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97화 (397/633)

397. 오랜만 (2)

‘대단해······.’

가난한 형제들 복지관 복도를 걸으며 올리버가 감탄했다.

비록 마탑이나, 내무부 건물, 포레스트의 레스토랑에 비하면 한없이 허름했으나, 올리버의 눈에는 그 어떤 건물 못지않게 대단해 보였다.

그렇지 않은가?

위험을 감수해 셰이머스의 뒤를 캐, 결국, 목표하던 시(市) 복지예산을 받아 얻은 건물이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비록 캔트는 한쪽 팔을 잃었지만, 그는 원하는 목표를 달성한 거였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기 힘으로 말이다.

‘과도한 도움은 독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네······. 그 과정이 다소 힘들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번에는 우리 힘으로 해야 하네. 그래야 성장할 수 있어.’

올리버는 자신이 도움을 제안했을 때, 캔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참으로 멋진 말. 그러나 그는 그저 말로 끝난 게 아닌 행동으로 실천했고, 달성했다.

정말 대단했다.

똑. 똑.

올리버가 한 문 앞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자, 곧이어 문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넨가?”

“예. 캔트 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올리버는 포레스트를 봤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마음의 부담감과 죄책감, 두려움, 거부감으로 안색이 어두워진 그는 지금 이마에 식은땀이 맺힐 정도로 동요하고 있었다.

그가 이 정도로 동요하는 건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많이 긴장했는지, 별거 아닌 접촉에도 그는 흠칫 놀랐다.

“포레스트 님.”

“괘, 괜찮네······. 난 괜찮아.”

“일단, 저 먼저 들어갈 테니, 포레스트 님은 조금만 있다 들어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와놓고 뭔 소린가 싶었지만, 포레스트의 감정은 한순간 반가움, 안도의 감정을 빛났다.

머리로는 들어가야 한다는 걸 안다 해도, 마음은 별개였으니.

“하······. 아니네. 괜찮아.”

“저도 캔트 님과 나눌 대화가 있어서요. 운도 떼야 하고요. 잠시만 기다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올리버가 이리 말하자, 포레스트는 못 이기는 척 받아 주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도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은 법. 그는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켰고, 올리버는 그사이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끼익······. 뻑뻑한 경첩 소리와 함께 책상 앞에 앉아 작성 중이던 장부를 정리하는 캔트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캔트 님.”

올리버가 캔트의 모습을 보며 인사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와 마지막 만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롱코트, 비니, 벽 한쪽에 세워둔 쿼터스태프······. 그나마 달라진 점이라면 옷이 좀 더 깔끔해지고, 수염 역시 정돈됐다는 거였다.

“오랜만이네.”

캔트는 벽에 세워둔 쿼터스태프를 지팡이 삼아 일어나더니, 올리버에게 다가왔다. 절뚝거리는 한쪽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당연히 괜찮고말고. 봐봐. 의수도 적응했어.”

캔트는 한쪽 손을 들어 보였다. 올리버가 선물해준 골렘 의수가 장착된 팔이었다.

돌과 마력으로 이뤄진 팔.

“다행이네요. 사용하는 데 불편함은 없으십니까?”

“없어, 오히려 편리하지. 보라고.”

캔트는 책상 위에 올려진 술병을 향해 손을 뻗었고, 골렘 의수는 착용자의 의지에 따라 쭉 뻗어 술병을 잡아 가져왔다.

“생각 이상으로 편리하더군. 좀 더 빨리 착용하지 않은 게 후회스러울 정도야.”

캔트가 잘려나간 자신의 팔로 농담했다. 올리버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건물이 멋지더군요.”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군. 마탑 마법사 님에게 그런 말을 듣다니······. 비꼰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 진심으로 자네가 자랑스러워.”

“알고 계셨습니까?”

“이래 봬도, 정보로 먹고사는 사람일세.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귀동냥으로 알 수 있는 건 거의 다 알아······. 뭔가 복잡한 사연이 있는 거 같더군.”

“그게-”

올리버가 설명하려 하자 캔트는 손을 들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

“예. 그건 아닙니다.”

“그럼, 굳이 설명할 필요 없네, 란다에 사정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보다 무슨 일로 찾아왔나? 바쁠 텐데 이리 연락까지 하고 온 거 보면 뭔가 볼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속을 꿰뚫은 캔트. 올리버는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고민했다.

이미 차일드들과 이십여 차례 연습까지 했건만, 막상 이야기하려니 딱히 좋은 방법 같지 않았다.

올리버는 고민했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포레스트 님이 오셨습니다. 저랑 같이요.”

“······.”

“제가 고집을 부렸거든요······. 다짜고짜 죄송하지만, 만나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올리버의 물음에 캔트는 말없이 올리버를 봤다.

캔트의 분노를 각오하고 벌인 일이었지만, 예상과 달리 캔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망설였고, 슬퍼하며, 생각에 빠질 뿐.

괴로운 침묵이 이어졌다. 올리버조차 약간 괴로운 침묵이. 그럼에도 방안의 캔트와 방 밖의 포레스트에 비하면 별 건 아니었다.

영원처럼 긴 침묵이 이어지던 중 캔트가 입을 열었다.

“만나고 싶네.”

‘물론’, ‘그래’가 아닌 만나고 싶다고 캔트가 대답했다. 올리버는 문 너머 동요하고 있는 포레스트를 봤다.

그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죄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했으나, 중개인 특유의 인내심과 바닥까지 긁어모은 용기, 각오를 다지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끼익. 뚜벅. 뚜벅. 뻑뻑한 경첩 소리와 구둣발 소리. 캔트와 포레스트는 긴 세월을 지나 마주했다.

“······.”

“······.”

“······.”

다시 이어지는 침묵. 그러나 감정 상태는 정반대였다.

포레스트는 당장이라도 사과하고 싶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죄책감이 너무 심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캔트 역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올리버는 자기라도 먼저 입을 열어 이 침묵을 깨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여긴 자신이 나설 자리가 아니었다.

좋게 끝나든, 나쁘게 끝나든. 그건 캔트와 포레스트의 몫이었다.

“데이브······.”

“예, 캔트 님.”

“잠시 자리를 비켜 줄 수 있겠나? 단둘이 대화 나누고 싶어서······. 가능하겠나?”

캔트가 부탁했고, 포레스트도 무언으로 동의했다. 당사자 둘 모두.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 밖으로 나갔다.

끼익. 뻑뻑한 경첩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

올리버는 캔트와 포레스트 단둘을 남겨두고 밖으로 나와, 가난한 형제들 복지관을 둘러 봤다.

건물 밖에는 튀긴 빵을 나눠주는 무료급식소 외에도 동전 한 푼으로, 하룻밤 재워주는 구빈원도 있었다.

평균 가격이 동전 두 푼인 걸 고려하면 상당히 싼 가격. 심지어 줄에 매달아 재우는 빨랫줄 잠자리가 아닌, 나무판자로 만든 관짝 잠자리를 제공했다.

‘그래서 사람이 많았구나.’

올리버는 공짜 빵과 싼 잠자리를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 외에도 올리버는 복지관 내부와 주변을 둘러봤고, 그러기를 대략 1시간. 포레스트가 밖으로 나왔다.

“포레스트 님.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그래, 끝났네.”

포레스트가 대답했다. 이야기가 잘 끝났는지 올리버는 묻고 싶었지만, 한층 나아진 포레스트의 얼굴과 감정을 보고 질문을 삼키기로 했다.

“그렇군요. 그럼, 돌아가죠.”

“아니, 캔트에게 가보게. 자넬 불러 달라더군.”

“저를요?”

“그래, 난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천천히 다녀와······. 고맙네.”

올리버는 포레스트의 말에 의아해하면서도 캔트가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뻑뻑한 경첩 소리가 울리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한결 개운해 보이는 캔트가 술잔을 들이키며 올리버를 반겼다.

“고맙네.”

“예?”

“포레스트를 데려와 줘서······. 당혹스럽긴 했지만, 오래된 얼룩을 씻은 느낌이야. 진심으로 고맙네.”

“도움이 됐다니 기쁩니다. 불쾌하실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올리버의 말을 들은 캔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네와 대화를 나누면 즐거워.”

“그렇습니까?”

“가끔씩은 답답하긴 해도, 존중받는 거 같거든. 그래서 즐거워.”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이긴 해. 자네 성격은 좋지만, 조직을 운영하긴 어렵지 않을까 해서. 생각보다 지저분한 일이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X구역에서 조직을 하나 만들었잖나······. 아닌가?”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지만, 곧 그게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선택하는 사람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긴 한데, 캔트 님께서 뭔가 잘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예, 아는 분들에게 건물을 사주고 X구역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준 건 맞지만, 조직을 만든 건 아닙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글쎄······. 아는 사이라고 건물을 사주지 않으니까?”

“X구역이라 집값이 싸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포레스트 님께서 저 대신 흥정해 깎아주시기도 했고요.”

전혀 해명되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캔트는 따지지 않았다. 애당초 올리버는 이런 성격이었으니. 자신 역시 그 도움을 받은 적 있었고. 본인에게 문제만 없다면 상관없었다.

“그럼 다행이고······. 아, 그럼, 혹시, 사업가 아가씨를 두고 바람피웠다는 이야기도 거짓인가? 너무 궁금해서.”

“예??”

“아니, 조직원 중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자네가 바람피우다 들켰다는 이야기를 했거든.”

“호텔이라면······. 제인 아가씨 말씀입니까?”

올리버가 제인를 말했다. 근래 호텔에 간 적은 그때뿐이었기에.

“그래, 그 아가씨. 요즘 뛰어난 투자자로 명망을 높이고 있는. 사실 난 자네답지 않은 행동이라 의심하긴 했지만······.”

“어······. 제가 알기로, 바람을 피운다는 건 일단 연인이 있어야 가능한 거로 아는데, 맞습니까?”

“보통 그렇지.”

“전 그럼 바람피운 적이 없습니다. 일단, 사귀는 사람도 없거든요.”

캔트의 두 눈이 커졌다.

“······제인 아가씨와 사귀는 거 아니었나?”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부터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아니, 그런 소문이 들리고, 그 아가씨도······. 아냐, 됐어. 내가 또 헛소문을 들었나 보군. 내가 얻는 정보 중 반은 헛소문이기도 하거든.”

“아······. 오해가 풀렸다니 다행입니다.”

“불쌍하구만.”

“예?”

“아냐, 아무것도······. 어쨌건, 도움이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하라고 불렀네. 큰 힘은 못 되겠지만 미약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이미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올리버가 처음 란다로 와 캔트를 만나고 이후, 제인과 도망치던 중 도움을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그 외에도 무수한 도움을 받았다.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캔트는 미소 지으며 올리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

올리버는 그 손을 맞잡았다.

홱.

손을 맞잡자마자 캔트가 묵직한 팔 힘으로 올리버를 잡아당겼다. 그리곤 속삭였다.

“레이크 빌리지, 어젯밤 테러에 대해서도 듣게 됐네.”

“······.”

“주제넘긴 하지만 꼭 갈로스로 가야겠나?”

“······.”

“자네 실력을 못 믿는 것 아니야. 자넨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야. 힘으로든, 마음으로든······. 하지만 굳이 불 속으로 자청해 들어갈 필요가 있겠나?”

캔트는 진심이었다. 올리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올리버는 그 마음에 화답하듯 들고 있던 쿼터스태프를 내리며 맞잡은 캔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야 합니다. 이유가 생겼거든요.”

“뭔지 물어볼 수 있겠나?”

“······때려 주고 싶어서요.”

인육 요리사의 정식 초대를 떠올리며 올리버가 대답했다.

이 대답 역시 제대로 된 대답은 아니었지만, 캔트는 힘없이 웃을 뿐이었다.

자신이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구만······. 그럼, 부디 무사하길 빌겠네.”

“감사합니다······. 아, 저도 뭐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별 건 아니고, 혹시, 진짜 팔을 새로 만들어 다실 수 있다면, 생각 있으십니까?”

“새 팔?”

“예, 살과 피, 뼈로 이뤄진 진짜 팔요······. 어쩌면 다리도 치료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괜찮네.”

캔트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괜찮은 수준이 아닌, 거부하는 것. 올리버가 그 이유를 묻자 그는 해탈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정말 고마운 제안이지만, 이 상처들은 내 삶의 역사이기도 하네, 그냥 짊어지고 가려고 하네. 그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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