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30화 (430/633)

430. 소강? (3)

지하실 통로를 통해 다가오는 제인.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 그렇기에 올리버는 멀린 보다 한 박자 늦게 눈치챘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조용히 작업하기 위해 빌린 곳이었는데 제인이 찾아오다니.

아니, 그전에 여기 어떻게 온 건지부터 의문이었다.

올리버가 이곳 위치를 알려준 건 멀린과 케빈밖에 없었는데.

혹시 뭔가 아는 게 있나 싶어 멀린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으나, 그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런······.”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진 멀린을 생각하며 올리버는 중얼거렸고, 그러는 사이 제인은 지하실 철문 앞으로 와 두 번 노크하고는 문을 열었다.

탕. 탕. 끼익······.

쇳소리와 녹슨 경첩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열린 문틈 사이로 제인이 얼굴을 비췄다.

덕분에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지하실의 풍경을.

다수의 기계장치와 연결된 피 수조, 그 안에 들어있는 파손된 시체와 송장인형, 방부처리 중인 시체와 방부처리가 끝나 건조대에 걸린 다수의 시체. 그 시체 옆에 쌓인 혈액 포장된 각종 장기를.

참고로, 시체의 각 어깨에는 품질에 따라 A, B, C 등급이 표시되어 있었고, 혈액 포장된 내장 역시 각 장기의 주인이 표시되어 있어 경험과 체계성을 엿볼 수 있었다.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지하실의 풍경을 본 제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하며 눈에 신경을 집중했다.

올리버에겐 너무나도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몇 년간의 사회생활과 천사의 집 교육으로 다른 사람들에겐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배웠기에······.

예상대로 제인은 올리버의 임시 작업장을 둘러보고 놀람, 당혹, 두려움의 감정을 빛냈다.

이해 못 할 건 아니었다. 시체가 사방에 있었으니. 그러나 제인은 미리 각오를 가진 듯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겉으로 놀란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올리버가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흑마법사임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올리버를 배려한 거였다.

차분히 가라앉은 감정. 제인은 이십여 구가 넘는 시체를 손질 중인 작업장 입구에서 올리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데이브.”

올리버 역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제인 아가씨······.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루시앙 씨에게 물어서 왔지요. 제가 데이브 친구인 걸 아셔서 그런지 바로 대답해주시더라고요.”

올리버는 아······. 하고 탄성을 냈다. 하긴, 지하실을 빌려달라곤 했어도, 위치를 가르쳐주지 말라는 부탁은 따로 안 했으니. 올리버의 불찰이었다.

올리버는 이틀의 철야 탓으로 머리가 멍해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방금까지 멀린과 오랫동안 대화한 탓에 더욱 그랬고.

그래서 가장 궁금한 걸 물었다.

“음······. 죄송하지만,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섭섭하네요. 친구가 찾아왔는데, 어떻게 온 건지, 왜 왔는지 묻다니요·····. 너무 차갑잖아요? 혹시 제가 싫어졌나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훗, 농담이네요.”

제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단순한 장난은 아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장난스러웠으나, 그녀는 지금 올리버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음······. 그냥 친구랑 같이 식사하고 싶어서 왔어요. 가능할까요?”

“식사······말씀입니까?”

“예, 모습을 보아하니 누구라도 밥을 먹여야 할 것 같거든요.”

제인이 올리버의 모습을 보며 말했고, 아주 일리 있는 말이었다.

소요가 가라앉고 처음 재회했을 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현재 올리버의 모습은 영 아니었다.

기껏해야 한 달 굶은 사람이 보름 굶은 사람으로 바뀐 수준이었다.

올리버에게도 썩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해결사는 몸이 재산, 여유가 있을 때 필사적으로 먹어 체력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었다. 계속 허기가 지기도 했고.

기아병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올리버는 사라지지 않는 허기에 계속해 시달리고 있었다.

굶어 죽을 정도는 아니나, 불쾌한 허기가 계속해 들러붙어 약간 곤란했다. 마치, 저주와 같이.

허나, 올리버는 제인의 그 제안이 약간 거북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의 친구이며,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당장은 좀 그랬다. 싱숭생숭하다고 하달까? 가슴이 답답하달까?

그랬기에 모든 공을 멀린에게 넘기고, 올리버는 여기 지하실에 틀어박혀 작업한 것이기도 했다.

고민 끝에 올리버가 작업을 핑계로 정중히 거절하려는 찰나, 제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것도 꽤 단호하게.

“데이브 씨.”

“예, 아가씨.”

“아실지 모르겠지만, 남성이 여성의 제안을 거부하는 건 아주 무례한 행동이랍니다.”

올리버는 ‘아’하고 소리 냈다.

천사의 집에서 해당 내용을 배운 적 있었기에. 천사의 집 종업원들이 말하길 여성이 남성에게 뭔가를 제안하는 건, 남자의 열 배 되는 용기가 필요하며, 거부당할 시 백배의 수치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렇기에 진정한 신사 혹은 란다 사람이라면 이를 거절해선 안 된다고 했다.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올리버는 그 가르침을 기꺼이 수용했다.

‘난감하네.’

올리버가 다시 고민했다. 제인이 뒤이어 말했다.

“그리고 데이브 씨는 제 제안을 거부하면 안 돼요.”

“······?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다치지 않기로 약속했는데, 다쳐서 왔잖아요······. 그러니 저랑 같이 식사해야 해요.”

논리적으로 말은 안 됐지만, 제인은 그렇게 못 박았다. 올리버에 대한 걱정과 각오를 빛내며.

그 감정이 어찌나 선명한지, 올리버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식사할 곳이 있나요?”

“물론요. 세상이 종말이 와도 장사하는 사람은 있으니까요.”

제인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

제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1번 구역을 중심으로 초토화된 라빌리 외곽에는 소요(騷擾)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모여 때아닌 북적거림에 시달렸지만, 그와 별개로 장사를 해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고 도시 중앙의 중산층과 부유층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다세대 주택의 주인과 피난민에게 출처가 불분명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그러했다.

“여기가 바로 그런 레스토랑 중 하나죠. 단, 음식은 믿을만해요. 보다시피요.”

“그렇군요.”

건물 외관은 그냥 그렇지만, 내부는 제법 잘 갖춰진 레스토랑 안. 올리버는 그곳에서 제인과 함께 식사하며 대답했다.

올리버 앞에 놓인 식탁 위에는 이미 엄청난 수의 음식이 쌓여 있었지만, 웨이터들은 쉬지 않고 계속해 새로운 음식을 가져왔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다. 인육 요리사와의 전투가 끝난 직후처럼 올리버의 먹는 양 역시 엄청났기에, 계속해 빈자리가 생겼기에.

제인은 그런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배가 아직도 많이 고프시나 보네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인육 요리사와의 전투 후 허기가 들러붙어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만성적인 허기. 마치, 고아원이나 광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오죽했으면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아, 그냥 배고픈 채로 잠들었을까.

올리버가 일정한 속도로 깔끔히 음식을 먹으며 왜 이러는 건지 생각했다. 정도가 심하진 않아 참으려면 참을 수 있었지만, 기현상의 원인은 궁금했다.

‘인육 요리사 님의 질병-약화계열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걸까? 그러고 보니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은 술사가 죽는다고 풀리는 흑마법이 아니었지 아마.’

다시 인육 요리사를 떠올리자 그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고, 올리버는 신경이 거슬리는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올리버의 모습을 보고 제인이 물었다.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나요?”

“예? 아뇨······. 아주 맛있습니다.”

“아. 그럼, 다행이네요. 사양하지 말고 계속 드세요.”

이미 사양하지 않고 계속 먹고 있는 올리버에게 제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뒤늦게 올리버는 자신이 얼마나 먹은 건지 인지했다.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제가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은데요.”

“데이브 씨 덕분에 알게 된 가게니 그 보답이라 생각하고 드세요.”

“제 덕분이요?”

“예······. 이상하지 않아요? 란다에서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제가 이런 레스토랑을 안다는 게요?”

호······.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하긴 했다. 실내장식도 좋고, 음식 맛도 훌륭했지만, 이 레스토랑 외관은 주변 건물과 비슷해 썩 눈에 띄진 않았다.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찾기 힘든 정도.

“맞아요. 누가 가르쳐줬어요.”

“루시앙 님입니까?”

올리버가 추측했다. 이 도시에서 제인과 친분이 있는 건 머피와 루시앙뿐이었고, 현지 사람은 루시앙이었으니.

허나, 제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다른 분이 가르쳐줬어요. 여기서 사람들을 사귀었거든요.”

“오, 그거 다행이네요. 언제 사귀신 겁니까?”

“인육 요리사가 소요(騷擾)를 일으키고, 로큘리 대학에서 부유한 도시민을 자기들 대학에 대피시켰을 때요.”

올리버는 살짝 놀랐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사람을 사귀다니. 제인의 수완에 올리버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확히는 제 수완이라기보다 데이브 씨 덕분이지만요.”

“저요?”

“예. 포털을 이용해 루시앙 씨와 머피 씨, 절 대학에 대피시켜 주셨잖아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과 안전상의 이유로 지하실에서 포털을 열어 이동시켜줬다.

“그때,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과 피난민들 눈에 띄었고, 그걸로 이야기를 나눠 친분을 쌓을 수 있었어요.”

“아, 그렇군요.”

“운이 좋기도 했어요. 이야기를 나눈 사람 중 몇몇이 타고난 사업가였거든요. 그들은 도시에 재앙이 닥친 와중에도 돈 벌 기회를 찾았고, 이를 실현시킬 투자자를 모으고 있죠. 놀랍지 않나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란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으니. 포레스트가 말하지 않았는가? 비행선 정거장에 사고가 나면 사람을 구하기보단 해당 비행사 주식을 공매도한다고. 그것과 비슷했다.

“문제는 도시에 일어난 피해가 너무 커 기존 투자방식으로는 목표치까지 돈을 모을 수 없다는 거였고, 그때, 저랑 머피 씨, 루시앙 씨가 합세했어요. 저는 시스터후드의 자금을 끌어 올 수 있고, 머피 씨와 루시앙 씨는 제각기 크라임 펌과 밀리유의 자금을 끌어 올 수 있으니까요······. 이 레스토랑도 그때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니 데이브 씨 덕분이죠.”

올리버는 조용히 감탄했다. 재앙과 우연 속에서 그런 기회가 생기고 또 잡다니. 흥미로웠다.

“그러니 데이브 씨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갑작스러운 질문. 제인의 감정을 보고 이게 본론인 걸 알 수 있었다.

들은 이야기와 얻어먹은 음식이 있었기에 올리버는 멀린과 입을 맞춘 대로 적당히 대답하기로 했다.

“제인 아가씨와 헤어진 후, 인육 요리사를 막으러 갔습니다. 저 혼자서는 힘들었고요. 보다시피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에 당해서요. 그러던 중 아카이브께서-”

“-그걸 물어본 게 아니에요.”

제인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몸 다친 게 아니라, 무슨 걱정거리가 생겼냐고 물어본 거예요. 몸도 중요는 하지만, 정신도 중요하니까요.”

제인은 진심으로 올리버를 걱정하고 물었다. 자칫 자신이 주제넘지 않을까 고민 또 고민한 끝에 말이다.

그 감정을 읽는 순간 올리버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렸다. 아직 허기가 가시지 않았음에도.

귓가에 인육 요리사의 말이 들렸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요?”

제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 만났을 때 천진난만, 순수한 부잣집 아가씨를 연기했을 때처럼.

당시와 다르게 지금은 좀 더 중성적인 복장에 귀에 검은색 피어싱을 잔뜩 박는 등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그때와 매우 유사해 보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냥 뭔가 고민이 있는 것 같아서요?”

제인의 말에 올리버는 자기 얼굴을 만졌다.

“제가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이나요?”

제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에요. 그저 느낌이 그래서요······. 전 올리버 친구잖아요?”

친구. 그 단어에 올리버는 반응했으나, 곧 인육 요리사가 했던 말을 떠오르며 거슬리는 의문이 생겨났다.

과연 자신은 친구인 제인과 캔트를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들의 감정이 소중한 건지 말이다.

‘네겐 사람은 그저 흥미로운 감정을 만드는······. 생체 기계 같은 거지. 협박을 잘못했어. 널 여기 초대했을 때 소중한 사람을 위협하다니. 터무니없는 실수였어······. 나조차 있는 소중한 사람조차 네겐 없는데. 그저 소중한 감정만 있을 뿐. 아끼는 장난감처럼.’

상당히 긴 말이었음에도 올리버는 그 말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는 말이었음에도 계속해 신경이 갔다.

아닌 말로 궁금하기도 했다. 과연, 제인이 이번 소요(騷擾)에서 죽었으면 자신이 슬퍼했을지. 슬퍼했다면 친구의 죽음 탓에 슬픈 것일지 말이다.

아니, 애당초 이런 의문을 가진 시점에서 뭔가 아닌 게 아닌가 싶었다.

이러한 고민을 잊기 위해 이틀 동안 철야를 하며 작업에 집중했건만, 의문이 사라지긴커녕 둔해진 머리 탓에 더욱 어지러워졌다.

아무래도 밤을 새운 건 실수였던 것 같다. 아니면 다른 집중할 거리가 필요하거나.

올리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혹시, 조금 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요.”

“물론요. 천천히 생각하고 대답해주세요. 대신 꼭 이야기해주셔야 해요?”

제인이 상체를 살짝 앞으로 내밀며 말했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

제인은 만족하며 몸을 당겼고,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보답으로 란다 소식 전해줄게요. 원한다면요······. 사실 이거 때문에 온 거기도 하거든요.”

“뭐죠?”

“포레스트 씨께서 사업을 하시려는 것 같더라고요. X구역 재개발 사업요. 우연의 일치죠? 혹시, 뭔가 아시는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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