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35화 (435/633)

435. 개혁파 (1)

대표 이사 자리에서 자신을 빼줄 수 있냐고 묻는 올리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탁이었다.

그 증거로 포레스트, 조, 마리 모두 놀란 반응을 보였다. 허나, 또 한편으로 모두 납득하기도 했다. 실로, 올리버다운 반응이기에.

포레스트는 피곤한 듯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이유를 물을 수 있겠나? 대표 이사 자리를 거부하려는?”

“음······. 제가 맡아도 될지 의문이라서요.”

“뭐가 의문인가?”

포레스트가 질문했다. 적당히 넘기지 않겠다는 제스처.

“제가 그런 과중한 자리에 맞을지요.”

“공교롭게도 그런 과중한 자리라 자네가 맡아야 하네. 왜냐면 이 사업의 핵심 키는 자네니까. 그건 설명할 필요 없겠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됐건, 개발 반대 위원회가 X구역 재개발을 허락한 건 올리버였으니.

“다른 식으로 참가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무슨 이사라든가요? 어차피 포레스트 님이 대표자 중 하나를 맡고 있지 않습니까?”

“난 업무를 처리해야 하니까. 나만 대표면 오히려 위험해. 조직이든, 사업이든 우두머리란 존재는 아주 중요한 거니. 특히, 이번 일은······. 자네가 대표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건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어.”

올리버는 그 말에 공감하지 못했지만, 포레스트가 진심인 건 이해했다. 흑마법사의 눈으로 그의 감정을 볼 수 있었기에.

올리버는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솔직히 약간 가책을 느끼기도 합니다.”

“가책?”

“예······. 사업 계획서 읽어 봤습니다.”

올리버가 책과 논문 옆에 덩그러니 있는 포레스트의 사업 계획서를 가리켰다.

“포레스트 님께서 얼마나 이 사업에 신경 쓰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봐도, 아주 철저하게 준비한 걸 알 수 있으니까요.”

“고맙네.”

“또, 조와 마리 역시 이 사업에 얼마나 진심이고 사활을 걸었는지도 알겠습니다. 단순히 돈을 위해서가 아닌, 자기가 소속된 조직을 위해서요.”

조는 아무 말도 안 했고, 마리는 아니라고 겸양했다. 올리버가 느끼는 부담을 덜어내려는 듯.

허나, 올리버는 그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눈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볼 수 있었으니. 전보다 더 자세히.

“그런데 그에 반해 전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아주 큰 사업인 것도 알겠고, 여러분에게 중요한 사업인 걸 알겠는데, 뭐라고 할까······. 실감을 잘 못 하겠습니다.”

“실감?”

“예. 전 이 일을 아무리 곱씹어도 포레스트 님에게 소개받은 해결사 일 이상이라고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여러분께 중요한 일인데도요.”

평소와 같은 올리버의 목소리. 허나, 기분 탓인지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공감할 수 없다는 씁쓸함 말이다.

심지어 그게 포레스트와 조, 마리 등. 꽤 친분이 쌓인 상대들임에도. 올리버는 이 사업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인육 요리사로 어수선해진 마음을 덮을 일 중 하나로 느낄 뿐.

올리버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래서 가책을 느꼈다.

그때, 포레스트가 입을 열어다.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딱 좋군.”

“예?”

“딱 좋다고. 해결사 일 수준으로 생각하는 거.”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그런 올리버에게 포레스트가 설명해줬다.

“자넨 여태까지 해결사로 임한 임무 중 하나도 실패한 적이 없으니까. 키메라 포획에서 요인 회수, 오염구역 청소, 심지어 까다로운 시외(市外) 임무까지······. 딱 그 마음으로 임하는 게 좋아. 애정이 있다고 일을 더 잘하는 건 아니거든.”

“그렇습니까?”

“그럼, 난 젊은 시절 훌륭한 레스토랑 직원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그 일을 사랑했던 건 아니었거든. 사랑했으면 중개인으로 안 넘어왔겠지.”

“아······.”

“그리고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한데, 자네에게 지금 도움을 청하는 건 맞지만, 그건 사업적인 협력을 구하는 거지. 물 빠진 사람 구해달라는 건 아니야······. 만약 이 일은 맡기 싫다면 안 맡아도 돼.”

“그래도 됩니까?”

“너무 서두르진 말고······. 내 말의 요점은 해결사 의뢰와 똑같이 생각하라는 거야. 나나, 조, 마리 아가씨와 관계를 고려하지 말고······. 과거 나눈 대화 기억나나? 개발 반대 위원회에게 처음 습격받았을 때?”

“기억합니다.”

“그때와 지금 난 같은 생각이야, 협력하는 건 좋지만, 누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건 좋지 못한 태도야. 양측 모두에게 말이지. 여기는 란다고 란다에서는 오직 자신만 믿을 수 있으니.”

“······.”

“난 사업의 내외적 업무를, 마리 아가씨와 조는 병력과 일손, 자네는 압도적인 무력과 이름값. 이렇게 힘을 합쳐 사업을 하자는 거야. 누가 누굴 도와준다는 웃기지도 않는 생각하지 말고. 만약, 누군가 제 일을 못 하면 쳐낼 생각이야.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고.”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감정을 보았다. 그럴 리는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는 올리버를 배려해 그리 말했다.

“일의 성공 가능성, 그리고 보수만 고려해서 이 일을 할지 말지 정해. 해결사 일을 맡을 때처럼.”

포레스트가 상황을 깔끔해 정리해줘서 말했다. 그래서일까? 올리버는 복잡한 머리가 한층 깔끔해진 기분이었다. 개운할 정도로 말이다.

“······맡고 싶습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일단, 금전적 보수가 나쁘지 않았기에. 물론, 이미 상당한 돈이 있긴 했지만, 차일드의 유지비와 실험 등 계속해 돈이 나가고 있어, 수입은 많을수록 좋았다. 특히, 안정적인 고정 수입이라면 더욱.

대답을 들은 포레스트는 과장되게 안도했다.

“후, 다행이구만. 거절하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대표 이사는 조금 부담스럽긴 하네요.”

“젠장.”

설득당한 와중에도 한결같은 올리버의 태도에 포레스트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실력과 경력에 비해 까다롭지 않아 같이 일하기 더없이 좋았지만, 이럴 때는 차라리 까다로운 게 낫지 않았나 싶었다.

“근데 사실 상관없네. 어차피 자네 일 맡기로 한 이상 대표 이사로 해야 해.”

올리버 때문에 잠시 혈압이 올랐다 내려간 포레스트가 차분히 또 단호히 말했다. 감정 상태로 봤을 때 무슨 근거가 있는 발언이었다.

“왜 그렇지요?”

“이미 사업자등록 신청서 내버렸거든. 자넨 나랑 같이 공동대표야.”

진심.

너무 놀란 올리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없이 포레스트를 바라봤다. 마리와 조도.

하지만 포레스트는 뻔뻔하게 나왔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말게. 자네랑 같이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니까······. 괜찮으면 바로 일 이야기로 넘어갔으면 좋겠군. 사업 계획서는 다 읽어 봤지?”

한결 편해진 자세가 된 포레스트. 올리버가 대답했다.

“예······. 이곳 파이터 크루 거주지와 마리가 사는 거주지 인근 일부 지역을 재개발하는 거 읽어 봤습니다. 그런데, 재개발보다는 재건축이 맞지 않습니까?”

“제대로 읽어 봤구만······. 맞아, 재개발보다는 재건축이 맞지. 도로와 하수 시설 등 인프라는 건드리지 않고, 미완공된 건물만 마무리 지을 거니까.”

“근데 왜 재개발이죠?”

“첫 번째, 재건축보다는 재개발이 더 있어 보이거든. 있어 보여야 돈이 돈 모이고. 두 번째는 재개발하긴 할 거기 때문이야. 정확히는 우리가 직접 할 건 아니지만.”

“예?”

“사업 계획서 내용을 이야기해주겠나?”

포레스트의 갑작스러운 요청. 올리버는 기꺼이 따랐다.

“아까 전 말한 이곳 파이터 크루 거주지와 마리가 사는 다세대 주택 인근을 재개발하는 게 1차 목표입니다. 공장도 유치하고요.”

“카버 씨를 통해 시(市)와 거래했네.”

“거래요?”

“그래, 거래. 만약, 이곳을 개발해 일정 기간 평화롭게 유지하면 X구역이 안전한 걸 인정해, 시(市) 단위에서 예산을 편성해 개발을 적극 지원해주고, 민간 투자도 적극적으로 유치할 수 있게 도와주겠고.”

“일정 기간이라 함은 얼마죠?”

조가 불만스럽게 되물었다. 조 입장에서는 찔러보는 행위처럼 보였으니······. 엄밀히 말해 찔러보는 게 맞긴 했지만.

“통상적으로 6개월에서 1년 정도지······. 기분 나쁜 건 이해하지만, 시(市) 입장도 이해해주게. 좀 오래된 과거긴 해도 시(市)는 개발 반대 위원회에 크게 덴 적이 있으니까. 또 섣불리 접근하다 망신당하면 시(市)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어.”

“혹시 그거 때문에 카버 씨께서 레스토랑에 찾아온 겁니까?”

올리버가 물었다.

“비슷해. 원래는 중소 건설사 사장들이 지원군으로 부른 거지만. 어쨌건 카버 씨는 재개발을 지지하고 있어. 직접적으로 돕진 못해도, 시(市)에서 운영하는 사업 지원금과 은행 투자로 금전적 지원을 해줄 의향은 있지.”

“공장은 근데 어떻게 유치할 생각이시죠? 공장이란 게 그냥 세우고 싶다고 세울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의문을 가졌다. 포레스트가 이 역시 대답해줬다.

“그건, 크라임 펌에서 도움을 줄 거야.”

“크라임 펌요?”

“크라임 펌 이사들은 저마다 공장을 소유하고 있거든. 대신, 개발이 확실해지면 이윤 중 얼마를 떼어주기로 했네.”

합리적인 거래인 거 같았다. X구역이 재개발 소문이 퍼져 다들 들떠있는 상태긴 해도, 위험을 감수하는 건 또 별도이니.

올리버는 얼추 이해가 된 것 같았다.

포레스트가 하려는 재개발, 아니 재건축은 본격적인 X구역 개발을 위한 선발대에 불과하다는 걸.

그럼에도 상당한 이익과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는 걸.

X구역 자체가 란다의 다른 구역과 마찬가지로 웬만한 도시 규모란 걸 고려하면 당연한 거긴 했지만.

올리버가 질문했다.

“그럼, 저희가 해야 하는 건 뭐죠?”

“우선, 우리가 개발한 부지와 앞으로 개발이 이뤄질 핵심 부지를 사들이는 거지. 일단, 땅을 소유해야지 뭐든 할 수 있는 거니까. 시(市)가 들어왔을 때 수익을 남기기도 좋고.”

“아마, 고생 좀 해야 할 겁니다.”

X구역 토박이인 조가 다소 번거롭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곳 재개발 소문을 듣고, 헛바람이 든 인간들이 제법 생겼거든요. 땅 주인과 건물주, 그곳에 사는 공동체, 비소속 갱들요. 저희가 사는 곳 근처는 대부분 안면이 있어, 걸맞은 보상과 설득을 하면 들어주겠지만, 아닌 곳은 작정하고 돈을 뜯으려 할 겁니다.”

“나도 젊은 시절에 경험해 봐서 알지.”

젊은 시절 재개발에 몸담았던 포레스트가 말했다.

“우리 파이터 크루는 저를 포함해 몇몇이 돕겠지만, 그리 많이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이미 크라임 펌에서 쓰고 있는 애들이 많아서요.”

“그거라면 걱정 없어요.”

조용히 경청하던 마리가 입을 열었다.

“저희 쪽에도 일손으로 쓸 아이들은 많거든요.”

“다행히 나도 마찬가지지. 나와 거래하는 해결사나 용병 중 슬슬 안정적인 직장에 정착하고픈 이들이 많거든. 실력이 모자란 이들은 아니니 제 몫은 할 거야.”

부드럽게 진행되는 이야기. 그러자 의문이 들었다.

“그럼, 전 뭘 해야 하죠?”

포레스트, 조, 마리 모두 일제히 올리버를 봤다.

“음······. 아무것도?”

“예?”

“놀라는 건 아니야. 다만, 따로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일상을 보내며 대기하는 게 좋을 듯하네. 당장은 자네가 나설 일은 없고, 중요 전력은 예비로 놔두는 게 상식이거든.”

예상치 못한 대답에 올리버가 약간 놀랐다. 고액 연봉을 받는 대표 이사란 게 할 일이 없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 말이다.

‘크게 상관없으려나? 어차피 송장인형도 제작해야 하고, 어르신께 받은 책도 읽어야 하니까.’

올리버가 그렇게 좋게좋게 생각하려는 찰나, 똑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쏠렸고, 그때, 한 소녀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처음 보는 소녀로, 조는 그 그녀를 보자 화들짝 놀랐다.

“노라. 여기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미안······. 근데, 요 앞에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이상한 사람?”

“응······. 드루이드라면서 데이브 씨를 만나러 왔다고 했어. 만날 때까지 못 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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