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마중 (2)
뿌우우우우우━━━━━············.
소란스러운 기차역.
아름다운 창살형 울타리 너머로 날카로운 증기기관 소리가 들렸다.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로, 신호음이 차츰 사라지자 칙칙거리는 소리와 함께 철컥철컥 기계음이 그 빈자리를 대신 채워나갔다.
“다들 표를 꺼내시오! 표를 꺼내시오!”
연기를 내뿜는 열차가 들어오자, 울타리 입구를 지키던 역무원이 가슴을 쫙 펴며 소리쳤다.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의 역무원은 입고 있는 검은색 제복에 어울리게 크고 위엄있는 목소리를 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표를 꺼내지 않고, 딴짓하거나, 저들끼리 잡담을 나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기차역은 소음의 천국이었으니. 열차의 소음을 뺀다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모인 탓에 저 멀리서 외치는 소리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사람들의 잡담과 여러 개의 짐을 실은 핸드트럭의 바퀴 소리뿐이었다.
역무원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는지,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젊은 역무원에게 시켜 뒤쪽에도 표를 꺼낼 것을 전달하게 했다.
“표를 꺼내주십시오! 표를 꺼내주십시오!”
젊은 역무원이 종을 흔들며 승객들에게 부탁했고, 그 말에 맞춰, 비슷한 복장의 승객들이 표를 꺼냈다.
덕분에 한층 빠른 속도로 승객들은 역무원에게 표 검사를 맡아 창살형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열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음······. 좀 기다려야겠구만.”
택시에서 내린 케빈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중얼거렸다.
분명, 혼잣말이었지만, 로큘리 대학에서 멋대로 마중 나온 알렝이 멋대로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따라오시지요.”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걸어가는 알렝. 같이 마중 나온 에라드 역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따라오라 손짓했고, 케빈과 테렌스는 서로 눈을 마주 보다 일단 따라갔다.
당연히 야렐리와 올리버도 뒤따라갔다.
“손님, 줄을 서 주십시오.”
줄을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가던 알렝에게 역무원이 단호히 말했다. 그는 새치기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듯했다.
알렝은 말 대신 품 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여줬고, 근엄했던 역무원은 난감한 기색을 내보이고는 바로 길을 열어주었다.
“아······. 실례했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역무원은 겉으로는 예의를 지켰지만, 속으로는 고까운 감정을 빛냈다. 그건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뒤늦게 오고도 먼저 들어가는 이쪽을 노려봤으며, 그 시선은 란다의 빈민들보다 더 적대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신경 쓰지 마시죠.”
로큘리 대학의 알렝이 잠시 멈춰 선 올리버에게 말했다.
올리버가 뒤따라가자 그는 불평이 섞인 사과를 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요즘 저런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거든요······. 어리석고, 질투심만 많은 사람요. 덕분에,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데도 눈치를 봐야 하죠. 같은 갈로스인으로서 창피합니다.”
올리버는 무엇이 정당한 권리인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자신이 말할 자리라 생각되지 않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아쉬웠는데, 다행히 케빈이 올리버 대신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정당한 권리가 무엇입니까?”
“줄 서지 않고, 바로 열차에 탈 수 있는 거죠. 이 열차를 만드는 데 우리 로큘리 대학의 기술과 자금이 상당히 들어갔거든요.”
알렝이 한 열차 앞에 멈춰 서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일반 열차와 비슷했지만, 외형이 조금 달랐고, 흑마법사의 눈으로 보니 확연히 달랐다.
엔진 부분에서 상당한 마력이 느껴졌다.
일반적인 열차와 확실히 달랐다.
“일반 증기기관과 마력 엔진을 접목한 거군요.”
케빈이 척 보고 바로 말했다.
“오, 안목이 대단하십니다······?”
“신문을 통해 읽었거든요. 에자프레코 쾌속 열차 맞지요?”
상투적인 예의로 일관하던 알렝은 잠시나마 진심으로 기뻐했다.
“예! 맞습니다······. 에자프레코 쾌속 열차. 최신 기술을 접목한, 현존하는 열차 중 가장 빠른 열차죠.”
케빈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고, 그 감정은 진심이었다.
올리버도 해당 열차에 대해 알고 있어 속으로 동의했다. 올리버 역시 신문에서 봤으니.
에자프레코 쾌속 열차는 순수마력학파의 마석 엔진 기술과 증기기관의 기술을 접목한 신식 엔진을 사용했는데, 소량의 마석을 바탕으로 기존에 사용하던 석탄의 소모량을 줄이면서도, 출력을 몇 배로 높이는 신기술이었다.
과도한 출력으로 자칫 과부하의 위험이 있어 쉽게 접목 못 한 기술이었지만, 신문에서 말하길 갈로스의 왕 루이에 의해 추진돼 성공했다고 했다.
열차에는 그렇다 할 관심이 없었지만, 해당 내용이 신문에 실리고 란다의 철도 회사들은 무엇을 했냐는 지탄이 쏟아져나와 기억에 남았다.
주가 하락은 덤이었고.
“직접 보니 확실히 남다르군요. 대단하십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솔직히 저희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기계공학과 마법의 정밀한 예술이니까요.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과학과 마법의 혼합 예술!!”
알렝은 지퍼를 잠그듯 양손을 쫙 당기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엄청난 자부심과 열정이 깃들어 있었다. 흑마법사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하긴, 바다 건너에 있다 해도 마법사는 마법사였으니. 자신이 속한 조직의 성과에 기뻐하는 건 아주 당연했다.
한껏 자랑을 마친 알렝은 아까 전보다 마음의 갑옷이 헐렁해진 채 한 객석을 가리켰다.
0등석. 0번 칸이었다.
“자, 타시죠. 귀한 손님을 위해 귀한 객석을 잡았습니다. 갈로스의 새로운 자랑인 에자프레코 쾌속 열차의 최고급 객석을 즐겨주시지요.”
***
에자프레코 쾌속 열차의 최고급 객석인 0등석.
알렝의 말처럼 그곳은 아주 호화로운 객석이었다.
1등석 객석 역시 넉넉한 자리와 쾌적한 공간이 있는 사치스러운 곳이었지만, 0등석의 넓이와 화려함은 그 궤를 달리했다.
“남다를 수밖에요. 기차에 단 한 곳뿐인 유일한 객석인데요. 와인 드시겠습니까?”
알렝이 널찍한 객실 한쪽에 놓인 선반을 열며 제안했다.
선반에는 와인 외에도 마법주를 포함한 각종 술과 간식이 쌓여 있었다.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습니다.”
“어차피 푯값에 포함된 거라 공짜입니다. 1등석 푯값의 열 배인지라 먹는 게 이득이죠.”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희는 로큘리 대학에 지원하러 온 거지, 관광을 즐기러 온 게 아니라서요.”
테렌스는 약간 아쉬워했으나, 케빈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알렝은 기분 나빠하긴커녕,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표정과 태도가 변했다. 호의와 존중을 담았다.
“다행이군요. 당연한 태도긴 하지만, 요즘 그런 태도를 지닌 분들이 없어서요.”
“테스트는 통과입니까?”
약간 가시가 선 케빈의 질문에 알렝이 사과했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사과드리지요. 마탑에서 온 손님을 그저 대접해 드리려던 것뿐입니다. 로큘리 대학의 기술도 보여줄 겸요. 찔러보려던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개인적으로 안도가 되긴 했지만요.”
진심. 올리버는 흑마법사의 눈으로 보았고, 케빈도 같은 걸 보았는지 그 이상 따지지 않았다.
“저희가 온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따로 마중 나와 달라 부탁하지 않았는데?”
“우리 로큘리 대학도 눈과 귀가 있습니다. 지원 선발대를 마탑에서 보낸다는 건 따로 알아보지 않아도 그냥 알게 됩니다. 누군가 귀띔해주거든요.”
진심이었다.
하긴, 마탑은 여러 학파의 연합체. 어디서 속삭여줬다 해도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당연히 이런 시국에 온다면 비행선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로 올 거라 판단했고, 배로 온다면 렝칼 뿐이죠······. 갑작스러운 마중이 당혹스러웠다면, 이해 바랍니다. 시국이 시국이니, 저희도 조심하려던 것뿐입니다.”
시국이 시국이라·····. 참으로 많은 뜻이 있는 듯했다.
“이해합니다. 로큘리 대학에서 전혀 나쁜 뜻이 없는 것. 그리고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친구가 원래 좀 재미가 없거든요.”
테렌스가 케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특유의 유쾌하고 친근한 태도는 경직된 공기를 한결 풀어주었다.
“하지만 실력 하나는 최고니 믿으셔도 됩니다. 일 처리가 매섭거든요.”
“로어 가문분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믿음직하군요.”
“저희가 누군지도 들었습니까?”
알렝이 자기 소매를 가리켰다. 커프스 단추가 달린.
그 모습에 테렌스는 자기 소매를 살펴봤고, 곧 가문의 사자 문양이 달린 커프스 단추를 달았다는 걸 깨달았다.
“아······. 많이 민망하네요.”
“많이들 하는 실수죠.”
“위로 감사합니다. 로어 가문의 테렌스라 합니다.”
“위대한 사자를 만나 영광입니다.”
“아직 사자라 불리기 많이 모자랍니다······. 이 친구는 원소학파의 마스터 케빈 던바고, 이 아가씨는 아이스아이 가문의 야렐리 아이스아이. 마지막으로 이 친구는 제논 브라이트입니다.”
“아, 다들 명성을 들었습니다······. 모두 그곳에서 활약하신 분들이시죠?”
알렝은 일부러 주어를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만큼 레이크 빌리지를 언급하는 게 괴로운 듯했다.
“예, 아무래도 경험이 있는 쪽이 좋을 듯해서요······. 그래 봤자 선발대지만요.”
“아뇨, 무슨 말씀을······. 본격적인 지원군이 오기 전 미리 현지 상황을 파악하는 선발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압니다. 선발대의 역량에 따라 본대가 왔을 때 바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리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은연중에 숨기고 있던 본론을 꺼내려는 찰나, 케빈이 먼저 선수 쳤다.
“-현재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절묘하게 끼어든 케빈. 너무나도 단호해 무례하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알렝은 그 모습에 자기 질문을 도로 삼키고 입을 열었다.
“자세한 건 대학에서 알려드릴 거라 제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개략적인 건 알려드릴 수 있는데, 그거라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케빈이 대답했다.
***
‘쾌속 열차라더니 정말 빠르네.’
올리버가 바깥 풍경을 살피며 생각했다. 기껏해야 두 시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건만, 쾌속 열차는 수많은 사람을 항구도시에서 갈로스의 수도인 라빌리로 옮겨주었다.
열차의 속도를 고려하면 당연한 걸지도.
로큘리 대학 알렝의 자랑처럼 에자프레코 쾌속 열차는 정말 빨랐다.
고작 몇 번의 울음소리와 달음박질 소리를 내자, 사다리꼴 형태의 렝칼과 해안선은 시야에서 진즉에 사라졌고, 드넓은 들판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 어느새 라빌리 외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덕분에 올리버는 지금 라빌리 외곽에 세워진 거대한 공장을 볼 수 있었다.
‘란다하고 많이 다르네.’
올리버가 도시 외곽에 세워진 공장과 저 멀리 보이는 라빌리 전체를 훑어보며 생각했다.
갈로스의 수도인 라빌리는 규모만큼은 란다 못지않게 거대했으나, 란다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다름 아닌 도시의 밀집도와 체계성으로,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란다는 그 나름의 질서와 체계가 잡혀 하나의 기계처럼 움직이는 데 반해, 갈로스의 라빌리는 군집생물처럼 북적거리지만 그렇다 할 체계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시를 관통하는 U자형 강과 그 강을 중심으로 서로를 잡아먹는 뱀처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소용돌이 형태의 도시구조가 그 증거였다.
“정치적으로 혼란해 저런 거예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시계획이 변경됐거든요.”
야렐리가 낮게 속삭였다. 그럼, 여러 사람이 낙서한 듯한 저 자유분방한 도시 구성도 이해됐다.
“몇 번이나 바뀐 거죠?”
“다섯 번요.”
올리버는 감탄했다. 어떻게 다섯 번이나 도시계획이 바뀌었는지 그 내막이 궁금했다.
갈로스어만 공부할 게 아니라, 역사도 공부해야 했나 싶었다.
뿌우우우우우━━━━━············.
올리버가 약간 후회하는 그때 기차가 다시 한번 울음소리를 냈다.
한번 들어본 소리. 곧 기차역에 도착한다는 신호음이었다.
열차 안에서 잠을 자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맞춰 잠에서 깨, 짐을 챙기는 등. 내릴 준비를 하였으며,
케빈과 테렌스, 알렝, 에라드와 같이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은 하던 대화를 잠시 멈추기로 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이후, 자세한 이야기는 로큘리 대학에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중간에 바깥 풍경에 관심을 빼앗긴 올리버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알렝의 말을 경청하던 케빈이 딱딱하지만, 진지하게 예를 갖춰 말했다.
그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설명하던 알렝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칙칙칙. 철컥철컥철컥.
열차를 타기 전 들었던 소리가 다시 들리며 열차는 서서히 속도가 줄어들더니 멈췄다.
앞으로 살짝 기우뚱거리는 몸.
곧 균형을 잡은 사람들은 객석의 문을 열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네가 듣기엔 어때?”
모두가 내리는 와중 케빈이 올리버 곁으로 다가와 짐을 챙기는 척하며 말을 걸었다.
알렝의 설명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는 것으로, 올리버는 듣고 본 대로 대답했다.
“대부분 사실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최소한 본인이 알기로는요. 나머지는 본인도 확신하지 못하는 거지, 악의를 가진 거짓말은 아닙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군.”
흑마법사의 눈을 사용하는 마법사 케빈이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성취에 기뻐했지만, 곧 다시 의문을 빛냈다.
“그럼, 그것도 사실이야? 인육 요리사 쪽에서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거.”
올리버가 뒤로 고개를 돌려 알렝 쪽을 살핀 다음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믿기진 않지만, 거짓말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