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21화 (421/633)

421. 인육 요리사 (3)

타다다다닥······카앙━!!

올리버가 참격을 가르자마자 바닥의 썩은 피바다에서 파문이 일더니, 인육 요리사가 단숨에 올리버 앞으로 접근해 왔다.

거리를 확보한 그는 나이프를 휘둘렀고, 올리버 역시 들고 있던 단검을 휘둘러 방어했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엷은 충격파가 퍼져 나왔다.

“독특한 체크 무늬 칼날······. 노스랜드 철강을 전통방식대로 주조한 물건이네.”

칼을 맞대 대치하던 중 인육 요리사가 올리버의 단검을 살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사실이었다.

이 단검은 다름 아닌 켈 자유독립군의 지도자 중 하나인 윌레스에게서 받은 것이었으니.

마운틴 페이스에서 바토리를 쓰러트린 후, 올리버는 그를 치료해주고 술과 담배까지 줬는데, 그는 그 보답으로 이 단검을 건네줬다.

이 단검을 가지고 켈 커뮤니티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거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즉, 일종의 신분증.

인육 요리사가 올리버의 단검을 살펴보며 계속해 입을 열었다.

“좋은 칼이지! 노스랜드산 강철 자체가 좋은 편인 데다, 전통방식으로 주조하면 마력이나 흑마법 전도율도 좋거든. 다만, 돈 주고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어떻게 손에 넣었지? 그것도 선물로 받은 건가?!”

“예.”

“잘됐네. 쿼터스태프랑 같이 내가 챙겨줄게!”

그 말을 신호 삼아 인육 요리사는 팔에 힘을 줘 올리버를 밀어낸 다음 나이프를 사납게 휘둘렀다.

밀려났지만 로브의 도움으로 바로 중심을 되찾은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공격에 맞춰 단검을 휘둘렀고,

그렇게 허공에 수십 개의 검은 선이 수놓아지며, 육안(肉眼)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흡사, 검의 폭풍.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다가가기도 힘든 수준.

어느 한쪽으로도 기세가 기울어지지 않자 인육 요리사는 허리춤에서 도끼를 연상시키는 클리버를 번쩍 뽑아 들었다.

콰앙━━!!

인육 요리사는 한 손으로 프렌치 나이프를 현란하게 휘두르는 동시에 반대 손으로 클리버를 있는 힘껏 내리찍었다.

장작을 패듯.

실제로, 인육 요리사의 클리버는 바닥은 물론 건물까지 날이 향한 방향에 있는 모든 것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단, 하나 올리버만 빼고.

그는 유일하게 베지 못한 올리버를 보며 질문했다.

“칼도 이렇게 잘 다룰 줄은 몰랐는데······. 어디서 배웠지?”

인육 요리사가 내려치기 직전 올리버는 프렌치 나이프를 튕겨낸 다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맞춰 클리버의 검격을 베어냈다.

인육 요리사의 검술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어야지만 가능한 기교였다.

올리버가 솔직히 답했다.

“배운 적 없습니다.”

“호······. 그래?”

“예. 쿼터스태프는 잠깐씩 배웠지만, 칼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너무 날카로워 께름칙해서요.”

“너무 잘해서 배우지 않는다라······. 오만한 발상이군. 그런데 왜 날 상대로는 칼을 쓰는 거지?”

“인육 요리사 님을 상대로는 께름칙하지 않아서요.”

진심이었다.

그도 그럴 게 그의 뿌리는 분명 사람이었지만, 현재 방대한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담은 육체는 올리버가 여태까지 봐온 사람의 그것을 초월했다.

솔직히 한 대만 허용해도 올리버는 자신이 위험하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왜 단숨에 강력한 화력으로 찍어 누르지 않고 파악하듯 살짝살짝 건드리는 건지.

단순히 봐주는 건가 싶었지만, 그렇다기에는 뭔가 어색했다.

마치 사과가 탐나면서도 독이 들어있는지 경계하는 것 같았다.

이에 관해 물으려는 찰나 인육 요리사가 한 박자 더 빨리 입을 열었다.

“오, 천사의 아들도 쓰러트린 놈이 날 높이 평가해준다는 거군. 고마워서 어쩐다? 참으로 영광이야.”

올리버는 그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 정확히는 진실과 괘씸함,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그는 계속해 말했다.

“그럼, 나도 거기에 부응하도록 할까? 네놈 견적도 볼 겸······. [콥스 인펙션(Corpse Infection)]”

인육 요리사가 영창하자 그의 몸에 깃든 방대한 감정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퍼져 나간 감정은 부패한 거인의 피, 살점과 결합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켰고, 곧이어 질병을 잉태했다.

“내가 무슨 흑마법을 썼는지 아나?!”

인육 요리사가 아까 전처럼 단숨에 접근하며 물었다.

그는 클리버를 가로로 크게 휘둘렀고, 올리버는 감정을 투여해 단검의 길이를 늘인 다음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공격을 비스듬히 흘려보냈다.

덕분에 클리버에서 뿜어져 나온 참격은 옆으로 날아가 건물을 세로가 아닌 가로로 쪼개버렸다.

실로, 엄청난 위력.

허나, 올리버는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다가가며 단검을 휘둘렀다.

인육 요리사의 프렌치 나이프에 막혔지만.

“······콥스 인펙션(Corpse Infection). 일명, 시체병입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과거 조셉의 서재에서 읽은 적 있는 흑마법이었다.

도시보다는 전쟁터에서 더 보기 쉬운 흑마법으로, 다름 아닌 시체를 촉매로 질병을 발생시키는 흑마법이었다.

난이도 자체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와 별개로 위험성은 꽤 높은 흑마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마법은 술사의 실력뿐 아니라, 재료의 질에 따라서도 그 위력이 결정됐기에, 시체의 수가 많거나, 시체의 질이 높을 경우, 사용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쿨럭.”

올리버가 기침하곤 자신의 바짓단과 구두, 몸 이곳저곳에 묻은 썩은 피를 살펴봤다.

감정 로브와 몸 안의 마력을 순환시켜, 질병-약화 계열 흑마법을 차단하고 밀어내고 있음에도, 재료가 재료(거인)인 탓인지 시체병은 올리버를 향해 계속해 침투해 들어왔다.

아까 전에 걸린 질병-약화 계열 흑마법을 중화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심지어 다 중화시키지도 못했는데.’

올리버는 욱신거리는 눈과 따가운 피부, 미세하게 떨리는 손, 뻐근한 관절을 인지하며 생각했다.

눈 대상포진과 붉은 반점, 미친 신경병, 관절 석화의 증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솔직히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점점 나아지고 있었으니. 문제는 나아지지 않고 점점 심해지는 거였다.

꼬르르륵······.

“아, 슬슬 발동이 오나 보네.”

올리버의 배꼽시계를 들은 인육 요리사가 양손에 든 클리버와 프렌치 나이프를 교차로 휘두르며 말했다.

X자 검격이 올리버를 덮쳤고, 올리버는 로브를 두른 쿼터스태프를 내질러 반격했다.

화력의 부족과 허기로 힘이 달려 뒤로 날아가고 말았지만 말이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올리버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에 날아가는 쿼터스태프와 썩은 피바다 위에 쓰러진 올리버.

올리버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심해지는 허기를 맛보며 질문했다.

“발동이 온다는 게······. 흑마법 기아병 맞습니까?”

“그래.”

“아까 전 당한 흑마법이군요.”

올리버가 유충 형태의 크리처에 당해 자폭한 이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인육 요리사가 다시 대답했다.

“맞아. 역시 눈이 좋네.”

“으음······. 왜 이것만 중화가 안 되는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다른 건 다 중화했는데, 이건 안 돼서요······. 이렇게 까다로운 흑마법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실로, 그랬다.

정식 명칭 스타베이션(Starvation)인 기아병은 질병-약화 계열 흑마법 중 기본에 속한 흑마법이었다.

당연히 사용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수준도 낮게 요구했고, 그에 비례해 위험성도 낮은 편에 속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음식만 먹어도 흑마법이 해제될 수준이었다.

그런데, 올리버가 당한 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단숨에 목숨을 빼앗을 만큼 치명적이진 않지만-

“-천천히 배고픔을 가중시키지? 그렇다고 풀리지도 않고?”

질문을 들은 올리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전부터 이 굶주림을 중화하거나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허기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거야. 내 감정으로 만든 거니까.”

올리버는 그게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했다.

흑마법은 술사 본인의 감정을 사용할 시 더 큰 힘을 냈지만, 그 외에도 사용하는 감정이 강렬할수록 그 효과는 배가 됐기에.

올리버는 음식을 달라 아우성치는 배를 감싸며 인육 요리사의 모습을 살펴봤다.

딱 벌어진 어깨, 셔츠 너머에서도 보이는 탄탄한 근육, 긴 다리와 건장한 체격.

도저히 굶고 자란 사람 같지 않았으나, 올리버는 퍼펫을 통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인육 요리사 그는 굶주림과 아주 친한 사이였다.

가난한 나무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유년기 전반을 굶주림과 함께 지냈을 정도였으니.

‘그리고 종국에 숲에 버려진······.’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를 보며 질문했다.

“친절한 설명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내 힘이 통한다는 즐거운 사실을 알았는데, 그 정도 친절을 베풀어야지.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어.”

“······?”

“뭣보다 곧 죽을 놈인데 말 못 할 게 뭐가 있겠어? 너도 느껴지지? 이대로 가만히만 있어도 넌 곧 죽는다는 걸? 그것도 배고파서.”

“······예.”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지?”

질문을 듣자마자 올리버 썩어 질병의 온상이 된 피바다에 손을 대 마력과 감정을 부여, 혈마법을 발동시켰다.

썩었다 해도 피는 피였으니.

[블러드 메이든(Blood Maiden)]

올리버의 부름에 바닥에 고인 피바다는 인육 요리사 주변으로 모여 여성의 얼굴을 한 거대한 관을 형성했다.

사람 하나는 가뿐히 삼킬 거대한 피의 관을.

올리버가 주먹을 꽉 쥐자 피의 관은 좌우로 벌려져 인육 요리사를 단숨에 삼켰다.

인육 요리사는 믿는 구석이 있듯 그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았으나, 올리버는 개의치 않고 그 상태로 피의 관을 조작. 안팎으로 수많은 대못을 돋아나게 했다.

피로 이뤄진 대못을.

콰과과과과광━!!

요란한 소리가 나며 대못이 안팎으로 촘촘히 박혔다.

거대하고 무수히 많은 대못을 보고 있노라면, 안에 있는 그 무엇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으나, 혈마법을 직접 조종하는 올리버는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떠한 손맛도 없었기에.

그 느낌을 증명하듯 피로 이뤄진 관 안에서 무엇인가 나오려는 듯 울룩불룩 솟아났고, 이윽고 한계에 다다르자 쇠를 찢어발기는 굉음을 내며 무엇인가가 튀어나왔다.

촤아아아앙!!

그것은 순수한 분노로 이뤄진 칼날이었다.

인육 요리사가 자신의 요동치는 감정에 악의(惡意)를 투여해 뿜어댄 감정의 칼날로, 노기(怒氣)로 이뤄진 칼날은 피의 관을 산산조각내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분명, 피의 관은 같은 두께의 강철보다도 더 단단할 터인데······. 가히, 경악스러운 위력.

하지만 더 경악스러운 것은 옷만 찢어졌을 뿐 멀쩡한 인육 요리사의 육신이었다.

기둥과 맞먹는 대못이 수십 개나 박혔음에도 인육 요리사의 육신은 긁힌 자국조차 없었다.

“이젠 내 차례네.”

인육 요리사는 사방으로 뻗어 나가 건물과 대지에 깊은 자상(刺傷)을 남기는 감정의 칼날을 조종해 올리버를 공격하게 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거대한 검은 칼날.

피하려고 했으나, 인육 요리사는 그사이 클리버와 프렌치 나이프에 자신의 감정을 투여했다.

피하는 순간 그 빈틈을 노리겠다는 것.

‘되려나?’

올리버는 고민하며 감정의 통제력을 높여, 로브를 여러 갈래로 나눈 다음 날아오는 참격의 속도에 맞춰 로브로 감싸 참격을 모조리 흡수했다.

덕분에 올리버는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피부로 인육 요리사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수백 년간 쌓인 무력감과 배신감을.

올리버는 그 상태로 로브를 통해 단검으로 참격을 가져와 있는 힘껏 인육 요리사를 향해 날려 보냈다.

인육 요리사는 물러서지 않고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올리버에게 참격을 날렸고, 곧 두 개의 참격은 충돌했다.

콰아앙······!

놀랍게도 올리버가 날린 참격은 인육 요리사가 날린 참격을 가르며 인육 요리사를 덮쳤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인육 요리사의 감정뿐 아니라 올리버가 추출한 감정까지 보탰으니.

흙먼지가 가라앉자 올리버는 자신이 날린 참격의 위력을 볼 수 있었다.

바닥에 깊은 칼자국을 만들어 그 속으로 피가 왈칵왈칵 들어갔고, 인육 요리사의 식칼 역시 산산조각이 났다.

정작 인육 요리사는 피의 관에서 나왔을 때처럼 멀쩡한 모습을 한 채 서 있었지만.

“이게 끝-”

-[블러드 웨지(Blood Wedge)]

올리버가 아까 전 놓친 쿼터스태프에 혈마법을 걸어 인육 요리사를 향해 투척했다.

주변의 피를 될 수 있는 한 끌어모은 쿼터스태프는 거대한 쐐기 탄환의 형태로 인육 요리사에게 날아갔다.

무엇이든 쪼갤 기세로.

허나, 인육 요리사는 식칼이 없음에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더욱 자신감을 내보이며 자신의 한쪽 팔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인육 요리사의 한쪽 팔에서 근육이 부풀고, 비늘과 손톱이 돋아났다.

사람보다는 파충류의 그것에 더 가까운.

그는 그 상태로 팔을 휘둘러 올리버의 혈마법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압도적인 육체의 힘만으로.

올리버는 반쯤 예상했다는 듯이 쿼터스태프를 회수했고, 인육 요리사는 자신감을 내보이며 질문했다.

“더 노력할 게 있나?!”

“하아······. 배가 고프네요.”

올리버는 점점 심해지는 기아와 피로로 흐트러지는 정신을 붙잡으며 대답했다.

뭔가를 먹고 싶었다.

***

“빌어먹을.”

전쟁터나 다름없는 라빌리 중심부.

그곳에서 마탑의 교수이자 마스터인 케빈이 낮게 중얼거렸다. 온 마음을 다해.

왜냐면 말 그대로 빌어먹을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관한 요구를·····.”

“한 건가?”

넝마만 걸친 비렁뱅이 마법사,

곰 가죽을 머리에 뒤집어쓴 거구의 드루이드,

곱사등을 한 흑마법사가 문장을 하나하나 나눠 대답했다.

그 탓에 듣기 아주 거슬렸는데, 그보다 더 거슬리는 건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게 실상 한 명이라는 점이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퍼펫이라는 거였고.

“바로 믿어줘서 고맙군.”

“내 말을 안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덕분에 이야기가 빨라졌어.”

세 명의 남자······. 아니, 세 구의 송장인형을 동시에 다루는 퍼펫이 말했다.

솔직히 믿기지 않고 믿기도 싫었지만, 케빈은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퍼펫 말고는 그만한 송장인형을 다룰 인간은 없을 테니까.”

케빈이 반말로 말했다. 예의를 갖출 상대도 뭣도 아닌 적이었으니.

특히, 지옥의 문이 열릴지도 모르는 이 다급한 와중 방해를 하는······. 참으로 난감했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더 이상 도시 중심부로 들어가지 말 것.”

“그럼, 더 이상 아무도 해치지 않지. 아무도.”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송장인형 주변에는 수많은 시체가 쌓여 있었다.

일단, 넝마만 걸친 마법사는 시체로 만든 작은 산 위에 걸터앉아 있었으며, 드루이드 주변에는 몸이 찢어진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고, 흑마법사 주변에는 표본과 같이 손질된 시체가 가지런히 누워 먹보주머니에게 잡아 먹히고 있었다.

그 수는 대략 이백여 구.

그중에는 로큘리 대학의 마법사와 경찰, 군 병력 외에도 인육 요리사의 부하, 민간인까지 있었다.

본인의 말대로 1번 구역으로 가려는 모든 것을 배제한 거였다.

케빈은 머리를 차갑게 유지하며 아군의 전력을 살펴봤다.

케빈의 옆에는 군용 화기로 무장한 테렌스와 올리버의 도움으로 온 야렐리, 그 외 팀을 짠 로큘리 대학의 마법사가 십여 명 있었다.

모두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꽤 대단한 전력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인원으로, 인육 요리사의 부하들을 몇 부대나 분쇄하고, 이계의 생물마저 여러 마리 쓰러트렸으니.

심지어 케빈은 샐러맨더의 도움을 받아 거인을 홀로 셋이나 잡기까지 했다.

누구와 가져다 붙여도 밀리지 않을 전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3구의 송장인형이 자신들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걸 본능으로 느꼈기에.

마법사, 드루이드, 흑마법사. 이례적인 조합도 조합이었지만, 그걸 넘어 하나하나가 위협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케빈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인육 요리사는 도시의 혼란을 이용해 지옥의 문을 열려고 했고, 올리버는 그를 막으러 혼자 갔으며, 퍼펫은 그 주위를 포위해 외부의 개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참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상황.

“질문 하나만 하지. 우릴 막는 이유가 지옥을 문을 열기 위해서야?”

퍼펫이 대답했다.

“아니, 난 지옥이니 그런 것에 크게 관심 없어.”

“그냥 지켜보고 싶은 것뿐이야.”

“그리고 방해하려는 훼방꾼은 죽일 뿐이고. 어찌할 테지?”

케빈은 곰곰이 생각하며 테렌스와 무언으로 대화를 나눴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

같은 전장에서 구른 덕분인지 말을 주고받지 않음에도 서로의 뜻을 바로 나눌 수 있었다.

“만약, 들어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을 건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야렐리가 놀랐다.

퍼펫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역시 앞서 말했듯이······. 방해만 안 하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지금 내가 가만히 있는 것.”

퍼펫이 당당히 말했고, 그 말은 케빈을 설득했다.

“돌아간다······. 테렌스. 통신장치로 비상신호를 보내 모두 대학에 모이라고 해. 상황을 설명한 다음 바로 도시 밖으로 피난한다.”

케빈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당당히 말했다.

지휘권에 따라 묵묵히 듣고 있던 야렐리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제논 씨를 돕지 않으실 건가요?”

“아니, 지금이 돕는 거야. 퍼펫까지 개입하게 하면 그거야말로 돕지 않는 걸 테니.”

케빈의 말을 들은 야렐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약간 흥분해 이런 것일 뿐, 본인 역시 냉정한 성격이었기에 케빈의 선택이 정답인 걸 알았다.

지금 제논을 도울 수 있는 건 더 이상 손가락이 개입하지 못하게 물러나는 것밖에 없었다.

“그럼,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혹시 모를 재앙 밖으로 벗어나가게끔······. 내 의견이 틀린 구석이 있나?”

야렐리는 물론 로큘리 대학의 마법사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냐면 현 상황에선 이것의 최선이었기에.

그들 역시 눈과 경험이 있기에, 퍼펫을 상대로 쉽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아니, 오히려 위험했다. 방금 본 송장인형 외에도 어떤 송장인형이 있는 줄 알고.

지금 여기서 개입하겠다는 건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로큘리 대학에 이 사실을 알리고, 구출한 도시민과 구출할 수 있는 도시민을 데리고 이 도시를 벗어나는 게 최선이야.”

“하지만······. 제논 씨는.”

야렐리가 괴로운 듯 중얼거렸다. 올리버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더니, 마음에 큰 빚이 생긴 듯했다.

아직 학생은 학생.

테렌스가 야렐리를 위로하며 뭐라 말하는 와중 케빈이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제논 그 녀석 몫이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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