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5. 지원 (2)
“조금 늦었네.”
남루한 코트에 한 손에 책을 든 멀린이 말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등장에 600미터 이상 상공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올리버는 위급한 상황임에도 팔자 좋게 질문했다.
“어르신?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어떻게 오긴 뭘 어떻게 와. 공간 마법을 사용해 왔지.”
멀린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허나, 가벼운 대답과 달리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공간마법은 몹시도 어려운 마법이었으니.
하지만 올리버는 그걸 물은 게 아니었다. 여기 상황은 어찌 알고 온 것이었냐는 거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듯했지만, 이 난리가 난 것은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기에.
“원래 좋은 스승은 제자가 뭘 하는지 아는 법이지. 제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아······.”
“여하튼 고생 많았구만.”
멀린은 허공에 매달린 올리버를 보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게 늘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옷은 걸레짝이 됐고, 몸은 한 달 동안 굶은 사람처럼 비쩍 말라 있었으니.
솔직히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상황이 다급하니, 부탁 좀 하지. 나도 손가락 한 명과 그 여동생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버겁거든.”
멀린은 올리버가 봐도 전혀 설득력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러니 인육 요리사 좀 자네가 잡고 있어 주게. 그사이 내가 저 겁 없는 아가씨를 상대할 테니.”
멀린은 종이를 던져 저 멀리 날려버린 그레텔을 가리켰다.
일방적인 부탁. 올리버가 뭐라 대답하려는 찰나 몸이 흔들렸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타겟팅을 걸었던 인육 요리사가 움직인 것이다.
“감히, 누굴 상대해?!!”
인육 요리사는 올리버와 만난 짧은 시간 동안에도 보여주지 않던 극렬한 분노를 표출하며 멀린에게 달려들었다.
한쪽 팔이 아직 재생 중이며, 몸에 여러 상처가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기세만큼은 엄청났다.
퍼펫의 말처럼 그는 여동생을 몹시 아끼는 듯했다.
‘음······. 잘하면······.’
올리버가 뭔가 생각하는 사이 인육 요리사와 멀린의 거리를 가까워졌고, 멀린은 책에서 종이를 쭈욱 찢고는 가볍게 던졌다.
인육 요리사는 비늘과 거대한 손톱이 돋아난 팔을 휘둘러 마력이 담긴 종이를 산산조각냈다.
팍!
종이가 찢기자 안에 저장된 방대한 마력이 허공에 퍼졌고, 갈가리 찢긴 종이는 미리 설정한 술식대로 허공에서 움직여 마법진을 형성. 새로운 마법을 전개했다.
[오버 그래비티(Overgravity)]
찢긴 종이는 각각 마법진의 한 축을 담당. 허공에 흩뿌려진 마력 입자를 하나의 건축물처럼 복잡하면서도 단단하게 구축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눌렀다.
인육 요리사뿐 아니라 범위 내 있는 공간 그 자체를.
녹아내리듯 위에서 아래로 휘어진 공간이 그 증거로, 그 인육 요리사조차 공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당연히 인육 요리사에게 타겟팅을 건 올리버도 추락했고.
“오, 이━━━━━”
올리버가 뒤늦게 반응하며 뭐라 말하려는 찰나 아래로 떨어졌다.
실로 엄청난 속도.
그럼에도 올리버는 멀린이 하는 말 만큼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
쾅━━!!
600미터가 넘는 상공에서 올리버는 추락했다. 과중력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아 아주 빠르게.
덕분에 몸 바깥뿐 아니라 내부까지 뒤흔들리는 거대한 충격을 온몸으로 맛봤다. 어디 하나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다행히 몸에 두른 감정 로브가 보호해 준 덕분인지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팍!!
올리버는 쓰러진 상태에서 쿼터스태프를 들어 인육 요리사의 공격을 막아냈다.
올리버보다 먼저 떨어진 그는 바닥에 고인 피로 프렌치 나이프를 만들어 올리버를 향해 휘둘렀는데, 멀린의 과중력 마법에 제대로 당했는지 힘이 전만 못 한 듯했다.
그렇다 해도 올리버보다는 셌지만 말이다.
끼기기긱.
인육 요리사는 팔에 힘을 줘 올리버를 누르더니 그 상태로 입을 벌려 올리버를 씹어먹으려 했다.
초조, 다급, 각오를 빛내며.
그렇게 인육 요리사의 이빨이 올리버의 목덜미를 물기 직전, 올리버는 말라비틀어진 몸으로 발악해 작은 틈을 만들어 인육 요리사의 복부를 사정없이 찔러댔다.
푹! 푹! 푹!
어찌 된 영문인지, 절대 뚫리지 않던 그의 육체는 생각보다 쉽게 꿰뚫렸다.
“크윽······!”
복부에 단검이 박히자 인육 요리사는 당황하며 뒤로 물러났고, 올리버는 바로 일어났다.
반격하려는 그 순간 인육 요리사는 다리를 휘둘러 올리버를 걷어찼다.
간발의 차이로 올리버는 두르고 있던 로브를 방패처럼 이용해 이를 막았으나, 상식에 벗어난 각력(脚力) 탓에 올리버는 저 멀리 날아가 건물에 처박혔다.
벽이 무너지며 흙먼지가 일었고, 추락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몸에 다시 충격이 밀려왔다.
뼈 깊숙이서 통증이 올라왔는데, 그럼에도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인육 요리사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로브가 찢기는 걸 넘어 몸이 찢겼을 텐데 말이다.
최악은 계속해 면하는 듯했다.
“역시 멀쩡해······! 600미터가 넘는 상공에서 추락한 데다, 나한테 걷어차였는데도 말이야?!!”
회복력까지 약화했는지 인육 요리사는 복부에서 피를 흘리며 접근 올리버에게 칼을 휘둘렀다.
올리버가 억지로 몸을 일으켜 대응했다.
“로브가 보호해 줘서요.”
칼로 만든 프렌치 나이프와 흑마법을 부여한 단검이 부딪히자 고막을 찢는 굉음이 났다.
“로브가 보호해 줘?!!”
단검과 프렌치 나이프가 힘겨루기하는 중 인육 요리사가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 바보를 보듯.
허나, 단순히 바보를 보는 것치고는 부조리와 몰이해, 억울함, 분노와 같은 감정도 빛냈다.
소중한 무엇인가를 빼앗기기라도 하듯.
하지만 인육 요리사가 올리버를 공격한 건 단순히 분노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걱정과 고민이 있었다.
여동생 그레텔에 대한 걱정과 어떻게 그레텔을 구할지에 대한 고민.
올리버는 감탄했다.
“역시, 여동생분이 아주 소중하신가 보군요.”
“······.”
“퍼펫 님께 들었습니다. 두 분에 대해서요.”
“······.”
“헨젤과 그레텔. 친부모에게 버려진 것도 모자라, 식인 마녀에게 붙잡힌 불쌍한 남매. 허나, 그 마녀를 죽여 그녀의 살점과 피, 지식을 빼앗은 대단한 남매······. 라고요. 대단하십니다.”
“······닥쳐.”
“그래서인지 두 분은 아주 우애가 깊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래서 바토리 님을 배신한 겁니까? 여동생분을 위해서요?”
“닥치라고 했다!”
인육 요리사는 아직 재생 중인 한쪽 팔을 들어 생명력과 흑마법을 부여해 새로운 팔을 만들었다.
허나, 재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지. 육체와 생명력을 적잖게 소모했으니.
인육 요리사는 새로 만든 파충류의 팔을 가로로 크게 휘둘러 올리버를 찢어버리려고 했다.
올리버는 단검을 살짝 움직여 인육 요리사의 프렌치 나이프를 흘린 다음, 삐쩍 마른 몸과 로브를 움직여 허공에서 회전. 인육 요리사의 손톱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빙글━
좀 신비했다.
피하고자 움직인 건 맞았으나, 생각 이상으로 잘 움직였달까?
삐쩍 마른 몸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잘 움직였다. 멀쩡했을 때보다 더.
더욱 신기한 건, 피한 직후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어져 인육 요리사의 가슴까지 베어냈다는 거였다.
이번에도 역시 잘 베어졌다. 처음과 다르게.
후두둑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과 뒤로 주춤 물러나는 발걸음.
인육 요리사는 숨을 거칠게 쉬며, 짧은 공포와 두려움을 뱉었다. 곧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와 분노를 빛냈지만.
꽤 예뻤다.
“혹여, 질문이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바토리 님과 인육 요리사 님의 감정이 서로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어긋난 이유가 궁금해서요.”
“······존댓말 하지 마라.”
“······예?”
“마음에도 없는 존댓말 하지 말라고 했다. 이 괴물아. 소름 끼치니까.”
“?? 죄송하지만 전 괴물이-”
“-푸흐흐흣!”
인육 요리사가 갑자기 소리 내 웃었다. 진심으로.
“씨발······.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이야. 그런데, 진짜 괴물을 보니 이 말밖에 안 나오네.”
인육 요리사가 자조 섞인 반응을 보였다.
당연했다. 인육 요리사 본인은 악마와 거래한 계약자였으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거대 도시에 재앙에 가까운 테러를 일으킨 자였으니. 무엇보다 사람을 먹는 존재였고.
도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괴물이란 단어는 그에게 더 합당했다.
그런데도 올리버는 그의 말이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의 감정은 진심으로 빛났기에.
단순한 도발이나 모욕이 아닌 진심.
그렇지만 올리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이 자신을 뭐라 생각하건 자신은 자신이었으니까.
다음 인육 요리사의 말이 나오기 전까진 그랬다.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네? ······왜 내가 널 괴물이라 부르는지 모르겠어?”
“글쎄요? ······혹시, 아까 인육 요리사 님의 살점을 뜯어 먹어서입니까? 그건 실수였습니다. 저도 좀 그렇기도 하고요.”
인육 요리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살점을 먹고, 내 힘의 일부를 가져갔지만, 그거 때문만은 아니야. 그보다는 좀 더······뒤틀리고 역겨운 이유 때문이지.”
“······?!”
올리버는 놀랐다. 자신이 인육 요리사의 살점을 먹어 그 힘의 일부를 가져왔다니.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러나 다음 말이 더 신경 쓰여 곧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넌 나보다 더 악질이거든. 난 사람을 고기로 보지만, 넌 사람의 감정을 재밌는 장난감 혹은 간식거리 취급하니까.”
“그게 무슨······.”
“아닌가?”
인육 요리사가 되물었다. 진실한 의문을 빛내며.
“너에게 사람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잖아? 중요한 건 감정이지. 그 감정 때문에 이해득실과 상관없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잃은 적 없나? 부당할 정도로 일방적이게?”
올리버의 머리에는 반사적으로 조셉과 마리, 약사, 요안나, 캔트, 포레스트, 머피, 조, 퍼펫, 에디스, 제인, 던칸, 로스번, 멀린, 윌레스, 케빈, 폴 카버, 바토리, 셰이머스, 테어도어, 야렐리, 고아원 원장 등등. 여태껏 만난 모든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올리버의 의사와 상관없이.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올리버 자신은 여태껏 만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건지, 아니면 감정에 관심을 가진 건지.
물론, 감정이 먼저인 건 맞았다. 그래도 사람 역시······.
“스스로의 정체만큼 자각을 못 한 듯하니 내가 알려줄까? 넌 사람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말이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지. 나만큼이나······. 아니, 나 이상이지. 난 사람을 증오하지만, 넌 그마저도 아니거든.”
“······.”
“네겐 사람은 그저 흥미로운 감정을 만드는······. 생체 기계 같은 거지. 협박을 잘못했어. 널 여기 초대했을 때 소중한 사람을 위협하다니. 터무니없는 실수였어······. 나조차 있는 소중한 사람조차 네겐 없는데. 그저 소중한 감정만 있을 뿐. 아끼는 장난감처럼.”
인육 요리사는 마음을 먹은 듯 숨을 들이쉬다 내쉬었다.
“하아아······. 대답해봐. 내가 네 소중한 사람을 위협했을 때, 사람이 걱정된 거야? 아니면 감정이 걱정된 거야?”
붕━!
질문을 들은 올리버는 단검을 좌에서 우로 크게 휘둘렀다.
올리버의 시야가 닿은 무엇이든 반으로 잘려나갔는데, 유일하게 인육 요리사만이 무릎을 꿇어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올리버에게 손을 뻗었고, 그대로 추출을 발동해 미세하게 꽃핀 올리버의 짜증, 불쾌를 뽑아냈다.
아주 한 줌밖에 안 되는 감정이었지만, 인육 요리사는 그마저도 버거운 듯 손을 떨었다.
“하. 하······! 이런 힘인가?”
인육 요리사는 차분하게 경악하며 올리버의 감정을 자기 몸에 부여했다.
그러자 이변이 일어났다.
인육 요리사의 몸 안에 거대하게 꿈틀대던 감정과 생명력, 마력에 올리버의 감정까지 뒤섞이자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듯 요동치더니 곧 하나로 합쳐졌다.
절대적인 법칙처럼.
그렇게 요동치는 에너지가 하나로 합쳐지자 인육 요리사는 아까 전부터 품고 있던 의심을 지우며, 확신을 빛냈다.
올리버에 대한 확신을.
그리고는 억누르고 있던 힘을 개방, 육체를 변화시켰다.
여태까지의 변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변화를.
인육 요리사는 상처투성이인 지금의 육체를 고치처럼 벗으며, 그 내부에서 새로운 육신을 꺼냈다.
불타는 것처럼 붉고 뜨거운 눈과 모든 걸 삼킬 것 같은 거대한 아가리, 검붉은 비늘로 촘촘히 뒤덮인 피부, 하늘을 덮을 듯한 거대한 날개와 산보다 크면서도 바람보다 날렵해 보이는 몸.
그것은 용이었다. 현재 이 세상에서 멸종한 용.
용으로 각성한 인육 요리사는 하늘은 덮고, 창문은 물론 벽마저 무너트릴 괴성(怪聲)을 지르며 올리버를 내려다봤다.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용을 마주한 올리버는 조용히 단검으로 자기 손바닥을 베 피를 흘리며 영창했다.
[디지즈 퍼레이드(Disease Para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