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16화 (416/633)

416. 폭동 (4)

“오랜만이군.”

움푹 들어간 뺨, 지푸라기 같은 산발의 머리, 덥수룩한 수염, 넝마만 걸친 헐벗은 걸인······. 아니, 퍼펫이 대답했다.

과거, 오염구역 혹은 A구역 공원에서 만났을 때와 다른 모습.

올리버는 허리를 숙여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예, 오랜만에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퍼펫 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올리버가 진심으로 인사했다. 뭔가 부적절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즐거웠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애당초 종말론을 처음 가르쳐 준 것도 그였지 않은가?

“반갑다니 기쁘군. 행동은 아닌 거 같지만.”

퍼펫이 올리버의 미묘한 몸동작과 몸에 저장한 마력의 흐름, 감정의 기운을 읽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어느 정도 정답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퍼펫 님. 반갑다는 건 진심입니다·····. 다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조심한 것 같습니다.”

“무슨 상황이길래?”

퍼펫이 더러운 하수도 바닥에 툭 튀어나온 부분에 엉덩이를 걸치며 물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뚱이였으나, 놀랍게도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위압감을 내뿜었다.

이를 느낀 루시앙의 부하들이 뒤에서 수군대는 게 들렸다.

“저 인간 아주 옛날부터 하수도에 숨어 살던 쥐새끼 영감 아니야?”

“맞아······. 우리한테도 구걸했잖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수군거리는 이야기 소리. 올리버가 질문했다.

“이곳 하수도에 오래 사셨나 보군요?”

“난 어디든 있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오, 뭔가 시적이군요······. 이유가 있으십니까?”

“관찰하기 위해서지.”

중요한 조각을 뺀듯한 퍼펫의 대답.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무엇을 관찰하셨는지 여쭐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탐욕스럽군.”

“예?”

“내가 먼저 질문했고, 대답까지 했는데, 그쪽은 대답하지 않고 질문만 하잖나? 그게 탐욕이지.”

“아, 죄송합니다. 너무 궁금해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도시의 상황이요.”

올리버가 오는 길에 봤던 풍경을 떠올렸다.

“거인이 나타나 도시를 짓밟고, 늑대인간은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그리폰과 하피가 상공을 비행, 심지어 총으로 무장한 좀비와 흑마법에 걸린 사람들까지 다른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검은손의 손가락은 제가 본건만 셋이나 되죠.”

마지막 말에 올리버 뒤에 있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경악했다.

반쯤은 전설과 같은 악당들이 자그마치 셋이나 이 도시에 있다니.

오히려 담담히 말하는 올리버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인육 요리사 님, 영원한 아이 팬 님 그리고 영생의 퍼펫 님 이렇게 셋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경계한 것 같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혹시, 유괴범 피리 부는 사나이도 이 도시에 오셨습니까?”

“언젠가 이 도시에도 방문하겠지만, 오늘은 아니야.”

퍼펫이 고개를 저었다.

올리버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웠다.

피리 부는 사나이도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아냐. 그래도 이게 낫지. 이완 님 말씀에 따르면 뒤끝이 엄청 긴 분이라 했으니.’

올리버가 아쉬운 상황을 스스로 위로하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전 팬 님을 만났습니다. 절 공격하셨지만, 갑자기 생각이 바뀌셨다고 그만두셨습니다. 제 뒤에 있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팬답군. 제멋대로에 즉흥적이지.”

“혹시, 퍼펫 님께서 도와주신 겁니까?”

“글쎄, 그걸 왜 물어보는 거지?”

“도와주신 거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그게 예의니까요.”

올리버의 말을 들은 퍼펫은 클클 웃었다.

“몹시도 즐겁구만. 이 정신 나간 대화가. 아이스크림만 있어도 금상첨화일 거 같은데.”

“다음에 오시면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대화를 듣던 제인, 머피, 루시앙 등은 다시 한번 정신이 아득해지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게 손가락 중 하나인 퍼펫에게 초대장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더 어이가 없는 건 머피나 제인 등 올리버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이런 정신 나간 행동이 왠지 납득된다는 거였다. 왜냐면 올리버였으니까. 뭘 해도 이상하지가 않았다.

“하!”

퍼펫이 소리 내 웃었다.

“내 정체를 알고도 초대한 사람은 오랜만이군·····. 미안하지만, 난 오늘 아무도 돕지 않았고, 도울 생각도 없어. 그냥 구경하러 온 것뿐이거든. 인육 요리사가 일으킬 의식을 보기 위해.”

“그 의식이라는 게 이 아래 흐르는 대량의 감정과 관련된 겁니까?”

올리버가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켰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는지, 퍼펫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호······. 눈치챘나?”

“눈치챘다기보다는 그냥 보여서요.”

올리버가 제인을 돕기 위해 로큘리 대학 밖으로 막 나왔을 때를 떠올렸다.

대학 앞 번화가는 거인의 발걸음에 의해 군데군데 무너지고, 불탔으며, 흑마법에 걸린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이 한데 뒤엉켜 서로 싸우고 있었다.

혼란과 폭력이 사방으로 무분별하게 확산했으며, 그 부산물인 공포, 두려움, 분노, 적대감 등은 온 도시에 흘러넘치게 됐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 도시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놀랍군. 그걸 볼 줄이야. 대단해.”

퍼펫이 감탄했다. 감정 상태로 볼 땐 진심이었지만, 올리버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걸 봤는데 뭐가 대단한 건지.

이에 관해 말하자 퍼펫이 대답했다.

“아니, 보통은 그 정도 규모는 못 보지.”

“그렇·····습니까?”

“그럼, 물속에 있는 물고기가 물을 못 보는 것과 비슷한 이치지. 사람은 일정 규모를 벗어나면 아무리 뻔한 것조차 보지 못해. 이게 감당을 못하거든.”

퍼펫이 자기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겼다.

어쩌면 그럴 수도.

광산 시절 도망치거나, 잔꾀를 부리는 다른 아이들을 고발하면 식사를 더 배급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의도를 단번에 알 수 있는 뻔한 수법이었다.

허나, 당시만 해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눈치챈다 해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재밌어·····. 그럼, 보답은 해야겠지? 아마, 인육 요리사는 지옥의 문을 열 생각일 거야.”

퍼펫이 너무나도 담담한 목소리로 끔찍한 이야기를 했다.

좀처럼 잘 놀라지도 않는 올리버도 놀랄 정도로 말이다.

“지옥의······문이요?”

“그래, 난 그걸 구경하러 왔고.”

“······뭐랄까? 하고 싶은 말이 많긴 하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힘들지. 수백 년간 수많은 생명을 먹어치워 힘을 축적했다 해도 한낱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니. 그래서 편법을 쓰는 거지.”

편법. 올리버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도시 전체에서 쥐어짠 대량의 감정에 공간 마법을 접목하는 겁니까?”

퍼펫의 눈동자가 다시 커졌다.

“·······비슷해. 다만, 거창한 술식이라기보다, 원시적인 의식에 더 가까워.”

“원시적인 의식요?”

“일종의 기우제랄까?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어 문을 여는 거라기보다는, 문을 두들겨 안의 사람이 문을 열게끔 유도하는 것에 더 가깝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올리버는 키워드를 집중해 추측해 보았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는 게 아닌, 문을 두들기는 거라.

“·······악마를 소환해 문을 열겠다는 겁니까?”

“딩딩딩·····. 꽤 잘 아는구만. 악마에 대해 따로 공부라도 해봤나?”

“아뇨, 못했습니다. 기회가 닿지 않아서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란다에서 나름 적잖은 명성과 경력을 세웠음에도 블랙마켓에서 악마의 서적을 구할 수 없었다.

계속해 누군가 물량을 선점하고 있었기에. 그럼에도 올리버가 단번에 맞출 수 있었던 건 느낌 때문이었다.

“느낌?”

“예·····. 그냥 감이 그래서요. 인육 요리사 님께서 공간마법을 잘 사용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럴듯한 추측이구만. 하긴 요상한 부분에서 눈치가 빠르긴 하지.”

“칭찬 감사합니다.”

대답을 들은 퍼펫은 씨익 웃었다. 참으로 많은 뜻이 담긴 웃음이었다.

“그런데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물론 말씀해주셔서 감사하긴 하지만, 인육 요리사 님은 퍼펫 님과 같은 검은손 소속인 데다, 여기 오신 이유는 지옥문이 열리는 걸 보려고 온 것 아닙니까?”

퍼펫이 손가락을 들었다.

“첫 번째 앞서 말했듯이 난 아무도 도울 생각이 없어. 인육 요리사도 마찬가지고. 둘째, 지옥의 문이 열리는 걸 보러 온 건 맞지만, 꼭 그거일 필요는 없어. 더 재밌는 걸 볼 수 있으면 말이야.”

“더 재밌는 거라 하시면?”

“내게 더 도움이 되는 거지. 솔직히 말해 난 지옥이니, 악마니, 종말이니 하는 것 자체에는 그렇게 관심이 없거든. 배울 지식이나, 참고할 게 있나 싶은 정도야.”

진심.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퍼펫 님께선 영혼을 만드는 것과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에 관심을 가지셨지요?”

“뭐, 그게 그거지만. 비슷한 영역에 있는 거라. 하지만 너무 떠벌리지 않으면 좋겠어. 내가 쑥스러움이 많거든.”

퍼펫이 지저분한 산발 아래 날카로운 안광을 번뜩이며 올리버 뒤의 사람들을 봤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퍼펫의 개인적인 영역인 듯했기에.

허나,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왜 영혼과 사람을 되살리는 것에 집착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러고보니 이완 님께서 퍼펫 님이 콤플렉스 덩어리라 하셨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이제 나도 질문할까? 그게 공평하니까.”

상념에 빠진 올리버에게 퍼펫이 말했다.

뜻밖의 발언이었으나, 올리버는 따지지 않았다. 퍼펫의 말이 이치에 맞았기에.

질문을 대답을 들었다면, 반대로 대답해줘야 했다. 그래야 공평한 것일 테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거라면요.”

“아마 할 수 있는 걸 거야. 지금 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부 다 알게 됐는데, 인육 요리사를 막으러 갈 건가?”

“예. 임무니까요.”

올리버가 마탑 일로 이곳에 온 걸 상기하며 대답했다. 나름 진지했으나, 듣는 사람들은 정반대의 감정을 느꼈다.

무리도 아니었다.

갈로스 수도에 일어난 대규모 소요와 이를 이용하려는 인육 요리사의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위험천만한 계획을 듣고, 막겠다는 이유가 임무 때문이라니.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크게 어긋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건 제인, 머피, 루시앙뿐 아니라, 검은손의 손가락인 퍼펫도 똑같이 느끼는 바였다. 기괴한 이질감.

“흥미롭군. 임무만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게 특히 인상적이야.”

“아····. 그건 오해입니다.”

“아니라는 건가?”

퍼펫이 다시 물었고, 올리버는 잠시 머뭇거렸다. 딱 잘라 뭐라 말하기 어려운 문제였기에.

솔직히 말해 좀 복잡하긴 했다.

인육 요리사가 만든 지옥의 문을 개인적으로 한번 보고 싶긴 하였기에. 어쩌면 올리버가 쌓지 못한 악마에 대한 지식을 얻을 기회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허나, 또 한편으로는 막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인육 요리사가 자신의 주변 사람을 이용해 협박한 게 마음에 걸렸고, 두 번째는 그러는 게 맞는 것 같아서.

아무리 그래도 도시 전체에 대규모 혼란을 일으키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대단하군····. 좀 그렇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육 요리사를 막으려 하다니. 내가 본 이유 중 가장 용감해.”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좀 그렇지 않았다면 내버려 둬도 무방하다는 거니까.”

“아·····. 그게 그렇게 되나요?”

자신의 선택을 해석한 퍼펫의 말에 올리버가 반응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좀 그렇다는 감정이 없으면 자신이 어찌 반응했을지.

그러니까, 인육 요리사가 이러는데 무엇인가 납득되는 이유가 있다면 어찌 반응했을지 올리버도 의문이었다.

“오해는 하지 말고. 그게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니니까. 꼭 사명감이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지.”

“저도 동감입니다.”

퍼펫의 말에 제인이 멋대로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개입에 고개를 돌리자, 올리버는 시스터후드에서 갈고닦은 예의와 침착함, 본인의 용기와 의지로 꽁꽁 무장한 제인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두려움을 삼킨 채 퍼펫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멋대로 끼어들어 죄송합니다. 퍼펫 님······. 란다에서 소소하게 투자로 먹고사는 제인이라 합니다.”

“글쎄·····. 셀랜드에서 손꼽히는 거부의 후원을 받고, 바다 건너 남의 나라에서 땅 투기를 하려는 아가씨 치곤 겸손하시군. 아니, 겸손하다기보다는 조심스러운 건가?”

“둘 다라고 생각합니다. 조심스러워야, 겸손할 수 있으니까요.”

“말재주가 제법이군·····.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저 퍼펫 님의 말씀에 동의하고 싶어 끼어든 것뿐입니다. 사람을 구하는데 꼭 사명감이나,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죠·····. 왜냐면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거든요. 그냥 하는 거죠.”

제인은 속에서 들끓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내속해 삼키며 담담히 말했다.

그러한 모습을 위해 얼마나 큰 용기와 인내심을 내는지 올리버의 눈에 보였다. 참으로 대단하고 고마웠다.

왜 고마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보통 사람이라·····. 틀린 말은 아니군.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둬서 부럽구만.”

“저도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퍼펫은 다시 클클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일을 다 봐 떠나려는 것. 올리버는 그를 불러 세웠다.

“뭐지?”

“여쭤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난 더 이상 궁금한 게 없는데?”

이유를 알 수 없으나 퍼펫은 거짓말을 했다. 그렇다고 따질 수는 없었다. 질문에 대답하는 건 자기 의지였으니까.

그래서 올리버는 제안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제가 퍼펫 님 질문에 대답해드리겠습니다. 퍼펫 님이 궁금한 게 또 생길지는 모르겠지만요.”

“·····뭐가 궁금하지?”

“혹시, 인육 요리사 님에 대해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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