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유격대 (2)
지이이이잉!!
귀를 아리게 하는 흉흉한 소리와 함께 쿼터스태프를 두른 블랙 슈트가 회전. 코끼리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갈아버렸다.
코끼리 인간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지만, 자신의 머리와 올리버의 발에 부착된 타겟팅 탓에 떨쳐내지 못했고, 그 사이 쿼터스태프는 그의 머리를 파고 들어갔다.
사방으로 튀는 핏방울과 살점.
덕분에 올리버의 옷은 더러워졌지만, 올리버는 망설이지 않고 팔에 힘을 줘 코끼리 머리를 그대로 꿰뚫어버렸다.
우우우우웅······팡!
막힌 변기가 뚫린 듯한 시원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코끼리 머리에는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올리버는 발에 부착한 타겟팅을 해제. 쿼터스태프를 비틀어 뽑아 코끼리 머리를 산산조각 내 버렸다.
파각······! 후두둑. 후두둑.
요란한 파열음과 함께 피와 살점, 뼛조각, 뇌수, 뇌 조각, 눈깔 파편 따위가 바닥에 떨어졌다.
솔직히 좀 너무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너무 살상 위주고, 보기에도 좀 그랬으니 말이다.
허나, 그럼에도 올리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머리를 이렇게 분쇄시켜도 죽지 않고 회복됐기에.
번쩍.
코끼리 인간은 머리가 갈려 나가 산산조각 났음에도 쓰러지긴커녕 거대한 쇠망치를 들어 올리버를 노렸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방심했구나!”
“전부 그게 먹힐 줄 알았어?!”
비밀 통로로 추정되는 땅굴 입구를 통해 식칼과 망치를 든 흑마법사들이 나왔다.
진흙처럼 어색하게 뭉친 대량의 감정과 마력, 생명력이 인육 요리사의 부하라 이야기해줬는데,
그들은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올리버에게 접근, 단숨에 세 면을 포위 공격했다.
붕!
휘릭!
쿵━!!
올리버는 그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
흑마법사들은 당연히 놀랐다.
그들은 흑마법뿐 아니라 근접전에도 자신 있는 이들이었기에.
그런데 그들의 공격을 올리버가 피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가볍게.
허나,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밀리유와 협력 관계를 다진 후, 올리버는 케빈, 테렌스 심지어 야렐리와도 근접 전투 훈련을 펼쳐 나름의 요령을 배웠기에.
틈이 날 때마다.
셋 모두 가르치는 재주가 뛰어났고, 덕분에 올리버는 체감상 느껴질 정도로 자신의 몸놀림이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얻어맞아 아프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지.’
올리버가 속으로 그리 생각하며, 그라인드(Grind)를 두른 쿼터스태프를 빠르게 두 번 찔렀다.
“이런━!”
당황한 흑마법사들은 다급히 방어했지만, 당황한 탓에 완벽하게 반응하지 못했고, 각각 몸통 한쪽이 날아가는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끈질긴 생명력과 회복력을 가진 그들에게 아주 치명적이진 않을 테지만, 움직임에는 제약이 따를 터. 당황한 흑마법사가 소리쳤다.
“일리폰! 내리찍어!!”
머리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코끼리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흑마법사의 외침대로 다시 쇠망치를 높이 들어 내리치려 했다. 비록, 그전에 케빈이 던진 고밀도 투창에 몸이 꿰뚫렸지만.
뻑━!
흙과 돌을 극한까지 압축한 투창은 4미터의 거체(巨體)를 붕 띄울 만큼 강했다.
올리버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탁.
올리버는 그라인드를 해제. 앞으로 넘어지는 코끼리 인간을 쿼터스태프로 받치며, 타겟팅을 사용. 다른 흑마법사 둘과 뭉친 다음 넘어지는 힘을 이용해 그들을 비밀 입구 안쪽으로 집어 던졌다.
4미터나 되는 거체와 건장한 남성 둘을 말이다.
머리와 몸통이 날아간 그들은 굴러떨어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올리버는 품 안에서 검붉은 나뭇가지를 꺼내, 흑마법과 마법을 동시 부여한 뒤 그들을 향해 던졌다.
탁!
땅굴 깊숙이 떨어져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을 통해 나뭇가지가 상대 흑마법사에게 꽂힌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나뭇가지가 흑마법사들의 감정과 마력, 생명력을 빨아먹는 것도.
[탈빙(奪氷)]
올리버가 영창했다. 그러자 수십 명분 마력, 감정을 빼앗은 나뭇가지를 매개로 강렬한 얼음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력이 어찌나 센지 입구 바로 앞까지 냉기와 얼음이 뿜어져 나와 때아닌 추위를 선사해줬는데, 올리버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흑마법사의 눈과 마력감지 능력을 이용해 비밀 지하실 안에 있는 흑마법사들을 얼음으로 집어삼켰다.
어렵진 않았다. 탈빙(奪氷)은 상대의 감정과 마력을 연료로 사용했기에, 계속해 집어삼키기만 하면 공격 범위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올리버는 불타는 지상 위에서, 지하를 얼려버렸다.
***
찰칵! 찰칵!
얼어버린 지하실. 올리버는 케빈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와 주변의 사진을 찍었다.
로큘리 대학과 갈로스 중앙 경찰국에 제출한 증거로, 주로 찍는 것은 포장을 마친 수백 개의 와인병과 수십 개의 오크통, 그리고 대량의 피를 담은 수십 개의 수조였다.
‘이렇게 많은 혈액을 어떻게 수급하는 거지?’
올리버가 사진을 찍으며 의문을 품었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도 채취할 수 있는 건 최대 5L 정도가 한계. 그렇기에 혈액은 수급도 힘들고, 관리하기도 까다로운 상품이었다.
아무리 사람이 흔한 세상이라 해도 지하실에 있는 혈액의 양은 심상치 않았다.
허나, 고민한다고 알 수 없는 법. 올리버는 곧 고개를 저으며 케빈에게 말을 걸었다.
“교수님. 사진 다 찍었습니다.”
“수고했어.”
케빈이 대답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지하실 한쪽에서 와인병, 오크통, 혈액, 각종 작업 기구 등. 증거를 집어삼키고 있던 빅마우스에게 사진기를 넘겼다.
“꾸루루룩······.”
블러디 와인이 든 상자와 얼어붙은 인육 요리사 부하들, 피가 든 수조, 오크통, 각종 기구를 삼키던 빅마우스는 올리버에게서 받은 사진기를 꿀꺽 삼켰다.
이것으로 여기는 종료. 슬슬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입구 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다름 아닌, 인육 요리사의 거래처인 인신매매 조직을 공격하러 갔던 테렌스와 야렐리였다.
“빨리 끝냈네?”
갑옷처럼 두꺼운 조끼와 덧바지를 입고, 허리춤에는 커다란 리볼버와 샷건을 두른 테렌스가 말했다.
모두 마력으로 강화 가능한 군용 장비로, 그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테렌스를 확인한 케빈이 질문에 답했다.
“그쪽도 빨리 끝난 것 같은데?”
“우린 거래처다 보니 비교적 쉬웠거든. 올리버 저 녀석이 가르쳐준 마법도 큰 도움이 됐고. 그렇지?”
“예.”
야렐리가 대답했다.
올리버가 가르쳐준 마법은 다름 아닌 술사가 아닌 마법이 주(主)가 되는 냉기 마법으로, 윌레스가 사용한 화염 마법의 술식을 똑같이 적용한 거였다.
술사가 마력을 주입해 마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마법 자체가 주변의 마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사용에 다소 위험이 따르긴 했지만, 본인의 마력이 넘치는 인육 요리사 계파를 상대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올리버는 근접 전투 훈련받은 후, 해당 술식과 요령을 야렐리와 테렌스에게도 가르쳐줬다.
“큰 도움이 됐어요. 고마워요.”
“저야말로 도움이 됐다니 기쁩니다.”
인사하는 야렐리에게 올리버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대답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성과란 올리버에게 있어 기쁨이었기에.
“인신매매 조직을 지켜주던 인육 요리사 부하는 해치웠어. 생포하려고 했는데, 역시 그건 좀 힘들더라.”
“괜찮아. 우리 모두 아니까.”
앞서 수십 개의 사업장을 습격한 케빈이 말했다. 실제로 인육 요리사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그 투쟁심이 남달랐다.
전에도 남달랐지만, 맹공을 당하는 지금은 더욱 그랬다. 흡사, 광신도 수준. 로큘리 대학 일부가 전쟁에 소극적인 게 이해될 정도였다.
“나머지 인신매매범 중 항복한 놈들은 납치당한 사람들과 함께 경찰한테 넘겼어.”
“잘됐네. 그럼, 바로 다음 사업장으로 움직이자. 루시앙의 말대로 점점 효과가 생기는 듯하니까.”
루시앙. 현재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협력자이자, 뮈라 패밀리의 수장.
그는 지금의 정체 상황을 해결할 방법과 마탑이 전쟁 주도권을 쥘 방법은 맹렬한 공격뿐이라 조언했다.
자기처럼 가진 게 많고, 겁도 많은 로큘리 대학의 늙은이들은 적당한 성과를 낸 지금, 전쟁을 마무리해 안전을 찾고 싶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 사태를 막고 싶다면 인육 요리사를 계속 압박해 억지로라도 확전(擴戰)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상당히 과격한 주장. 그러나 터무니없는 말은 또 아니었다.
현재 로큘리 대학에선 여러 신중론을 펼치며 전쟁 동력을 스스로 깎아 먹는 사람이 적잖게 있었으니.
그래서 케빈은 그의 자료와 의견을 받아들여 로큘리 대학 내 강경파와 협상. 공식적인 허가를 받아 유격대처럼 인육 요리사의 사업장을 습격해 그를 압박했다.
로큘리 대학 내 강경파에 힘을 실어 주고, 마탑의 존재감을 확실히 새겨두기 위해.
그리고 의도대로 효과를 점점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가야 할 것 같다.”
테렌스가 통신기기를 꺼내 들며 말했다.
유격대로 움직이기 전 로큘리 대학 측에서 제공한 직통 통신장치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가 바깥을 쏘다니는 사이 라빌리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 숲에서 거인이 나타나고, 용이 나타났다고.”
“둘 다 이 세상에 없는 거니, 별거 아니네.”
“늑대인간도 도시에 출몰하고 있대.”
“멸종한 그 늑대인간?”
“그래. 그리고 빈민가에 개만큼 큰 쥐새끼와 아이들을 납치하는 망태기 할아버지가 돌아다니고, 무덤에는 좀비 떼가 출몰, 하수도에서 악어 떼가 나온다고 하더라.”
“단체로 술이라도 마셨대?”
“미친 소리 같지만 사실이래.”
테렌스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듯 다시 한번 통신장치를 흔들어 보였다.
케빈도 테렌스의 잘못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그럼에도 추궁하듯 물었다.
“안타까운 이야기긴 한데, 그거랑 우리가 돌아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이런 종류의 공격은 중간에 멈추면 의미 없다는 거 알잖아?”
“당연히 알지. 그래서 물어봤고······. 평민파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하더라. 로큘리 대학과 경찰이 바다 건너 양박이들을 불러들여 평민파를 습격하고 있다고 말이야.”
“······양박이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올리버가 저도 모르게 반응했다. 일종의 조건 반사.
테렌스 역시 이런 올리버의 태도에 익숙해졌는지, 한쪽 손으로 원을 만들고, 반대 손으로 검지를 세워 친절히 대답해 주려 했다.
이게 양이고, 이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는 게 어떨까요?”
보다 못한 야렐리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는 차가운 경멸감 깃들어 있었다.
“실수! 숙녀 앞에서 그만. 사과하지······. 어쨌건, 평민파가 우릴 대놓고 매도하고 있어. 자기들을 해치러 온 약탈자라고.”
테렌스의 말을 들은 케빈은 아차 하는 감정과 당했다는 자책감을 동시에 빛냈다. 생각보다 더 난감한 상황인 듯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올리버가 다시 손을 들었다.
“양박이란 단어는 내가 나중에 알려줄게.”
“그것도 궁금하긴 한데, 다른 걸 여쭤보고 싶습니다.”
“뭔데?”
“저희는 평민파를 해치우러 온 게 아니라, 인육 요리사 님과 싸우러 온 거니, 문제없는 것 아닙니까?”
“맞아, 그게 사실이긴 하지.”
“그런데 문제는 그 말을 누가 믿어주냐는 거지.”
케빈의 냉소적인 대답에 테렌스가 맞장구쳤다.
“아니라고 하면 더더욱 의심하는 게 사람 심리거든. 특히, 괴소문이 퍼져 뒤숭숭할 때는 의심과 공격성이 몇 배가 되지. 뭣보다······.”
“······?”
“······갈로스 사람들은 셀랜드 사람을 싫어하거든. 셀랜드 사람도 갈로스 사람을 싫어하고. 보통 이런 상황에서 설득하기란 쉽지 않지. 괴물로부터 목숨이라도 구해주지 않는 한.”
테렌스가 과장을 섞어가며 말했고, 케빈과 야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도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해 고개를 끄덕였다. 갈로스 사람과 셀랜드 사람이 서로를 싫어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솔직히 이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러게······. 인육 요리사 짓일까?”
케빈이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글쎄, 거기 관한 자료는 없어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야. 다만, 타이밍이 예술이긴 하네. 이거 자칫 잘못하면 마탑이 개입할 여지도 사라질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인육 요리사가 저지른 짓은 결코 가벼운 건 아니지만, 갈로스는 이런 문제보다 계급 갈등이 더 심한 문제거든. 이게 급부상하면, 상대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어.”
올리버는 인육 요리사가 왜 갈로스에 터를 잡았는지 좀 더 피부에 와닿게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노린 거라면 그 수완이 가히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다른 문제를 끌어들여 지금 문제를 눌러버린다는 거였으니.
테렌스가 케빈에게 어찌할지 물었고, 케빈은 고심 끝에 대답했다.
“······일단, 복귀한다.”
“복귀 말씀입니까?”
“그래. 안타깝긴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더 큰 문제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케빈은 진실로 안타까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며칠 동안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무리시켜 가면서 맹공을 가했기에.
책임감이 강한 그의 성격상 이대로 물러나기 정말 싫을 터였다.
“음······. 교수님. 일단, 그럼 저 혼자서 이곳을 방문해보는 것 어떻겠습니까?”
올리버 품 안에서 지도를 꺼내며 말했다. 라빌리 외곽지도로 지도에는 이미 수많은 표시가 있었다.
올리버가 그중 유일하게 X표식이 되지 않은 지점을 짚었다.
물류센터로, 루시앙이 말하길 확실하진 않지만, 인육 요리사와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곳이라 했다.
“확실하지 않다는 건, 아니거나 보완 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건데. 일단, 저 혼자서 한번 가서 알아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 근방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업체기도 하고, 뭔가 도움 될 걸 찾을지도 모르니까요.”
그 말을 들은 테렌스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썩 나쁘지 않을지도? 확실히 여기만 남겨두고 가기 찜찜하긴 한데. 일단, 우리끼리 가서 적당히 핑계 대면 되고.”
케빈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결정되려는 찰나, 야렐리가 끼어들었다.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야렐리 씨도요?”
“예, 혼자보다 둘이 나으니까요·····. 또, 가르쳐 주신 술식에 관해 물어볼 것도 있고요.”
야렐리가 올리버가 가르쳐준 마법이 (主)가 되는 술식을 손으로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