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폭동 (3)
“가보세요, 제논 씨.”
야렐리가 말했다. 제인을 도와주러 가보라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으나, 그녀는 진심이었다.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뭐라고요?”
“제인 씨 도와주러 가보라고요······. 친구분이시잖아요?”
야렐리는 평소 과할 정도로 평화적인 모습의 올리버와 밀리유의 첫 만남에서 보인 올리버의 태도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녀가 보기엔 두 모습 전부 가식이 아닌 진짜였다. 그렇다면 올리버를 보내는 편이 더 나았다.
“이대로 있어 봤자 신경 쓰이기만 하실 거잖아요? 그럴 바에는 직접 가보세요. 외부 인사 한 명 빠진다고 크게 문제없을 테니까요.”
야렐리는 그리 말하며 케빈을 바라보곤 허락을 구했다.
올리버 역시 케빈을 봤는데, 두 사람과 눈이 동시에 마주친 그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 당장 네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임무와 친구 두 가지 일에서 잠시 고민하던 올리버는 그 말에 혼란이 사라졌다.
솔직히 제인처럼 강인한 사람이면 올리버가 직접 안 가도 문제없을 듯했지만, 그와 별개로 찝찝한 것도 사실.
올리버는 먼저 도와준 야렐리와 이를 허락해준 케빈. 그리고 묵묵히 상황을 지켜봐 준 테렌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인사를 받은 테렌스가 말했다.
“가만히 있고 인사받기는 처음이지만, 기분 좋기는 하네.”
“진심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이거 한 장씩 받아주시겠습니까?”
올리버는 포털 마법을 박은 종이를 세 장 꺼내 제각기 케빈과 테렌스, 야렐리에게 건넸다.
모두 뛰어난 마법사들답게 올리버가 준 종이를 받자마자 무슨 마법이 깃들었는지 파악했다.
“포털 마법? ······스크롤이야? 이상한데? 처음 보는 형태인데?”
직업 특성상 스크롤, 마법 아이템에 조예가 깊은 테렌가 눈치 빠르게 질문했다.
“비슷하긴 합니다······. 어쨌건 최대한 빨리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
올리버는 그리 말을 남기곤 테렌스에게서 루시앙의 통신장치를 받은 뒤 바로 대학 밖으로 나갔다.
대학 내 각 건물은 이미 반구형의 마력 장벽이 쳐져 있어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게 힘들었지만,
올리버는 아까 전 야렐리와 함께 이동했을 때처럼 반구형 마력 장벽에 손을 대 흐르는 마력 술식을 파악, 몸 내부에 저장한 마력을 흘려보내는 식으로 술식에 간섭해 작은 쥐구멍을 만들어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올리버가 지나자마자 반구형 마력 장벽의 쥐구멍은 올리버의 의도대로 바로 메꿔졌다.
올리버는 마력 장벽을 빠져나오자마자 품 안에서 시험관을 꺼내 감정을 추출. 실 형태로 1차 가공, 천 형태로 2차 가공해 몸에 두른 뒤, 철근 형태의 블랙 아머를 그 위에 덧씌웠다. 올리버의 근육 구조에 맞춰.
그렇게 준비를 마친 올리버는 무릎을 살짝 굽힌 다음 그대로 점프했다.
팡━!!
고밀도의 감정 갑옷은 극도의 압축과 고도화된 술식을 통해 사용하는 힘 대비 최대 위력을 발휘.
올리버는 서 있던 지면을 움푹 내려 앉히며, 울타리 너머 대학 밖으로 눈 깜짝할 새 이동했다.
쾅!
단 한 번의 점프로 대학 안에서 대학 밖으로 나온 올리버는 3층짜리 주점 건물 벽면에 착지했다.
강력한 점프력 때문에 건물 외벽에는 금이 갔지만, 다행히 크게 문제는 없을 듯했다.
건물 외벽에 금이 간 게 무색할 정도로 현재 대학 바깥. 정확히는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기에.
올리버가 발을 디디고 있는 3층 주점을 포함해, 대학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있던 번화가는 거인의 발걸음으로 인해 군데군데 무너졌고, 무너지지 않은 건물은 불에 타거나, 혹은 여러 사람이 쌈박질을 벌이는 싸움판으로 변해 있었다.
“끄으으······. 왜 이러는 거야?”
“죽어! 죽어!”
올리버는 무너진 지붕 너머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봤다.
그중 몇몇은 흑마법으로 광분 상태에 빠져 짐승처럼 주변 사람을 무분별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흑마법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와 싸웠고, 그렇게 폭력은 사방으로 확산됐다.
그로 인한 혼란, 공포, 두려움, 분노, 적대감 등. 온갖 격정적인 감정은 도시 전체에 들끓어 아래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
소요(騷擾)로 인해 극한까지 뿜어져 나오는 감정과 그 감정이 도달하는 곳을 살펴본 올리버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자신이 대학 밖으로 나온 이유를 상기했다.
신경 쓰이는 것이 여럿 있었지만, 지금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제인과 머피, 여태까지 협력해준 루시앙 뮈라를 도와주는 것.
올리버는 뮈라 패밀리가 있는 10번 구역을 향해 방향을 틀어 아까 전처럼 무릎을 살짝 굽인 채, 디디고 있는 건물을 발로 찼다.
팡━!! 시원하게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며 올리버는 불타고 있는 건물 지붕을 무너트리며 단숨에 도약했다.
***
“아······. 저게 그 괴물이구나.”
블랙 슈트를 이용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도약. 최단 거리로 10번 구역 딕스 성 근방에 도착한 올리버가 홀로 중얼거렸다.
이미 여기까지 오는 동안 늑대 인간, 10미터가 안 되는 거인, 그리폰, 돼지 혹은 닭 머리 인간, 총으로 무장한 좀비 등. 온갖 것들을 봐왔지만, 성 주변의 저것들은 그 궤를 달리했다.
새의 몸뚱이에 여성의 얼굴, 벌레의 날개를 가진 괴조(怪鳥), 남성의 몸에 병아리 머리를 한 병정,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 등.
도시에서 난리를 일으키고 있는 괴물들보다 더 괴악한 생김새를 했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 외형보다 저 괴물들에게서 느껴지는 악의와 크리처라는 사실이 더 신경 쓰였다.
흑마법 창조계열로 만든 인공 생명체말이다.
올리버의 차일드와 같은 종류였는데, 다만, 어딘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걸 수도······.’
올리버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창조계열 흑마법은 흑마법 계열 중 가장 어렵고, 익히기 난해한 학문이었으니.
올리버가 읽은 흑마법 서적 중 그 수가 가장 적은 게 그 증거였다.
올리버가 해당 서적을 보고 확실히 배운 것이라곤 창조계열 흑마법은 단순 실력뿐 아니라, 창의력과 상상력, 진심, 개인의 적성 등. 구체적으로 콕 짚어 말할 수 없는 난해한 재능 혹은 적성이 필요하다는 것뿐이었다.
‘뭔지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려웠지······. 그런데, 인육 요리사 님 쪽이 창조계열 특기였나?’
올리버는 고성 주변을 날아다니며 사람의 살로 잔치를 벌이는 괴물들을 보며 의문을 품었다.
올리버가 알기로 인육 요리사의 특기는 섭식(攝食)을 통한 힘의 축적과 질병 계열을 통한 육체 강화였는데.
‘어쩌면 창조계열이 특기인 흑마법사가 있을 수도.’
올리버는 과거 상대했던 인육 요리사의 부하 중 조작계열이 특기였던 흑마법사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핑크맨과 같이 일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흑마법사.
그는 자신의 방대한 생명력과 감정을 이용해 단숨에 좀비 부대를 만들어 압박을 가했다.
‘그것도 당장 중요한 건 아니지.’
우선순위 정리를 마친 올리버는 주변의 광경에 더 이상 눈을 빼앗기지 않고,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올리버는 곧장 건물 아래로 내려가 난리로 인해 텅 빈 보도 위에 한쪽 무릎을 꿇고는 손을 땅에 대며 몸에 저장한 마력을 주입, 지면의 성질을 바꿔 그 아래로 내려갔다.
블랙 슈트를 두른 올리버는 마치 늪에 잠기듯 땅 아래로 쑥 빠져, 그 아래 하수도에 도착했다.
[라이트(Light)]
올리버는 내려가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에 저장한 마력을 한데 뭉쳐 빛을 밝혔다.
단, 주변을 밝힌 이유는 그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가령, 어둠 속에서 올리버는 노리는 상대 때문이라든가.
촤앙━━!!
광원(光源)이 만들어지자마자 어둠이 걷히며 올리버는 자신을 향해 단검을 내지르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자? ······조작계열 흑마법? 아니. 크리처다.’
올리버가 단검을 내지른 그림자를 관찰하며 생각했다.
처음 빛이 밝혔을 때만 해도 통로를 가득 채울 듯 커졌던 그림자는 빛으로 인해 그 모습이 작아졌으며, 덕분에 올리버는 비교적 간단히 그림자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안심해선 안 됐다.
“힉히히히히히히힣!!”
올리버가 단검을 쳐내자마자 하수도 천장에서 광대 분장을 한 남자가 내려와 장난감처럼 생긴 대낫을 휘둘렀다.
얼핏 보며 정말 사람 같았으나, 올리버는 이 광대 역시 크리처임을 알 수 있었다.
꽤 놀라웠다. 사람과 이토록 비슷한 크리처라니.
“호오옷! 호오오호호호홓!!”
아래로 내려온 광대 크리처는 방정맞게 상체를 좌우로 흔들며 빈틈을 노리다 장난감 대낫을 붕 휘둘렀다.
장난감처럼 생긴 조잡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낫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벽에 깊은 자상을 남기고, 철관을 절단낼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대신 휘두르는 솜씨 자체는 조잡해 케빈, 테렌스, 야렐리의 근접 훈련을 받은 올리버는 별 어려움 없이 피하고 반격을 할 수 있었다.
물컹.
올리버가 장난감 낫을 피해 쿼터스태프를 내지르자 뚱뚱한 광대의 가슴살이 움푹 들어가며 맥 빠지는 소리를 냈다.
광대 크리처가 웃었다.
“욧호호호호홋호호!!”
[그라인드(Grind)]
올리버가 영창하자 귀를 아리게 하는 소리와 괴악한 웃음소리가 하수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꾜효호호호호호! 앗하하하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바닥을 뒹구는 광대 크리처는 아픈 듯이 발버둥 쳤음에도, 얼굴은 계속해 웃고 있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괴악한 모습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댈 때, 그림자는 빛이 마저 밝히지 못한 어둠을 삼켜 단검의 크기를 키우고, 팔을 길게 늘여 광대 크리처를 푹 찔러 삼켰다.
꿀꺽!
신문에 실리는 만화처럼 현실감이 없는 모습. 올리버는 말없이 그 모습을 관찰했다.
어떤 원리로 저런 것이 가능한지 살피듯.
크리처를 다 소화 시킨 그림자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하수도 가운데 고인 물에서 악어가 나타났다.
진짜 악어와 미묘하게 다른, 눈이 크고 주둥이는 사람의 입과 비슷하게 생긴 악어가.
흥미롭게도 악어가 아가리를 열자 그 안에 앵무새가 있었다.
[네가! 데이브야?]
앵무새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사람과 짐승 그 사이에 있는 듯한 목소리는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거슬리는 소리를 냈지만, 올리버는 예를 갖춰 대답했다.
“지금은 제논입니다. 마탑의 직원이죠. 성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나는! 팬이야!]
팬. 올리버는 그 팬이라는 게 영원한 아이 팬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팬 님. 혹시, 괜찮으시면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들었던 대로네! 뭔데?!]
“혹시, 저 위에 있는 성을 습격한 게 팬 님입니까?”
[어!]
“이유가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널 불러내려고!]
예상치 못한 대답. 팬이 계속해 말했다.
[인육 요리사! 그 늙은이가 약속했거든! 자길 도와주면 널 잡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절요?”
[그래! 다만 생각이 바뀌었어! 그 늙은이 뜻대로! 움직여 주기 싫어졌거든!]
갑자기 습격하더니, 또 생각이 바뀌었다라······. 종잡을 수 없는 말에 올리버는 이게 뭔 소린가 싶었다. 그냥 하는 말 같지는 않았는데.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 흑마법사의 시야를 떴다.
올리버를 중심으로 사방이 어둠에 물들며 일반적인 시야는 사라져갔고, 저 멀리 있는 제인과 머피의 감정 그리고 크리처들의 본질이 보였다.
크리처들의 본질은······. 꽤 흥미로웠다.
“······혹시 생각이 바뀌셨다면 이대로 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겠습니까?”
[구하러 온 사람! 걱정되나 봐!?]
팬이 칼로 푹 찌르듯 핵심을 바로 물었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걱정돼!?]
“예”
[이유가! 뭔데!?]
“음······. 절 도와주신 분과 아는 분. 그리고 친구라서요.”
[친구!?]
“예, 친구.”
그 대답을 들은 앵무새가 어째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
팬과 대화를 마친 올리버는 곧장 흑마법사의 눈으로 봤던 방향을 향해 뛰어갔다.
다행히 팬은 정말 인육 요리사를 도와줄 생각이 없는지 올리버를 순순히 보내줬고, 덕분에 올리버는 얼마 가지 않아 딕스 성 비밀통로를 통해 하수도로 빠져나온 뮈라 패밀리와 킴벨 패밀리 그리고 제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 모두 올리버를 보자마자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특히, 제인이 가장 놀랐다.
“데- 아니, 제논······. 여기 어떻게?”
제인은 올리버가 올 줄 몰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허나, 눈치가 빨랐기에 곧바로 상황을 파악. 루시앙을 봤다.
그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곤 올리버에게 말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논 씨.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괴물에게 습격당하셨다고요?”
올리버가 팬의 크리처들을 떠올리며 물었다.
“예, 갑자기 제 성을 습격해 왔지요. 어찌나 강한지, 저희 병력이 속절없이 무너졌고, 곧바로 이곳으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여기마저도 맥없이 포위당했지만요.”
“다행히 무사하신 것 같군요.”
그때, 머피가 끼어들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저희를 포위해 끝장낼 수 있었음에도 갑자기 멈추더니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방금까지 죽일 듯이 공격한 주제에요.”
올리버가 아까 전 대화를 나눈 팬을 떠올렸다. 의문이 들었다. 정말 인육 요리사를 갑자기 돕기 싫어진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허나, 혼자 고민하는 것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쨌건 이제 괴물이 다시 나타나도 안전하겠군요. 제논 씨께서 와주셨으니까요.”
올리버를 믿는 듯 루시앙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믿어줘서 고맙긴 했지만, 올리버는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군요.”
“예?”
올리버가 그리 말하면 하수도 한쪽 통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퍼펫 님.”
퍼펫. 그 단어에 모두 얼어붙었으며 잠시 후, 어둠 속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넝마만 걸친 헐벗은 걸인이 말이다.
“오랜만이군.”
걸인. 아니, 퍼펫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