의 손이 대치했다. 그렇다 할 흑마법을 쓰지 않았음에도.
모두가 그 모습에 놀라는 와중 빼빼 마른 올리버가 말했다.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
“다행히 평화적인 분들이시네요.”
드루이드가 떠난 후, 다시 회의실로 들어온 올리버가 대뜸 말했다. 허나, 마리는 조용히 화를 냈다. 마치, 잘 화내지 않는 올리버 대신 화내 주듯이.
“갑자기 공격했습니다······. 그렇게 보내선 안 됐습니다.”
마리는 그녀의 말처럼 드루이드와 싸우려고 했다. 올리버가 말려서 멈췄지만.
“참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리.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습니다. 정말 공격한 게 아니라, 제 실력을 보고 싶었던 거라······. 뭣보다 덕분에 좋은 정보도 알게 됐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말한 좋은 정보란 다름 아닌 엔조이먼트가 X구역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올리버는 포레스트를 보았다. 어떻게 할 건지 생각을 듣기 위해. 또, 그 외에도 물어볼 게 있었고.
허나, 조가 먼저 올리버에게 말을 걸었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예?”
“아뇨······. 맨몸으로 드루이드의 공격을 막으셨잖아요. 인대나 뼈가 괜찮나 해서요.”
“아······.”
올리버는 그제야 말을 알아듣고 탄성을 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었다.
드루이드는 기본적으로 말도 안 되는 육체를 가진 초인들이었으니. 일반 화기는 가볍게 무시할 정도로.
거기다 피어스는 수많은 근접 전투로 다져진 조조차 한 박자 늦게 반응한 정도로 엄청난 신체를 가진 이.
그런 그의 공격을 올리버는 그렇다 할 흑마법도 쓰지 않고, 쿼터스태프로만 막았고.
확실히 좀 이상했다. 블랙 슈트도 걸치지 않고 어떻게 막은 것인지. 분명, 힘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날아가거나, 팔이 으스러져야 정상일 터인데.
아니, 그 이전에 어떻게 깔끔하게 공격을 막은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감정을 보고 있어 공격할 것은 눈치챘어도, 배후를 붙잡아 공격하는 거까지는 몰랐는데. 어떻게 그리 깔끔히 막았는지.
마치 동체 시력이 반응한 수준이었다.
올리버도 알 수 없는 이변에 의문을 가지는 그때, 똑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드루이드가 온 걸 알리는 소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노라라고 했던가?’
소녀 노라가 물었다.
“혹시, 커피 필요해?”
창백한 피부에 곱슬머리를 한 소녀가 물었다. 조는 그 모습에 다소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화를 냈다.
“아, 진짜······. 여기 오지 말라니까.”
“왜 그래? 손님들한테 잘해주려고 그런 건데?!”
여리여리한 겉모습과 달리 소녀 역시 조에게 지지 않고 말했다. 그만큼 친근하다는 것.
포레스트가 끼어들었다.
“꼬마 아가씨. 혹시, 술은 있소?”
소녀는 똑 부러진 태도로 대답했다.
“예! 싸구려긴 하지만······. 가져다드려요?”
“그럼, 고맙겠구려.”
포레스트가 부탁하자마자 소녀는 냉큼 나가더니, 술과 커피를 가지러 갔다.
그 모습을 본 조는 포레스트를 향해 비난의 눈길을 보냈고, 포레스트는 뭐가 문제인지 물었다.
“왜 그러나? 저번에 왔을 때는 커피나 술을 가져오게 했잖나?”
“그건······.”
조가 말을 하려다 멈췄다. 올리버를 불안하게 보며. 그는 뭔가 실수했다는 듯 자책하는 감정을 빛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조의 태도. 포레스트는 물론 올리버도 고개를 갸웃댔고, 그 사이 노라라는 소녀는 쟁반에 능숙하게 커피와 술을 가져와 사람들에게 따라줬다.
포레스트와 조에겐 술, 마리와 올리버에겐 커피를.
그녀는 올리버에게 커피를 줄 때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호기심, 동경을 품으며 말이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노라 씨.”
올리버가 정중히 커피를 받으며 인사하자, 노라는 웃었고, 그 모습을 본 조는 불안한 기색을 내보이며 노라를 내보냈다. 어른들 이야기하는 데 방해하지 말라고.
그 모습을 본 포레스트가 말했다.
“남의 집에 와서 이런 말 하는 건 실례인 줄은 알지만, 오늘따라 자네가 이상하군.”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듯했지만, 올리버는 굳이 묻지 않았다. 궁금하긴 했지만, 조가 척 봐도 말하기 싫은 듯해 보여. 그리고 더 궁금한 게 있기도 했다.
올리버가 포레스트에게 질문했다.
“포레스트 님. 특별법이라는 게 뭔지요?”
포레스트는 그 질문이 나올 걸 예상했다는 듯 술을 홀짝이며 대답했다.
“자네가 갈로스로 떠난 사이 통과된 법이야. 짧게 설명하면 그린랜드의 드루이드들이 도망친 드루이드. 즉, 엔조이먼트를 붙잡을 수 있게 해주는 권리지.”
“그전에는 안 됐습니까?”
“보통은 그렇지. 드루이드들은 자기들 영역에선 란다만큼 높은 자치권을 누리지만, 반대로 영역 밖으론 그렇다 할 권리를 행사할 수 없거든. 엔조이먼트를 붙잡는 것도 불법이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란다도 비슷했기에 바로 이해했다.
도시 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가 란다 밖으로 나가면 일단 공식적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가 갈로스에 있는 사이 제법 큰일이 일어난 거 같군요?”
포레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큰일이 있었거든.”
“더 큰일요?”
“그래. 전통파와 개혁파로 나뉘어 균형을 못 잡던, 드루이드들이 개혁파로 몰리며 노선이 정해졌어. 거기에 맞춰 특별법이 통과한 거고.”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개혁파를 다시 상기하며 대답했다. 자연을 숭상하는 기존 드루이드의 가치관을 벗어나, 자연을 도구처럼 다루자는 게 개혁파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제법 큰일인 듯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어쩌다 그렇게 된 거죠?”
“미안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몰라. 드루이드 사회는 뭐랄까······. 폐쇄된 사회거든. 외진 시골처럼. 그래서 자세한 내막은 알기 어려워.”
진심. 그때, 조가 말했다.
“그보다 큰일이군요. 여기 공동체랑 비소속 갱만으로 머리가 아픈데, 엔조이먼트라니요. 셰이머스 때문에 란다에서 사라진 엔조이먼트가 왜 다시 나타난 거죠?”
“아마, 살기 위해서겠지?”
“······?”
“아, 설명이 부족했군······. 올리버, 혹시 기억나나? 자네가 셰이머스를 쓰러트리고 그와 관련 자료를 시(市)에 넘겨준 거?”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에 시(市)의 비공식 동맹이 되고, 요안나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으니.
‘요안나 성기사님······.’
“그게 생각보다 큰 역할을 했어. 엔조이먼트를 물 먹이는데.”
“엔조이먼트를 물 먹였다고요?”
“그래. 셰이머스······. 아니, 엔조이먼트가 저지른 ABC사기 수법과 이 방식을 공유한 다른 드루이드들, 그들의 통신망 등을 까발렸거든. 덕분에 피해를 본 국가들은 이를 갈며 이들을 뒤쫓고 있어, 국가 단위로 협력해서. 참고로, 그 핵심엔 우리 란다 시(市)와 보안국이 있지.”
포레스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보안국 때문에 장사하기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던 거 같은데.
“그거 때문에 엔조이먼트가 활동하기 어려워졌거든. 특히, 드루이드는 도시에서 몸을 숨기기 힘든 족속이고. 그런 와중에 특별법까지 통과했으니, 엔조이먼트 모두 죽을 맛일 거야. 일반 경찰과 해결사, 현상금 사냥꾼은 자기들이 상대할 수 있다 쳐도, 그린랜드의 드루이드는 아니니까.”
“뭔가 말이 안 되는데요? 그럼, 더더욱 란다로 오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꼭 그렇지도 않아, 조. 란다는 왕국에서 강력한 가치권을 가진 자유도시. 오히려 이곳에 있는 게 더 안전해.”
올리버는 곧 그 말뜻을 이해했다. 포레스트의 말처럼 란다는 자유도시. 즉, 왕국의 법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막대한 세금을 대가로.
왕국에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해도, 란다에서는 엔조이먼트를 잡아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올리버에게 의뢰를 맡기려 한 거고.
“란다가 아니면 어디 땅끝으로 도망쳐야 할 텐데, 절대 그럴 수는 없을 거야.”
“왜죠?”
“왜냐면 엔조이먼트는 자유와 쾌락 때문에 도시로 온 이들이니. 화려한 도시를 뒤로하고 땅끝으로 도망치는 건 그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거지.”
올리버는 탄성을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셰이머스만 봐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헌데, 포레스트 님. 왜 드루이드의 제안을 거부한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엔조이먼트가 X구역을 노리는 게 맞으면 그쪽 도움을 받는 게 더 수월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엔조이먼트는 뭐가 됐건 골치 아픈 이들이니까.”
포레스트가 잠시 말을 멈췄다. 다음 말에 강조하기 위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개혁파 드루이드들은 더 상대하기 싫어.”
“이유가 뭐죠?”
“왕실. 그러니까 에드워드 10세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