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04화 (404/633)

404. 밀리유 (1)

“-만약 도와주신다면 저도 여러분이 하시는 일을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머피가 말했다. 아주 당당하게.

“무엇을 도와주신다는 거죠?”

“마탑에서 아가씨께 부여한 임무요. 로큘리 대학을 도와······. 음. 예.”

머피가 마지막 말을 일부러 뭉갰다. 허나, 무지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알기에 그런 것이었다.

야렐리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대단하시군요······. 어떻게 아신 거죠?”

“전 크라임 펌 소속이니까요. 마탑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시국에 아이스아이 가문 아가씨가 갈로스로 왔다면 바보라도 알 수 있죠······. 야렐리 아가씨께서도 그 때문에 자신을 소개하신 것 아닙니까?”

머피는 야렐리의 속을 꿰뚫어 봤고, 야렐리도 침묵으로 동의했다. 그녀 역시 아무 생각 없이 머피와 제인에게 합석을 제안한 게 아니었다.

레스토랑에서 마주했을 때부터 모두 제각기 계산했다. 야렐리, 머피, 제인. 모두가 말이다.

올리버만 빼고.

“역시, 크라임 펌은 대단하군요.”

“칭찬 감사합니다. 비록, 마탑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저희도 저희 나름의 강점은 가지고 있습니다.”

머피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도 그럴 게, 크라임 펌은 작게는 란다, 크게는 셀랜드의 뒷세계를 지배하는 거대 범죄 조직이었으니.

비록, 마탑과 같은 마법 기술력은 가지지 못했으나, 그들은 수많은 조직원을 거느렸고, 곳곳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넝쿨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넝쿨은 갈로스에도 뻗어있습니다. 비록, 셀랜드만큼 억세지는 않지만요.”

“밀리유 말씀이군요.”

머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처라 여러분의 명령을 따르게 할 수는 없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자리 정도는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이신가요?”

“예. 물론입니다. 자랑처럼 들릴 수 있지만, 크라임 펌이 아니더라도 저 자체적으로 밀리유와 꽤 깊은 파트너십을 맺고 있거든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머피는 질 좋은 마법주를 제조해 밀리유에 공급하는 큰 손이었으니.

밀리유는 그 마법주를 유통해, 인육 요리사의 블러디 와인과 경쟁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자리를 마련하는 것. 딱 그뿐이지만요. 설득은 여러분 몫이겠죠. 하지만,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 밀리유 역시 그쪽과 적대 관계니까요.”

그쪽이라 함은 인육 요리사.

야렐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피의 말처럼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머피를 통하게 된다면 밀리유도 쉽게 장난질을 칠 수 없을 테니.

“······정말 협상 때 경호원 역할만 해드리면 되나요?”

“예. 앞서 말했다시피, 나름대로 준비해서 왔지만, 거래처 앞마당에서 하려니 불안해서요. 협상은 자신감인데······. 데이브 씨께서 도와주신다면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제안. 야렐리는 관심을 보이며 올리버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어떠세요?”

“음······. 이게 저희 임무에 필요한 겁니까?”

“자세한 건, 교수님과 테렌스 중령님과 상의해야 하지만 나쁘지 않은 이야기예요. 밀리유는 크라임 펌처럼 자기 구역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일리 있는 말. 그럼에도 올리버는 찜찜했기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갔다.

“해결사 데이브로는 못 도와드릴 것 같습니다.”

“예?”

예상치 못한 대답에 머피가 되물었다. 쉽게 수락할 줄 알았는데.

“해결사로 일을 받는 건 제 중개인을 통해서 받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해결사 데이브로는 못 도와드릴 것 같습니다.”

올리버가 답답한 소리를 했다. 신용과 안전을 위해 중개인을 끼고 일하는 게 보통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특수한 상황에선 깨지기도 하는 법인데.

허나, 머피는 따지지 않았다. 다름 아닌, 올리버가 한 말이었기에.

“대신, 마탑의 제논 브라이트로는 도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호의로요.”

“얼굴은 데이브 씨 원래 얼굴인데요?”

머피가 지적했다. 실제로 올리버는 지금 데이브의 가죽 가면을 쓴 상태였다. 신분이 합쳐졌기에, 더 익숙한 걸 쓴 것.

“그렇긴 하지만, 제가 갈로스에 있는 이유는 제논의 일을 하기 위해서거든요. 뭣보다······.”

“······?”

“제가 지금은 절 제논이라 정의하고 있고요. 만약 싫으시다면-”

“-싫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머피가 한 발짝 물러났다. 블러핑 같은 걸 하는 인간이 아니었으니.

이야기가 얼추 정리되자 야렐리가 입을 열었다.

“하루 정도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저희도 상의를 해봐야 해서요.”

“물론입니다. 도움을 청한 건 제 쪽이니······. 여기, 제가 묵고 있는 호텔의 통신번호입니다. 결정하시면 이쪽으로 연락해주십시오.”

머피가 자연스럽게 고급 만년필을 꺼내 냅킨에 번호를 적어주었다.

머피의 행동 하나하나에 진짜 사업가와 같은 여유와 격식이 깃들어 있었다.

야렐리가 냅킨을 받으며 답했다.

“최대한 빨리 상의해 대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나쁘지 않네.”

냅킨에 적힌 번호를 확인한 케빈이 말했다.

케빈은 같이 퇴근한 테렌스의 의견도 물어보았는데, 그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한번 시도해 볼 가치가 있을지도. 현지 정보를 알려면 현지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게 최고니······. 거기다 밀리유면 인육 요리사와 적대 세력. 믿을 수만 있다면 딱이긴 하네.”

“역시 같은 생각이시군요.”

케빈과 테렌스의 의견을 확인한 야렐리가 말했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반응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탑 사람들은 같은 메커니즘으로 생각했으니.

마탑의 생존과 이익. 그렇기에 연합체임에도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아마, 마법사라는 특수한 계급으로 묶인 덕분일 터였다. 시스터 후드나 크러임 펌처럼.

‘직업과 계급에 따라 사람은 쉽게 연대감이 형성되었으니.’

올리버가 카버와 가끔 만나 이야기 나눌 때를 떠올렸다. 그는 셰이머스 건 때의 약속대로 올리버에게 사회현상과 정치, 제도 등. 올리버가 궁금해하던 걸 그 나름대로 잘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우연치고는 참 신기하네.”

테렌스가 갑자기 말했다.

“아니, 그렇잖아? 이 타이밍에 제논과 안면이 있는 주류왕(酒類王)이 나타나 이런 제안을 한다는 게······. 무슨 함정인 거 아니야?”

“그건 아닐 거야.”

케빈이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부정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진중함 탓에 강렬한 설득력이 깃들어 있었다.

“오, 자신감 넘치는데? 근거라도 있어.”

“란다의 주류왕과 제논이 만난 건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에 가까우니까.”

“필연요?”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그래, 필연. 우리가 여기 온 이유와 주류왕이 밀리유와 협상하러 온 건 결국 같은 맥락이거든.”

올리버는 아. 하고 탄성을 냈다.

케빈과 테렌스, 야렐리와 올리버가 온 건 로큘리 대학을 도와 인육 요리사를 쓰러트리기 위해서였고, 머피는 인육 요리사의 위기로 세를 불리는 밀리유와 다시 협상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인육 요리사로 전부 귀결되었다.

“뭔가 재밌네요.”

올리버가 감탄하며 말했다. 전혀 다른 문제인 것처럼 보인 문제가 거미줄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재미는 모르겠지만, 우리로서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야. 하기에 따라서는 대학과 별개의 협력 세력을 만들 수 있다는 거니. 신용만 있다면 밀리유는 딱 좋은 상대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밀리유는 인육 요리사와 경쟁하는 조직이라 괜찮은 정보를 알지도 몰랐고, 설사 그게 없다 해도 그들이 보유한 좀도둑, 밀수꾼, 도박꾼 등은 정보를 캐고, 인육 요리사를 잡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될 터였다.

최소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더 나았다.

“맡아도 괜찮겠어?”

“데이브가 아닌 마탑의 제논으로 돕고, 교수님께서 명령하신다면요.”

올리버가 미묘한 부분에서 고집을 피웠다.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올리버 성격도 대부분 알고 있었고.

“갈로스어는 얼마나 익혔지?”

“약간의 회화는 가능합니다. 인사나 안부, 감사, 카페에서 커피 주문하는 정도는요.”

올리버가 야렐리의 보조로 라빌리를 돌아다니던 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야렐리의 옆에서 여러 대화를 들었지만, 대부분 3할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갈로스 사람들은 흥분하면 생각 이상으로 말을 빨리해 알아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 건 이후 야렐리가 설명해주는 걸 참고해야 했다.

“오, 그래도 대단하네. 갈로스어 배운 지 고작 일주일 정도 아니었어? 심지어 독학으로.”

“칭찬 감사합니다. 테렌스 님. 마탑 책이 좋아 그나마 배우기 쉬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갈로스어는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지요?”

“일이 잘 풀려도 협상은 따로 해야 할 테니까. 네 실력은 믿지만, 밀리유의 도움을 구하는 건 별개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케빈이 짚어줬다. 확실히 어려울지도. 일단, 올리버는 갈로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했으니.

“어, 일단, 머피 씨에게 도움을-”

“-그건 제가 따라가서 보조하겠습니다.”

야렐리가 대뜸 끼어들었다.

“네가?”

“예. 라빌리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건 애당초 제 일이니까요.”

“그건, 그렇지만······. 괜찮겠어?”

테렌스가 그답지 않게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

야렐리가 온 게 정보 수집을 위해서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양지(陽地)의 사람이 대상이었다.

같은 마법사, 복권(復權) 귀족, 자본가.

그런데 갑자기 밀리유라니. 야렐리의 가문을 생각하면 난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었다.

“전 괜찮고, 원마스터께서도 문제없을 거라 판단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음······. 차라리 내가 가는 건 어때?”

테렌스가 제안했다. 나쁘지 않을지도. 그 역시 명망 높은 가문 소속이었지만, 방계였고, 엄밀히는 마탑 소속도 아니었으니.

그러나, 야렐리는 거부했다.

“테렌스 중령님. 제안은 감사드리나 거절하겠습니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해서라면 모를까······. 전 임무를 수행하러 이곳에 온 것이지, 보호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야렐리는 책임감과 의지를 빛냈다. 그 마음을 테렌스와 케빈도 느꼈는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그저 질문할 뿐이었다.

“하겠다면 굳이 말리지 않겠지만, 괜찮겠어? 밀리유를 만나다 잘못하면 스캔들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올리버가 말을 꺼냈다. 모두의 시선이 올리버에게 쏠렸다. 불안한 기색과 함께.

“저한테 여성분으로 만든 가죽 가면이 열댓 개 정도 있습니다. 블랙마켓에서 산 건데 그걸 야렐리 씨께서 쓰시면-”

“-마법으로 얼굴을 숨기면 됩니다.”

올리버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야렐리가 먼저 해결방안을 말했다. 서둘러서. 케빈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러면 문제없겠네······. 부탁하지.”

“예······. 혹시, 괜찮으시다면 로큘리 대학은 어떠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야렐리가 로큘리 대학에서 알아낸 정보가 뭐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질문을 들은 케빈과 테렌스는 난감한 감정을 보이며, 서로를 바라봤고, 곧 테렌스가 입을 열었다.

“설명하자면 좀 길어.”

“괜찮습니다.”

“저도 궁금합니다.”

야레리의 질문에 올리버까지 합세하자. 테렌스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하아······.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마탑이 자체적인 전선을 짜야 할 것 같아. 아니면 지휘권을 가지든가. 일단,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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