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 돌아온 마탑 (2)
레이크 빌리지.
바다 건너 갈로스와 대륙 사이에 위치한 관광 마을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그 불미스러운 사건이란 다름 아닌 마탑의 생명학파와 로큘리 대학 생명 연금술 학과의 배신으로,
그들은 학술회라는 명목으로 마탑과 대학의 인사, 대륙 중앙의 마법사 가문까지 불러들여 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변명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배신.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해당 사건의 배후에 흑마법사가 개입돼 있다는 거였다.
자칭 인육 요리사인 그레텔이 말이다.
놀랍게도 그녀는 신분을 위장한 채 생명 연금술 학과에 잠입, 조직을 내부에서 잡아먹었다 하였다.
“한 원로 마법사는 역사 전체를 통틀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참담한 일이라 한탄하고 있지······. 그리고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야. 흑마법사의 농간으로 마법사가 마법사를 배신했다는 거니. 이걸 어떻게 변명하겠어.”
케빈이 말을 끝마치며 커피를 따랐다.
달라진 교수 연구실처럼 커피의 향도 좋아졌다. 그는 올리버에게도 먹을지 물어봤고, 올리버는 자신도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쪼르르륵.
“덕분에 마탑은 아주 골치가 아프지만, 덕분에 난 새로운 교수 연구실을 얻을 수 있게 됐지······. 질문해.”
케빈이 손을 든 올리버를 향해 말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올리버는 입을 열었다.
“레이크 빌리지 일이 심각한 건 알겠습니다.”
“기특하군.”
“저번에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셔서요. 다만, 새 교수 연구실과의 상관관계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답답하군.”
케빈이 속에 있는 말을 가감 없이 말했다. 그렇다고 대답까지 대충 해주는 건 아니었다.
“해결사 일을 할 때 어렵고 위험한 걸수록 보수가 커지지?”
“예.”
“그거랑 같아. 레이크 빌리지는 마탑과 로큘리 대학 모두에게 큰 피해를 줬지만, 상대적으로 마탑은 나은 편이거든. 왜냐면 피해가 더 커지는 걸 우리가 막았으니까.”
“아······.”
올리버가 소리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케빈과 자신을 포함한 순수 마력 학파의 필립 중장과 테렌스, 스카디 소학파의 야렐리와 틸다 등. 마탑 인사들이 재정비해 결과적으로 생명학파와 생명 연금술 학과의 음모를 저지할 수 있었다.
“물론, 전부 다 구하진 못했지만······. 솔직히, 무사한 사람보다 무사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지.”
“그 정도입니까?”
갈로스에서 돌아오자마자 논문을 작성하러 가느라 해당 사실을 자세히 접하지 못한 올리버가 물었다.
“그래. 피해가 막심해. 실종자도 사상자도 많이 나왔으니. 대표로 아그니 소학파와 엔릴 소학파의 원마스터들이 있지. 둘 다 사라졌거든.”
원마스터(One Master)는 그랜드 마스터(Grand Master) 다음가는 직책. 이런 문제에 어두운 올리버조차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마탑 내 교수나 간부들도 많이 죽었고.”
“그럼, 이 교수 연구실의 원래 주인이 죽었기에, 교수님이 배정받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까?”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려. 연구실이 빈 건 맞지만, 이 연구실을 내가 가진 건 레이크 빌리지에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거든.”
“축하드립니다.”
“축하하지 마. 그 공신 명단에 너도 당당히 포함되어 있으니까.”
“저요?”
“그래, 너요. 방해를 뚫고 세계수에 접속해 상황을 파악하고, 공간 학파 마법이 가미된 안개 결계를 역으로 이용해 이동을 책임지고, 그 필립 중장과 함께 테오도어를 막았으니. 당연한 거지. 일일이 설명하는 게 우스울 정도야.”
“저는 교수 개인 직원이라······. 거기다. 테어도어 님을 해치운 건 어르신 아닙니까?”
“공식적으로 그렇지만, 실제로는 네가 해치웠잖아? 날 바보 취급하지 마.”
“아, 죄송합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상관없어. 거기 참가한 것만으로도 넌 큰 공을 세운 거니까. 심지어 그 테어도어와 잠시나마 싸우기도 했고······. 그건 엄청난 일이야.”
엄청난 일. 올리버는 그 사실까지는 부정하지 못했다.
테어도어는 다름 아닌 마탑 내에서도 주가를 올리고 있던 생명학파의 그랜드 마스터였으니.
실제로 직책에 어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호수의 마력이 없었으면 싸움조차 성립하기 힘들었을 터였다.
화력 차이가 너무 심해서 말이다.
“운이 좋았습니다.”
“계속 운이 좋으면 그 운도 실력이라고 봐야겠지.”
케빈이 헛소리라는 듯 단박에 잘라 말했다.
“어쨌건, 레이크 빌리지가 점점 공론화되면서 거기서 활약한 사람도 발표했어. 마탑도 체면치레는 해야 하니. 그리고 거기 나와 네가 당당히 포함되어 있어.”
“그렇군요······. 그래서 학생분들과 교수님들이 절 그렇게 본 거군요.”
“그것도 반은 맞지만, 반은 틀렸어.”
“예?”
“네 논문 때문이기도 하거든.”
“논문이라면······?”
“[혈마법과 생명마법을 접목한 신체와 장기의 재구축과 이식] 말이야.”
“어르신께서 제출하셨습니까?”
“그래, 그리고 모두가 경악하고 있지. 마탑의 지도부와 그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모든 마법사가 말이야.”
***
케빈은 설명했다.
“신체의 완벽한 회복. 의외라면 의외고,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마법사들이 이룩하고 싶은 업적 중 하나야. 아무리 기계다 골렘이다 의지(義肢)가 발전한다 해도 살과 피로 이뤄진 진짜 몸뚱이에는 비할 바가 아니니까.”
올리버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만 해도 캔트에게 골렘 의수 대신 진짜 팔을 달아주고 싶었으니까.
‘한번 여쭤봐야겠다. 포레스트 님과 함께 갈 때······. 뭐, 딱히 좋아하실 것 같진 않지만.’
“특히, 마법사들은 더욱 그렇지.”
“그렇습니까?”
“그래, 다들 마법사들은 머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당연한 거고 더 높은 경지를 원하면 몸도 좋아야 하거든.”
올리버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마탑에서 육체 단련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았으니.
마법이나 이론 공부에 비해 비중이 적은 건 사실이었지만,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강력한 마법을 다루기 위해서는 그만큼 육체도 따라줘야 했기에.
“마법사는 팔다리 하나만 나가떨어져도 실력이 몇 단계 하락하니까. 넌 모르겠지만.”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팔다리가 날아간 본 적이 없으니.
“그런데, 그건 교수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렇지. 내 팔다리도 멀쩡하지. 하지만, 팔다리를 잃은 종군 마법사는 심심치 않게 봐서, 알아.”
“그런 경우가 많습니까?”
“전쟁터니까. 눈먼 총알, 식민지의 테러 등,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올리버는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란다에도 초인은 많았지만, 생각 외로 초인들은 허무하게 잘 죽기도 했다.
“어쨌건 그렇기에 생명학파, 연금술 학파를 비롯해 그쪽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마법사들은 잃어버린 신체를 복원하는 방법을 많이들 연구했어. 수술, 포션, 생체 연금 등등······. 전부 실패했지만. 그만큼 사람의 육신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야. 일부조차····. 그런데 넌 성공했어.”
케빈이 감탄을 담아 단호하게 말했다. 미리 올리버의 논문 주제를 들었음에도.
올리버가 조심스럽게 정정했다.
“엄밀히 말하면 저 역시 만들진 못했습니다. 핵(核)과 다른 시체의 조직을 이용해 신체와 장기를 일부 재구축한 것뿐입니다.”
올리버의 정정을 들은 케빈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게 더 맞는 말이긴 하네. 그렇다 해도 상관없어. 뭐가 됐건, 넌 생명학파 마법사들도 실패한 걸 성공한 거니.”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담담히 대답했다.
왜냐면 송장인형 강화 연구를 하던 중, 시간도 아낄 겸 겸사겸사 작성한 논문이었으니까.
물론, 해당 연구가 쉬웠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애당초 혈마법을 몰랐고, 프타스 어시스턴트를 배우지 못했으며, 테어도어의 의학 마법 지식을 엿보지 못했다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으니까.
많은 기교와 학문이 접목된 연구.
그러나 그와 별개로 마탑에 남기 위해 겸사겸사 작성한 것도 엄연한 사실.
그런 연구가 마탑 지도부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는 게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올리버는 약간 어지러운 머리를 정리하며 핵심을 질문했다.
“교수님. 그럼, 저는 마탑에 잔류할 수 있는 겁니까?”
“그래. 마탑이 갑갑한 곳이긴 해도, 바보는 아니거든. 스승님이란 명분도 있고, 네 활약도 있으니. 오히려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수해서라도 널 마탑에 붙잡고 싶어 할 거야.”
“다행이군요.”
올리버가 담백하지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직은 마탑에 더 있고 싶었기에.
읽고 싶은 책이라든가, 마탑의 운영 방식이라든가, 세계수 활용법, 교육 시스템 등 아직 배울 게 많았다.
“내가 널 미리 부른 것도 이 사실을 제대로 설명해주고, 면접 때 대충 무슨 말을 하면 될지 알려주기 위해서야.”
“면접 말씀입니까?”
“그래, 널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네 성격이 좀 그래.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미리 구분시켜 놔야 하거든. 네 탓도 있으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
“기분 나쁘지 않습니다, 교수님. 다만, 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케빈이 미리 작성한 면접 예상 질문지와 대답 목록을 꺼내며 되물었다.
“뭐가?”
“제가 왜 면접을 보는 거죠?”
“······? 그냥 요식 행위야. 너무 걱정하지 마.”
“아뇨, 그런 말이 아니라, 전 교수 개인 직원인데, 면접을 왜 보는 거는 건지 여쭤본 겁니다. 저번에는 이런 일 없지 않았습니까?”
“교수 개인 직원?”
“예······. 교수 개인 직원으로 마탑에 남는 거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아니지······. 교수 개인 직원이 이런 논문을 썼다고 할 순 없잖아. 마탑 소속인 마법사가 써야 그나마 말이 되지······. 반대로 물을게, 스승님께서 설마 논문 쓰라고 했을 때 교수 개인 직원으로 남는 건 줄 알았어?”
“예.”
올리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왜냐면 마탑의 정식 마법사가 되는 건 생각도 안 했고, 딱히 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왜 생각도 안 했고, 되고 싶지도 않은 거지?”
“일단, 전 흑마법사에 해결사고, 두 번째는 정식 마법사가 되면, 마탑의 규칙에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러고 싶지가 않거든요. 마탑에 규칙이 메이는 것요.”
***
마탑의 핵심 기관인 행정부.
그곳의 책임자인 행정부장과 그의 양옆에 앉은 모이라이, 공간학파의 마스터들이 케빈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듯 어이없어하는 표정 말이다.
올리버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마탑 소속 정식 마법사가 되는 대신, 교수 개인 직원으로 남는 게 그리 과한 욕심인 건가 싶어서.
마탑 행정부장이 물었다.
“왜 마탑 규칙에 메이기 싫다는 건가?”
“마탑에 정식 마법사로 소속되면 마탑의 지시를 따라야 할 텐데, 그 지시 중 제가 따르고 싶지 않은 게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마탑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냥 개인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올리버는 성심성의껏 대답했으나, 행정부장은 표정과 감정을 더더욱 일그러트릴 뿐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비록, 올리버가 해결사로 입지를 쌓은 상태였지만, 그렇다 해도 마탑의 생활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수입이야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올리버가 하기에 따라 더 풍족할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돈 외에는 마탑이 훨씬 나은 부분이 많았다.
안전이라든가, 복지라든가, 사회적 명예와 같은 거 말이다.
공교롭게도 올리버의 관심 분야는 아니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군······.”
“죄송합니다, 행정부장 님. 그런 상황이 온 뒤에 딴말하는 것보다 지금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하는 게 좀 더 예의에 맞는 듯해 말씀드린 겁니다. 마탑에 어떠한 악의가 있는 건 아니니,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올리버가 정중히 이해를 구했으나, 면접을 맡은 행정부장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올리버를 파헤치려 했다.
“그대는 이미 케빈 교수의 개인 직원으로 마탑에 소속되지 않았나? 그런데,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마탑의 정식 마법사가 되는 건 왜 싫나? 편하게 대답해줘. 이해가 안 되는 것뿐이니.”
마지막 말은 빈말이었으나, 올리버는 대답했다. 케빈이 조언해준 대로.
“교수 개인 직원은 엄밀히 말하면 마탑의 정식 소속도 아니고, 교수의 개인 고용에 더 가까운 거라 해 응했습니다. 언제든지 잘릴 수도, 그만둘 수도 있어서요. 뭣보다 어르신께서 한번 해보라 권하셨고요.”
올리버는 케빈이 조언대로 멀린의 이름을 팔았다.
그런 것만으로 행정부장과 다른 마스터들은 함부로 따지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조언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 그런가?”
“예.”
행정부장과 마스터들은 이런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다시 한번 난감한 기색을 비치며 올리버를 유심히 관찰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독하듯.
그러거나 말거나 올리버는 원래 계획대로 가만히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계획이라고 해봤자, 마탑에 쫓겨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줄지 기다리는 것뿐이지만.’
이왕이면 후자면 좋았으나, 전자도 크게 상관은 없었기에 올리버는 케빈의 조언대로 가만히 기다렸다.
긴 침묵 후, 행정부장이 입을 열었다.
“그럼, 마탑을 나가도 전혀 아쉽지 않다는 건가?”
“아쉽지 않은 건 아닙니다. 다만, 그 길밖에 없으면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합니다.”
올리버가 케빈의 조언대로, 또 자신의 심정대로 대답했고, 긴 침묵이 다시 이어졌다.
침묵이 절정에 달하자, 올리버는 양해를 구하며 일어나려고 했고, 그때, 행정부장이 입을 열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이와 관련해 상의해볼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