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소강? (2)
허공에서 갑자기 들린 멀린의 목소리.
작업에 열중이던 올리버는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멀린을 확인한 올리버는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잠은 잤는지 물었네?”
“잤습니다.”
“그렇나?”
“예······. 이틀 전에요. 지금은······. 작업이 좀 많아서요.”
올리버가 변명하듯 주변을 가리켰다.
올리버의 주변에는 아주 거대한 피 수조와 보조 기계장치가 연결돼 촘촘히 배치되어 있었고, 수조 안에는 복구 중인 시체와 파손된 송장인형-던칸, 셰이머스, 바토리가 있었다.
그 외에도 복구된 시체를 방부 처리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었으며, 장기를 따로 포장 처리한 흔적도 보였다.
주변의 풍경을 둘러본 멀린이 입을 열었다.
“그래 보이는군. 혼자서 하긴 과할 정도로······. 일손 있지 않았나?”
앞치마를 두른 올리버는 방부액에 담긴 시체를 꺼내, 갈고리에 걸어두며 대답했다. 참고로, 해당 작업을 하고 있음에도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이용해 파손된 시체와 송장인형을 수복 중이었다.
“그게······. 이번 일로 다 망가져서요. 차일드들도 고생을 많이 했고요. 그래서 혼자 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생각보다 할 만합니다.”
마지막 말은 사실이었다.
이틀간의 철야로 눈에 다크서클이 내려오며, 기아병으로 몸이 여윈 상태였지만, 기이하게도 체력과 근력은 전보다 더욱 좋아져 작업하기 훨씬 수월했다.
방부액으로 가공돼 딱딱해진 시체도 가볍게 들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만, 정말 작업이 많기 때문인가?”
합리적인 의문이었다. 애당초 이런 작업은 란다로 돌아가서 해도 늦지 않았으니. 차라리 지금은 쉬는 것이 여러모로 더 현명했다.
휴식이란 것도 때란 게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작업을 강행하는 건 일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는 게 더 타당했다. 가령······.
“······송장인형 복구가 급해서요. 폭력으로 먹고사는 해결사는 늘 전력을 잘 가다듬어야 하거든요. 또, 개인적으로 빨리 가공해보고 싶은 재료도 있어서 서두른 것뿐입니다.”
올리버가 건조대에 걸어놓은 데지헤 듀란스의 시체를 가리켰다.
갈로스 생명 연금술 학과의 전(前) 학장인 그녀는 올리버의 손에 의해 피 수조에서 분리된 상체와 하체를 합친 뒤, 방부 처리되어 건조대에 걸려있었다.
그녀의 어깨에는 S급 품질임을 증명하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런가?”
“예, 지금 사용하는 송장인형 중 자리가 하나 비는데, 저분 능력이 흥미로워서요.”
올리버는 자신의 신체를 채찍으로 재구축해 사용하던 데지헤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보다 어르신. 괜찮으시다면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아직 바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올리버가 지하실 한쪽에 놓인 탁자 위 신문을 가리켰다. 신문 열 부 중 일곱, 여덟 부는 모두 아카이브를 언급하고 있었다.
사악한 흑마법사로부터 도시를 구한 영웅으로, 갈로스 왕실의 협력자로, 이 사태에 대한 조언해줄 현자, 물자를 지원해줄 후원자 등으로 말이다.
대단하긴 했지만, 올리버의 관점에선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사양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꼭 그렇지도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농땡이 피울 수 있거든. 명성이 쌓이면 그래서 좋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뭔가 있을 거라며 스스로 그럴듯한 이유를 알아서 붙여주거든.”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되물었다. 올리버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
“높은 이름이란 게 그래. 사람을 장님 혹은 바보로 만들지.”
“그럼······. 지금도 농땡이 치러 오신 겁니까?”
“꼭 그런 건 아니야.”
멀린은 그리 대답하며 품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골드 스미스 은행>의 무기명통장이었다.
“이건 뭐죠?”
“일단, 받아.”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멀린이 내민 통장을 건네받았다. 새로 만든 통장이었는지 기록된 내역은 딱 한 줄로 깔끔했다.
문제는 그 한 줄의 액수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거였다.
“0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죄송하지만, 제가 제대로 본 것 맞습니까?”
올리버가 자기 눈을 의심하며 질문했다. 왜냐면 통장에 500억 란다란 말도 안 되는 숫자가 박혀있었기에.
과거 ABC건으로 셰이머스를 잡아 200억을 받은 적 있었지만, 이건 그 두 배 반 되는 액수였다.
“제대로 본 거 맞아. 500억 란다고. 자네 거야.”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올리버가 상상을 초월한 액수에 하던 작업을 일체 멈췄다. 올리버 역시 돈이 좋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나 통용되는 말이었다.
“받을 만한 일을 했으니 주는 거야. 걱정 말고 받아.”
“그러니까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받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지난 나흘 동안 전 음식을 계속 먹고, 잠잔 뒤 이곳에 틀어박혀 작업한 것 외에는 일절 한 게 없습니다. 돈을, 그것도 500억이란 거액을 받을 일을 한 적 없습니다.”
올리버는 진심으로 말했고, 그 말은 들은 멀린은 놀라면서도 올리버답다는 생각을 했다. 한 게 없다니······.
“인육 요리사가 고위험등급 범죄자인 건 알고 있겠지?”
“예, 그건 압니다. 세계의 적. 전 세계에서 악으로 규정한 최악의 범죄자요. 재판 없이 살해할 수 있고, 죽이면 엄청난······아.”
저도 모르게 고위험등급 범죄자에 관해 설명하던 올리버는 돈의 출처를 깨달았다.
“현상금이군요.”
“맞아.”
심플한 멀린의 대답에 올리버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다시 봤다.
[₤50,000,000,000]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받는 이유를 확인한 올리버는 이번엔 액수에 의문을 가졌다.
수백 년을 산 노괴라 해도 한 개인의 목숨에 500억 란다라······. 올리버의 경제상식을 아득히 초월하는 액수였다.
“거기다 갈로스는 현재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아는데, 이만한 액수를 지급할 수 있습니까?”
“파테르교에서 지급한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파테르교요?”
“그래. 정확히는 갈로스와 연합왕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와 부호들이 지급한 기금에서 내놓은 거지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올리버가 서서히 이쪽에 관심을 보이자 멀린은 속으로 안도하며 그에 관해 설명해줬다. 적절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게끔.
“과거 한 사건이 일어나 생긴 기금이야.”
“사건요?”
“그래. 단, 그 이야긴 다음으로 미루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까······. 여하튼 그 사건으로 검은손에 대한 각 국가의 경계심이 증폭돼 제각기 현상금을 걸고, 나중에 그 현상금을 한데 모아 파테르교의 은행에 맡겨뒀지. 행정의 편이와 효율성을 위해.”
“그게 500억이나 된다는 말씀입니까?”
“여러 국가와 부호들이 지급한 돈을 합친 거니까. 거기다, 그 기금은 파테르교가 운용할 수 있어, 이자가 쌓이고 있거든. 참고로 인육 요리사의 현상금이 딱 500억이라 정해진 건 아니야.”
“······??”
“거대한 기금을 통째로 운영하며, 파테르교에서 위험인물이라 판단되는 자들에게 퍼센티지로 나눈 거거든. 인육 요리사는 그중 500억에 불과한 거고.”
“음······. 500억이란 액수에 불과라는 단어가 붙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대충 이해했습니다······. 질문하나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느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올리버가 질문했고, 멀린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뭔가?”
“인육 요리사 님이 500억이라면 퍼펫 님과 팬 님. 피리 부는 사나이 님은 각각 얼마입니까? 그냥······궁금해서요.”
“지금도 이자가 붙고 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퍼펫은 550억, 팬은 470억 정도지.”
“피리 부는 사나이 님은요?”
의도적으로 뺀 대답에 올리버가 재차 질문했고, 멀린은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1,820억 란다.”
올리버는 놀랐다. 1,820억 란다라니. 인육 요리사와 영생의 퍼펫, 영원한 아이 팬을 합친 액수인 1,520억 란다보다 300억 더 많은 액수였다.
“그 300억은 인육 요리사의 여동생인 그레텔의 현상금이야. 그건 갈로스 왕실에 넘겼네. 일단, 공식적으로는 그쪽도 공을 세웠으니.”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당초 현상금을 받는 걸 알지도 못했고, 귀찮은 뒤처리는 모조리 멀린에게 떠넘긴 마당이었으니. 자신이 왈가왈부할 게 아니었다.
“그런데 피리 부는 사나이 님의 현상금은 말이 안 되게 높네요. 나머지 손가락을 다 합친 액수에 그레텔 씨까지 합친 액수라니요.”
“그것도 나중에 이야기해주겠네. 지금은 다른 이야기가 먼저니.”
“뭐죠?”
“좀 많아.”
멀린은 그렇게 서두를 열었다. 첫 번째 꺼낸 이야기는 인육 요리사와 그레텔의 시체에 관해서였다.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그레텔은 시체는 각각 왕국과 로큘리 대학, 마탑이 공동 소유하기로 했네. 정확히는 누가 소유할 건지 잠시 미뤄둔 거지만.”
올리버는 이해했다. 그레텔은 악마의 지식과 축복을 통해 수백 년을 살았고, 수많은 마법사를 먹었으며, 종국에 지옥의 기운도 몇 방울 흡수한 존재.
그녀의 육체는 지식의 보고라 할 수 있었다. 학술적 가치로 치자면 그녀의 현상금인 300억 보다 더 가치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든 그녀의 시체 소유권은 포기하기 힘들 터였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확보하고 싶을 정도로.
그건 올리버도 매한가지였지만, 아쉬움을 가지지 않으려 했다.
첫 번째로 그레텔을 해치운 건 사실상 멀린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그보다 더 가지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육 요리사 님의 시체는 어떻게 됐는지요?”
“계획한 대로 소멸한 것이라 다들 믿고 있네.”
올리버는 안도했다. 인육 요리사를 해치운 직후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시체를 챙기려 했는데, 멀린은 쉽지 않을 거라 조언했다.
그레텔과 같은 이치로 인육 요리사의 시체 역시 높은 값어치를 자랑했기에, 많은 세력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소유권을 요구할 거라고 했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얼핏 부조리해 보이나, 세상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허나, 올리버도 물러서지 않았다. 인육 요리사의 시체만큼은 소유하고 싶었기에.
올리버는 그의 시체를 연구해보고, 송장인형으로 가공하고 싶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냥 시체를 가지고 싶었다.
이에 관해 올리버는 멀린에게 도움을 청했고, 멀린은 그레텔의 시체를 넘겨주면 분란 없이 소유할 수 있게끔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꿩 대신 닭을 가져가면 꿩이 어디 있는지 묻기 힘든 법이거든. 특히, 한 게 없는 자들일수록.”
올리버는 그 말이 뭔지 이해했다. 앞서 설명을 들은 적도 있었기에.
인육 요리사의 시체는 전투 중 소멸하고 그나마 멀쩡한 그레텔을 던져주면 모두 그 시체에만 정신이 팔려, 인육 요리사는 신경도 못 쓸 거라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 말은 정답. 다들 그레텔의 시체에 정신이 팔려 인육 요리사의 시체는 찾을 생각도 안 했다. 하긴, 아카이브가 한 말이었으니.
‘거기다 도시의 한 구역이 소멸한 말도 안 되는 전투 흔적도 한몫했지······. 시체 하나가 사라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약속대로 인육 요리사의 시체는 내가 먼저 연구해보고 돌려주겠네······. 문제없지?”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중에 큰 도움을 받았고, 인육 요리사의 시체를 잡음 없이 확보할 수 있게 멀린이 도와줬으니. 거기다 멀린은 임시라 해도 올리버의 스승이었고.
“돌려만 주신다면 원하시는 만큼 연구하셔도 됩니다.”
“오······. 그 말이 날 감동하게 만드는구만. 요즘 아부하는 법도 배우나?”
“아뇨······. 책이 있습니까?”
올리버가 진지하게 물었고, 멀린은 한탄했다.
“농담으로 한 말이야······. 아직도 유머가 부족하구만.”
“매일 잠자기 전 30분씩 공부하고 있습니다.”
“1시간씩 공부해.”
임시 스승의 조언에 올리버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시간이 문제일지도. 30분으로 무슨 공부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인육 요리사가 보유한 책도 란다로 돌아가자마자 넘겨주도록 하겠네. 연구자료와 일지 그리고 악마의 서적도. 단, 악마의 서적은 내 서재에 둘 테니, 읽는 건 거기서 읽어.”
올리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의 서적은 꽤 위험한 물건이었으니, 멀린이 이러는 것도 이해는 갔다.
올리버는 이유도 묻지 않고 멀린이 협조해준 것만으로 만족하기도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갈로스 왕실에 해야지. 그들 덕분에 성기사의 방해를 피할 수 있었으니.”
맞는 말이었다. 원칙상 인육 요리사의 모든 서적은 성기사들이 관리하는 게 맞았다.
사악한 악마로부터 인간계를 수호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으니.
그럼에도 멀린이 이를 확보할 수 있었던 건 갈로스 왕실의 도움이 컸다.
‘물론 왕실도 그냥 협조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엄밀한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인육 요리사와 그 부하들이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왕실은 멀린의 도움으로 도시를 수호하는 데 일조했다는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아카이브란 위명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활약까지 한 멀린이 그렇게 주장했으면 됐으니.
그뿐 아니라 멀린은 인육 요리사와 평민파의 금전 커넥션까지 찾아내 왕실에 넘겨줘, 왕실이 자신을 위협하던 평민파를 크게 꺾는데도 기여했으며, 수도의 파괴로 막대한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피해를 입은 갈로스 왕실과 정부에 다양한 도움을 줬다.
그레텔이 소환한 헤카톤케이레스의 소유권을 넘겨줘 이를 기반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줬는가 하면, 막대한 아카이브의 재산을 일부 기부하고, 로큘리 대학과 왕실에 공을 나눠줘 그들의 입지를 세워줬다.
사실상 사건의 종결과 뒷수습까지 도맡은 셈. 그렇기에 갈로스 왕실과 정부는 멀린의 부탁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올리버는 왜 왕실조차 아카이브의 권위를 인정한다고 했는지 잘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거 같았다.
아카이브란 그저 마법사로 국한된 걸 넘어 다방면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존재였다.
“대단하시군요.”
올리버는 새삼 멀린의 대단함을 느끼며 그리 말했다. 허나, 멀린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대단한 건 자네지. 사실 인육 요리사와 그레텔은 자네가 해치우지 않았나?”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레텔 씨는 어르신께서 거의 제압하신 상태였잖습니까? 힘이 없었습니다.”
멀린은 할 말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대신, 올리버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인육 요리사 님은······. 제가 쓰러트린 게 맞긴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거든요.”
“기억이 안 나?”
“예······. 나긴 나는데, 뭔가 붕 뜨며 현실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게 모든 공을 넘기기로 했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냥 인육 요리사 님과 엮이기 싫어 어르신께 떠넘긴 것에 불과합니다. 신문을 통해 보니 잘했다 싶습니다.”
올리버가 신문을 다시 가리켰다. 신문에는 오직 멀린의 이야기만 나돌았는데, 올리버는 저렇게 되는 건 사양이었다.
너무 정신없고, 번잡하고, 눈에 띄고, 피곤하지 않은가?
“또 개인적으로 인육 요리사 님과의 기억이······. 좀 그래서요.”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가 마지막에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건······. 거슬렸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고. 젊은이의 공을 가로챈 것 같아 마음이 그랬는데, 그럴 필요 없다는 거군.”
멀린이 농담조로 말했고,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인육 요리사를 막은 건 일이며,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지, 명성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500억이나 되는 현금과 인육 요리사 외 양질의 시체 다수를 얻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기분은 영 별로였지만 말이다.
‘그래도 한순간 어르신 감정도 봤으니 괜찮으려나?’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를 해치운 직후 한순간 멀린의 마력 장벽을 넘어 그의 감정을 볼 수 있었다. 그 감정은······.
“좋아, 난 할 말 다 전했으니,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예? 벌써 가십니까?”
“왜, 늙은이 간다고 하니 아쉽나?”
“아쉬운 건 아니지만, 커피 한잔은 대접하는 게 예의라고 배워서요.”
“처음 말은 빼고, 마지막 말은 예의 대신 대접하고 싶어서라고 바꿨으면 좋았을 거야.”
“······어르신께 커피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늦었어·····. 뭣보다 젊은이들 만나는데, 늙은이가 끼면 욕먹는 법이지.”
젊은이들? 늙은이? 알 수 없는 말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으나, 곧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지하실 통로를 통해 제인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