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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427화 (427/633)

427. 격(格) (2)

그레텔과 거신(巨神)의 머리 위에 도착한 다수의 손바닥.

그 손바닥들은 여러 겹으로 겹친 채 새하얗게 공기를 찢어발기며 그레텔과 거신(巨神)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뇌를 장악당한 와중에도 생명체로서의 본능 탓인지 거신의 두 눈은 커졌고, 그레텔 역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거신의 머리에 박은 자신의 두 손을 뽑으며 도망치려 했다.

허나, 쉽지 않았다.

형용하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손바닥은 도저히 피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데다, 엄청난 압력을 내뿜으며 내려오는 탓에 행동 자체를 제약했기에.

압력 탓에 움직임이 제한된 그레텔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눈에는 손바닥만이 들어왔다.

세상 그 무엇이든 박살 낼 손바닥이.

“크아악━!”

후후후후후웅━━콰콰과과과과과광!!!

거신의 손바닥이 아래로 떨어지며 그레텔의 외침을 삼켜버렸다.

충돌이 일어나자 공기를 새하얗게 찢어발기는 충격파가 라빌리 상공 전체를 뒤덮는 동시에 거신의 한쪽 머리가 박살, 목이 꺾여 부러졌고, 그것으로도 멈추지 않은 거신의 손바닥은 지상에 충돌했다.

이미 대규모 마법으로 원래의 흔적이 사라진 11번 구역에는 다시 거대한 물리적 폭발이 일어났고, 손바닥은 떨어진 지점을 시발점으로 거대한 파도가 형성, 땅이 통째로 뒤틀려 버렸다.

그 충격이 어찌나 강한지 충돌로 생긴 흙먼지가 라빌리 전체를 감쌀 수준이었다.

흡사, 신의 재앙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 최소한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랬다.

보통 사람보다 조금······. 아주 조금 나은 멀린은 무감각한 눈으로 눈앞의 광경을 보며, 마력을 이용해 흙먼지를 걷어내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레텔의 마법과 멀린의 반격, 거인의 손바닥으로 인해 무(無)로 돌아간 11번 구역에는 그 어떠한 인공적인 건축물도 남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건물이었던 파편 부스러기와 뒤틀린 지축, 그리고 거신(巨神) 헤카톤케이레스의 부서진 머리와 잘려나간 팔 뿐이었다.

너무나도 강력해 신으로도 추앙받는 이계의 생물.

“음······.”

멀린은 엉망이 된 라빌리를 둘러보며 거인의 머리와 팔에 보안 마법을 삼중으로 걸곤 입을 열었다.

“역시 대단하시구려. 대단해.

산처럼 거대한 거신의 신체(身體)와 연기처럼 하늘 위로 솟구치는 흙먼지 사이에 있는 그레텔을 향해 멀린이 말했다.

그녀는 거신의 손바닥이 내려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공간 마법을 펼쳐 직격(直擊)을 피하였는데,

단, 완벽하게 피한 것은 아닌지 한쪽 팔다리가 완전히 으깨지고, 몸에 흐르는 마력은 심각하게 뒤틀려있었다.

이상한 건 아니었다.

포털 마법을 이용하는 도중 일정 이상의 충격을 받으면 포털이 파괴되고 그 여파로 몸의 마력은 꼬일 대로 꼬였이니.

그래도 그레텔은 운이 좋은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은 몸이 결딴나거나, 포털의 마력 폭발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기에.

그렇지 않은 건 그만큼 그녀가 사용한 공간 마법의 수준이 높다는 걸 뜻했다.

그저 사람을 잡아먹어 힘만 축적하는 것만으로는 도달하기 힘든 영역. 멀린은 이 사실을 언급하며 그녀의 노력을 칭찬했다.

“마탑 인간답게 조롱하는 솜씨가 일품이군요.”

멀린의 칭찬을 들은 그레텔이 분한 듯 이를 꽉 깨물며 말했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절대적이고 피할 수 없는 종말이 찾아오는 와중 자기들 나름대로 띄운 승부수가 이토록 허무하게 엎어졌으니······.

‘째깍째깍. 세상 끝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그 순간 시계가 움직인다. 땅에서 검은 태양이 뜨고, 서쪽 바다에 모든 걸 삼키는 괴물이 태동하며, 거짓된 문지기에게서 열쇠를 가져오며, 방황하는 아이는 소년이 된다.’

멀린은 종말론(終末論)의 구절을 속으로 되뇌었다.

자기 때만큼은 아니길 빌고 또 믿었지만 아무래도 아닌 듯했다.

참으로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멀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조롱이 아니오.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이오.”

“······그 공간 마법은 대체 뭐죠?”

그레텔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질문했다. 짓뭉개진 자신의 팔다리를 회복할 시간을 벌 요량인 듯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당연했다. 현재 알려진 공간마법은 이동을 위한 ‘포털 마법’과 이계의 생물을 부르는 ‘소환마법’ 이 두 종류밖에 없었는데, 멀린이 사용한 건 전혀 다른 종류의 공간마법이었으니.

마법사라면 관심을 보이는 게 마땅했다.

멀린은 그레텔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줬다.

“선대 아카이브에게 전수받은 마법이오.”

멀린이 예를 갖춰 대답했다. 허나, 그레텔은 비웃을 뿐이었다.

“하······. 제가 바보로 보이나요? 그게 고작 마법이라고요?”

고작, 마법.

마법이 종교나 다름없는 마법사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말이었지만, 멀린 역시 그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방금 그레텔에게 사용한 공간마법은 말이 좋아 마법이었지, 실상은 마법이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였다.

왜냐면 마법 역시 신이 정한 세상의 규칙 아래에 있는 것.

그런데, 공간을 뒤틀어 그 안에 속한 모든 것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마법보다는 권능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거신의 팔도 푸딩과 다른 바가 없었으니. 술사인 멀린조차도 두려운 힘이었다.

멀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레텔의 말에 일정 부분 동의했다.

“그대의 반응은 이해하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오. 선대 아카이브에게서 전수받은 지식이며, 힘이니까. 초대 아카이브에게 말이오.”

“초대 아카이브?”

그레텔이 반응을 보였다. 왜냐면 대(世)를 구분하지 않는 아카이브 중 유일하게 차별되는 아카이브였으니.

아카이브의 시발점이자, 시초. 세상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수수께끼의 존재.

어이없게 들릴 수 있었으나, 현재의 아카이브인 멀린은 물론 다른 선대 아카이브조차 그의 이름과 얼굴조차 몰랐다.

오직 그가 남긴 막대한 지식과 무한한 마력, 세상의 진실만이 그가 있었다는 걸 말할 뿐이었다.

“재밌네요. 아카이브도 모르는 아카이브라니······. 그런데 그런 걸 이야기해줘도 되나요?”

맞는 말이었다.

그레텔은 검은손의 손가락 인육 요리사의 여동생. 비록, 지금 멀린에게 제압당했으나, 상당한 실력을 가진 흑마법사이자 마법사였다. 거기다 소량이긴 하나 지옥의 기운까지 집어삼킨 자였고.

그런 그녀에게 아카이브의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건 척 봐도 부적절했다.

그럼에도 멀린은 대답해줬다.

“그대들을 동정하기 때문이오.”

꿈틀.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가며 신체를 회복 중이던 그레텔의 표정이 눈에 띄게 요동쳤다.

누군가 자신을 동정한다는 단어가 그녀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린 것.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마법사나 흑마법사나 대성(大成)한 자들은 보통 강한 결핍을 가지고 있었으니.

특히, 흑마법사의 결핍은 마법사보다 더 심할 가능성이 높았다.

“오해하지 마시오. 꼭 그대만을 동정한다는 건 아니니.”

“······.”

“난 나를 포함해 세상 모든 인간을 동정하오. 우리 모두 거대하고 잔혹한 운명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에·····. 그래서 더욱 슬프오.”

멀린은 모든 인간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아카이브 특유의 두꺼운 마력벽 탓에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으나, 수백 년을 살아온 그레텔은 저 말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을 동정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백 년도 살지 않은 놈이······! 마법사로 태어나 아무런 어려움도 겪어보지 않은 놈이 말이다······!!

모욕이었다. 끔찍한 모욕!

“······날 모욕하지 마라. 애송이.”

감정이 격해진 그레텔은 격식을 벗어버리며 비틀비틀 일어나 말했다. 비록, 크게 당하긴 했지만, 아직 자신은 진 것은 아니었다.

지옥의 틈새에서 얻은 이 힘을 아직 다 사용하지 않았다.

“모욕하지 않았소.”

“아니, 너의 그 태도가 날 모욕하는 거야. 난 수백 년을 산 마녀이며, 사막 땅의 마법사 왕조차 먹은 자고, 그 외에도 수 세기 동안 수많은 이름난 마법사를 먹은 존재다! 하물며 지금 지옥의 힘마저도 손에 넣었지!! ······날 평범한 인간에 넣지 마라!”

그레텔은 진심으로 소리쳤다. 종말이 다가오는 와중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허나. 세월에 풍화한 멀린의 얼굴엔 안타까움만이 드리워졌다.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것이 많기에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지식의 저주.

“미안하지만, 그레텔······. 한낱 미물이 위대한 힘을 주워 몸에 두른다 해서 위대해질 수 있는 건 아니오. 그건 싸구려가 오래된 권위를 훔쳐 와 제 몸에 두르는 것처럼 부질없고, 위험한 행위요.”

“그렇다면······. 그 미물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보여주마!!”

그레텔은 그리 소리치며 마력이 아닌 자신의 몸에 흡수했던 순수한 지옥의 힘을 끌어올렸다.

라빌리 전체를 제물 삼아 얻은 지옥의 힘을.

그레텔은 인간의 것이 아닌 목소리로 영창했다.

[헬 서먼(Hell Summon)]

불안정한 지옥의 힘이 회복 중인 그레텔의 육체에서 폭발했다.

그레텔의 몸 곳곳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 공간을 뒤틀었고, 종국에는 균열을 일으켰다.

마법에 조예가 없는 자들조차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몹시도 불길하고, 불길한 무엇인가를.

당연히 멀린 역시 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미, 한번 상대해본 경험 역시 있었기에.

퐈롸롸롸롸롸············착!!

그레텔이 영창하는 타이밍에 맞춰 멀린은 허공에 마법진을 형성. 온갖 색깔이 뒤섞여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마력 끈으로 그레텔이 소환하려고 한 지옥의 문을 묶었다.

설마 여기서 쓰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 어떻게?!”

경악하는 그레텔. 멀린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마력 끈을 당겨 그레텔의 술법을 파괴한 다음, 허공에서 책을 꺼내 종이를 쭉 찢었다.

그리고는 무방비해진 그레텔을 향해 던졌다. 현재 그녀는 살려두기엔 여러모로 너무 위험했기에.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멀린의 종이가 그레텔의 목을 치려는 그 찰나, 그레텔과 종이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시간이 느려졌다.

실제로 시간이 느려진 건 아니었다. 그저 체감상 느려진 것뿐.

일그러진 공간 사이로 거대한 포털이 깨지듯 열렸으며,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무쇠와 같은 비늘이 촘촘히 박힌 거대한 파충류의 팔이 튀어나왔다.

콰와아아아아아아아앙━━━!!!

멀린의 종이가 파충류의 팔과 부딪히자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에 뒤이어 엄청난 괴성(怪聲)이 울려 퍼졌다.

성벽마저 뒤흔들고 무너트릴 괴성.

이 정도 소리를 낼 수 있는 짐승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용이군.”

거대한 포털을 열고 나온 용을 보며 멀린이 담담히 말했다.

체감상 거인의 두 배는 될법한 거대한 용은 몸 곳곳에 각종 흑마법을 두르고 있었다.

흑마법을 사용하는 용이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건 용의 상태였다.

용은 마력과 생명력뿐 아니라 절대적인 육체를 가진 존재였건만, 포털을 열고 나온 용의 상태는 누가 봐도 영 좋지 못했다.

몸 곳곳에 깊은 자상(刺傷)이 있었으며, 그 자상을 중심으로 각종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이 깊게 박혀 있었다.

피부에 심각한 염증이 발생해 비늘이 벗겨지는가 하면, 악성 종양이 부글부글 자라났고, 그 외에도 생명력이나 마력을 빨아먹는 버섯과 몸 내부를 침식해 들어가는 악성 곰팡이가 보였다.

참으로 흥미로운 경우였다.

용은 그저 물리력만 강한 게 아닌, 강력한 마력 저항력과 면역력도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이라니.

실력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재료를 사용해야만 가능한 그림이었다.

그 순간 멀린은 깨달았다. 이 용이 누구며, 또 누가 이 용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인육 요리사?”

멀린의 부름에 상처 입은 용은 멀린을 향해 소리를 지르더니, 가슴과 목에 돋아난 비늘 아래로 붉은빛을 뿜으며 이윽고 밀도 높은 화염을 파도처럼 내뿜었다.

퐈화화화화화화화화화화황━━━━!!!

공기를 집어삼키는 소리와 함께 멀린을 덮치는 화염의 바다.

멀린은 보통의 화염 마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용의 숨결에 대항하기 위해 화염에 절대적 내성을 가진 드래곤 스킨(Dragon Skin)을 몸에 둘렀다.

오렌지색과 붉은색이 뒤섞은 용의 숨결은 해일처럼 다가와 멀린을 집어삼키려 했고, 멀린은 눈앞의 화염에 눈을 빼앗기지 않은 채, 그 너머로 돌진해 오는 인육 요리사를 주시했다.

그는 강력한 화염으로 공격하는 척하며, 오히려 화염 속에 몸을 숨겨 접근해왔다.

상당히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용의 진정한 위력은 화염이 아닌 육체에서 나왔으니.

퐈항!!

길고 날렵한 목을 가진 인육 요리사는 밀려오는 화염의 파도 속을 뚫고 나와 수십 개의 이빨이 달린 거대한 아가리를 벌려 멀린을 노렸다.

화염으로 공간을 장악해 피할 곳을 없앤 다음 단숨에 치명타를 가하려는 것으로, 그 의중을 읽은 멀린은 회피 대신 종이를 찢어 인육 요리사의 아가리를 향해 던졌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인육 요리사는 아가리를 닫아 공격을 씹는 것으로 막았으나, 이는 좋지 못한 판단이었다.

종이에 깃든 마력과 술식이 폭발하며 하얗고 푸른 냉기 폭발을 일으켰기에.

독과 같은 냉기를.

━━━━━!!

예상대로 공격은 통했다. 화염을 내뿜는 용은 냉기에 취약했으니.

입안에서 터진 냉기는 인육 요리사 내부의 들끓는 화염을 죽일 뿐 아니라, 심장까지 냉기를 퍼트려 치명상을 입혔다.

인육 요리사는 송곳으로 심장이 찔리는 듯한 극한의 통증에 잠시 주춤거렸으나, 마치 쫓기기라도 하듯 이를 꽥 깨물며 거대한 날개를 칼날처럼 휘둘러 멀린을 공격했다.

부와앙!!

하늘마저 가릴 거대한 날개는 전방으로 퍼져나가는 화염을 두 동강 냈고, 멀린은 이를 가볍게 피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인육 요리사는 용의 날개를 휘두르자마자 날렵한 몸체를 늑대처럼 회전시켜 긴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강철 이상의 비늘과 근육, 뼈로 이뤄진 용의 꼬리는 음속을 넘는 속도로 움직여 소닉 붐을 일으키더니 멀린을 강타.

덕분에 공기가 터지는 충격파와 함께 멀린은 저 멀리 날아갔다.

공격에 당하기 직전 실드를 펼쳐 다치진 않았지만, 인육 요리사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애당초 지금 멀린과 싸우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었으니.

후으으읍······!

인육 요리사는 숨을 들이켰고, 그의 가슴과 목에 난 비늘 아래로 다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붉은 빛이.

콰롸롸롸롸롸롸라라라라라라랑━━━━━!!!!

인육 요리사가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자 다시 화염이 해일처럼 쏟아져 나왔다. 흑마법이 부여된 검붉은 화염이.

화염에는 각종 질병-약화계열 흑마법과 집착, 악의가 깃들어 있었으며, 그 때문에 화염은 그저 태우는 걸 넘어 땅에 끈적끈적 달라붙어, 수많은 질병을 실시간으로 퍼트렸다.

흡사, 독의 화염.

그 아카이브조차 강력한 용의 숨결과 질병, 끈적거리는 지속력이 만만치 않은지 발이 묶였고, 그 틈을 타 인육 요리사는 다친 몸을 돌려 자신의 여동생. 유일한 가족을 마주 봤다.

“오빠······?”

그레텔의 완전한 용으로 각성한 자신의 오빠를 보며 되물었다.

분명, 용을 먹고 최대한 소화해 그 힘을 흡수하긴 했지만, 완전한 용으로는 변하지 못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다.

[나 맞아······. 괜찮아?]

인육 요리사가 여동생의 물음에 답했다. 성대가 아닌 마력을 이용한 전언으로. 그 전언을 듣자 그레텔은 자신의 오빠가 완전한 용으로 각성했음을 실감했다.

그렇다면 해볼 만했다. 저 아카이브를 상대로 말이다.

‘······어?’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왜 완전한 용으로 각성했는데, 오빠의 몸이 만신창이인지, 왜 초조해하고 겁에 질린 건지 이해가 안 됐다.

그때 오빠가 말했다.

[도망쳐야 해······. 어서! 그 녀석, 우리가 생각한 그 이상이야!! 내가 포털을 열 테니 넌 어서 도망쳐!! 너만이라도!!!]

“그게 무슨······.”

다급히 말하는 오빠와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레텔. 그때 저 하늘 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 멀린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레텔과 인육 요리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 위를 봤고, 라빌리 상공을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는 거대한 천상을 볼 수 있었다.

그레텔과 인육 요리사가 무엇인지 눈치챈 그 찰나, 소용돌이의 중심, 천상의 눈에서 검은 섬광이 번뜩이며 세상을 한순간 검은색 빛으로 완전히 물들었다.

모두의 시야가 암전된 그때, 한줄기 번개가 그레텔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무자비하게.

━━━━━━━━!

소리 없는 굉음과 함께 강렬한 열기와 충격이 땅 위로 떨어졌고, 그레텔은 잠깐 의식을 잃었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바닥에 쓰러진 자신과 그런 자신을 한쪽 발로 짓밟고 서 있는 데이브를 볼 수 있었다.

란다의 해결사이자, 마탑의 직원인 그를.

그의 한쪽 손에는 쿼터스태프, 다른 한쪽 손에는 체크무늬 단검을 들고 있었는데, 그 중 쿼터스태프는 무엇인가를 찌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심장이었다.

“······!!??!”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

당황한 그레텔은 데이브를 다시 보았다.

그는 인위적이라고 할 정도로 가면 같은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의 오빠, 헨젤을 바라보고 있었다.

쿼터스태프로 찌른 자신이 아닌 오빠를.

그 순간 그레텔은 무엇인가를 이해했고, 소름 끼치는 악의와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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