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 밀회 (2)
올리버에게 흥미가 동했다는 인육 요리사.
올리버는 물었다.
“직접 보시니 어떠신지요?”
인육 요리사는 올리버를 물건 감정하듯 훑어보며 대답했다.
“글쎄······? 아직 잘 모르겠네? 직접 본 지 1분도 채 안 돼서 말이야.”
“아······.”
“다만, 겁쟁이가 아니라는 건 알겠군. 날 만나러 왔으니까······. 칭찬해줄게.”
“말씀 감사합니다. 칭찬받을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직접 오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맞아, 그랬지. 그런데 직접 오는 인간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거든. 초대장을 받고도 온 인간은 더욱 손에 꼽을 정도고.”
초대장.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올리버는 거대한 폭발을 떠올렸다.
란다의 중상층 거주지 O구역에 거대한 상흔을 남긴 대폭발을 말이다.
어찌나 강렬한 폭발이었는지 육안(肉眼)으로 보이는 범위는 전부 평탄화가 됐는데, 덕분에 O구역의 행정력은 사실상 마비됐으며, 상대적으로 높은 집값 역시 추락해 수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흘렸다.
신문에 매일 갱신되는 투신 자살자가 이를 뒷받침해주었다.
“별거 아니네.”
인육 요리사가 자신의 초대장으로 벌어진 사태를 듣고 소감을 말했다. 방대하고 요동치는 감정 탓에 진실 여부를 파악하기 까다로웠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별거······. 아니라고요?”
노기가 섞인 야렐리의 반응. 인육 요리사는 의외라는 듯 굴었다.
“아, 그런 성격인가? 오해하지 마. 그저 긍정적인 부분을 보자는 거니.”
“······.”
“내 초대장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고, 건물이 무너지며,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해 여러 사람이 자기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 방아쇠를 당기고 싶겠지만·····. 그럼에도 웃는 사람은 있을 거 아니야? 투기꾼, 건설업체, 그 밑에 있는 용역들. 재개발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얻고 개중에 몇몇은 부자가 되겠지. 즉, 내 말의 요점은 비극 속에도 희망은 있다는 거야. 판도라의 상자처럼.”
인육 요리사는 경이로울 정도로 뻔뻔히 말했다.
야렐리는 당연히 기가 막힌 반응과 함께 차가운 분노를 빛냈다.
자신이 사는 도시에 일어난 테러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지 알았기에.
그녀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음에도, 마탑의 일로 민간인이 휘말린 지금의 사태에 나름의 자책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작, 그 폭발에 휘말린 올리버는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올리버가 느끼는 감정은 기껏해야 안타까운 정도였다. 아마도 말이다.
오히려 지금은 인육 요리사의 말에 어느 정도 동감하기까지 했다.
포레스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O구역에서 일어난 비극을 기회라 생각하는지 들었기에.
투기꾼, 건설업체, 각종 용역, 해결사 등등. 이미 몇몇 이들은 제2의 재개발 붐 이란 단어까지 만들었다.
그랬기에 올리버에겐 그것이 비극이라기보단 하나의 흥미로운 사회 현상에 불과했다.
머리로는 슬픈 일인 걸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 어쨌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겁쟁이가 아니라는 거야. 아니면, 겁나면서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머저리거나”
인육 요리사가 상념에 빠진 올리버를 가리켰다.
“대답해봐. 그 폭발에 휘말리고도 무슨 배짱으로 날 만나러 온 거지? 혹시, 내 협박이 통한 건가?”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지 않는다면 주변 사람부터 건드리겠다는 호언을.
“······뭐, 그것도 있고. 인육 요리사 님도 만나 뵙고 싶었거든요.”
“의외네. 날 피하고 싶은 인간은 봤어도 보고 싶은 사람은 없었는데, 이유가 뭐지?”
“때려 주고 싶어서요.”
올리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인육 요리사는 아주 찰나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푸흐흐흐흐흐흐!!”
인육 요리사는 거침없이 웃음을 토했다. 웃을 때마다 그의 몸에 깃든 마력이 용암처럼 뿜어져 나와 주변을 두들기고 압박했다.
단순히 심리적인 수준을 넘어 실질적 힘을 갖춘 물리력으로.
야렐리는 몸 내부의 마력을 순환시켜 외부의 압박을 흘려보내 대응했고, 올리버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그 압력을 받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그 모습을 본 인육 요리사는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도발했다.
“원한다면 지금 때려 볼래?”
“음······. 아뇨, 말씀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안타깝네. 때려줬으면 나도 호응해줬을 텐데.”
이상한 말이었다. 인육 요리사가 자신을 부른 건 퍼펫의 비호가 사라진 자신과 싸우기 위해서일 텐데. 지금은 싸울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이에 관해 묻자, 그는 처음 초대했을 때의 기세가 무색하게 아주 맥 빠지게 대답했다.
“상황이 달라졌거든. 좀 귀찮은 녀석이 와서.”
“귀찮은·····녀석요?”
“그래, 왕자병에 걸린 정신 나간 늙은애지.”
늙은애.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인육 요리사는 주석을 달아줬다.
“내가 만든 단어야. 애늙은이에 반대 뜻이지······. 뭐, 중요한 건 그 늙은애가 너 때문에 여기 왔다는 거고.”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네 소문을 들었거든. 천사의 아들과 싸웠다는. 그런 것에 관심이 많은 녀석이라 자연스럽게 너에게 흥미가 생긴 듯해.”
올리버는 속으로 약간 놀랐다.
아무래도 천사의 아들 보니파와의 전투를 말하는 듯했다. 파테르교도 반응이 없건만, 어떻게 인육 요리사는 물론 이름조차 모르는 늙은애란 사람이 이를 아는지 의문이었다.
“너무 놀라지 마. 비밀이란 건 애당초 없는 법이니까. 요는 너 때문에 귀찮은 놈이 와 내가 몹시도 불쾌하다는 거야. 준비 중인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거든.”
흑마법사의 시야를 뜬 올리버는 분노와 탐욕으로 요동치는 인육 요리사의 감정 속에서 속셈과 교활함 그리고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전부 다 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그는 진심이었다.
“계획이라는 게 뭐죠?”
“그런 걸 순순히 대답해줄 정도로 멍청했으면 나도 편했을 텐데······. 란다와 마탑에는 피해가 없을 거야.”
진심.
묵묵히 이야기를 듣던 야렐리가 끼어들었다.
“그 말은 반대로 갈로스와 로큘리 대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거군요.”
“이래서 내가 명문가 출신을 좋아한다니까. 말귀를 빨리 알아 처먹잖아? 맞아, 너희는 봐줄 테니, 이만, 조용히 꺼지라는 거야.”
인육 요리사가 손뼉을 짝짝 치며 말했다. 그의 감정은 요동치는 파도 속에서도 확인이 될 만큼 자신감이 뿜어져 나왔다.
허세가 아닌 진심으로 봐준다는 거였다.
“선전포고를 해놓고 이만 물러나라고요?”
“내가 좀 오락가락해. 마음이 갈대와 같이 여리거든.”
“아무리 검은손이라 해도 오만하시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인육 요리사가 정색했다.
“난 너희가 더 오만한 것 같은데, 마탑이든 로큘리 대학이든 내가 살아온 인생에 비하면 한 줌밖에 안 되는 역사를 가진 놈들이 어찌 그토록 자신감을 가지는지?”
아주 허튼소리는 아니었다.
흑마법사가 마법사보다 저평가받는 것은 엄연히 사실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균과 일상의 범위 내.
수백 년을 산 노괴(老怪)인 손가락을 똑같이 취급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면 올리버도 그러려니 했겠지만, 세상 밖으로 나와 여러 사람을 만나고, 퍼펫까지 만나본 올리버는 손가락을 일반적인 선에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에겐 단순한 힘을 벗어난 뭔가가 있었다.
퍼펫이 그 대표적인 예시.
그러자 문득 궁금해졌다. 아카이브와 손가락 중 어느 쪽이 더 강하고, 그 깊이가 깊을지 말이다.
뭐, 세상은 단순하지 않아 그런 문제를 쉽게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었지만.
이를 증명하듯 인육 요리사의 압박에도 야렐리는 용기와 기개를 잃지 않고 맞받아쳤다.
“설사 당신이 마탑과 로큘리 대학을 무너트릴 힘이 있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 더 강하다고 저희가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칠 이유는 되지 않으니까요.”
허세가 아닌 진심. 올리버는 그녀의 태도에 감탄했다.
야렐리 역시 실력자였기에 인육 요리사의 힘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음에도, 그녀는 임무를 위해 목숨을 걸 각오를 가지고 있었다.
특유의 책임감과 자부심에 기인한 것.
허나, 그녀의 각오와 용기에 인육 요리사는 몰이해와 비웃음으로 화답했다.
“음······. 대단한데. 꼭 용사 같아.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려는 용사. 왜 나한테 그런 감정을 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진심이었다. 인육 요리사는 지금 했던 무수한 말 중 지금 발언이 가장 진심이었다.
요동치는 특유의 방대하고 거친 감정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다.
그는 계속해 질문했다.
“혹시, 로큘리 대학과 너희 마탑이 정의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피해자? 나는 악이고 가해자라 생각하나?”
야렐리는 입으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감정을 빛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올리버도 읽었으니, 인육 요리사라고 못 읽지 않았을 터.
그는 야렐리의 감정을 멋대로 읽고 대답했다.
“이해가 안 돼. 왜 그렇게 생각하지? 무슨 근거로? 난 세상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적응해 살고 있을 뿐인데?”
“사람을 먹는 게······. 적응이라고요?”
“어. 뭐가 이상하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
비아냥과 비웃음이 한껏 담긴 조롱. 그럼에도 거짓은 섞여 있지 않았다.
절대적인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인육 요리사는 진심으로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 믿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태도에 올리버는 순수한 호기심을 빛내며 질문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굳이 설명해 줄 필요가 있나? 지금 이 시대에 그런 광경이 어디서든 보이잖아? 바다 건너 식민지 전쟁과 계급갈등, 빈부격차, 끔찍한 노동환경. 사람은 사람을 잡아 먹고 있지.”
“궤변은 그만두시죠. 약간의 사회 문제를 가져와 자신의 끔찍한 죄를 덮으려는 겁니까?”
야렐리가 불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다. 그녀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록, 지금이 완벽한 시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법사의 손으로 연 인류의 황금시대.
흑마법사 따위가 사람을 먹는 끔찍한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하다니. 실로, 역겨운 작태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육 요리사 역시 그런 야렐리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약간의 사회 문제? 호······. 혹시 아동 노동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아나?”
“12시간에서 16시간입니다.”
올리버가 바로 대답했다. 왜냐면 올리버는 직접 그만큼 일해봤기에. 오래된 일이었지만, 그때의 기억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딩동댕. 보통 12시간에서 16시간 일하지. 참고로, 공장주인들은 아이들을 참 좋아해. 다루기 쉽고, 성인 임금의 반 이하만 주면 되니까. 아, 그쪽은 모르려나? 일해본 적이 없을 테니. 굶어본 적도 없을 테고.”
인육 요리사가 야렐리를 빤히 바라보며 압박했다.
“매일 12시간에서 16시간씩 일하는 아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망가지지. 사고로, 약품의 부작용으로, 혹은 그냥 혹사로 쪽쪽 빨려서. 무릎만 한 꼬맹이가 늙은이 같은 얼굴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글쎄요?”
“해고해. 깔끔하게 쫓아내는 거지. 길바닥으로······. 아, 오해하지는 마. 그게 나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니까.”
진심.
“그저 이해가 안 될 뿐이야. 이미 수많은 사람이 나랑 똑같은 짓을 하고 있잖아?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인생을 갉아먹는 데 반해, 난 정말 잡아먹는 것뿐이고. 그런데 왜 나만 비난을 들어야 하지? 왜? 정녕 내가 더 끔찍하다고 생각하나?”
야렐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탑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란다의 끔찍한 노동환경을 알았기에.
“마법사라고 다르지 않지. 흑마법사가 인체 실험을 밥 먹듯 할 때, 너희도 만만치 않게 했으니까. 마탑의 인체 실험 유명하잖아?”
“·······.”
“어디 그뿐이야? 같은 마법사들조차 잡아먹지. 저기 있는 특이체(特異体)가 그 증거고. 전부 로큘리 대학의 관계자들을 통해 구한 거거든. 직접 사서, 혹은, 정보를 얻어서······. 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네. 아이스아이 가문도 한때 사냥당했던 몸이니까.”
“·······.”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어? 정말 로큘리 대학에 배신자가 생명연금술 학과뿐인지 말이야? 더 있을 수도 있잖아?”
야렐리는 이번 역시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인육 요리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스스로 고상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접는 게 좋을 거야. 인간이라는 건 다 똑같거든. 모두 서로를 잡아먹고 있지. 저 특이체를 가지고 로큘리 대학으로 가 보면 알 거야. 챙겨가라고 선물이니까.”
인육 요리사가 말을 마치자 허공에 균열이 일더니, 짧게 돌풍이 불며 인육 요리사가 그 틈새로 모습을 감췄다. 아주 능숙한 공간 마법.
올리버는 머리와 가슴이 복잡해 보이는 야렐리를 한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저 특이체들을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옮길 수 있는 케이스들이-”
“-제논 씨.”
“예, 야렐리 씨.”
“전 당신을 보고 관찰해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에게 보고하고 있었어요. 제 할머니에게요······. 그걸 원하셨거든요.”
“그렇군요.”
“······알았나요?”
“안 건 아니지만, 절 관찰하고 주시하는 느낌은 나서 딱히 놀랍진 않습니다. 다만, 왜 말씀해주시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긴 합니다.”
“······천사의 아들과 싸웠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어서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