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 허가 (1)
포레스트를 만나고 싶다는 올리버의 부탁.
알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며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포레스트를 데려오겠다고 답했다.
“사무실로 우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장님께선 3층에 계신 데 조금만 기다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3층이라······. 올리버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봤다. 하나의 공간이라 봐도 무방한 1, 2층 홀과 달리 완전히 분리된 3층은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룸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3층이라······. 포레스트 님께선 뭘 하고 계시죠?”
“······손님들을 접객하고 계십니다.”
한순간 망설이며 대답하는 알. 올리버는 궁금해졌다. 3층 룸에서 무슨 접객을 하는지 말이다.
“알 씨?”
“예, 데이브 씨.”
“괜찮다면 저도 3층으로 올라가 볼 수 있겠습니까?”
“예?”
“3층에 가본 적이 없어서요. 궁금하네요.”
***
고맙게도 알은 올리버의 부탁을 들어줬다.
처음에는 난감해했으나, 올리버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더니 안내해주겠다고 했다.
어째 곤란하게 만든 것 같아 다소 미안했지만, 그럼에도 올리버는 후회하지 않았다. 덕분에 포레스트 레스토랑의 3층을 둘러볼 수 있었고, 포레스트도 볼 수 있었으니까.
“데이브?”
3층에 있는 여러 방 중 가장 거대한 방안에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포레스트가 올리버를 보고 말했다.
그는 여러 감정을 빛냈다.
놀람, 당황, 의문, 걱정, 의아.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란 동시에 뺨이 푹 들어간 모습에 당황, 왜 저리된 건지 의문을 가지고 동시에 걱정했다.
마지막 의아함은 올리버가 왜 바로 이곳으로 왔는지 궁금해하는 거였고.
난감해하는 알.
올리버는 그런 알 뒤에 서서 3층 방 안에 있는 손님들을 둘러봤다.
대부분 란다 내에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로 보였는데, 안타깝게도 아는 얼굴은 없었다. 딱 한 명. 구석에 앉은 시(市) 내무부 장관 폴 카버만 빼고 말이다.
그는 여기 있는 사람 중 가장 젊었음에도, 동요하지 않고 올리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브 씨.”
“안녕하십니까? 카버 씨. 오랜만입니다.”
“예, 정말 오랜만이네요.”
카버는 여유롭게 대답하고는 올리버와 포레스트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자기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결론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식사가 다 끝나 이만 일어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카버가 반도 먹지 않은 고기 파이를 앞에 둔 채 말했다. 뻔한 거짓말.
허나, 그와 별개로 손님들은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카버보다 나이가 2배는 많았음에도, 카버의 말에 꼼짝도 못 했다.
“여기 고기 파이가 맛있네요. 다음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카버는 올리버를 지나치며 인사했고, 그의 뒤를 따라 다른 손님들도 새끼오리처럼 따라갔다.
덕분에 방 안에 있던 다수의 손님은 한 번에 사라져 레스토랑 주인인 포레스트와 종업원 알, 불청객 올리버 이렇게 단 셋만 남게 되었다.
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
처음으로 침묵을 깬 것은 알이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억지로 오고 싶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제 잘못입니다.”
그러자 포레스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데이브 자네가 올 줄 모르고 대기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모두가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훈훈한 광경에 올리버는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알은 지그시 눈을 감고, 포레스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엇인가를 포기한 듯.
“하아······. 알. 데이브 안내하느라 수고했어. 나가 봐.”
포레스트의 말에 알은 정중히 고개를 숙인 뒤, 올리버에게도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알이 문을 닫고 나가자 포레스트는 잔에 술을 쪼르르 따르며 입을 열었다.
“갈로스에 있는 거 아니었나?”
“방금 막 왔습니다.”
“라빌리 소식은 거기 정보 상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듣고 있지······. 설마 혼자 복귀한 건가?”
“예, 전 딱히 할 일도 없고, 때마침 관심 가는 소식도 들려서요.”
포레스트가 잔에 따른 술을 마셨다.
“맞춰보지. X구역 재개발 건 때문인가?”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줄이야. 나쁘지 않았다.
“예, 제인 아가씨에게서 들었습니다. 저도 관련되어 있다던데,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지. 다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자리에 앉게나.”
포레스트의 제안에 올리버는 기꺼이 응해 자리에 앉았다.
“어, 괜찮으시다면 여기 음식 제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배가 고파서요.”
올리버가 조금 먹은 송아지 스테이크를 가리켰다. 먼저 와 있던 손님이 먹은 것으로, 포레스트는 홀쭉해진 올리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배고파 보이긴 하군······. 새로운 거 내오겠네.”
“아뇨, 이것도 괜찮습니다. 버리면 아깝지 않습니까?”
올리버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포레스트는 허락했고, 올리버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스테이크를 썰어 먹었다.
참으로 묘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먹는 모습 자체는 몹시도 깔끔했으나, 그럼에도 강렬한 허기가 느껴졌다.
양복을 입은 맹수라 할까 뭐랄까 기이한 박력마저 느껴졌다.
“갈로스에서 큰 난(亂)이 일어난 건 들어서 알고 있네······. 혹시, 거기서 무슨 일 있었나?”
포레스트가 조심히 물었고, 올리버는 잠시 고민했다. 인육 요리사와의 싸움과 그와 나눴던 대화를 이야기할지 말지.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포레스트는 올리버의 본명(本名)과 진짜 얼굴도 아는 사람이었으니.
올리버는 그에게 자신이 느끼는 묘한 거슬림과 답답함을 상담받고 싶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왜냐면 올리버도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구체적으로 콕 집어 말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는 주제에 조언을 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올리버는 일단 처음으로 돌아가 여기에 온 이유에 집중하기로 했다.
다른 곳에 관심을 쏟으면, 알 수 있거나, 잊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렇게 판단 내린 올리버는 라빌리에서 소요(騷擾)가 일어났을 때,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에 휩쓸려 이리됐다고 설명했다.
“허기가 지기는 하지만 참을 만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괜찮습니다.”
대답을 들은 포레스트는 의문을 빛냈다.
올리버의 실력을 알았으니.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포레스트는 추궁하지 않았다. 올리버를 배려해 말이다.
“파테르교에서 성법 아이템을 구매해오도록 하지. 흑마법이면 결국 성법으로 풀릴 테니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 허기는 좀 거슬렸다. 인육 요리사를 떠올리게 해 더욱.
“감사합니다······. 뭔가 좀 재밌네요. 흑마법사인 제가 성법 아이템으로 흑마법에서 풀려나려고 한다니요.”
“공식적으로는 마탑 소속 마법사이기도 하니까······. 혹시, 그런 이야기나 하려고 3층까지 손수 올라왔나?”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신호.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3층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고, 앞서 여쭤본 X구역 재개발에 관해 여쭙고 싶어 왔습니다······. 혹시, 여기 있던 손님들도 그와 관련된 겁니까?”
질문하자마자 올리버는 마지막 송아지 스테리크 조각을 입에 넣어 오물거렸다.
다 먹은 접시는 옆에 치우고 다른 음식을 가져와 먹었다. 맛있었다.
“관련됐다기보다는 관심이 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지.”
“······?”
“그들은 란다의 중소 건설사 사장들로 재개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이들이야. 내가 X구역을 개발할 권리를 획득했다는 소문을 듣고. 억울한 노릇이지.”
“······포레스트 님께서 재개발 사업을 시작하신 게 아닙니까?”
“소문이 그렇게 난 것뿐이야. 난 아무것도 시작하진 않았어. 애당초 내게 그런 권리가 어디 있나?”
“그럼······?”
“자네가 구매한 X구역 다세대 주택 기억나나? 마리란 아가씨와 그녀 사람들이 머물.”
“예.”
“그리고 파이터 크루. 자네가 부탁한 대로 그들이 사는 집을 보수하느라 그런 소문이 퍼진 것뿐이야. 오해할만하지. 어쨌건, 그 X구역에 삽을 뜬 거니까”
“아······.”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거였다.
“아······. 죄송합니다. 포레스트 님. 저 때문에 관심도 없는 재개발 사업으로······. 귀찮게 되셨군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니, 그건 아니야.”
“예?”
“재개발 사업 자체에는 관심이 있거든.”
***
부후후후후후후훙!
어두운 밤. 거대 도시 란다를 관통하는 셈 강 위로 작은 배 한 척이 달리고 있었다.
그 배 위에는 한 손에 쿼터스태프, 다른 한 손에 고기 파이와 와인이 든 봉투를 든 올리버가 서 있었다.
올리버는 포레스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재개발 사업 자체에는 관심이 많아. 아닌 말로 란다에서 돈벌이에 관심 없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나? 그리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야. 파이터 크루도, 선택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지.’
포레스트가 말했다. 파이터 크루도, 선택하는 사람도 모두 X구역의 재개발에 관심이 많다고.
당연히 그 이유는 돈이라 했다.
‘뭐, 너클 조, 그는 돈 외에도 있지만.’
‘돈 말고 다른 이유도 있습니까?’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그렇다네. 그 친구를 비롯해 X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통된 꿈이 있거든. 살기 고달픈 X구역을 벗어나, 좀 더 사람 살만한 곳으로 이사 가는 것. 이상한 건 아니야. 길 가다 총 맞는 곳에서 살고 싶은 변태들은 잘 없으니. 그리고 보살피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조 역시 X구역의 다른 사람들처럼 공동체에 소속돼 보살피는 가족들이 있었다.
‘허나, 이주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아. 금전적 문제가 가장 크지만,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 원치 않게 X구역에 적응해 버리거나, 고향이랍시고 미운 정이 든 경우. 혹은, 타지 생활에 대한 불안이라든가. 그럼, 뭘 꿈꾸는지 아나?’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할 공감이 가지 않는 거라, 짐작도 안 됐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이상하게도 올리버는 묘한 씁쓸함을 느꼈다.
‘아예, 사는 곳을 변화시키고 싶어해. X구역 자체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물론,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라 다들 꿈에서 멈추지만.’
올리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로는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그럼 마리는 뭐 때문이죠? 그러니까 선택하는 사람들요. 그들은 외지인인데요.’
‘그들은 돈 때문이야. 정확히는 공동체를 운영할 운영비. 저번에 대화해 봤는데, 성기사들의 공격으로 적잖은 재산을 잃고, 주력 사업이던 필거렛 제조도 일시 중단했다더군. 자네에게 피해가 갈까 봐. 나도 그건 좋은 생각인 거 같아. 막 란다로 도망쳐 어수선한 이때 몸을 사려야지. 영리해······. 하지만 수입이 사라진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 간신히 지킨 재산으로 버티고 있다지만, 결국 한계가 올 거야. 고인 샘물은 결국 마르는 법이니. 그래서 재개발에 관심을 가지는 거야. 합법적인 자금을 확보하려고.’
모두 이해되는 이유. 그때, 포레스트가 품 안에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사업 계획서와 사업자등록 신청서였다.
‘X구역 재개발 사업 계획서와 사업자등록 신청서네. 한번 봐주게.’
‘·····대표자란에 이름이 하나 비네요?’
올리버가 사업자등록 신청서의 대표자란을 보며 물었다. 대표란에는 포레스트의 이름이 있고, 그 옆에 빈자리가 있었다.
‘자네 자리니까.’
‘저요?’
‘네, 너요. 애당초 X구역 재개발이 성립하려면 자본, 인력 이전에 자네가 있어야 하니까. 개발 반대 위원회와 담판 짓고 허락받아낸 게 자네가. 자네가 없으면 그냥 망상에 불과한 사업이야.’
포레스트는 사업 계획서를 보여주며 동원할 수 있는 기초 자금을 비롯한 각종 설명을 해줬다.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올리버가 듣기에도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도 많았고, 시(市) 사업지원부, 은행 역시 관심을 보인다고 했다. 적잖은 액수를 지원하고 대출해줄 정도로.
하긴, 미개발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었으니.
거기다 대표 이사의 연봉과 각종 기타 특권도 설명해줬다.
‘물론, 자네에게 있어 이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해볼 생각 있나?’
올리버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면 X구역 재개발이 뭔지 알아내려 온 것에 불과했기에. 그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뭐 나쁘지 않을지도. 보수가 좋았고, 머리가 복잡한 지금, 차라리 딴 일을 해 주의를 돌리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았으니.
허나, 한편으로는 별로이기도 했다. 돈이라면 이미 충분히 있었고, 일이 생각보다 많아 보였기에. 적당히 할 일이 필요한 거지, 과중한 업무가 필요한 건 또 아니었다.
거기다 가장 신경 쓰이는 게 하나 더 있었고·····.
올리버는 문득 자신이 참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올리버는 고민 끝에 포레스트에게 말미를 달라고 했다. 자신이 선택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볼 게 있다고 말이다. 포레스트는 이를 기꺼이 수락해줬다.
“곧 배가 도착합니다! 조심하쇼!”
상념에 빠진 올리버에게 배의 선장 노아 영감이 소리쳐 알려줬다.
저번에 Z구역으로 갈 때 배를 태워준 노인으로, 저번보다 말투라든가 태도가 한층 부드러웠다.
그게 그의 감정에 깃든 기대와 관련된 건지 궁금해졌다.
털털털털.
Y구역에 가까워지자 배가 흔들리며, 천천히 멈췄다.
질척질척한 흙바닥과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 등. Y구역 강 주변은 과거 봤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흡사, 시간이 멈춘 듯.
“정말 혼자 가도 되겠수?”
배의 선장 노아 영감은 특유의 거친 태도로 올리버를 걱정했다.
올리버는 답했다.
“예, 괜찮습니다. 저번에도 무사히 갔다 왔거든요.”
“여긴 어제 괜찮았다고, 오늘 괜찮은 곳이 아닌데······.”
노아 영감은 삐쩍 곯은 올리버의 얼굴을 보며 한층 걱정스럽게 말했다. 무슨 할 말이 있듯.
“괜찮을 거라 생각합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지요?”
노아 영감은 머뭇머뭇거리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거, 정말 당······. 해결사 선생께서 X구역을 개발할 수 있는 거요?”
올리버는 노아 영감의 감정을 봤다. 의심 그러면서도 기대하는 묘한 감정을 빛냈다.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러시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뭐, 별거 아니오.”
노아는 노인 특유 무뚝뚝하면서도 거친 태도로 답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기대감이 느껴졌다. 의심하지만 그럼에도 믿고 싶은 기대감.
올리버는 말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몰라?”
“예. 그래서 저도 물어보러 가는 겁니다.”
올리버는 그렇게 말하며, Y구역 안으로 들어갔고, 노아 영감을 귀신에라도 홀린 듯 올리버를 바라보다가 X구역으로 되돌아갔다.
그 역시 수십 년을 살며 별의별 인간군상을 봤지만, 올리버 같은 인간은 처음 봤기에······.
폭이 넓은 셈 강 너머로 배가 사라졌을 때쯤, 올리버는 발걸음을 멈췄다.
“나와 주시겠습니까?”
올리버의 부탁에 어둠을 장막 삼아 숨어 있던 개발 반대 위원회의 원로 바솔로뮤가 나왔다.
어떤 재주를 부린 것인지 그는 흑마법을 쓰지 않았음에도 어둠 속에 완전히 녹아들어 모습과 기척을 없앴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인사하듯 살점으로 이뤄진 쿼터스태프를 휘둘러 올리버를 가볍게 공격했고, 올리버도 그의 공격에 맞춰 쿼터스태프를 휘둘렀다.
아닌 밤중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쿼터스태프가 부딪히는 굉음이 울렸고, 소리가 울릴 때마다 바닥에 깊은 상처가 생겨났다.
그렇게 공방을 주고받길 몇 차례.
바솔로뮤와 올리버는 서로를 향해 쿼터스태프를 내질러 충돌했다.
━━━!
뭐라 형용하기 힘든 굉음. 그와 함께 양쪽 모두 발로 땅을 긁으며 뒤로 밀려났다.
“실력이 몰라보게 좋아지셨군요. 위대한 분이시여······.”
“그렇습니까?”
이런저런 일로 머리가 약간 복잡한 올리버가 대충 답했다. 어쩌면 갈로스에서의 근접 전투 훈련과, 인육 요리사와의 싸움 덕분일지도.
“그보다 제가 여기 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안다기보다는 언젠가 올 거란 언질을 받았습니다.”
“오······. 누가 말씀하신 거죠?”
“위대한 존재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
올리버는 침묵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말을 했기에. 그 침묵을 틈타 바솔로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쩐 일로 여길 방문해주신 것인지요?”
올리버는 아차하며 자신이 여기 온 이유를 상기했다. 사실 바솔로뮤에게 아직도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많았기에 당장은 질문을 미루기로 했다.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건 사양이었다.
“여쭤볼 거······. 아니, 허락을 구할 게 있어 찾아왔습니다.”
“위대한 분께서 저희에게 허락을 구할 것은 없습니다.”
“······제가 저번에 온 것 기억하십니까?”
“기억합니다. 위대한 분의 추종자들이 지낼 새로운 터전을 고쳐도 되는지 물으러 오셨지요.”
올리버는 잠시 머뭇거렸다. 비슷하지만 뭔가 아주 달랐기에.
올리버는 해당 내용을 정정하고 싶었지만, 그러는 대신 이야기를 진행했다. 하나하나 정정하면 끝이 없었다.
“예······. 할지 안 할지 확실한 것은 아닌데, 혹시, 제가 말한 건물 외 다른 X구역 건물도 재개발해도 되겠습니까?”
“원하는 대로 하소서. 위대한 분이시여. 과거 말했듯 그대께서 무엇을 하셔도 저희는 감히 방해하지 않을 겁니다.”
바솔로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솔직히 거절하지 않을까 약간 기대하기도 했는데······. 너무 시원하게 수락해 뭐라 말하기도 힘들었다.
“아······. 친절 감사합니다······. 여기 이거 받으시죠. 그냥 오는 건 예의가 아닌 듯해 챙겨왔습니다.”
올리버가 한 손에 든 봉투를 건넸다. 포레스트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고기 파이와 와인병이 든 봉투였다.
바솔로뮤는 평소 근엄한 태도와 대비되게 정중히 또 소중히 봉투를 건네받았다.
“선물 감사합니다.”
“아뇨, 저야말로······. 질문 하나 할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가 뜬금없이 말했다. 당연했다. 가슴 속에 계속해 담아 두고 있던 고민이 이윽고 튀어나온 것이었기에.
바솔로뮤는 흔쾌히 대답했고,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와 나눴던 대화를 설명했다.
인육 요리사에 관한 것은 빼고 대화 내용만 간추려 말이다.
바솔로뮤는 몹시도 진지하게 그 이야기를 들었고, 이야기를 끝마친 올리버는 질문했다.
“혹시 그 위대한 분이라는 거······. 이 이야기와도 관련된 겁니까?”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질문. 그러나 올리버는 만족감을 느꼈다. 가려운 곳을 정확히 긁듯. 그러나 바솔로뮤의 대답은 그렇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과거 말씀드렸다시피 그건 미천한 저희가 입에 담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과거와 같은 대답. 그러나 그때와 달리 약간 언짢았다. 허기, 간지러움, 졸음 등 1차원적인 욕구가 해소되지 않은 것처럼.
올리버는 물었다.
“그럼 언제쯤 알 수 있는 겁니까?”
“하늘이 어둠에 물들고,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신의 뜻이 강림하면 알게 되실 겁니다. 그대께서 원하든 원치 않든.”
바솔로뮤가 다시 알 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아니, 대답보다는 예언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