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20화 (420/633)

420. 인육 요리사 (2)

좌에서 우로 크게 움직이는 프렌치 나이프.

올리버는 그 순간 신기한 경험을 했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말하며 올리버의 의식을 자극. 체감상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광산 시절 관리인들이 위험한 일을 시키려 할 때나, 같이 일하는 아이 중 주먹이 센 아이들이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이런 감각을 느끼곤 했는데, 당시 올리버는 짧은 시간 내 수많은 생각을 하며, 본능이 시키는 대로 몸을 숨겨 화를 피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

처음 든 생각은 회피였다.

제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 해도 맞지 않으면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았으니.

허나, 올리버는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질병-약화계열의 여파 탓에 몸이 둔해져 제대로 회피할 자신이 없었고, 또, 인육 요리사의 반대 손을 보자 회피는 더 위험하다고 판단.

그래서 올리버는 회피 대신 방어를 택하기로 했다.

문제는 어떻게 방어하냐는 거고.

올리버는 로브를 두른 손을 보았다. 거인의 두 주먹도 막은 팔을.

이 팔을 방패처럼 내밀어 공격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대신 쿼터스태프를 들기로 했다.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팔보다 쿼터스태프를 드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본능적인 행동에 불과했다.

허나, 그런 사소한 이유와 별개로 그 선택은 옳았다.

촤앙······!

공기가 울리는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소리와 함께 올리버는 뒤로 밀려났다.

공격이 생각 이상으로 강해 밀린 것인데, 그를 증명하듯 미처 다 막지 못한 참격이 올리버의 로브를 일부 잘라냈다.

아마, 로브를 두른 팔로 방어했다면 팔 채로 잘렸을 터. 참으로 다행이었다.

쾅! ······촤아아악!!

올리버가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며 대응하려는 찰나, 인육 요리사가 반대 손을 내질러 올리버를 공격했다.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들어 이를 막았지만, 인육 요리사는 개의치 않고 순수한 완력으로 올리버를 밀어붙여 그대로 건물 한쪽에 처박아버렸다.

쾅!!

건물에 처박히자 커다란 소리가 울리며, 강렬한 충격이 엄습.

그나마 올리버가 몸에 두른 블랙 슈트와 로브 덕분에 육체는 그렇다 할 데미지는 입지 않았으나, 정신적으로는 꽤 충격을 받았다.

거인의 주먹까지 막은 로브가 인육 요리사의 완력에 밀린다니······.

아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바다를 연상시킬 정도로 방대한 감정과 마력, 생명력을 지닌 그였으니, 육체 역시 궤를 달리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문제는 그것이 올리버가 생각한 수준을 아득히 초월했다는 거였다.

“오······. 대단한데. 이따위 나무 쪼가리로 버티다니.”

인육 요리사가 진심 반 조롱 반으로 말했고, 올리버는 예를 갖춰 답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알아. 그 나무가 아니라, 몸에 걸친 너저분한 거였으면 단숨에 토막 냈을 테니까······. 이 나무 쪼가리 정체가 뭐지?”

“죄송하지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선물 받은 거라서요.”

“선물?”

인육 요리사가 호기심과 탐욕을 빛냈다.

“뭐 좋아······. 내가 천천히 알아내면 되니까. 그보다 여긴 어떻게 온 거지? 넌 분명 여기 있을 수 없을 텐데?”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말투. 올리버는 대답했다.

“혹시, 팬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 역시 만났네!”

인육 요리사가 반응하며 올리버를 누르는 한쪽 팔에 더욱 힘을 실었다.

힘을 주자 그의 손에는 손톱이 자라며, 팔에는 비늘 비슷한 것이 결정처럼 맺혔다.

인간의 팔이 아니었다. 거인보다 강력한 무언가의 팔이었다.

“팬을 만났는데, 여기 이렇게 빨리 나타났다라······. 그놈이 나 엿 먹으라고 널 풀어줬나 보군.”

질문보다는 확인, 확인보다는 확신에 가까운 말투.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인육 요리사 님 뜻대로 움직여 주기 싫다고 하셨습니다. 자세한 이유는 저도 모르지만요.”

대답을 들은 인육 요리사는 예상치 못한 듯 놀라면서도 이내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못 믿을 놈을 믿은 내 잘못이지······. 어차피 하던 일만 마치면 놈도 먹어치울 생각이었으니 상관없지만.”

“하던 일이라는 게 지옥의 문 여는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

예상치 못한 대답에 인육 요리사는 눈을 크게 뜨며 밀어붙이던 쿼터스태프를 붙잡아 올리버와 같이 반대편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힘이 어찌나 강한지 로브가 주인을 보호하려 애썼음에도 올리버는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팬······. 그놈이 그런 말까지 해줬나?”

“아뇨.”

올리버가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대답했다.

“그건 퍼펫 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올리버는 그 순간 볼 수 있었다. 대답을 듣자마자 동요하는 인육 요리사의 감정을.

무리도 아니었다. 지금은 같은 손가락이라 해도 아득한 과거에는 인육 요리사 역시 퍼펫의 도움을 받은 적 있었으니.

“······아무래도 나보다 너에게 더 가능성을 보았나 보군.”

“가능성요?”

“그래. 그 인간 재능 있는 애송이들에게 투자하길 좋아하거든. 자기 연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영혼을 만드는 법과 죽은 사람을 살리는 법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래서 한때 나도 도움받았지······. 유감이야.”

“음······. 퍼펫 님께선 누굴 골랐다기보다는 그저 더 재밌고, 유익한 걸 배우고 싶어 그런 것이니, 그렇게 실망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아, 유감이라고 말한 건 그런 게 아니야······. 하긴 이제 와 아무렴 어때. 그건 그렇고 너도 제정신은 아니군.”

“예?”

“예? 는 무슨······. 지옥이 문이 열릴지도 모르는데, 여기 꾸역꾸역 온 거면 제정신은 아니잖아? 아무리 모자라도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모르진 않을 테니 말이야.”

올리버는 그 말에 동의했다.

자세히는 알진 못했지만, 퍼펫의 설명을 참고하자면 지금 인육 요리사가 하려는 것은 악마 소환을 이용한 일종의 편법.

그것만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근래에는 악마 소환이 일어난 경우가 없었지만, 오래된 과거의 기록을 보면 하나하나 심각하기 이를 데가 없었으니.

규모는 작은 마을에서 대도시까지 다양했으나, 소환된 장소는 재앙(災殃)이라는 단어로도 표현 못 할 끔찍한 일을 겪었다.

오죽하면 역사의 판도를 뒤바꾸기까지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안으로 들어왔다. 왜냐면······.

“······일이라서요.”

“일?”

“예, 마탑의 직원 제논 브라이트. 이곳 갈로스에 온 건 마탑의 일원으로서 인육 요리사 님을 상대하러 온 거거든요. 당연히, 개인적인 감정은······조금 있지만요.”

올리버가 초대장을 보낼 때 인육 요리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갈로스로 오지 않는다면 올리버 주변 사람들을 건드리겠다는 협박을.

대답을 들은 인육 요리사는 어이없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크하핫!! 여태까지 수많은 허세와 거짓말, 협박, 모욕을 들었지만, 이런 말은 또 처음 듣네. 공적인 일로 왔지만, 개인적인 원한도 있다라······. 흥미로워.”

“원한까지는 아닙니다. 약간의 유감 정도입니다.”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오해를 바로잡아주었다. 정말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정도였으니.

인육 요리사는 올리버의 그런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들으면서도 크게 개의치는 않는 반응을 보였다.

“뭐, 알아서 해. 흑마법사는 나사가 한두 개씩 빠진 게 정상이니까. 도달할 수 없는 연구만 붙잡는 퍼펫이나, 왕자병에 빠진 팬, 어린아이를 유괴해 숲에 버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차라리 다행이다 싶군.”

“무엇이 말씀이신지요?”

“애송이 계집년처럼 되지도 않는 사명감으로 날 막으러 온 줄 알았거든. 넌 그런 재수 없는 놈이 아니라 다행이야. 그런 종류의 인간들을 보면 웃기면서도 불쾌하단 말이지.”

올리버는 지하실에서 처음 인육 요리사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는 강자에게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자긍심과 임무를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말한 야렐리를 비웃었다.

야렐리는 진심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야렐리를 비웃은 다음 말했다. 자신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적응해 살고 있을 뿐이라고.

솔직히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올리버가 살면서 봐온 고아원과 광산, 거지패, 뒷세계 하물며 양지의 대표 격인 마탑과 시(市)조차 직접 입에 사람 고기를 넣지 않는다뿐이지, 사람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올리버는 동시에 동의하지 않기도 했다.

“개소리군. 동의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니?”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인육 요리사님의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국가는 다른 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를 만들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죠. 심지어 그 노동자마저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으며, 아이들 역시 더 어린아이를 착취하죠.”

올리버는 시(市) 내무부 장관 폴 카버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시간이 부족해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지만, 올리버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 조금은 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의 말은 야렐리의 말과 일맥상통했다.

인간의 욕심은 무한하나, 자원은 한정적인 비극적인 섭리.

“아마, 그렇기에 제 스승님께서 힘이 인간의 가치라 한 것이겠지요. 힘이 있어야 잡아 먹히지 않을 테고,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제대로 가르쳤구만.”

“예, 실제로 저 역시 스승님의 말에 반 정도 동의했습니다.”

“반?”

“그렇지 않은 것도 보았거든요. 한때 사람을 잡아먹었지만,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을요.”

올리버가 캔트를 떠올렸다. 란다의 재개발 붐 때 사람을 잡아먹다 자신 역시 잡아먹힌······. 놀랍게도 그는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나서 사람을 돕는 생을 살고 있었다.

참으로 얄궂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인간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지?”

“적겠죠. 아주······. 하지만 존재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천천히 나아질 테니까요.”

올리버가 캔트에 이어 아까 전 대화를 나눈 야렐리를 떠올렸다.

그녀는 마탑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관해 말하자 인육 요리사는 비웃었다.

“그 말을 믿나?”

“예, 믿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기만 하는 세상은 뭐랄까······. 시시한 세상이지 않습니까?”

짝- 짝- 짝-

올리버의 말을 가만히 듣던 인육 요리사는 들고 있던 프렌치 나이프를 허리에 잠시 꽂아 손뼉을 쳤다.

아주 아주 냉소적으로.

그 탓인지, 평소 격정적이던 그의 감정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해지며, 경멸과 혐오, 차가운 분노를 빛냈다.

몹시도 불쾌한 것을 보듯.

“어벙한 겉모습과 달리 재주가 많다는 건 알았지만, 역겨운 소리도 잘할 줄은 몰랐네. 덕분에 토 나올 것 같아.”

인육 요리사가 경멸과 모욕을 담아 말했다. 허나, 올리버는 의문을 느낄 뿐이었다. 왜냐면 그 역시······.

인육 요리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요컨대, 너도 도시를 구하는 영웅 노릇을 하고 싶다는 거지?”

“아뇨, 그건 아닙니다. 그냥 마탑 소속으로 일하려는 것뿐입니다······. 다만, 그런 생각을 가진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긴 합니다.”

“모순적인 놈이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인육 요리사가 허리에 꽂은 프렌치 나이프를 다시 뽑아 들었다.

인육 요리사는 자신의 감정을 투여해 프렌치 나이프의 날을 검붉게 물들였다.

올리버가 방어 태세를 잡는 순간 그는 프렌치 나이프를 크게 휘둘렀다.

올리버가 아닌 양손이 부서져 무릎 꿇은 거인을 향해.

흑마법이 깃든 칼날은 건물 이상의 덩치를 가진 거인의 목을 단숨에 잘라버렸으며, 거인은 덩치에 어울리는 대량의 피를 뿜으며 그대로 엎어졌다.

하늘에서 내리는 붉은 핏방울과 바닥을 뒤덮은 붉은 피의 강.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 중심은 딱지를 뜯은 듯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디컴포스(Decompose)]

인육 요리사가 영창하자 바닥에 고인 대량의 혈액과 건물, 올리버의 몸에 묻은 혈액, 심지어 거인의 육체가 급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했다.

부패하며 생긴 진물과 악취가 그 증거. 올리버는 아차하며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면 질병-약화계열 흑마법을 가장 쓰기 좋은 환경이 되었기에.

올리버가 자기 몸에 묻은 썩은 피라도 제거하려는 찰나, 인육 요리사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프렌치 나이프를 들며 말했다.

“개소리 잘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날 막을 생각이지?”

그는 그리 말하곤 프렌치 나이프를 좌에서 우로 크게 휘둘렀다.

나이프에 깃든 감정은 거대한 초승달 형태의 칼날이 되어 올리버에게 날아들었다.

촹!!

거대하고 초승달 칼날이 올리버와 충돌하자 반으로 쪼개지며 좌우로 날아가 건물과 충돌했다.

굉음이 울려며 건물은 무너져내렸고, 한 손에 단검을 든 올리버가 제 자리에 서서 대답했다.

“노력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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