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05화 (405/633)

405. 밀리유 (2)

마탑 자체적인 전선을 짜든가, 지휘권을 가지든가······. 그것이 테렌스의 대답이었다.

인육 요리사의 내부 분열 소식을 듣고, 로큘리 대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려던 어제와 너무나도 달라진 태도.

케빈 역시 테렌스의 의견과 다르지 않았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좀 신기하네요.”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 10번 구역. 머피를 기다리던 올리버가 말했다.

올리버 옆에는 순수마력 학파의 위장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 야렐리가 움직이기 편리한 여성용 정장을 입은 채 서 있었다.

드레스뿐 아니라 정장도 잘 어울렸다.

“로큘리 대학이 합심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는 게요?”

“예······. 그리고 인육 요리사 님 세력이 내분 중이라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요.”

그랬다. 로큘리 대학은 생각 이상으로 합심하지 못했고, 동시에 낙천적이었다. 올리버가 보기에도 말이다.

온 대학이 힘을 합쳐 인육 요리사를 잡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케빈과 테렌스가 직접 가서 확인해 본바 그들은 생명연금술 학과의 배신을 두고 아직까지 서로 책임을 추궁하고 있다 하였다.

일종의 정치 싸움.

솔직히 그 자체는 문제가 안 됐다. 정치 싸움은 어디든 있는 법이었으니.

문제는 그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인육 요리사와의 싸움이 뒷전으로 점점 밀려나, 집중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 외에도 인육 요리사와의 싸움에 회의적인 자들이라든가,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내부 감사부터 해야 한다는 등. 대학은 생각 이상으로 단합하지 못한다고 했다.

“동의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기도 해요.”

야렐리가 올리버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변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자연스러운 법칙이니까요. 국가를 포함한 모든 조직은 오래되면 자연스럽게 고착화되고, 그 과정에서 세력과 이해관계 등이 형성돼요. 당연히 편이 나뉠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때때로 어리석어 보이는 정치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는 거죠. 로큘리 대학이 바보 같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흐름에 더 가까워요.”

“음······. 테렌스 님은 바보들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예, 저도 들었어요. 저도 동의하고요. 하지만, 테렌스 님의 로어 가문도 같은 일을 하고 계세요.”

“오,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흥미를 보였다.

“예. 로어 가문 역시 일반 군인들과 알력 싸움을 하고 있거든요. 왕국군 마법 분야의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서요. 마탑도 다르지 않고요······. 모든 사람은 바보 같은 일을 벌일 수 있어요.”

진심인 담긴 야렐리의 조언에,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든 사람은 자기들도 모르게. 혹은, 알고도 바보짓을 하곤 했으니.

올리버 자신도 포함해 말이다.

“그러니 우린 우리 일만 집중하도록 하죠. 그게 더 생산성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옳으신 말씀입니다. 현명한 조언 감사드립니다.”

“감사는요. 같은 임무에 들어가니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어쨌건 로큘리 상황 때문에 이번 임무는 더욱 중요해졌으니까요.”

“뭔지 모르겠지만, 그것 참 다행이군요.”

야렐리와 올리버의 대화 도중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머피 킴벨과 그녀의 이모 매기, 사촌 동생 모리슨 그리고 제인이 보였다.

그들의 뒤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의 경호원들이 한 부대 대기하고 있었는데, 올리버는 그보다 매기와 제인의 옷차림에 더 눈이 갔다.

뭐라고 할까? 평소와 이질적이랄까? 치렁치렁하달까?

“안녕하세요. 흑마법······. 실수. 제논 씨. 복장은 이해해 주세요. 현지에 맞춘 거거든요.”

머피의 이모이자, 킴벨 패밀리의 어른인 매기가 친근하게 인사하며 양해를 구했다.

“아, 아닙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습니다······. 그런데 현지 복장이라뇨?”

“갈로스는 남녀 구분이 확실하고, 귀족들은 고지식해 성별에 맞는 복장을 입는 걸 선호하거든요.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그래서 이렇게 치렁치렁한 옷을 입었답니다.”

올리버는 아······. 하고 탄성을 내며 매기가 쓰고 있는 커다란 모자와 리본, 프릴로 장식된 드레스를 보았다.

확실히, 야렐리와 방문했던 복권(復權) 귀족들의 저택에 저렇게 입은 여성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올리버가 알기로 지금 머피가 만나러 가는 사람들은 복권(復權) 귀족이 아닌 밀리유일 텐데.

“그건 저희가 찾아가는 밀리유. 루시앙 뮈라가 자칭 몰락 귀족의 후예기 때문입니다.”

“자칭요?”

“예, 진짜 귀족인지는 아무도 몰라서요 다만, 밀리유 내에서도 손꼽히는 세력을 가진 사람이라 구태여 따지진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매기 씨. 잘 어울립니다.”

올리버가 매기의 복장을 칭찬했다. 과거, 천사의 집에서 여성이 입은 옷은 무조건 칭찬하라 배웠기에.

매기가 예를 갖춰 대답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제인 아가씨도 잘 어울리십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긴 한데, 한편으로 심정이 참 복잡하네요.”

“그렇습니까?”

“예, 전 이런 옷 안 좋아하거든요.”

제인이 화려한 장신구로 장식된 모자와 프릴 등으로 수놓아진 드레스를 불만스럽게 톡톡 건드렸다.

“전 좀 더 심플한 게 마음에 들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 덜 하긴 했지만, 비슷한 옷을 입지 않으셨습니까?”

“······좋아서 입은 건 아니에요.”

“아······. 그래도 예쁘십니다.”

올리버가 제인을 똑바로 보며 칭찬했다. 천사의 집에서 배운 가르침을 수행해야 했기에. 이유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공기가 다소 어색해졌다.

“음······. 대화 나누는 중에 죄송하지만, 이제 제 일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려고 모인 거니까요.”

어색한 침묵을 뚫고 머피가 입을 열었다. 지극히 옳은 말에 올리버는 바로 응했다.

“예, 물론이지요.”

“다행이군요. 깜빡하셨나 싶어서요······. 이제 저희는 밀리유의 뮈라 패밀리를 만나러 갈 겁니다. 저기 제 부하들이 있지만, 들어갈 수 있는 경호원은 소수고, 그중 한 분이 제논 씨입니다.”

“최선을 다해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머피 씨.”

“예, 압니다. 제논 씨의 실력과 신용을 믿으니까요······. 그래도 주의 부탁드립니다.”

“······?”

“다름이 아니라 루시앙 뮈라는 건달 깡패들이 모인 밀리유 사이에서도 좀 기질이 남다르거든요.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특히, 주의 부탁드립니다.”

***

루시앙 뮈라. 머피는 가는 길 도중 올리버와 나란히 걸으며 그에 관해 정중히 또 자세히 이야기해줬다.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장사치입니다.”

“장사치요?”

“혹은 승부사, 그냥 눈치 빠른 사람, 운 좋은 사람이라 칭하기도 하고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음······.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뛰어난 투자자죠.”

그건 무슨 말인지 이해됐다. 과거, 백 포트(Back Port)에서 밀리유란 조직에 대해 대충 들어봤으니.

도적과 강도, 몰락 귀족에 뿌리를 둔 갈로스의 크라임 펌. 허나, 기질 자체는 전사 혹은 건달 깡패에 가까운 호전적인 자들이라 했다.

“예, 맞습니다. 밀리유 갱들은 다들 그렇죠. 그래서 사업도 일차원적인 것의 비중이 높고요······. 그에 반해 루시앙은 사업 수완이 좋아 밀수, 매춘, 도박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운영하고, 혼란한 갈로스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옳은 선택을 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손에 쥐고 장기간 유지하는 독특한 사람입니다. 여러모로 조심해야 하죠. 애당초 제논 씨에게 부탁을 청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심하겠다고 말했다.

머피 역시 수많은 크라임 펌 회원 중 하나에서 주류왕(酒類王)으로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으니까. 그의 걱정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저기가 말씀하신 딕스 성입니까?”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 10번 구역에 한 고성(古城)을 보며 올리버가 질문했다.

가난한 예술가, 싸구려 노동자, 이주민 등 사회의 하층민이 모여 사는 라빌리 10번 구역은 중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가난한 구역이라 하였으나, 그 구역에 란다의 어떠한 건물과 견주어도 꿇리지 않을 위엄 있는 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히.

“예, 맞습니다. 저런 성이 도시 한복판에 왜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루시앙 뮈라가 사는 집이자, 뮈라 패밀리의 본거지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성에는 다수의 무장병력이 보였다.

무장병력은 단순히 기관단총을 든 자들부터, 중세 기사처럼 갖춰 입은 마력사용자들도 있었다.

“자, 가보도록 하죠.”

머피가 아퀴 강(라빌리를 관통하는 강)의 지류(支流)를 이용해 해자를 만든 딕스 성으로 다가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쇠사슬 갑옷에 장검을 찬 문지기가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십시오. 머피 씨.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자크 씨.”

***

눈빛, 목소리, 분위기, 무엇보다 몸에 깃든 마력이 문지기의 그것을 아득히 초월한 그의 이름은 자크라 했다.

뮈라 패밀리의 행동대장인 그는, 뛰어난 마력사용자이자, 전사라 했다.

머피와 안면이 있는지 그는 딱딱하지만, 예의를 갖춰 인사하더니 회의 참석자와 경호원 넷 등 최소 인원만 데리고 성안으로 직접 안내해줬다.

‘대단하네.’

머피와 매기, 모리슨, 제인의 뒤를 따라 들어간 올리버가 눈동자만 굴려 주변을 관찰, 생각했다.

성 내부는 외관 이상으로 화려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성의 크기를 고려하면 이것만으로 엄청난 비용이 들 것 같았건만······. 일차원적인 사업만 한다느니, 인육 요리사에게 밀린다느니 해도 상당한 부를 축적한 걸 추측할 수 있었다.

‘아니지. 이곳 패밀리만 그런 걸 수도. 머피가 말하길 이곳의 보스인 루시앙은 수완이 좋은 사람이라 했으니. 저분인가 보군.’

올리버가 수많은 그림이 걸린 길다란 복도 끝. 문 너머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 어서 오시오!”

자크의 도움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중년의 사내가 여러 부하와 함께 머피를 맞이해 주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두꺼운 피부와 입술, 사각 턱, 올백 머리를 한 사내로 어딘가 가볍고 능글맞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말이다.

허나, 속에는 란다의 크라임 펌 이사들 못지않은 교활함과 웬만한 마력사용자 이상의 마력을 품고 있었다.

‘거기다 생명력도 엄청나시고.’

올리버가 적잖은 나이임에도 넘치는 생명력을 보유한 루시앙을 보며 생각했다.

머피가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루시앙 씨.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당연히 잘 지내오! 이렇게 직접 와줄 줄이야. 고맙소. 고맙소.”

루시앙은 머피의 말에 요란하게 맞장구치며 악수했다. 그는 손을 맞잡자 크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루시앙 씨께서 바쁘시다니, 당연히 제가 와야죠.”

“이해해 줘서 고맙소. 자자, 이쪽으로.”

루시앙은 머피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어깨에 손을 올려 식탁 앞으로 데려갔다.

머피 역시 참전군인 출신에, 제법 체격과 힘이 있는 사람이었건만, 루시앙의 힘에 떠밀리다시피 자리에 앉았다.

“자자, 여러분도 앉으시오.”

루시앙은 머피를 식탁 앞에 앉은 다음 매기와 모리슨 등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진수성찬이군요.”

머피가 식탁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말했다. 실제로, 식탁 위에는 각종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내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오. 귀한 손님이 있거든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여라. 머피 씨는 우리 소중한 거래처이니 당연한 거요.”

“말씀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데-”

“-잠깐, 먼저 그 수프 먹어 보시오. 머피 씨가 오신다고 하셔서 오늘 아침부터 준비한 거요.”

머피는 말이 잘리고, 뻔히 보이는 루시앙의 수작에 짜증을 느끼면서도 수프를 먹어주었다.

“·····맛있군요.”

“맛있다니 다행이구려! 머피 씨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건데, 그런 의미에서 뭐 하나 물어볼 수 있겠소? 너무 궁금한 거거든.”

“뭡니까?”

“란다에서 지금 하는 라디오 드라마 <마탑과 불륜>의 여주인공은 자기가 가르치는 남학생과 결국 사귀오?”

“전학생이 등장해 여주인공인 여교사를 걸고 남학생과 대결을 펼칩니다.”

“맙소사! 그런 개막장 스토리라니! 역시, 란다라니까!”

칭찬인지, 욕일지 모르는 감탄사를 내는 루시앙.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는지 계속해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식, 유행하는 복장, 자동차 등등. 일상적이고 잡다한 이야기를. 별거 아닌 듯했으나, 이 모든 행동에는 머피를 뒤흔들려는 의도가 있었다.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나가기 위한 수작.

그의 그런 생각에 부하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가령, 루시앙의 뒤를 지키고 서 있는 한 여성이라던가.

단검과 레이피어를 허리에 차고, 강철로 된 코르셋 갑옷을 걸친 그녀는 대뜸 루시앙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음? 아. 아아······. 이보시오! 머피.”

“예, 말씀하십시오.”

“옆에 앉은 아름다운 아가씨가 누군지 물어볼 수 있겠소? 내 딸이 처음 보는 얼굴이라 하는데, 나도 처음 보는 것 같아서. 누구요?”

머피는 인상을 썼다.

“제 사업 투자처에 소속된 제인 씨입니다. 란다에서도 알아주시는 투자자시죠. 바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말씀을 나누다 보니 이제야 말씀드리는군요.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우리 사이에. 근데, 여성 투자자라니. 좀 신기하긴 하네. 란다에는 흔한가? 여성 투자자란 게?”

“란다에서도 흔한 건 아니지만, 좀 있긴 합니다. 시스터후드 소속이시거든요. 그 미란다 여사님의 후원을 받는-”

“-아, 그 매춘부 집단?”

작지만 선명한 목소리. 루시앙에게 귓속말을 했던 여성이 말했다.

경멸감과 도발을 담아 말이다.

실수로라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발언. 그러나 해당 여성은 멈추지 않고 자신의 아버지이자, 보스인 루시앙에게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저 여자는 내보내죠. 이 자린 전사이자 사업가를 위한 자리인데, 저런······. 격에 맞지 않습니다.”

“워, 워. 딸아. 감히, 손님께 그따위로 말하는 건 아니지. 다들 이해해 주시오. 내 딸이 너무 뭐랄까? 음. 이런 문제에 관해서는-”

“-사과하시죠.”

주절주절 떠드는 루시앙의 말을 누군가 툭 잘랐다.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다름 아닌 올리버였다.

“음, 뭐라고?”

“사과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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