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밀회(1)
“대단하네요. 진심으로요.”
조수석에 탄 야렐리가 말했다. 그녀는 한쪽 손으로 올리버가 가르쳐준 마력 술식을 작게 펼쳐 연습했다.
수재와 천재들이 모인 마탑에서도 한결 남다른 존재감을 가진 그녀는 그 재능에 걸맞게 마법이 주(主)가 되는 강렬하면서도 위험천만한 술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갔다.
“칭찬은 감사하지만, 그 술식은 제가 만든 게 아닙니다. 그저 보고 흉내 낸 것에 불과하죠. 칭찬은 그 술식을 만드신 윌레스 님께 하셔야 마땅합니다.”
올리버는 켈 자유독립군의 지도자 중 하나인 윌레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의 화염 마법은 겉보기에는 기초만 따른 정석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그 내면에는 창의성과 도전정신, 위험을 감수하는 대담함. 무엇보다 재능과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본인마저 불타버릴 화염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나만 빠져도 성립되지 않을 테니.
그렇기에 올리버는 그런 마법을 만든 윌레스에게 감탄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걸 보고 흉내 내는 것도 모자라, 가르칠 수 있는 것도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재능은 아니죠.”
야렐리는 거짓말했다.
편의상 재능이란 카테고리에 넣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올리버의 이것은 재능이 아니었다.
한번 본 걸 그대로 흉내 낸 것은 분명 하늘의 축복을 받은 엄청난 재능이었지만, 손가락을 대는 것만으로 그 감각을 잡아주는 건 재능을 영역을 벗어난 거였다.
사람이 하늘을 나는 걸 재능이라 하지 않듯이 말이다.
본인이 말하길 먼 동방의 사막 땅에서 배운 기술이라 했지만, 영 말이 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흑마법사 조직에 있다, 멀린에게 거둬진 그가 언제 먼 동방의 사막 땅 기술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인 걸 알 수 있었다.
아니, 애당초 그 말 자체가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주장할 뿐이었으니.
야렐리는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이자 자신의 할머니에게 어찌 보고해야 할지 점점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직접 경험해보고도 실감이 안 났고, 설명도 불가했기에.
문득, 제논을 관찰해 보고하란 그 명령이 단순히 아카이브의 제자라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다.
“야렐리 씨.”
“예?”
“도착했습니다.”
술식의 연습과 상념에 빠져있던 야렐리는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목적지인 물류센터에 도착한 것도 몰랐다.
당황한 야렐리는 다급히 연습 중이던 술식을 해제하곤 차량에서 내렸다.
“원래 근방에 다다르면 차에서 내릴 계획 아니었나요? 조심히 접근하기 위해?”
“원래는 그럴 계획이었는데,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서요.”
차량에서 뒤이어 내린 올리버가 답했다. 실제로, 물류센터 창고에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야렐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력을 실가닥처럼 퍼트려 주변을 샅샅이 탐색했으나 그럼에도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 야렐리가 의아해하며 질문했다.
“여기가······. 맞긴 맞나요?”
“지도에 따르면 맞습니다.”
올리버는 로큘리 대학에서 받은 차량을 축소화 마법으로 줄이고, 경량화 마법으로 가볍게 만들어 품 안에 넣었다.
어수룩해 보여도 능력이나 일 처리는 확실한 사람이었기에 야렐리는 다시 물류센터를 보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 고민했다.
‘인육 요리사와 아무 관련이 없는 곳인가? 아니면, 이미 정리하고 도망친 건가?’
뭐든 석연치 않았다.
인육 요리사와 관련이 없다 해도 갑자기 폐쇄된 건 이상했고, 인육 요리사가 정리하고 도망친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앞의 수십 개의 사업체는 그대로 운영했는데 말이다.
‘습격당해도 상관없다는 수준이었지.’
야렐리는 계속 고민했으나, 곧 혼자 생각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직접 움직여서 알아봐야 하는 문제였다.
“일단, 들어가 보죠. 찾아보면 뭐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올리버가 동의하자, 야렐리는 지체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에서 탐색한 것처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있을 뿐. 기껏해야 있는 것이라고는 빈 나무 상자와 먼지뿐이었다.
“지상에는 아무것도 없네요.”
흑마법사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던 올리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야렐리는 곧바로 숨은 뜻을 유추해 질문했다.
“그럼, 지하는요?”
“사람은 없지만. 마력을 품은 기계장치들이 있습니다. 지하실 보안에 공을 많이 들여서인지 이제야 확인했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야렐리는 자신의 발에 마력을 집중시켜 바닥에 대량의 마력을 주입했다.
올리버의 말대로 수많은 마법진이 지하실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마법진을 확인하자마자 야렐리는 바닥에 주입한 마력을 조작해 바닥과 마법진을 통째로 얼려버렸다.
쩌저저적······!
보안을 위해 설치된 마법진은 야렐리의 마법을 감지해 저항했으나, 야렐리는 술식의 구조와 패턴을 간파해 역으로 침식해 나갔다.
이를 증명하듯 차가운 기운의 푸른빛 마력은 야렐리의 발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퍼져 바닥 표면을 얼렸고, 확장을 마친 얼음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래로 침식해 들어갔다.
극도의 냉기에 바닥과 마법진은 꽁꽁 얼어붙어 내구도가 급격히 약화 됐고, 야렐리는 그 상태로 한쪽 다리를 들어 바닥을 쿵 내리찍었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경쾌한 소리가 울리며 바닥이 내려앉아 야렐리를 집어삼켰다.
참으로 빠른 행동력. 올리버도 바로 뒤따라 내려갔다.
“이건······. 뭐죠?”
시커먼 지하실 아래로 내려온 올리버가 어둠 속 유일한 발광체(發光體)들을 보며 질문했다.
발광체는 다름 아닌 수십 개의 원통형 유리관으로, 유리관 안에는 마력과 생명력을 머금은 수액이 가득 차 있었으며, 그 수액 안에는 인간의 각 신체 부위가 보존되어 있었다.
형형 색상의 눈알, 붉은 형광빛이 도는 머리카락, 비늘이 달린 인피(人皮), 검은 뼈 등등. 그 종류가 다양했다.
여러 구의 송장인형을 만들어본 올리버에겐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었지만, 그와 별개로 의문이 들었다.
거대한 원통형 유리관과 안에든 수액, 이를 보조해주는 기계장치 등. 척 보기에도 상당한 비용과 기술,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사람의 사체나 신체 부위가 쉽게 부패할 수 있어 보관에 주의를 요구하는 건 맞았지만, 이건 좀 과한 것 같았다.
“특이체(特異体)네요.”
야렐리가 설명했다.
“특이체요? 그게 뭐죠?”
“이름 그대로 특이하고 남다른 신체죠. 몇몇 특정한 가문에서 간혹 나타나는 희귀한 재능이죠. 불에 내성이 있는 용의 피부, 마법의 촉매 기능을 가진 머리카락, 마력을 이용해 특수한 힘을 발휘하는 마안(魔眼) 같은 거요.”
“음······. 야렐리 씨의 눈처럼요?”
“······들으신 건가요?”
야렐리가 약간 놀라며 물었다. 사실 그렇게 놀랄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스아이 가문이 그 이름처럼 특수한 눈을 가진 건 마탑의 모든 사람은 아는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당연히 올리버 역시 그 사실을 들었을 터였다.
“아뇨, 못 들었습니다.”
“······못 들었다고요?”
“예. 저한테 야렐리 씨의 눈이 특이체(特異体)나, 마안(魔眼)이라고 알려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아······. 그럴 수도. 상식을 굳이 설명해주는 사람은 없을 테니.
거기다 올리버가 마탑에 들어온 지 오래된 것 같지만, 그것은 그저 공을 많이 세웠기 때문. 실제로 마탑에 들어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제 눈이······.”
“······특별한 줄 알았냐고요?”
올리버가 올리버답지 않게 야렐리의 문장을 완벽하게 마무리해줬다. 물론 올리버의 센스가 좋아진 건 결코 아니었다. 그저 둥글고 두꺼운 안경 너머, 야렐리의 눈이 예쁘고 특별해, 본 걸 그대로 말한 것에 불과했다.
정작 야렐리는 부끄러움과 거부감을 빛냈지만 말이다.
“제 눈은······. 조금 특수한 힘이 깃든 것뿐이지,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예. 운 좋게 타고난 것일 뿐.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는 걸요······. 그런데 어떻게 안 거죠? 제 눈이 특이체라는 걸요?”
“눈에 좀 특······. 남다른 기운이 보여서요.”
야렐리는 놀랐다. 분명 자신은 눈의 마력을 봉인, 차단하는 안경을 쓰고 있을 터인데. 하지만 눈앞의 남자를 보자니 곧 의문은 사라졌다.
제논, 데이브······. 두 가지 이름을 가진 이 수수께끼 사내는 왠지 무슨 일을 해도 그러려니 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제아무리 말도 안 되는 짓을 해도 그냥 설득력이 생기는.
“좀 신기하네요. 적잖게 세상을 둘러본 것 같은데, 왜 이제야 특이체를 보는지요.”
“왜냐면 과거에 대부분 사냥당했기 때문이지. 같은 마법사에게.”
결이 다른 제3의 목소리가 그 어떠한 예고도 없이 끼어들었다.
야렐리는 물론 올리버 역시 놀라며 소리가 들린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없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딱 벌어진 어깨에, 깔끔한 턱선, 평평한 배, 정돈된 머리, 세련된 정장을 입은. 귀신같이 등장한 남자가 예의와 오만을 섞은 자세로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다. 인육 요리사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힌 남자. 야렐리는 화들짝 놀랐으나, 곧 직감으로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아차렸다.
왜냐면 남자의 몸에서 내뿜고 있는 마력은 널찍한 지하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그 양이 방대했기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야렐리는 바로 행동했다.
그녀는 지체 없이 발에 마력을 모아 술식을 발동. 거대한 얼음 기둥을 일으켜 공간 전체를 얼리려 했다. 눈 깜짝할 속도로.
문제는 인육 요리사의 대응은 그 이상이라는 거였다.
치이이이이익.
갈색빛을 띤 인육 요리사의 한쪽 눈동자가 붉은빛을 띠더니 발광. 그저 보는 것만으로 야렐리의 광범위한 얼음을 그대로 녹여버렸다.
위력, 정밀도, 반응속도 모두 대단했다.
올리버가 질문했다.
“그 눈도 특이체입니까?”
“맞아. 보는 것만으로 불태워 버릴 수 있지.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 없으니, 진정하라고.”
인육 요리사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지하실 구석에 놓인 의자를 드르륵 가져와 그 위에 앉았다. 아무런 적의도 없다는 듯이.
올리버는 그의 바다처럼 거대하고, 요동치는 감정을 살피곤 질문했다.
“저희도 의자를 가져와 앉아도 되겠습니까?”
인육 요리사가 고개를 끄덕여 허락해줬고, 올리버는 머리를 살짝 숙여 예를 표하고는 의자를 두 개 가져왔다.
야렐리는 그런 올리버를 말없이 바라봤다. 지금 뭐 하는 건지 묻듯.
올리버가 야렐리에게 말했다.
“저희를 해하실 생각이 없으니,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맞아, 죽이려고 했으면 진즉에 죽였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앉아.”
길거리에 넘치는 허풍선처럼 인육 요리사가 지껄였다. 상대를 업신여기는 그 가벼운 태도는 불쾌함을 유발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설득력도 있었다.
야렐리는 인육 요리사와 올리버를 번갈아 보더니, 의자 위에 엉덩이를 올렸다. 뒤이어 올리버도 의자 위에 앉자 인육 요리사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내 감정을 읽을 수 있나?”
“감정이 방대하고, 파도처럼 요동쳐 쉽진 않지만, 드문드문 읽을 수 있습니다.”
“오······. 눈이 좋네. 퍼펫 그 양반이 왜 널 잠시나마 비호했는지 알 거 같아.”
검은손의 손가락, 영생의 퍼펫. 그 단어에 야렐리가 다시 놀라며 올리버를 봤다.
평소였다면 올리버 역시 뭐라 이야기해줬겠지만, 올리버도 궁금한 게 있어 그러한 배려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퍼펫 님을 잘 아십니까?”
“말 정도는 나누는 사이지. 그나마 말이 통하는 인간이거든. 동시에 가장 속을 모르는 인간이고······. 그래서 흥미가 동했어. 그 퍼펫이 잠시나마 눈여겨본 놈이 어떤 놈일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