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13화 (413/633)

413. 폭동 (1)

“······천사의 아들과 싸웠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어서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야렐리가 혼란스러워하며 물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로큘리 대학을 도와주는 임무 외에도 마탑의 이권, 스카디 소학파의 입지, 올리버를 감시 관찰하는 등. 한 번에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으니.

그런 와중에 인육 요리사와 때아닌 대화까지. 혼란스러운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

올리버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음······.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서요.”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고요?”

“예.”

올리버가 멀린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만약, 대답해야 한다 해도 그건 멀린의 허락을 구한 후가 마땅할 터였다.

“다만, 저도 궁금한 게 있으니, 야렐리 씨께서 제 질문에 대답해주시면 간략하게 대답해 드릴 순 있을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 야렐리는 인육 요리사와 대화를 나눴을 때보다 의심을 빛냈다.

그녀는 고심 끝에 질문했다.

“뭐가 궁금하죠?”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인육 요리사 님의 말씀. 야렐리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걸 왜 묻는 거죠?”

“그냥 궁금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요.”

***

“뭐 하는 짓이지?”

라빌리 중앙 1번 구역에 세워진 거대한 기계탑에서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갈로스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세워진 탑은 분명 정비 중이라 아무도 들어올 수 없을 터인데······. 거기에 어린애 목소리라니.

허나, 그 목소리에 인육 요리사가 반응했다.

“뭐가 불만인데?”

지금 그의 뒤에는 작은 그림자가 달라붙어 단검을 목에 들이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육 요리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왜냐면-

-촤악!

이 정도 그림자로는 자신의 육신에 어떠한 상처도 남기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그를 증명하듯 인육 요리사는 비늘이 돋은 목을 간지럽다는 듯이 긁적이고는, 반대 손으로 프렌치 나이프를 뽑아 그림자를 베어냈다.

슥 하고 두 동강 난 그림자.

허나, 그림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하나로 합쳐졌고, 단검을 인육 요리사에게 겨눈 채 자신의 주인 영원한 아이 팬 옆으로 갔다.

“뭔 개수작이야?”

팬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아이 특유의 신경질이 담겨 있었다.

“분명, 네 일을 도와주면 천사의 아들과 싸운 그놈은 내게 넘겨준다고 한 것 같은데······.”

“그랬지. 아카이브의 눈을 피해······. 아, 설마 떠나라고 말한 것 때문이야?”

팬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그건 그냥 혼란을 주려고 한 말이야. 적이 떠나라고 해서 정말 떠나는 머저리들이 어딨어?”

인육 요리사가 몹시도 당당히, 또 뻔뻔히 말했다. 허나, 한편으론 진심이기도 했다.

란다에 대놓고 폭탄 테러까지 가한 지금 자신이 떠나라고 해서 떠날 수 없었다. 이 전쟁은 마법사들의 전쟁 그 이상으로 발전했으니.

만약, 떠난다면 마탑은 앞으로의 위신과 입지를 잃을 뿐 아니라 도와준 란다 시(市)의 추궁까지 피할 수 없을 터였다.

한마디로 코가 꿰이는 것.

그렇기에 떠나라고 한 것이었다. 떠날 수 없을 테니, 그냥 혼란스러워지라고.

물론 그 뜻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테지만······. 어느 정도 진심도 섞여 있었기에.

그것이 같은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묘리였다.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그 잘난 눈도 별 소용없게 만드는 것.

매우 간단하면서도 생각보다 까다로운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애새끼처럼 오해하지 말라고. 만약에 딴 수작 부릴 생각이었으면, 아까 전 지하실에서 진즉에 했을 거니까······. 우린 놈에게 관심 없어. 지금은 식사에 더 관심 있지.”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는지, 팬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림자에 명령해 자신의 발아래로 되돌아오라 했다.

“좋아. 그럼, 믿어줄게.”

“오, 생각보다 순순히 믿어주네?”

인육 요리사가 비아냥거렸다. 팬의 그 고약한 성격상 그냥 넘길 줄은 몰랐기에.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상은 빗나간 게 아니었다.

“순순히는 아니야.”

“뭐?”

딱-

팬이 대답 대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정비를 위해 최소한의 전력을 놔두고 폐쇄된 탑 구석구석 어둠에서 괴물들이 하나 둘 나타나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팬의 크리처였다. 순수하고 잔혹한 상상력과 흑마법으로 빗어진 뒤틀린 괴물들 말이다.

“이 녀석들을 이 탑에 두고 갈게.”

“장난?”

“장난은 무슨······. 그냥 일종의 보험 같은 거야. 아니면 페널티 같은 거거나. 늙은이가 멋대로 한번 행동했으니, 나도 안전장치가 있어야 하잖아?”

딱! 딱! 딱!

꾸루루루루룩-

꺄악! 꺄악!

끄르르르르릉······.

뻐끔. 뻐끔. 뻐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둠에 잠긴 복도 속에서 인간의 치아와 새의 부리, 짐승의 주둥이, 물고기의 아가리를 한 각종 생명체가 자신의 주인에게 호응하듯 질서 없이 울어댔다.

“겁먹진 말고. 개수작을 안 부린다는 전제하에서 네 말을 따르도록 통제권을 넘겨줄 테니까. 어차피 네 부하 모두 식사를 위해 움직여야 하잖아? 또, 탑을 지켜줄 병력도 필요하고? 내가 널 감시하고, 지켜줄게······. 싫으면 그냥 여기서 다 엎어버리던가.”

협박 섞인 팬의 제안에 기계 탑 곳곳에 숨어든 크리처들이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내 탑 전체를 울리게 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었다지만, 고도의 건축술과 기계공학이 합쳐진 이 문명의 산물이 순식간에 괴물 소굴이 되었으니 말이다.

아니, 당연한 걸지도. 애당초 그 문명 자체가 야만적으로 쌓아 올린 것이니.

인육 요리사가 제안했다.

“여기 꼭대기 층에 단 한 마리도 두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받아주지.”

“왜?”

“왜냐면 네 괴물은 보는 것만으로 역겹거든. 이계의 온갖 생물체를 봐온 나조차도 말이야. 어차피 날 방해하려는 건 한층 밑에 있다 해도 문제없잖아? 아니면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내게 겁먹은 거야?”

인육 요리사가 도발했다. 다행히 도발은 통했다.

“으음······. 뭐, 좋아.”

“기념비적인 날이군. 너랑 뜻이 맞는 날도 있다니. 기분은 별로 안 좋지만.”

인육 요리사가 비아냥이 뒤섞인 선언을 하자, 팬은 자신의 그림자와 함께 가운뎃손가락을 들곤 그 자리를 떠나 어두운 복도 속으로 들어갔다.

작은 체구의 팬은 곧 어둠에 동화돼 그 기척이 사라졌고, 기척이 사라지자마자 인육 요리사는 흑마법사의 눈을 뜨며 기계 탑 전체를 훑어봐 크리처의 위치를 파악, 자신의 감정을 의지와 함께 흩뿌려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약속대로 팬이 사라지자 크리처들은 인육 요리사의 명을 듣기 시작했다.

“왜 그냥 온 거야?”

자칫 모든 일을 어그러트릴 뻔했던 대화가 일단락되자 기계 탑 전망대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레텔이 나와 질문했다.

여동생의 질문에 인육 요리사가 되물었다.

“뭐가?”

“지하실. 그놈······. 좋은 타이밍이었잖아?”

왜 제논 혹은 데이브를 먹지 않았는지 묻는 것. 인육 요리사는 그때를 떠올리며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그게 나을 것 같아서.”

“뭐?”

“이상하게 들렸나?”

“좀 많이? 맛있는 먹이가 눈앞에 있는데, 가만히 있는 건 우리 남매 성격이 아니잖아?”

“틀린 말은 아니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복잡하지.”

그레텔은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왜냐면 수백 년을 산 자신조차도 처음 시도해보는 규모의 식사를 준비 중인 데다, 그 비용으로 차근차근 쌓은 조직을 통째로 갈아 넣으려고 했으니.

아, 물론, 후회는 없었다. 시계가 움직이는 지금, 누구보다 빨리 움직여야 했으니. 다소 무리해서라도 말이다.

“그런 와중에 굳이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지. 팬 녀석이 정말 빈정 상해 어깃장을 놓으면 모든 일을 망칠 수 있으니. 그만한 가치가 있는 놈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고······. 즉, 우선순위를 따르자는 거야.”

그레텔은 저도 모르게 눈에 신경을 집중, 흑마법사의 눈으로 자신의 오빠를 빤히 바라봤다.

자신과 다르게 마법사보다는 흑마법사의 힘을 집중해 기른 그는 마력의 벽 대신 강렬한 감정의 격류를 띄었고,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대신 그 진의를 꿰뚫기 힘들었다.

다만, 그레텔 역시 뛰어난 흑마법사. 그 격류 속에서 빛나는 한줄기의 본심을 부분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었다.

“뭐, 맞는 말이긴 하네.”

“그렇지?”

“어. 그래도 그놈을 애새끼인 척하는 징그러운 놈에게 넘겨야 한다니, 심사가 좀 꼬이네.”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만약, 놈이 정말 특별한 존재라면 팬 녀석에게 쉽게 당하지 않을 테니까. 만약, 당한다면 애당초 그 정도 놈이라는 거겠지.”

논리정연한 인육 요리사의 말에 그레텔은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오빠의 말이 맞았다.

호수의 방대한 마력을 추출하며, 다시 되돌리고, 테어도어를 쓰러트리며, 천사의 아들과도 싸워 이긴 자가 대단한 건 맞았지만, 아직 확실한 건 아니었다.

정말 특별한. 선택받은 자라면 그런 망상병에 빠진 놈에게 쉽사리 당하지 않을 터였다.

설사 당한다면 거기까지인 놈인 거고, 정 아쉬우면 식사를 끝마치고 나중에 빼앗으면 되는 거였다.

눈앞의 욕심 탓에 어지러웠던 머리가 정리된 그레텔은 이제야 개운해졌다는 듯 상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말이 맞네. 일단, 우리가 준비한 것부터 하면 되겠네.”

“그렇지?”

마음이 정리된 여동생을 보며 인육 요리사는 평소 그답지 않게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따뜻하고 포근한 미소.

그런 미소가 좋은지 그레텔 역시 똑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자기 두 손을 마주 붙이곤 손가락끼리 톡톡 두들겼다. 뭔가, 아직 신경 쓰이는 게 있듯.

“어······. 그런데 괜찮겠어? 이거······. 내 실수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내가 먼저 먹어도······.”

“약속했던 것 기억 안 나?”

“약속?”

“가장 맛있는 건 너부터 먹게 해 준다고 했잖아? 그 집에서 말이야.”

***

[로큘리 대학은 해명해야 합니다! 해명해야 한다고요!]

로큘리 대학 내 세워진 거대한 도서관 안. 그곳에서 올리버는 망원경과 흑마법을 이용해 대학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설을 관찰하고 엿들었다.

아직 읽을 책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보는 대규모 집회에 올리버는 흥미를 느껴 시선을 빼앗겼다.

단상 위 마이크를 든 남성이 계속해 소리쳤다. 그의 뒤에 있는 음향장비는 그의 거친 목소리를 더욱 증폭시켜 로큘리 대학밖에 모인 수많은 사람의 귀를 강타했다.

[언제부터 우리 갈로스에 왕국 놈들이 활개 치게 뒀냐 이 말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흑마법사를 잡겠다며 그들이 도시 곳곳을 들쑤시고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들의 안전을 무시하고 말입니다!!]

남자는 분노했고, 분노는 공감대라는 거름을 만나 곧 주변 사람들에게 퍼졌다.

언동이 상당히 사납고 난폭했지만, 솔직히 썩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뭐가 됐건 올리버는 케빈, 테렌스, 야렐리와 함께 인육 요리사의 사업장 및 아지트를 꽤 난폭하게 습격했으니.

물론, 주변 피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최소한 란다에서 일할 때 정도로는 신경 썼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거친 전투로 벌어지는 도시의 불만은 고려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못한 걸 수도, 란다에서는 그러지 않았으니.

‘란다가 확실히 거친 동네긴 하구나. 그 정도로 날뛰었는데도 다들 그러려니 했으니.’

올리버는 새삼 당연한 사실을 상기하며 망원경을 통해 연설을 계속해 살펴봤다. 단상 위의 남성이 계속해 소리쳤다.

[그리고 보십시오! 연합 왕국에서 온 잘난 마법사들이 우리 터전을 전쟁터로 만들 동안 경찰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관리귀족(官吏貴族)들은!! ······그들은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안전과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요!!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대접을 받았습니까?!! 수십 년 전, 우리는 자유와 평등,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의 권리를 위해 싸웠는데 말입니다!!]

그 수십 년 전 자유와 평등이란 게 올리버로서는 잘 와닿지 않았으나, 여기 사람들에겐 특별한 것이었는지 연설을 듣던 사람들 모두 온 마음으로 흥분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중 한 여성이 소리쳤다.

“여성의 권리도요!”

[아니, 너무 앞서 나가진 말고.]

단상 위에 선 남자가 황급히 여성의 말을 정정했다. 천부의 권리를 소리쳤을 때보다 더 진심으로.

“아직도 보고 계시나요?”

도서관 창문을 통해 밖을 살펴보던 올리버를 향해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목소리. 야렐리였다.

올리버는 그녀를 바라보지 않고 계속 밖을 살펴보며 대답했다. 저쪽이 더 흥미로웠기에.

“예, 란다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라 좀 흥미롭네요. 연설 내용도 재밌고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죠?”

“이 도시에서 멋대로 날뛰는 저희가 싫다고 합니다. 그래도 양박이라고는 말을 하지 않네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 방금 말했습니다. 양박이라고요. 그런데 양박이가 뭐죠? 물어봐도 다들 대답해주지 않으시던데.”

“······물어봤다고요?”

“예, 궁금하니까요.”

“아······.”

야렐리가 진심으로 탄식하며 후회했다.

“어쨌건 저희를 방치한 경찰과 관리귀족(官吏貴族)에게도 불만을 토로하고, 자신들은 수십 년 전 자유와 평등, 천부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는 것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빼고요. 저분들이 정말 인육 요리사의 후원을 받았다고요?”

“루시앙 씨에게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요. 소수의 평민파 인사들인 자본가, 지식계층이요······. 솔직히 저도 믿기지 않네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육 요리사가 갈로스 뒷세계 절반을 지배하는 것도 모자라 양지에도 저만한 영향력을 확보했다는 게.

어쩌면 그렇게 이상한 게 아닐지도. 란다에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으니.

거대한 자본을 통해 사업가에게 투자하고, 특정 인물을 후원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다만, 그렇다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그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거듭 큰 수를 둬 갈등을 고조시키는 건지······.

비록, 올리버가 이런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 정도 세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크라임 펌 이사들처럼 시간을 들여 조심히 움직이는 게 더 이익인 것은 알았다.

몸집이 커지면 행동도 조심스러운 게 당연한 거였으니.

한순간 인육 요리사가 인내심이 부족한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직접 본 인육 요리사는 언행이 거칠긴 했어도 노련함이 느껴졌고, 또, 이런 세력을 구축할 정도면 이미 인내심은 증명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안 됐다.

로큘리 대학, 마탑과 대놓고 적대하는 걸 넘어, 평민파 커넥션까지 움직여, 왕과 귀족까지 왜 더 적극적으로 개입할 빌미를 주는지 말이다.

덕분에 군대까지 갈로스 근방에 주둔해 도시의 긴장 상태가 높아졌다.

그로 인해 잠시 소강 사태에 들어갔다지만, 배보다 배꼽이 큰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긴장만 더 고조됐으니 말이다.

올리버는 야렐리를 바라보지 않은 채 질문했다.

“혹시, 교수님께서는 무슨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아뇨, 아직까지 로큘리 대학 측과 실랑이 중이세요. 답답하긴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별수 없죠. 도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고, 로큘리 대학 내에서도 누가 인육 요리사와 내통했는지 의심하고 있으니까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인육 요리사와 밀회 후, 특이체(特異体)를 가져다주자 로큘리 대학 내부 인사들은 누군가 인육 요리사와 거래한다면 서로를 더욱 의심했다.

덕분에 앞뒤로 갈등이 고조돼 아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럼, 테렌스 님께서 절 부르신 겁니까?”

“아뇨. 제가 볼일이 있어 왔어요. 대답을 드리려고요.”

“······대답요?”

올리버가 처음으로 시선을 야렐리를 향해 옮겼다.

“예. 사람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제 생각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죠.”

그랬다. 올리버가 지하실에서 물어봤을 때 야렐리는 시간을 더 달라고 했었다.

“생각은 다 하셨습니까?”

“예. 대신, 조건이 있어요.”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조건에 조건을 붙이다니.

“제논 씨는 거기에 대한 생각이 있나요?”

“음······. 예, 정답이라 할 순 없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알려줄 수 있나요?”

“어······. 죄송하지만, 그럼 제가 손해를 보는데요? 제가 천사의 아들과-”

“-그건 괜찮아요. 안 궁금한 건 아니지만, 이제 그거보다 제논 씨 생각이 더 궁금하거든요. 그러니 그걸 대답해 줄 수 있나요?”

예상치 못한 제안. 그러나 나쁘지 않은 이야기기도 했다. 오히려 이쪽이 더 좋았다.

아무리 간략하게 말한다 해도 천사의 아들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올리버에게 적잖은 부담이었기에.

또, 같은 주제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게 더 건전했고.

다만, 의문이었다.

“왜 궁금한 게 바뀌신 건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게 중요한가요?”

야렐리는 평소와 다르게 대답했다. 뭐랄까, 과거 올리버를 대할 때 한 꺼풀 조심스러웠는데, 지금은 그게 좀 걷힌 느낌이었다.

어쩌면 머리 아픈 일이 너무 많아 그런 걸지도.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뇨······. 일단, 제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푸와항!!!

말하는 도중 폭발이 울려 퍼지며 올리버의 목소리를 삼켜버렸다.

다행히 창문은 강화 유리라 깨지지 않았으나, 상당히 흔들렸는데, 폭발음이 들린 전방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올리버는 믿기지 않는 것을 보았다.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연설 중이던 곳에서 때아닌 폭발이 일어난 거였다. 거대한 회색 연기를 내뿜는 대폭발이.

회색 연기 너머로 흉흉한 붉은 화염이 보였고, 올리버와 야렐리는 말없이 그 연기를 바라봤다.

단, 둘이 바라보는 이유는 달랐다.

야렐리는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본 거였지만, 올리버는 연기 너머로 다가오는 존재를 보았다.

그것은 몹시도 큰 인간이었다. 아주 큰 인간.

“거, 거인이다!”

대학 정문을 지키던 수위가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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