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 폭동 (2)
“거, 거인이다!”
대학 정문을 지키던 수위가 소리쳤다.
마법 기관의 수위답게 그 역시 대학 평균에 못 미칠 뿐 적잖은 마력을 가진 마법사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당황한 것인지 바로 대응하지 못하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하긴, 거인이 나타났으니 당연한 걸지도.
쿵!
15에서 20미터의 거인이 회색 연기를 뚫고 발을 내디뎠다.
상대적으로 움직임이 둔했지만, 거대한 덩치가 이를 커버.
그는 단 두 걸음 만에 화려한 로큘리 대학 울타리를 넘었을 뿐 아니라 도망치던 수위를 밟아 터트려버렸다.
수위는 다급히 마력 실드를 전개해 저항하려 했지만, 압도적인 질량을 이기지 못하고 실드와 같이 뭉개졌다. 토마토처럼.
“이런.”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전부 살펴보던 올리버가 중얼거렸다.
그런 와중에 거인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학 내부로 진입, 들어오려 했다.
이대로 침입자를 허용 하나 싶은 순간. 근방에 있던 마법사들이 이에 대응, 마력을 끌어모아 하나로 합쳐 즉석에서 술식을 전개했다.
핑━
다수의 의지가 깃든 대량의 마력은 실처럼 한데 엮여 거인의 얼굴 앞으로 이동. 푸른 마력광을 번뜩였다.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올리버는 저 실이 얼마나 복잡한 술식으로 이뤄진 건지 볼 수 있었다.
곧 이를 증명하듯 고밀도의 마력실은 거미줄 같은 넓게 퍼져 허공에 복잡한 마법진을 수놓았고, 이를 포대 삼아 강렬한 마력 광선을 쏴 거인의 얼굴을 가격했다.
쾅━━━!!
순수마력 마법으로, 공격 자체는 심플했지만, 속도와 위력은 인상적이었다.
단 1, 2초 만에 전개해 공격까지 이뤘으니.
하지만 그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거인의 내구도였다.
사용된 마법의 위력을 봤을 때 분명 군용 포격 마법일 터인데, 거인은 그을리고,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얼굴의 형체를 유지한 채 견뎌냈다.
그렇다 할 방어를 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직격으로 맞았음에도.
덩치만큼이나, 신체 능력 역시 뛰어나다는 증거.
거인은 그런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양팔을 들어 올려 바닥을 내리치려고 했다. 팔에 생명력을 집중하며.
그때였다.
로큘리 대학의 마법사들은 그 명성에 걸맞게 다시 마력을 끌어모아 두 번째 포격 마법을 쏴 거인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아까 전과 같은 방식의 공격이었지만, 포격의 범위를 좁혀 힘을 집중. 파괴력을 극대화하였는데, 그러한 노력에 보답하듯 거인의 머리는 날아갔고, 몸뚱이는 땅 위로 쓰러졌다.
거대한 육신은 땅 위로 쓰러지는 것만으로도 굉음과 흙먼지를 일으켰으며, 그뿐 아니라 육체가 붕괴하며 진흙처럼 무너졌다.
인육 요리사의 부하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특성.
거인을 물리치자마자 산발적인 환호성이 대학 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허나, 아직 안심하기 일렀다.
왜냐면 아직 바깥은 아비규환이었기에.
도시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처음 보는 생물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대학 측도 이를 확인했는지, 곧 지시를 받은 듯한 수많은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대학 내 곳곳에 대규모 방어막을 전개했다.
대학 내 있는 구조물을 매개 삼아 푸른빛 마력이 결집, 반구 형태로 건물 곳곳을 감쌌다.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 지켜보던 올리버가 입을 열어 질문했다.
“거인이라는 게 실존하는 거였습니까?”
“최소한 여기서는 아니죠.”
***
띠리릭. 띠리릭. 띠리릭.
올리버가 야렐리와 같이 케빈과 테렌스가 있는 대학 본관에 들어서자 수많은 통신장치 신호음이 반겨줬다.
왕의 후원으로 세워진 중앙집권적 대학의 정보 처리 장소로, 학교에 고용된 수많은 직원은 통신장치를 분주히 받으며 해당 내용을 타자기로 옮겨 적었다.
뭐, 창문 밖을 통해 보이는 도시의 혼란을 보면 무슨 용건일지 대충 예상은 갔지만 말이다.
“오, 왔구만.”
테렌스가 분주한 복도에서 올리버와 야렐리를 발견하자 반갑게 말했다.
그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지금의 상황에 적잖게 당황한 기색을 품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도시가 갑자기 전쟁터가 됐으니.
흑마법사의 눈으로 감정을 볼 수 있는 올리버에겐 특히 그랬다.
마치, 혼란과 공포, 분노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거대한 솥에 넣고 끊이는 것 같았다.
아직은 초기라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야렐리는 테렌스에게 말을 걸었다.
“빨리 만나 다행이네요. 케빈 교수님은요?”
“난 여기 있어.”
수많은 사람이 뛰어다니는 복도 한쪽에서 케빈이 주름진 정장을 정돈하며 나타났다.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 차분한 겉모습과 달리 내면은 피로와 당황이 빛났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야렐리는 바로 본론부터 들어갔다.
“혹시, 방금 보셨나요?”
“거인?”
척하면 척. 케빈이 바로 정답을 이야기했다.
“예······. 마법으로 만든 어쭙잖은 키메라나, 흑마법으로 만든 크리처는 아닌 것 같던데요?”
올리버도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을 본 게 애당초 이번이 처음이긴 했지만, 그건 키메라도, 크리처도 아니었다.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진짜 거인이었다. 문제는 진짜 거인은 이 세상에 없다는 거였고.
“거기에 관해 여기 교수들과 이야기 나눴어······. 아무래도 공간 마법을 통해 소환한 것 같아.”
소환마법. 포털 마법과 함께 공간 학파에 속한 세부 마법 중 하나였다.
원소 학파 아래에 있는 번개, 화염, 얼음, 대지, 공기 마법과 같은.
당연히 공간 학파 마법처럼 그 수준이 높고 역사가 짧아,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게 더 많은 마법이었다.
“그게 말이 되나? 소환마법이란 게 그리 쉬운 게 아닐 텐데?”
테렌스가 의문을 빛내며 물었다. 그 말은 정답이었다.
소환마법은 정말 쉽지 않은 마법이었다.
소환마법은 발동 자체가 어렵고, 요구하는 마력 역시 엄청난 데다, 그 유지 비용도 상당히 요구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까다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정령술 마저 소환마법 앞에선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정령술은 술사의 적성을 더 요구하긴 했지만, 최소한 성공한다면 그만한 비용에 합당한 효용을 얻을 수 있었으나, 소환마법은 그마저도 확실치 않았다.
소환에 성공한다 해도 그 결과물이 좋으리란 보장이 없었고, 설사 강력한 생명체를 소환한다 해도 거기에 걸맞은 마력을 비례해 사용해야 했다.
거기에 지시를 따르게 하는 계약이나 강제력 부여에도 엄청난 노력을 요구했고.
한마디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마법이었다.
“그렇기에 공간 마법 중 소환마법이 가장 연구가 더딘 거고.”
“하지만 그건 분명 거인이었습니다. 교수님.”
“혹시, 섭식(攝食)한 건 아닐까요?”
올리버가 생명력을 팔에 집중시키고, 진흙처럼 붕괴한 거인을 떠올리며 의문을 제시했다.
“섭식(攝食)?”
“예. 쓰러진 거인의 육체가 인육 요리사의 부하들처럼 뭉개져서요······. 소환만 한 뒤 살해해 먹어 치우면, 들어가는 자원과 노력을 최대로 아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거, 놀랍고도 끔찍한 발상인데?”
옆에서 듣고 있던 테렌스가 말했다. 그 말은 즉 인육 요리사가 거인을 소환해 죽이고 잡아먹었다는 것이니.
거인을 소환하는 것도 엄청난 실력과 자원을 요구하는데, 살해하고, 먹어치우다니. 하나하나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야. 그런 게 가능하다니······.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멸종한 늑대인간이라든가, 각종 괴물도 설명되지. 언제부터 저런 능력을 가진 건지는 의문이지만······. 소환마법은 마탑도 아직 그 정도 수준에 다다르지 못했는데.”
“그보다 대학 측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정했나요? 지금 한 말이 전부 사실이면 인육 요리사가 이 난리를 일으켰다는 거잖아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야렐리가 더 급한 주제를 꺼냈다.
그녀의 말은 정답이었다. 더 급한 건 눈앞의 상황이었으니.
올리버의 추측까지 합쳐지면, 이 도시를 전쟁터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인육 요리사였다.
검은손의 네 손가락 중 하나인 인육 요리사.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였냐는 거지.”
방금까지 회의에 참석한 케빈이 말했고, 그 말은 정확히 맥을 찔렀다.
만약, 거듭 압박을 해오는 로큘리 대학을 방해하기 위해서라면 그냥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을 터인데, 이런 짓을 벌이다니.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힘으로 류큘리 대학을 분쇄한다기에는 상황이 적절하지 않았고, 또, 이곳으로 공격을 집중하는 게 아닌 무질서하게 폭동을 일으킬 뿐이었다.
목적이 없는 혼란을 퍼트리듯.
“그 탓에 도시 외곽에서 대기 중이던 군부대와 인근 경찰서에서 계속해 지원을 요청하고 있어,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하더군.”
“유례없는 폭동이긴 하지만 그 정도야? 정말 막장이네. 도시 방어 시스템 같은 건 없대?”
도시 방어 시스템.
혼자서 군부대와 같은 힘을 내는 초인이 넘치는 세상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
도시의 중요 구역에 마법진을 설치, 여차할 경우 정밀 포격 마법을 날려 견제하는 것으로, 마탑 도서관에서 한번 읽은 기억이 있었다.
애당초 그런 사태가 잘 일어나지 않아 사용되는 경우가 드물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상당한 억제력이 있다고 하였다.
“아마, 해체됐을 거예요.”
야렐리가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듯 말했다.
“제가 알기로 시민 혁명 때 시위대 제압에 사용해 막대한 피해를 줬고, 혁명 성공 후 해체시킨 것으로 알고 있거든요.”
“돌겠네.”
테렌스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종군 마법사였으니.
“그건 진짜 좀 많이 바보 같네. 고작 그런 이유로 도시 방어 시스템을 거세시키다니. 인육 요리사가 여길 터로 잡은 이유를 알겠구만.”
그 순간 올리버는 뭔가 테렌스의 말에 동감했다.
그냥 우연 같지 않았다. 단순히 올리버의 지레짐작일 수 있었지만.
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 찰나 통신장치 신호음이 들렸다.
아까 전부터 들리던 신호음이 아닌, 결이 다르면서도 귀에 익은 신호음.
루시앙에게서 받은 개인 통신장치였다.
인육 요리사에 대한 정보를 유기적으로 받기 위한 통신장치.
통신장치 관리를 책임지던 테렌스는 능숙하게 받았다. 연락한 이유는 대충 예상이 갔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난리가 났으면, 밀리유라고 안전하지 않을 테니······. 아니, 어쩌면 더 위험할지도.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뮈라 패밀리는 이쪽에 협력해 그동안 야금야금 모은 정보를 이쪽으로 넘겨줘 인육 요리사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는 데 일조했으니.
‘이제는 크게 의미가 있나 싶지만.’
올리버가 창문을 통해 화재가 곳곳에 발생하는 바깥 상황을 살피며 생각했다.
로큘리 대학과 올리버가 입힌 피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인육 요리사는 스스로 자신의 터전을 불태우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
여하튼, 올리버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루시앙이 연락을 한 것은 다름 아닌 구원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단, 예상하지 못한 게 두 개 있었다.
하나는 폭도나 거인, 늑대인간, 하피가 아닌 말로 형용하기 힘든 끔찍한 괴물들의 조직적 습격을 받고 있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만 구해달라는 게 아니었다.
머피와 제인도 같이 구해달라는 거였다.
“머피 씨와······. 제인 아가씨요?”
테렌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대답해줬다.
“그래. 도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때 보호를 위해 자기들 성에 불렀다는데, 지금 상황이 꼬여 괴물들에게 같이 쫓기고 있단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 허나, 가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머피와 제인 모두 이곳에 사업을 하러 왔고, 루시앙과 거래하러 왔으니.
올리버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려는 그때, 야렐리가 입을 열었다.
“가보세요, 제논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