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 허가 (2)
란다의 노동자 거주지 T구역.
그곳에 한 싸구려 식당이 있었다. T구역에 있는 식당치고 싸구려가 아닌 식당이 더 드물었지만······.
여하튼 그 싸구려 식당 한쪽엔 웬 거구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거구는 아니지만, 가혹한 노동에 시달려 뼈와 가죽만 남은 T구역 사람들 사이에선 제법 눈에 띄었다.
덕분에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검게 물들인 머리카락과 취향에도 맞지 않는 수수한 복장 등 노력이 무색해졌다.
허나,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했다. 가혹한 수련으로 초인적인 육체를 가진 드루이드는 어떤 차림을 해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었다. 가혹한 야생에선 짐승 수준으로 몸을 숨길 수 있는 이들이 정작 도시에서는 눈에 띈다니.
그나마 눈에 띄지 않는 자들은 여성 드루이드뿐이었다.
성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라,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더 젊고 아름다워질 뿐이었기에 비교적 변화가 적었다.
가령, 거구의 남자 앞에 멈춰 선 금발의 여성처럼.
그녀는 험악하게 생긴 남자 앞에 자연스럽게 앉아 입을 열었다.
“꼭 네가 왔었어야 했어? 다른 애들 보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눈에 덜 띄는 애들로 말이야.”
여성은 드루이드임에도, 또 엔조이먼트임에도 덜 눈에 띄는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수련을 통한 얻은 생기(生氣)와 타고난 미모(美貌) 탓에 눈에 띄었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는 없었다.
그녀는 지난 몇 주부터 T구역의 한 주점에서 가수로 일하며 이곳 환경에 어느 정도 녹아들었으니.
엔조이먼트가 아닌, 드루이드다운 인내심으로 말이다.
여성의 비아냥에 남성이 말했다.
“이런 동네에서 여자들끼리만 만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음······. 확실히 그렇긴 하네.”
“또, 남자 중에선 그나마 내가 양반이잖아······. 누가 뭐라 하면 그냥 오빠라고 그래. 사촌 오빠.”
“어우, 싫다야.”
여성이 부르르 떨며 질색팔색했고, 거부당한 남성은 작은 목소리로 발끈했다.
“설정이 그렇다고! 설정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작게 소리 죽여 외치는 남자의 모습이 퍽 웃겼는지 여성은 작게 킥킥 웃었다.
남성은 그 모습을 보고 짜증을 내면서도 썩 싫지 않은지 차분함을 회복하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했다.
“후우우······. 놈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성은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놈이라 함은 그놈밖에 없었다.
“이 맛없는 커피도 먹다 보니 적응되네······. 한 이삼일 전에 돌아왔어. 포레스트의 레스토랑에.”
“꼴이 말이 아니라 하던데?”
여성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한 호구 새끼와 함께 거기 있었기에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굶은 사람처럼 뺨이 푹 들어간 해결사 데이브를.
과장을 좀 보태면 걸어 다니는 시체를 연상케 할 정도였는데, 참으로 신기했다. 그런 놈이 그 셰이머스를 쓰러트리다니······. 믿기지 않았다.
여성이 입을 열었다.
“······듣기로 마탑 일을 하다 그렇게 됐다더라. 갈로스에서 말이야.”
“검은손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그래, 거기. 마탑 소속으로 파견 나갔다 했거든. 마탑 실험체인지, 고용 마법사인지 뭔 이유로······. 란다 치고도 워낙 소문이 많은 놈이라 뭐가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암튼 거기서 험한 꼴을 당하고 온 거 같아······.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지.”
남자가 동의하며 눈을 번뜩였다. 사냥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눈으로.
자연을 숭배하고 지켜야 하는 드루이드가 할 눈은 아니었지만,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러한 법칙도 흔들렸다.
덕분에 자신들 엔조이먼트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어 불만은 없었지만.
“······그럼 약해졌다는 거야?”
“확실히는 몰라. 다만, 해결사 데이브 이름값을 믿고 일을 진행하려던 늙은이들이 말라깽이가 된 모습에 약간 망설이고 있는 건 사실이야. 돈 많은 늙은이가 다 그렇지, 뭐·····.”
악의적인 비아냥. 허나, 그녀의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X구역 재개발······. 포레스트에 의해 X구역 건물 몇몇 곳을 보수 공사하며 시작된 소문.
란다답게 첫 삽을 뜨는 순간 건설업계를 시발점으로 해당 사실이 각 분야로 퍼져나갔다.
투기판에는 새로운 돈벌이가 생겼다고, 란다 시(市)에서는 새로운 도시 개발 가능성이 생겼다고 말이다.
그와 함께 무수한 소문도 퍼져나갔다.
뒤늦게 중개인으로 대성한 포레스트가 놀라운 협상력을 발휘했다든가, 개발 반대 위원회가 몰락했다든가, 혹은, 과거 ABC와 같은 사기라든가 말이다.
그중 가장 신빙성이 높은 이야긴 포레스트와 거래하는 가장 큰 해결사 데이브 때문이라는 소문이었다.
셰이머스를 쓰러트려 란다 최고의 해결사 중 하나가 된 흑마법사. 란다의 새로운 살아있는 전설.
놈이 강력한 힘을 앞세워 개발 반대 위원회와 담판을 지었다는 거였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 이야기에 혹해 사탕에 꼬인 개미처럼 포레스트에게 몰려갔다. 데이브는 오직 포레스트하고만 거래하니.
그런데 오랜만에 돌아온 데이브의 모습을 보고, 다들 불안감에 휩싸였다. 한 달 넘게 굶은 듯한 안쓰러운 몰골을 보고 말이다.
폭력으로 점철된 뒷세계도 외모가 중요하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건 없구만.”
남자가 불평했다.
“불만이면 네가 직접 알아보지 그래. 남자가 쫑알대면 인기 없다?”
“내가 가게에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네가 아니라 네 돈이 인기 많은 거겠지······. 어쨌건, 그만 투덜대. 너랑 다르게 난 알아볼 방법을 찾고 있다고.”
“누가 투덜대고 싶어서 투덜대나? 특별법 때문에 그러지.”
“나도 특별법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여기 있는 거지.”
특별법. 그 단어가 나오자 여자나 남자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게 그 특별법이란 자신들 드루이드 엔조이먼트를 실질적,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법이었기에.
애당초 자유와 쾌락을 좇으며 내키는 대로 살던 엔조이먼트가 이렇게 결집한 것도 그 특별법 때문이었다.
자유를 위해, 생존을 위해, 자신들이 축적한 재산을 위해.
이른 시일 내 란다에 정착해야 했다.
“후······. 소문대로 상태가 나빴으면 좋겠네. 이기는 건 이기겠지만, 빨리 끝내야 하니.”
“그것도 너무 걱정하지 마.”
“뭐?”
“꼭 직접 싸워서 죽이는 것만 능사가 아니잖아?”
“······??”
“지켜보기나 해. 그냥 노래나 부르며 하찮은 정보만 모은 건 아니니까······. 내가 이래 봬도 친구를 많이 사귀고 있거든. 귀엽고 어리석은 꼬마 아가씨라든가?”
여성의 알 수 없는 말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댈 뿐이었다.
***
슥. 슥. 슥. 사각. 사각. 사각. 슥. 슥. 사각. 사각.
란다의 X구역의 파이터 크루 거주지 안.
올리버는 그곳에 마련된 거대한 회의실 구석에 앉아 종이 위로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다름 아닌 데지헤 듀란스를 송장으로 가공하기 위한 일종의 설계 도면으로, 종이 옆에는 <마법사의 의학 서적> 및 <내장과 마력의 상관관계 이론 심화편>, <마력의 인체 흐름 개론>, <알기 쉬운 갈로스 기계 공학 입문편>, <10살도 알 수 있다. 마력 무기란 무엇인가>란 책과 논문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음······. 얼추 맥락이 잡혀가네.’
올리버가 자신이 작성한 종이를 보며 생각했다.
종이 위에는 피 수조 두 개가 그려져 있었으며, 수조에는 각각 시체와 그 시체에서 적출한 내장이 담겨 있었다.
원래 송장인형을 제작하는 데 내장은 필요 없었으나, 올리버는 이 내장을 생체 부품화시켜 송장인형에 장착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장······. 특히, 마법사의 내장은 마력 전도율이 높은 물건이었기에.
과거였다면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이었지만, 퍼펫과의 세 차례 만난과 우연찮게 얻은 테어도어의 지식, 혈마법, 질 좋은 재료 탓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기도 했고, 기대하는 효과를 내면 전력도 강화할 수 있을 테니.
‘······뭣보다 난이도가 적당해서 마음에 들어.’
어렵지만,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실로 절묘한 난이도. 재개발 사업과 병행하기 딱 좋을 듯했다.
올리버는 기본 아이디어 골격에 이를 실현할 살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가령, 내장의 방부 처리와 생체부품화 시킬 방식, 내장과 송장인형의 호환 등을 말이다.
‘프타스 어시스턴트를 이용해 세포 단위로 내장을 반(半)방부 처리하고, 갈로스 기계 기술을 이용해 기계장치를 추가하고······. 어려운 건 송장인형과 내장부품의 연결호환인데······.’
올리버는 고민했으나, 곧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인조혈관과 내장부품을 연결하는 거였다. 내장부품 역시 생명력과 피를 연료로 사용할 테니, 호환하기도 쉬울 터.
‘그렇게 연결한 다음 다 함께 피수조 안에 통째로 넣어 활성화하는 거지. 그럼, 인조혈관은 방수성(防水性)이 낮은 재질로 해야 하고······. 음, 그럼 비용이 더 높아지겠네. 피와 생명력 소모가 커지니.’
올리버가 그렇게 고민했다. 차일드의 유지비도 멈추지 않게 계속해 높아지고 있는 와중 여기서 송장인형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높이는 게 과연 옳을지.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돈이라면 이제 크게 걱정이 없다는 거였다.
셰이머스 때 얻은 200억 란다는 여전히 남아 있었고, 인육 요리사의 현상금인 500억도 얻었기에······. 도합 700억 란다란 말도 안 되는 액수가 올리버의 손에 있었다.
‘음······. 일단, 해 보자. 비용이 너무 비싸면 그때 가서 또 수정하면 되는 거니까.’
올리버가 그렇게 판단하며, 송장인형-듀란스의 새로운 생산 도면을 완성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 건물의 주인인 조와 선택받은 사람들의 대표 마리,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포레스트였다.
“오셨습니까?”
올리버가 작성을 끝마친 종이를 정리하며 말했다.
올리버의 인사에 포레스트는 평소와 같이 인사를 했으며, 조와 마리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 그 둘은 사이가 어색해 보였다.
포레스트가 올리버 맞은편 구석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분명, 상석은 저기였지만, 이상하게 올리버를 중심으로 다들 서거나 앉았다.
뭔가 묘한 상황······. 포레스트가 입을 열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군.”
“아뇨, 전 여기서 볼일 보고 있었으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다행이고, 무슨 연구를 하고 있던 거 같은데, 잘 풀렸나?”
“예, 그럭저럭 골격이 잡혔습니다······. 설명해드릴까요?”
“음, 아니, 됐어. 설명해도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텐데.”
포레스트가 올리버 옆에 쌓인 각종 서적을 보며 대답했다. 의학, 인체, 내장 단어 하나하나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내가 잘 아는 이야기부터 해보지. X구역 재개발 사업······할 텐가?”
포레스트의 질문에 올리버는 옆에 서 있는 마리와 조를 봤다. 그 둘은 올리버의 대답을 기다리는 한편 올리버에 대한 걱정을 빛냈다.
올리버가 란다로 복귀한 후 처음 만났을 때 왜 이렇게 얼굴이 반쪽이 됐냐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아직도 걱정스러운 듯했다.
여하튼 올리버는 그들의 감정 상태를 봤고, 마리와 조는 올리버가 무슨 대답을 하든 따를 것처럼 보였다.
이득이 되든, 손해가 되든.
“음······. 일단, 개발 반대 위원회에서는 재개발해도 방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호, 그거 다행이군. 난 또 안 좋은 대답이라도 들은 줄 알았는데.”
“······?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자네 표정이······. 아니야. 솔직히 봐도 잘 모르겠구만.”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자기 얼굴을 매만졌다. 바솔로뮤의 수수께끼 같은 말 때문인가 싶었다.
“어쨌건 개발 반대 위원회가 허락했으면 사실상 가장 큰 장애물은 사라진 셈이군.”
“이곳 공동체랑 비소속 갱들이 있습니다.”
조가 끼어들어 조언했다. 포레스트는 가볍게 대꾸했지만.
“돈과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 직접 가서 물어봤다면 이번 사업에 관심이 있다는 걸로 내 이해해도 되겠나?”
포레스트가 올리버에게 시선을 돌리며 질문했고,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예, 괜찮을 것 같습니다.”
괜찮을 거 같다라. 참으로 미묘한 대답이었다. 첫 발자국을 내딛는 데만 수백, 수천억 란다는 기본으로 드는 괴물 사업이건만.
물론, 올리버의 이런 태도에 불만은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 괴물 사업은 애당초 올리버의 선택에 의해 시작될 수도 못 할 수도 있었기에.
올리버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유일하게 올리버만이 몰랐을 뿐.
올리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뭔가?”
포레스트는 진지하게 물었다. 올리버의 요구는 거의 다 수용할 생각이었기에.
애당초, 이 사업의 핵심 키이자, 양옆의 주요 전력 모두 올리버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올리버가 답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올리버다운 대답을.
“대표 이사 자리에 절 빼주실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