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402화 (402/633)

402. 예상치 못한 만남 (1)

로큘리 대학에서 마중을 나온 알렝 교수가 말하길 인육 요리사의 조직은 불만이 쌓인 상태라 하였다.

“그리 이상한 이야기도 아니야.”

로큘리 대학을 방문한 후, 숙소인 호텔 방에서 저녁 식사 중이던 케빈이 말했다. 그는 주문한 뵈프 부르기뇽을 먹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로큘리 대학에서 빨리 마탑 지원군을 받기 위해 거짓말한 걸 수도 있잖아? 승리 선전은 전쟁터에서 흔한 수법이고.”

케빈의 맞은편에 앉은 테렌스 로어가 반박 섞인 질문을 했다. 그는 소고기 스테이크인 코트 뒤 뵈프를 먹었다.

“그럴 수도. 대학 쪽은 경찰기관과 힘을 합쳤음에도 그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초조해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르지.”

“충격이 커. 레이크 빌리지 일이 터진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그렇다 해도 나름 적잖은 시간이 흘렀는데, 고작 하부 조직 수십여 개만 툭 하고 건드린 수준이라니. 그 박쥐들······아.”

테렌스가 옆에 앉은 올리버를 보곤 말을 정정했다.

“흠······. 그 언너란 여자 말이 맞는 거 같아. 인육 요리사가 교활하다는 거. 로큘리 대학과 경찰국을 적으로 돌린 마당에 고작 밑바닥 놈들 선에서 피해를 축소하다니. 대단해.”

테렌스는 진심이었다. 비록 과거에 비해 그 영광이 퇴색됐다곤 하나 로큘리 대학은 아직까지 마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조직.

그런 조직이 경찰국과 손잡았음에도 조무래기밖에 못 잡았다는 건 인육 요리사가 그만큼 잘 대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니면, 생각보다 대학과 경찰기관이 머저리일 수도 있지 차라리 그게 더 말이 되겠다.”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겁니다, 갈로스의 정치 사회 문제도 있으니까요.”

테렌스의 빈정거림에 야렐리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케빈과 테렌트의 옆에 앉은 그녀는 주문한 바닷가재 요리인 랍스터 테르미도르를 먹고 있었다.

“정치? 사회?”

“예, 테렌스 중령님. 중령님도 아시겠지만, 갈로스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곳입니다.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요. 아마, 현 정권 입장에서는 흑마법사보다 지금 체제를 뒤집으려는 반대세력이 더 두려워 소극적인 걸 겁니다. 그쪽에 너무 많은 병력을 투입하면 자기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요······. 변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고려해야 할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야렐리는 혹시 모를 오해를 막기 위해 말을 덧붙였고, 테렌스와 케빈은 의심 없이 믿어줬다.

야렐리의 지성과 일을 대하는 태도를 믿었기에.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 로큘리 대학은 그렇다 할 성과를 못 냈어, 그런데, 인육 요리사 내부에서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니······. 난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뭐, 근거라도 있어?”

“어.”

테렌스의 질문에 케빈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일단, 전쟁은 피곤한 일이거든.”

“······.”

“인육 요리사를 목표로 하는 지금 하부조직 수십여 개 토벌한 건 그리 큰 성과가 아니야, 네 말처럼. 아마, 인육 요리사도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지.”

“그렇겠지?”

“하지만 그 밑의 놈들은 어떨까? 인육 요리사의 제자(弟子)와 사손(師孫)들 말이야. 하부 조직은 그놈들이 관리할 텐데.”

“인육 요리사는 조직을 직접 관리해 장악력이 높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 해도 한계는 있지. 갈로스의 뒷세계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 조직을 정말 하나하나 다 관리하겠어?”

일리 있는 말이었다. 아무리 중앙집권적으로 조직을 관리한다 해도, 규모가 규모이니만큼 모든 일을 우두머리가 관리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부하들에게 일을 맡겨야 했다.

“그리고 맡은 놈들은 아닌 척해도 일부는 자기 소유라고 생각할 거야. 봉토(封土)처럼. 애당초 그런 바닥이니까······. 어떻게 생각해?”

케빈이 올리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야렐리의 맞은편에 앉은 올리버는 양송이 파이를 먹고 있었다.

“검은손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모르지만, 흑마법사의 궤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왜지?”

“대부분 그러기 위해 흑마법사가 됐으니까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자기 욕망을 위해서요.”

케빈은 정답이라는 듯 테렌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뭣보다 이 일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내 추측이지만, 인육 요리사의 여동생 그레텔 때문이지. 그녀의 단독 행위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로큘리 대학에 잠입한 것도 그레텔이었고, 레이크 빌리지에서 움직인 것도 그녀 혼자였다.

인육 요리사나 그의 부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상의하지 않은 단독 행위일 가능성이 컸다.

“누군가 멋대로 저지른 짓 때문에 예상치도 못한 소란에 휘둘리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 특히, 그게 우두머리의 철없는 여동생이면 더욱 그렇고.”

“그럴듯한 말이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잖아? 불만이 쌓였다고, 바로 반란을 일으키진 않는다고.”

그 역시 맞는 말이었다. 반란이라는 건 생각보다 큰 에너지를 요구로 하는 일이었으니. 특히, 수백 년을 산 괴물을 상대로는 더욱 말이다.

그래서 올리버도 알렝이 진심인 걸 봤음에도 믿기 힘들었다.

인육 요리사의 부하 중 하나가 정말 인육 요리사만 죽으면 전쟁을 멈출지 물어봤다는 게 말이다.

“두 번째 증거가 있어.”

“뭔데?”

“대학 측에서 했던 말 상당수가 사실이라더군.”

테렌스와 야렐리가 눈을 빛내며 올리버를 바라봤다. 감정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흑마법사를 말이다.

올리버는 대답했다.

“제 눈으로 봤을 때는 진심이었습니다.”

올리버의 말에 테렌스와 야렐리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올리버의 실력은 차고 넘치도록 봤기에.

“물론, 그렇다 해도 100퍼센트 사실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잘못 안 걸 사실이라고 믿을 수도 있으니.”

케빈이 흑마법사 시야 특유의 약점을 언급했다. 흑마법사의 눈은 대상의 감정을 읽는 것이지, 절대적인 진실을 보는 건 아니었다.

“슬슬 헷갈리네······. 결국, 요점이 뭐야?”

“별거 없어. 이 사실을 마탑에 알리고, 너랑 나랑은 로큘리 대학을 진짜로 돕자는 거야. 최선을 다해.”

케빈이 테렌스와 자신을 가리켰다.

“만약, 사실이면 마탑이 리스크를 안으면서까지 단독 전선을 만들 필요가 없어.”

“뭐, 좋아. 작전이란 게 현장에서 좀 바뀔 수 있는 거니. 그렇게 해결된다면 불만은 없어······. 그럼, 이 둘은?”

테렌스가 야렐리와 올리버를 가리켰다.

“원래는 야렐리를 다리 삼아 주변 정보를 같이 탐색하기로 했잖아?”

“이 둘은 적당히 핑계 대서 따로 빼, 우리 대신 갈로스를 조사하게 하자. 원래 계획대로······. 로큘리 대학도 그런 것까지 따지지는 않을 거야.”

“음······. 나쁘지 않지만, 괜찮겠어?”

테렌스가 케빈의 의견에 동조하며 야렐리를 봤다. 야렐리는 특유의 책임감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할 수 있습니다.”

짝! 테렌스가 손뼉을 쳤다.

“그럼, 됐네······. 너도 괜찮겠지?”

테렌스가 올리버에게 물었다. 야렐리를 잘 보조해 줄 수 있겠냐는 것으로,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괜찮고, 오히려 좋습니다.”

“네가 좋다고 하니까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정상이란 증거니까 기뻐해.”

테렌스의 농담에 케빈은 그답지 않게 맞장구쳤다.

어느 정도 역할이 나뉘자 다시 식사를 재개했고, 완전한 밤이 찾아왔다. 이윽고 모두 각자의 침실로 가 잠자리에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케빈과 테렌스, 야렐리와 올리버. 네 사람은 모두 지난 저녁 시간에 나눴던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빈과 테렌스는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호텔 밖으로 나가 로큘리 대학으로 갔으며, 야렐리와 올리버는 그보다 두 시간 늦게 호텔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이 게을러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찾아가면 실례되는 행동이라, 남들 시간에 맞춘 것뿐이었다.

그 증거로 야렐리는 두 시간 동안 방문할 곳 리스트를 작성했고, 올리버는 갈로스어를 다시 복습, 지도를 보며 복잡한 라빌리의 지리를 파악하며 갈로스의 역사책을 훑어보는 등. 시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꽤 재밌었다.

“제논 씨라도 즐거우니 다행이네요.”

한 레스토랑 안에서 휴식을 취하던 야렐리가 말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왔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하긴, 아침 9시에 호텔 밖으로 나와 지금 오후 2시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녀 여러 사람과 만나 주야장천 이야기를 나눴으니······.

거기다 만난 사람들 모두 자기주장이 강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야렐리는 큰 피로감을 느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을 뿐.

‘야렐리 씨 자체가 사람을 상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잘하시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성향과 별개로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야렐리를 보며 올리버가 물었다.

“많이 피곤하신 것 같은데, 혹시, 제가 도와 드릴 것 없겠습니까? 보조니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올리버의 말을 들은 야렐리는 실수했다는 듯 자책하는 감정을 빛냈다.

“······실수했네요. 못 들은 거로 해주시겠어요?”

속마음을 쉽게 보였다는 사실에 야렐리가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올리버는 그 말에 순순히 따랐다. 굳이 싫다는데 억지로 캐는 건 아닌 것 같기에.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예, 알겠습니다······. 어쨌건 전 즐겁습니다. 사실, 저번처럼 한 번 둘러 보고 싶었거든요. 갈로스요.”

저번이라 함은 아르크 고아원에서 란다로 돌아올 때로, 야렐리 역시 그때 일을 떠올렸다.

“아, 기억나네요. 관광하러 간 게 아니라 바로 떠났지만요.”

“예, 물론 지금도 관광하러 온 게 아니지만, 그래도 일하면서 갈로스를 둘러볼 수 있어 즐겁습니다. 이 도시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란다와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거든요······. 뭐라고 할까, 열정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요.”

올리버는 야렐리와 함께 갈로스의 수도 라빌리를 돌아다니며 본 사람들을 떠올렸다.

골목에서 연설하던 청년부터 야렐리가 만난 도시의 상류층까지. 그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갈로스 사람들은 대부분 열정적이죠. 특히, 정치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관해서는요. 덕분에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답니다.”

올리버는 10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텔에서 나오기 전 읽은 책에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유주의가 발족하며 왕의 목을 잘라 공화정을 수립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황제를 모시게 됐고, 또, 그 황제가 무너져 과거의 왕조가 복귀, 또 혁명이 일어났지.’

올리버가 책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렸다. 잘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갈로스란 나라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꽤 놀라운 것 같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열정적인 거 같아요.”

야렐리가 만났던 사람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씁쓸하게 말했다.

가문의 인맥을 동원해 야렐리가 만난 사람들은 마법사, 복권(復權) 귀족, 도시에 새롭게 떠오른 신진 계급인 자산가 등 다양했는데, 공통점이라면 그렇다 할 유용한 정보는 주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들은 생각 이상으로 인육 요리사와 로큘리 대학의 전쟁에 관심이 없었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불만, 왕실에서 주도하는 도시 개발 사업에 관해 떠들거나 혹은 란다에 관해 물어볼 뿐이었다.

갈로스는 너무 혼란해 못 살겠다고 말이다.

“혹시, 속마음을 숨기거나, 거짓말하는 걸지도요······. 그런 분들은 없었나요?”

야렐리는 그렇다 할 성과 없이 보낸 시간을 아까워함에도 절망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 질문했다.

질문을 들은 올리버는 품 안에서 수첩을 꺼냈다. 수첩에는 거짓말을 하거나, 속마음을 숨기는 사람들을 적어놓았다.

올리버가 수첩에 적힌 이름을 이야기하려는 찰나, 갑자기 익숙한 감정을 포착. 올리버는 한쪽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레스토랑의 웅성거림 사이로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울리며, 레스토랑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문 사이로, 두 남녀가 들어왔다.

무슨 우연인지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머피 씨? 제인 아가씨?”

“······데이브 씨?”

“아, 역시 두 분이 맞으시는군요. 안녕하십니까?”

올리버가 자신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은 란다의 주류왕(酒類王) 머피 킴벨과 성공한 여성 투자자로 명성을 알리고 있는 제인을 보며 인사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놀랐다. 갈로스에서 올리버를 볼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여긴······. 도대체 어쩐 일이신지요?”

“일이 좀 있어서요. 머피 씨는 갈로스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전 사업차 방문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인 아가씨는 갈로스에 어쩐- 아, 저번에 호텔에서 일 때문에 란다를 잠시 떠난다는 게 혹시 갈로스였습니까?”

올리버가 호텔에서 제인과 우연히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물었다. 제인은 사업 때문에 잠시 란다를 떠날 거라 했다.

“예······. 갈로스에서 볼 줄 몰랐는데, 반갑네요.”

“저도 반갑습니다. 약간 놀랍기도 하네요.”

“저도 놀라워요······. 새로운 일행을 소개해 줄 수 있나요?”

제인이 마리와 만났을 때와 똑같은 미소와 감정을 빛내며 올리버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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