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 반격 (2)
“추출.”
올리버가 말하자, 뼈는 프타스 어시스턴트, 살은 블랙 슈트로 이뤄진 거대한 손이 올리버의 손을 대신해 전(前) 생명 연금술 학과의 학장 데지헤 듀란스의 감정, 생명력, 마력을 동시 추출했다.
거대한 검은손은 그 크기에 비례하듯 여태까지 사용한 추출과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양을 한 번에 추출하였고, 그 기세는 흡사 거대한 강줄기를 연상시켰다.
빛으로 이뤄진 세 개의 크고 힘찬 강줄기.
강줄기의 도착지인 검은손은 빨아들인 에너지를 그대로 흡수 자신의 일부로 삼았으며, 올리버는 그 에너지를 도로 가져와 자신의 몸에 로브처럼 둘렀다.
과거, 셰이머스를 만나러 갔을 때처럼.
차이가 있다면, 재료의 양과 공격성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로브의 형태가 더 선명하고 거칠었다는 거였다.
“건방진-!!”
올리버에게 추출을 당한 데지헤 듀란스가 분노, 당황, 초조를 빛내며 양팔을 크게 휘둘렀다.
그녀의 저항에 강줄기는 끓어졌으나, 크게 상관은 없었다.
데지헤를 추출한 건 맞았지만, 꼭 그녀만 추출한 것은 아니었으니.
올리버의 검은손은 데지헤 뿐 아니라, 주변의 늑대인간과 오거, 마법사들 심지어 도시 전역에서 분노, 공포, 광기를 흩뿌리는 불특정 다수의 감정을 동시 추출해 자신의 양분으로 삼고 있었다.
자신이 만든 손의 성능을 테스트해보려는 시험이 목적으로, 성능은 올리버의 기대한 것 그 이상이었다.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당황한 데지헤와 그녀의 부하들이 그 증거.
그녀는 다급히 한쪽 손에 마력과 감정을 집중시켜 주먹을 꽉 쥐었다.
촤락!
주먹을 꽉 쥐자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채찍이 돋아났다.
뼈와 살점으로 이뤄진 가시 채찍이.
척 봐도 흉흉한 물건이었는데, 흑마법사의 눈으로 살펴보니 더 흉흉했다.
채찍에 각종 마법과 흑마법이 걸려있었기에.
그를 증명하듯 데지헤가 팔을 휘두르자 채찍은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움직여 바닥과 건물에 깊은 자상(刺傷)을 남기는 동시에 올리버의 추출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촤좌작!
순식간에 반으로 잘린 추출.
강줄기를 연상시키는 막대한 에너지는 그 힘을 잃어 허공에 흩어졌고, 데지헤는 곧바로 올리버와 야렐리를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음······.”
올리버가 침음성을 내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콘크리트 벽면과 포장도로조차 가른 데지헤의 채찍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허공에 맥없이 멈췄다.
올리버가 몸에 두른 막대한 감정 입자에 붙잡힌 거였다. 너무나도 쉽게.
데지헤의 눈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게, 저 채찍은 수차례 강화한 자신의 육신을 재료로, 여러 강화 마법과 질병 흑마법을 떡칠한 물건이었으니.
위력은 자신할 수 있었다. 인육 요리사가 인신 공양으로 소환한 이계의 괴물들조차 저 채찍으로 굴복시켰기에.
그런데 갓 스무 살이 넘긴 웬 애송이가 막은 거였다. 그것도 손가락만 까딱여서······.
이건 옳지 못했다. 아무리 테어도어를 쓰러트리고, 그레텔이 눈여겨본 천재라 해도 이건 정도에 어긋났다.
자신 역시 역사 깊은 로큘리 대학을 대표하던 학장 중 하나.
심지어 한계에 도달하자 만족해버린 다른 늙은 돼지들과 달리 평생에 걸쳐 쌓은 경력과 명예마저 포기하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선구자였다.
그래서 이 경지까지 왔고.
그런데, 그런 자신의 노력이 지금 부정당하고 있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애송이에게······.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흥!”
도덕심과 긍지를 버리고 젊음과 새로운 힘을 얻은 데지헤는 자신의 신체로 만든 채찍에 분노의 감정을 부여했다.
허공에 멈춰 선 채찍은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여 눈앞의 건방진 놈과 야렐리를 순식간에 감싸려 했다.
비록, 로브가 내뿜는 고밀도 감정 입자에 막혔지만, 그것 역시 상관없었다.
[스틸 본(Steel Bone)]
[아크로메갈리(Acromegaly)]
[타겟 오브 해이트(Target of Hate)]
데지헤는 자신의 신체와 감정을 재료로 흑마법을 시전. 가시처럼 돋아난 뼈는 강철 이상으로 단단해졌고, 채찍은 거대화해 상대를 압박, 증오심까지 부여해 대상을 옥죄게 했다.
흡사, 거인의 손아귀.
이를 신호 삼아 발을 붙잡고 있던 데지헤의 부하들은 마력을 더욱 부여해 올리버와 아렐리를 압박했다.
전신을 흙으로 감싸 터트려버리려는 것.
허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계획은 발밑에 솟아난 돌창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콰과광!!
거대하고 날카로운 돌창은 문자 그대로 사방에서 튀어나와 올리버를 붙잡은 마법사들을 찢어버렸다.
시전 중이던 마법을 역으로 잠식해 반격한 것으로, 전투 경험이 있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허나, 그와 별개로 공격에 당한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실전에서 상대의 마법을 역으로 잠식, 이용하는 건 실력이 몇 수나 앞서야 가능했고, 심지어 이쪽은 잠식을 막기 위한 방어 술식만 십여 명이 펼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식당했다는 건 그만큼 실력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걸 의미했다.
교수와 학생 이상으로.
[그라인드(Grind)]
데지헤가 생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올리버가 흑마법을 발동, 데지헤의 채찍을 갈아버렸다.
마법과 흑마법으로 극한까지 강화한 생체 채찍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갈려 포위를 풀었고, 데지헤는 압도감과 부조리, 분노를 느꼈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노력했건만 이렇다니······.
“캬햐!!”
데지헤는 고함을 지르며 몸 안에 있는 대량의 마력을 분출. 허공에 수십 개의 마법진을 형성했다.
공간 마법과 순수 마력 마법을 접목시킨 군용 포격마법으로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다리를 통해 마력을 땅에 주입, 아래에서 위로 폭발을 일으킬 준비를 했다.
위아래를 동시에 포격하려는 것.
물론, 이걸로 눈앞에 있는 놈을 해치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속임 정도는 가능했고, 놈이 포격에 집중하는 그 틈에 자신의 뼈로 만든 창을 던져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힘과 실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승패가 꼭 그것으로 나는 것은 아니었으니.
단 한 번의 방심과 불의의 일격으로도 뒤집힐 수 있는 게 싸움이었다.
64년의 세월을 산 데지헤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쉐도우 스파이크(Shadow Spike)]
비록, 그 경험은 올리버의 영창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지만 말이다.
대량의 감정을 먹여 비정상적으로 덩치를 키운 그림자 말뚝은 데지헤가 만든 수십 개의 마법진은 물론 땅 밑으로 접근해오던 폭발마법까지 모조리 영격해 파괴하였다.
덕분에 사방으로 솟아난 그림자 말뚝은 거대한 꽃처럼 펴 주인을 보호하는 동시에 상대의 전투 의지를 꺾어버렸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줘서 말이다.
그 증거로 데지헤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시며, 자신의 뼈와 감정으로 만든 투창을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마치, 그때와 같았다.
더 이상 자신은 젊지 않고, 실력 역시 발전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압도적인 무력감과 부조리함이 지금 사람의 형상을 한 채 서 있었다.
그걸 깨닫자마자 데지하는 로큘리 대학을 배신했을 때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망쳤다.
“막아!”
그녀는 신체를 변형, 도망치는 와중 늑대인간과 오거에 명령해 올리버를 공격하게 했다.
1초라도 시간을 끌기 위해. 그 정도만 있어도 이곳을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그녀의 의도대로 고문과 조작계열 흑마법에 지배당하던 늑대인간과 오거는 올리버를 향해 덤벼들었다.
늑대인간은 드루이드 혹은 성기사 이상의 움직임으로 돌진해 올리버가 펼친 그림자 말뚝을 파괴하며 길을 열었고, 오거는 그 열린 길을 따라 돌진해왔다.
민첩하고, 강렬한 늑대인간이 파고들어 틈을 만들면 괴력의 오거가 끝장내려는 속셈.
[네일(Nail)]
올리버는 그런 늑대인간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허공을 톡 쳤고, 언제든 회피할 준비를 하던 늑대인간은 채 인지하기도 전에 온몸에 팔뚝만 한 못이 박혔다.
공중에 퍼진 감정 입자가 근거리에서 결집해 상대의 속도와 반사신경을 무시하고 꿰뚫은 것으로.
늑대인간은 이전의 거친 모습이 무색하게 못이 주는 강렬한 통증에 맥없이 쓰러졌다.
올리버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그림자 말뚝을 만들어 늑대인간의 늑골 아래를 쑤셔 심장을 단숨에 꿰뚫어줬다.
“우어어어어엉!!”
그 사이 덩치에 비해 발이 빠른 오거가 거리를 좁혀 처음 만났을 때처럼 건물 기둥을 치켜들었고,
쾅━!
올리버는 검은손을 내질러 이에 반격했다.
놀랍게도 검은손은 5미터나 되는 오거를 단숨에 건물에 처박았고, 그것도 모자라 처박은 상태에서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단숨에 추출했다.
야렐리가 소리쳤다.
“그보다 데지헤를 쫓아야 해요!”
“예, 알고 있습니다.”
오거의 에너지를 쥐어짜 미라로 만들던 올리버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점처럼 작아진 데지헤 듀란스를 향해 영창했다.
[타겟팅(Targeting)]
[스트렝슨(Strengthen)]
[헤빌리(Heavily)]
[액셀러레이션(Acceleration)]
네 개의 다중 영창.
그때, 야렐리는 볼 수 있었다.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무엇인가를. 그 속도가 너무나도 빨라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으나, 직감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쿼터스태프였다. 피의 말뚝을 파괴하기 위해 제논이 아까 전 던진 쿼터스태프.
놀랍게도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진 쿼터스태프는 지금 다시 떨어지고 있었다. 데지헤 머리 위로.
쾅━━━!!!
저 멀리서 떨어졌음에도 들리는 선명한 굉음. 다량의 흙먼지와 충격파가 반구 형태로 퍼져 여기까지 전해졌다.
야렐리는 그 광경을 말없이 봤고, 올리버는 허리 뒤쪽에 맨 가죽 케이스에서 고이 접힌 빅마우스를 꺼냈다.
“빅마우스.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
“······.”
야렐리는 조용히, 차분히, 차갑게 경악했다.
움푹 파인 거대한 크레이터 가운데 꽂힌 쿼터스태프와 그 쿼터스태프로 몸이 반으로 찢긴 데지헤 듀란스를 보며.
전(前) 생명 연금술 학과의 학장인 그녀는 등을 보이며 도망치다 벌레처럼 죽고 말았다.
너무나도 비참해 오히려 아무런 동점마저 들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녀의 실력은 아무리 못해도 마탑의 원마스터와 맞먹을 터인데······. 허나, 한편으로는 납득가기도 했다.
자기 옆에 선 검은빛 로브를 두른 남자는 존재만으로 모든 일에 설득력을 부여했기에.
그는 방금 늑대인간과 오거, 수십 명의 마법사, 로큘리 대학을 대표하던 마법사를 살해했음에도 너무나 태연히 서 있었다. 너무나 태연히 말이다.
“빅마우스, 다 삼키셨나요?”
올리버의 부름에 사람만큼 큰 먹보주머니가 이쪽으로 뒤뚱뒤뚱 걸어왔다.
거대한 몸체에 비해 팔다리는 상대적으로 짧았기에 움직임이 어딘가 우스꽝스러웠음에도, 야렐리는 이 기괴한 인공 생명체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일단, 생김새가 혐오스러웠고, 또, 저것이 죽은 늑대인간과 토막 친 오거, 수많은 마법사의 시체를 통째로 삼키는 걸 보았기에.
“꾸루룩.”
빅마우스라는 먹보주머니가 두꺼비처럼 울며 대답했다. 올리버는 그 말을 이해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죄송해요. 오랜만에 불렀는데 일만 시켜서요. 도저히 그냥 버리기 아까운 재료라서요.”
재료. 야렐리는 그것이 늑대인간과 오거를 말하는 건지, 아니면 마법사까지 포함하는 건지 궁금했다. 도저히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이것도 삼켜주시겠어요?”
올리버가 로브의 감정 입자를 이용해 두 쪽으로 나뉜 데지헤 듀란스를 가져와 먹보 주머니 앞에 놓았다.
먹보 주머니는 꾸루룩 꾸루룩 투덜대면서도 시키는 대로 데지헤를 집어삼켰다.
상체, 하체 순으로.
처음 보는 이질적인 광경. 야렐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올리버는 품 안에서 지갑을 꺼내 두툼한 지폐 뭉치는 빅마우스에게 건넸다.
꾸루룩 울며 불평하던 빅마우스는 기쁘게 지폐를 받아 한 장씩 한 장씩 음미하듯 정수리에 달린 입에 넣었다.
“······돈은 왜 주는 거죠?”
야렐리가 물었다.
“빅마우스······. 그러니까 먹보 주머니는 돈을 좋아하거든요. 아니면 금붙이나 보석을요. 일만 시키면 미안하니까, 일할 때 지폐를 한두 장씩 줍니다. 보상으로요. 이번에는 부탁드릴 일이 많을 것 같아 미리 더 준거고요.”
야렐리는 인육 요리사로 인해 엉망이 된 도시를 둘러봤다.
“그보다 어떻게 된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왜 밖으로 나오셨는지? 대학 측에서 무슨 결정을 내린 건지요?”
“경찰과 군의 요청을 받아 사람들을 구하러 나왔어요. 이대로 방치하는 건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옳지 못하니까요.”
올리버는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기관은 혜택을 보는 만큼 일정한 기대를 받았고, 거기에 부응해야 했다.
그건 란다 시(市)나 마탑도 마찬가지였고.
“기습을 당해 이 꼴이 났지만요.”
야렐리는 빅마우스가 삼키지 않은 로큘리 대학 측 마법사들과 경찰을 가리켰다. 상대의 기습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말하듯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야렐리는 그런 그들의 시체를 보며 씁쓸함과 책임감을 느꼈고, 올리버는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뭐라 아무 말도 못 했다.
“······친구분은 구하셨나요? 제인 씨요.”
“아, 예. 야렐리 씨 덕분에요. 지금은 안전한 곳에 대피시켰습니다.”
“이렇게 빨리요?”
“예, 로큘리 대학으로 대피시켰거든요,”
야렐리가 고개를 갸웃댔다.
“가능한가요? 거리나, 시간상 안 될 거 같은데?”
“야렐리 씨에게 드린 종이를 로큘리 대학에 몇 장 심어뒀거든요. 그걸로 이동시켰습니다.”
큰일 날 소리를 너무나도 당연히 하는 올리버를 보며 야렐리가 탄성을 냈다. 너무 어이없으니 오히려 담담해졌다. 따질 힘도 나지 않을 정도로.
“······다행이네요. 그나마 로큘리 대학이 도시민을 구조하기로 했으니, 내쫓진 않겠네요.”
“다행이네요.”
“하아······. 그럼, 죄송하지만 저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올리버가 고개를 저었다.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야렐리는 다시 한번 당황했고, 올리버가 뒤늦게 설명했다.
“아, 죄송합니다. 야렐리 씨를 돕기 싫다는 게 아니라 더 급한 일이 있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요.”
“더 급한 일요?”
야렐리는 그게 무엇인지 물었고, 올리버는 바로 설명했다.
인육 요리사가 이런 대규모 소요를 일으킨 이유를.
짧고 간략하게 설명했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듣는 이의 충격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했다. 지옥의 문을 열겠다는 거니. 경우에 따라 라빌리 전체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자 올리버 문득 의문이 들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의문이.
“그런데 성기사님들은 어디 계시죠? 그분들이 가장 필요한 순간 같은데요?”
“대부분 신전과 귀족들 그리고 국왕을 지키러 갔어요. 소수만 이쪽을 지원하러 나왔고요.”
“아······.”
“그보다 어떻게 알게 된 거죠? 인육 요리사의 계획이요. 쉽게 알아낼 정보는 아닌 것 같은데?”
합리적인 의문. 올리버는 어떻게 얼버무릴까 고민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퍼펫 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퍼펫이라면······?”
“예, 검은손의 손가락인 영생의 퍼펫요. 이 도시에 계시고,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해줬고요? 같은 손가락의 계획을요?”
“예.”
올리버는 자연스럽게 대답했고, 야렐리는 드디어 머리가 따라가지 못한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유의 침착한 표정이 무너질 정도로.
“이유가······뭐죠?”
“이유요? ······그건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눈치긴 하셨지만, 저로서는 알 수가 없네요.”
“······그걸 저한테 이렇게 순순히 말해도 되나요?”
야렐리는 진심으로 물었다. 이미, 자신이 올리버를 관찰해 할머니에게 보고한다는 걸 말했는데.
올리버는 어깨를 으쓱 일 뿐이었다.
“도와주셨으니까요······. 제인 아가씨를 도울 수 있게요.”
“······.”
야렐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식과 이해득실을 초월한 너무나도 불가해(不可解)한 태도였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저 혼란스러울 뿐.
야렐리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인간관계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부정당했다.
그런 야렐리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올리버는 계속해 제 할 말을 했다.
“어쨌건 인육 요리사 님의 계획을 빨리 막아야 하니 전 케빈 교수님과 합류하지 않고, 바로 1번 구역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도와드리지 못하는 점 다시 한번 양해 부탁드립니다.”
올리버는 혼자서 손가락을 막으러 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대화하면 할수록 상식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일행과 합류해 가는 게 안전하지 않겠어요? 저한테 줬던 종이를 케빈 교수님과 테렌스 중령님에게도 줬잖아요?”
“그럼 또 설명해야 할 텐데,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 설명은 야렐리 씨께서 대신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보다 설득을 더 잘하시니까요. 전 먼저 가서 시간이라도 끌어보겠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일분일초가 더 급한 상황이었으니. 로큘리 대학 사람들까지 설득하려면 빠른 기동은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야렐리는 더더욱 궁금증이 생겼다.
한시가 급한 이 상황에서. 과거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을 텐데, 마치, 눈앞의 남자에게 잠식된 기분이었다.
“인육 요리사를 혼자 막을 자신이 있나요?”
“아뇨. 전 싸움에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노력할 뿐이죠.”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제 일이니까요.”
올리버가 자신의 신분을 상기하며 말했다. 제논 브라이트. 마탑의 직원.
“또, 이 도시에 있는 사람 중 다치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제인 아가씨나 머피 씨요. 한 분은 친구고, 다른 한 분은 아는 사람이거든요, 루시앙 씨도 도와주셨고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 그리고 케빈 교수님과 테렌스 님, 야렐리 씨도요.”
야렐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의문과 혼란을 품으며 올리버를 볼뿐.
감정을 꿰뚫어 본 올리버는 야렐리가 묻지 않았음에도 대답했다.
“어······. 같은 일을 맡은 동료분이고······, 전 여러분이 좋거든요. 케빈 교수님, 테렌스 님, 야렐리 씨가요.”
“······어째서죠?”
“예쁘시니까요.”
올리버는 그들의 감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뭔가 잘못되었는지 대답을 들은 야렐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동자만큼이나 감정이 요동쳤고, 이윽고 목소리마저 떨며 말했다.
“정말 당신은 정체가 뭐죠?”
“전 그냥 접니다.”
올리버가 이미 찾은 해답을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야렐리는 그 말에서 안정을 찾았다. 기쁨도.
“······거참 대단하네요.”
“칭찬 감사합니다. 야렐리 씨도 대단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전 이만-”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어요.”
움직이려는 올리버를 향해 야렐리가 대뜸 말했다. 뭔가 확고한 결심을 한 듯.
“그게 제 대답이에요······.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어요. 인육 요리사의 말대로요. 전쟁, 노예제도, 식민지, 아동노동 여러 가지 형태로요.”
“····그렇군요.”
“예······. 한때 저희 가문도 잡아먹히는 처지였지요. 이 눈 때문에요. 그래서 여기까지 도망쳤고요.”
야렐리가 안경을 쓴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다행히 여기서 정착하고 성공해 잡아먹는 위치까지 왔지만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받을 일은 아니에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자원은 한정적이고, 사람의 욕심은 무한하니 서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죠. 비극적인 섭리······. 하지만 제논 씨.”
“예.”
“사람은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
“최소한 이 땅에서는 노예제가 사라졌고, 아동노동 역시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거든요······.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지만, 그래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탑의 문제도······.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을 테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확신하시는군요.”
“예. 제가 그렇게 할 거니까요.”
진심.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강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데 일일이 이유를 찾진 않아요. 그것 역시 사람이죠.”
야렐리가 강렬한 의지를 빛냈다. 그건 꽤 예뻤다.
“대답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다린 보람이 있는 대답이었네요······.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지만, 나중으로 미룰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가 1번 구역 방향을 가리켰다. 야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부탁요?”
“예, 다치지 말아 주세요. 지원군을 데리고 갈 때까지요. 부탁드려요.”
왠지 모를 기시감. 올리버가 대답했다.
“최대한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