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 소식 (2)
“예, 문제가 안 된다면 저 먼저 란다로 복귀해도 되겠습니까?”
올리버의 물음에 케빈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유가 뭐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케빈의 물음에 올리버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음······. 급한 건 아닙니다.”
“일이 생기긴 생겼다는 거군. 뭔지 들을 수 있을까?”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곤 바로 설명했다. 제인에게 들은 포레스트의 X구역 재개발 사업에 관해서 말이다.
차근차근 설명을 다 들은 케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데? 우리가 란다를 떠난 시간이 좀 흘렀다지만, 이게 말이 되나? X구역 재개발이라니?”
합당한 의문이었다. 왜냐면 X구역은 재개발할 수 없는 구역이란 게 란다의 상식이었으니. 그 이유는 시(市)조차도 토벌을 포기한 개발 반대 위원회 때문.
올리버가 이에 관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아마, 저랑 관련된 것 같습니다.”
“너랑?”
“예, 어쩌다 보니 제가 개발 반대 위원회에 허락을 구했거든요. 공사를 좀 할 수 있게요······. 건물 한두 채 정도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케빈은 두통이 이는지 자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다소 과장된 반응처럼 보였으나, 실로 합당한 반응이었다.
지금 올리버가 하는 말은 란다의 오랜 법칙 중 하나를 깨는 것이었으니.
“······자세한 이야기를 묻고 싶지만, 일단, 그만두지.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감사합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꼭 부탁하지······. 그럼, 란다로 돌아가 그 재개발 사업을 할 생각인 거야?”
“아뇨, 그냥 무슨 이야긴지 확인해보고 싶어 그런 것뿐입니다.”
“확인?”
“예······.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 답답해 다른 것에 신경 쓰면 나아질까 싶어서요······. 죄송하지만,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저 개인의 호기심과 기분 탓에 공적인 임무를 내팽개치고 떠나겠다는 올리버.
그러나 케빈은 올리버의 말을 허투루 흘리지 않고, 하나하나 진지하게 듣고 고민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케빈은 올리버와 임무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알았으니. 본인은 인지하지 못한 거지만 다소 심각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결론은 간단해졌다.
“가봐.”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당장 네가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감사합니다.”
인육 요리사가 일으킨 소요(騷擾)가 끝나고 묘하게 처져 있던 올리버가 반색을 보였다.
그 모습에서 케빈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건데, 어떻게 돌아갈 생각이지?”
“포털 마법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후퇴나 빠른 복귀를 위해 머무는 거주지에 포털 마법을 심어뒀거든요.”
“역시, 물어보길 잘했네.······ 포털 마법 쓰지 말고 배 타고 가 시간이 걸려도 말이야.”
올리버는 아쉬움 탄성을 냈다. 어려운 건 아니지만, 빨리 돌아가고 싶었기에.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넌 공식 서류상 배를 타고 해외로 나와 있는 거로 되어 있거든. 여기 우리가 어떻게 왔지?”
“배 타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런데 입국한 기록도 없이 란다에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겠어?”
“······심각한 겁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적어도 귀찮아질 수는 있지. 넌 마탑 직원인 동시에 흑마법사기도하니까. 그러니 아무리 급해도 규칙에 따르는 게 맞아.”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규칙을 따라야 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배를 타고 가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바로? ······뭐, 마음대로 해. 다만, 야렐리는 아쉬워하겠네.”
“야렐리 씨요?”
“어, 영웅 노릇 끝내면 널 만나러 갈 생각이라 했거든. 네가 어딨는지 물어보며······. 오늘 저녁쯤 시간이 비는데, 만나보고 가는 건 어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던데?”
야렐리가 자신을 만나고 싶다라. 올리버는 고민했다. 한, 0.9초 정도.
“란다로 돌아오실 테니, 그때 만나도 되지 않겠습니까?”
올리버가 과거 호텔에서 제인과 스테이크를 같이 내버려 두고 떠났을 때처럼 시원한 태도로 말했다.
***
“후우······.”
늦은 저녁 시간. 야렐리는 로큘리 대학 측에서 제공한 손님용 방에 들어와 문을 닫고, 기댄 채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아주 깊게.
그만큼 피곤하다는 걸 의미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것도 없이 영웅 취급받다니. 고역도 이런 고역이 없었다.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소요(騷擾)가 일어났을 때, 지시대로 움직이다 데지헤 듀란스의 기습에 당한 것밖에 없었는데.
타이밍 좋게 나타난 제논이 없었다면 정말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세간에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수많은 흑마법사를 무찔렀으며, 인육 요리사의 계획을 알아내 시민들을 구한 영웅으로 말이다.
참으로 거북했다.
계획을 알아낸 것도 제논이었고, 이를 알리게 한 것도 제논이었다. 의도한 바는 절대 아니지만, 그의 공을 도둑질한 것 같아 몹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지······.”
야렐리는 란다로 먼저 돌아간 제논을 떠올리며 혼잣말했다.
케빈이 말하길 일이 생겼다 하던데, 참으로 안타까웠다. 단 몇 시간 차이로 이렇게 길이 엇갈리다니.
조금만 더 기다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뭐가 그리 급한 건지.
‘아니······. 어쩌면 다행일지도.’
야렐리가 잠시 고민하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게 지금 야렐리는 제논에게 묻고 싶은 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너무 많았다.
가령, 퍼펫과 어떻게 아는 사이며, 그가 왜 제논에게 인육 요리사의 계획을 알려줬는지. 퍼펫에 대해 뭘 알고 있는지, 인육 요리사를 정말 아카이브가 해치우고 제논은 아무것도 안 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외에도 고맙단 인사도 하고 싶었다.
데지헤를 비롯한 적들로부터 구해졌을 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뒤늦게 인사를 한 사실에 관해 사과하고 싶었다.
‘몸 뉠 곳이 없을 거란 주제넘은 말을 한 것도······.’
여하튼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지금 생각을 정리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참으로 기이했다.
아이스아이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 대신 가문의 후계자가 된 후로 사람을 상대할 때 수많은 계산을 해왔건만, 지금은 그 느낌이 조금 달랐다. 뭐라고 할까? 그렇게 피곤하지 않다고 할까? 오히려━
━삑. 삑. 삑. 삑.
갑자기 울린 통신음. 야렐리는 가슴 사이에 숨겨둔 통신장치를 꺼냈다.
할머니와의 직통 비밀 통신장치로, 거금을 주고 헤르메스 사에 주문 제작한 물건이었다.
통신을 받자 사용한 비용에 걸맞은 선명한 음색을 들렸다.
[잘 지내느냐?]
“예. 할머님······. 말씀하신 대로 일정을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그랬다. 야렐리가 내키지 않음에도 영웅 흉내를 낸 것은 다름 아닌 마탑과 자기 할머니의 명 때문이었다.
마탑과 아이스아이 가문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그래, 들었다. 잘하고 있다고.]
야렐리의 할머니이자,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 틸다 아이스아이는 특유의 서늘한 목소리로 짧고, 건조하게 칭찬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을 때나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네 활약 덕분에 우리 가문과 학파가 마탑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야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차가워 보이는 할머니지만, 그녀에게 역시 온 마음을 다하는 게 있었다.
가문과 학파의 영광을 되찾는 것.
아이스아이 가문이 란다로 이주해온 뒤 오랜 활약 덕분에 명문가로 굳혀졌지만,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일 뿐.
아카이브가 되기 전 멀린의 손에 의해 강제로 원소학파로 편입될 때 위상이 크게 꺾여, 현재는 여러 고만고만한 명문가 중 하나로 떨어졌다.
특유의 인내심과 차가운 이성 덕분에 괜찮은 척했지만, 할머니 틸다 아이스아이는 이러한 처지에서 벗어나 다시금 영광을 누리는 걸 인생 최대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않는 아들을 내치기까지 한 것이었다.
현재 상황을 돌이켜본 야렐리가 차갑게 식은 머리로 질문했다.
“그런데 할머님. 어쩐 일로 여기로 전화하셨는지요? 하실 말씀이 있다면 대학 측을 통해 연락하셨으면 됐을 텐데요?”
실로, 그랬다. 비밀 통신기기는 그 용도에 걸맞게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잘 쓰지 않기로 했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었으니.
[확인할 게 있어 이쪽으로 연락했다. 따로 맡긴 임무에 관해서 말이다.]
“무슨······?”
[정녕 모르는 것이냐? 데이브에 관해서 말이다.]
야렐리는 아차 싶었다. 마탑의 선발대로 로큘리 대학에 파견돼 공을 세우는 것 외에도 야렐리가 맡은 임무는 하나 더 있었다.
다름 아닌 멀린의 제자인 제논을 감시 관찰해 특이사항이 있는지 보고하는 것.
할 이야기는 많았다. 제논이 천사의 아들과 싸웠다는 것부터, 퍼펫에 관한 것까지. 하지만 그중 가장 보고해야 할 것은-
“-당장 보고드릴 것은 없습니다.”
[······그래?]
“예.”
야렐리가 단호하게 대답하자 통신기기 너머의 할머니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하긴 야렐리는 이미 충분히 자신의 임무를 잘 해내고 있었으니.
결국,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 틸다 아이스아이는 수고했다고 말하고는 통신기기를 끊었고, 야렐리도 통신기기를 끄며 원래 위치에 집어넣었다.
야렐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왜 할머니에게 보고 사항을 숨긴 건지.
그에 대한 해답이라도 되는 듯 야렐리는 방에 마련된 화장대의 앞으로 가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 거울을 바라봤다.
냉기가 깃든 자신의 눈을.
원래라면 이럴 수 없었다. 통제에서 벗어난 마안으로 거울을 보는 건. 자신의 눈마저 얼릴 수 있었기에.
허나, 놀랍게도 야렐리는 눈을 각성한 이후 처음 맨눈으로 자신의 눈을 바라봤다.
눈이 안정화된 것이었다.
제논이 자신의 머리에 손을 얹은 이후부터 말이다.
***
딸랑- 딸랑-
T구역 30번 거리에 위치한 포레스트 레스토랑.
그 레스토랑의 문을 열자 오랜만이면서도 익숙한 종소리가 들렸다.
꽤 반가웠다. 상당히 오래됐음에도 변치 않고 한결같은 이 종소리가.
허나, 변하는 것도 있었다. 가령, 몹시도 북적대는 레스토랑이 그러했다.
원래도 장사가 잘되는 편이긴 했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과거에는 노동자 거주 구역인 T구역 치고 장사가 잘된 거였지만, 지금은 구역을 초월해 장사가 잘되는 수준이었다.
1, 2층 홀 구분 없이 빽빽하게 들어찬 테이블이 그 증거. 덕분에 늘 문이 열리자마자 손님을 맞이하러 온 종업원들도 나오지 못했다.
그만큼 바쁘다는 것.
그래서 올리버는 알이나 다른 종업원의 안내 없이 홀로 레스토랑 안에 들어섰다.
“저거······. 데이브 아니야?”
“어? 잠만, 잠깐만······. 맞는 거 같은데?”
“뭐야 꼴이 왜 저래?”
“뭔 병에 걸렸나?”
1층 홀에 자리 잡은 손님 중 몇몇이 올리버의 얼굴을 보고 수군거렸다.
모두 포레스트와 거래하는 해결사, 용병, 정보상인, 브로커 등으로 이 바닥에 종사하는 이들이었는데, 그들 모두 갈로스로 떠나 오랜만에 이곳으로 돌아온 올리버의 얼굴을 보고 꽤 놀란 눈치였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기아병의 여파로 얼굴이 반쪽이 됐으니. 그나마 오는 길 잠을 푹 잔 덕분에 시체 꼴은 면할 수 있었다.
데이브란 말에 다른 손님들도 올리버를 향해 고개를 돌렸고, 이윽고 2층 홀의 사업사, 자본가 손님들도 올리버를 보며 놀란 기색을 비쳤다.
허나, 올리버는 그러한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포레스트를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 로큘리 대학과 돌아오는 배편에서 비슷한 시선을 수차례 받아 봤기에······. 다만, 그 와중에도 신경 쓰이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말라깽이가 된 올리버를 보고 기회가 왔다는 반가움이나 어떠한 가능성을 엿본 이들이. 그들은 마치 약해진 적을 발견한 듯 기뻐했다.
“데이브 씨?”
2층 홀로 들어설 때쯤 누군가 와 올리버를 맞이했다.
알이었다. 늘 올리버를 맞이하던 포레스트 레스토랑의 에이스 종업원 알.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유지하던 그는 뺨이 푹 들어간 올리버를 보고 평소 그답지 않게 동요했다.
올리버는 별거 아니라는 듯 평소와 같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알······. 포레스트 님 좀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