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 위대한 분 (2)
올리버는 이완의 부탁대로 붕대 사내를 꺼내주기 위해 Z구역에 우뚝 선 거대한 가로수로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올리버는 다시 한번 자신이 만든 나무의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이나 코, 입 등이 달리지 않았건만, 그 크기와 기이한 검붉은 색 탓인지 내뿜는 위압감이 남달랐다.
붕대 사내의 생명력과 감정을 흡수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뭔가 익숙해······. 전에 한 번 느껴본 적 있는······아, 퍼펫 님.’
올리버는 오염구역에서 처음 퍼펫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좀비 군대에 포위당하고, 지하로 내려와 퍼펫과 싸웠을 때를.
퍼펫은 올리버를 제압하곤 삼키려 했다.
‘지옥의 입구다. 통째로 삼켜주마.’
그것이 진짜 지옥의 입구인지 아닌지 아직도 알 수 없었으나, 그때 본 것과 지금 나무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사뭇 비슷했다.
꽤 흥미로울지도.
“무사하십니까. 선생님······. 아, 무사하시구나.”
올리버가 여러 개의 줄기가 뒤엉킨 거목을 조종해 그 속에 갇힌 붕대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올리버의 공격을 제대로 당해 온몸이 나무뿌리에 관통된 상태였다.
상식적으로 살 수 없는 수준. 그러나 그는 살아있었고, 올리버는 딱히 놀라지 않았다.
애당초 놀라려고 했으면, 혼자서 이만한 생명력과 감정을 뽑아냈을 때 놀랐어야 했으니.
올리버가 개발 반대 위원회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단 하나, 이들을 일반 상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건 알았다.
“괜찮으십니까?”
올리버가 나무 내벽에 손을 대며 물었다.
숙주의 생명력과 감정을 모조리 빨아들이려던 나무는 올리버의 속마음을 읽은 듯, 하던 행위를 일제히 멈췄고, 스스로 뿌리를 뽑아 숙주를 놓아주었다.
“감사합니다.”
올리버는 자신의 마음을 읽어준 나무에 감사를 표하며, 붕대 사내를 부축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붕대 사내는 올리버의 손을 정중히 거절하며 질문했다.
“끝장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음······. 끝장내야 하나요?”
“제가 다시 공격할 수 있지 않습니까?”
“다시 공격하실 겁니까?”
“······전 방금 당신을 습격했습니다.”
“하지만 절 해치진 않으셨지요. 그럴 수 있었음에도요.”
올리버가 블랙 슈트가 박살 내지 않는 선에서 공격을 가한 붕대 사내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는 올리버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저의 행동에 화가 나지 않으십니까?”
“글쎄요. 애당초 제 직업이 직업인지라, 갑자기 습격받는다고 불평하기가 좀······. 서로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이쯤에서 화해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올리버가 화해를 제안했고, 붕대 사내가 고개를 들어 올리버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역시, 친절하시군요······. 너무 말입니다. 위대하신 분이여.”
“제 이름은 데이브입니다. T구역 30번 거리의 해결사죠······. 괜찮으시다면 선생님의 성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바솔로뮤입니다.”
***
인사를 나눈 올리버는 바로 전에까지 난투를 벌인 붕대 사내······. 아니, 바솔로뮤와 함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무 밖으로 나왔다.
뭔가 말이 안 되는 장면이었지만, 실제로 일어났다.
“저분들 모두 개발 반대 위원회입니까?”
어느새 사방을 포위한 수십 명의 붕대 사내들을 보며 올리버가 물었다.
그들 모두 바솔로뮤와 대검-붕대 사내처럼 붕대를 두르고 있었으며, 올리버에게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위대한 분을 보기 위해-”
“-놀랍군. 약간 미친 것 같기도 하고. 그사이 화해한 거야? 행동하는 것과 다르게 친화력이 좋구만!”
바솔로뮤가 말하는 도중 이완이 끼어들었다.
예상대로 그는 바솔로뮤를 포함한 개발 반대 위원회 전체와 안면이 있는 듯했다.
결이 맞지 않는 분위기와 높은 음색의 이완을 보고 개발 반대 위원회가 보인 감정이 그 증거였다.
저 인간 또 저러네·····. 꽤 익숙해 보였다.
덕분에 대화의 흐름이 깨졌지만, 올리버로서는 썩 나쁘진 않았다.
애당초 이곳에 온 이유가 이완 때문이었으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완 님.”
“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차분하구만. 왜 속였냐고 따질 줄 알았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궁금하긴 궁금합니다. 다만, 더 급한 볼일이 있어서요.”
“더 급한 볼일? 뭔데?”
이완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올리버는 이완에게서 받은 통신 장치를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사람의 머리를 압축 건조한 고깃덩어리였다.
“주문한 물건이 완성됐다고 하셨잖습니까? 괜찮으시다면, 볼 수 있겠습니까?”
“큰일이군.”
“예?”
“나도 내가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나름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인데, 널 보고 있으면 나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거든. 가짜는 진짜를 못 이기는 걸까?”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못 알아 처먹는단 게 진짜 미쳤다는 증거지. 슬퍼······. 잠깐만 기다려 봐.”
이완은 자신의 두꺼운 망토를 뒤적였다.
온갖 잡동사니를 주렁주렁 매단 망토가 절그럭절그럭 소리를 냈다.
어떻게 저리 많은 물건을 달고 다니는지 의문일 지경.
잠시 후, 절그럭대는 소리가 멈추며 이완이 망토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다름 아닌 조끼였다. 사람의 얼굴 가죽을 여러 개 엮은 면피(面皮) 조끼.
“이게 제가 부탁드린 아이템입니까?”
“그래.”
이완이 아까 전과 사뭇 다른 진지한 태도로 대답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스스로 뛰어난 장인이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일 자체만큼은 진지하게 임했으니.
일을 받을 때는 장난스러운 그였지만, 막상 거래가 이뤄지면 물건을 제대로 가져다줬다.
일례로 올리버가 고기 망치를 대가로 주문한 톤파 한 쌍을 시의적절할 때 완성해 넘겨준 게 그 증거였다.
이완이 조끼를 펴 보이며 설명을 시작했다.
“부탁한 대로 대량의 혈액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는 아이템이야. 내 천부적인 센스를 발휘해 의류 형태로 가공했지. 지니고 다니기 편하게. 고맙지?”
“예,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올리버는 그저 아이템이라 하며 원하는 기능을 말했을 뿐, 그 형태는 설명하지 않았다.
확실히 의류 형태인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았다.
“시험해 본 결과 여기 조끼에 보관할 수 있는 혈액의 양은 약 60에서 72리터야. 사람 열두 명분이지.”
올리버가 조끼를 살펴봤다. 우연의 일치인지 조끼를 이루는 면피(面皮)의 개수 역시 대략 12개였다. 일단 앞쪽에 여섯 개가 있었으니.
“솜씨가 뛰어나시군요.”
올리버가 면피 조끼의 상태를 살펴보며 말했다.
여성과 남성의 얼굴 가죽을 기워 만든 조끼는 하나같이 눈이 꿰매져 있어 오싹했지만, 동시에 그만큼 생생하기도 했다.
특히, 잇몸과 치아까지 제대로 달려있어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았다.
“재료가 좋은 것도 있지. 란다에는 질 좋은 사기꾼이 많거든.”
“사기꾼요?”
“그래, 피 빨아먹는 존재니까. 이런 아이템 만들기 딱 좋거든.”
“아······.”
그렇다 할 설명이 없음에도 올리버는 무슨 말인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혈액의 특성을 무시하고 하나로 뒤섞는 것 역시 확인해봤지만, 네가 원하는 만큼 될지는 모르겠어. 그건 알아서 확인해.”
“예, 알겠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진심으로 말했다.
솔직히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혈액을 한 데 뒤섞는 기능이 없으면, 피의 영약 생산량을 높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12인분의 혈액을 보관하는 것만으로 송장인형-바토리에게 큰 도움이 되는 물건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뭐가 됐건, 송장인형-바토리의 특기는 혈마법이었으니.
물론, 튜브를 이용한 인공 혈관으로 피를 주입하고 있긴 했지만, 송장인형의 기능과 혈액의 양을 고려하면 아이템이 있는 게 훨씬 나았다.
올리버가 면피 조끼를 받으려고 손을 뻗는 그때, 이완이 조끼를 뒤로 슥 뺐다. 어림없다는 듯이.
알 수 없는 행동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대자 이완이 말했다.
“우린 거래했잖아?”
“아······.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깜빡했다는 듯 허리 뒤쪽에 찬 가죽 케이스에서 빅마우스를 꺼냈다.
차곡차곡 접힌 빅마우스는 밖으로 나오자 빵 반죽처럼 부풀더니, 팔다리가 돋아나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올리버가 빅마우스에게 부탁했다.
“빅마우스. 그거 좀 꺼내주시겠습니까?”
척하면 착. 빅마우스는 머리 꼭대기에 달린 입에서 두꺼운 갈색 봉투를 토했다.
“꾸에에엑!”
다름 아닌 차일드를 기록한 관찰일지의 복사본이었다.
올리버는 해당 아이템을 부탁하는 조건으로 차일드의 관찰 일지를 공유해주기로 약속했다. 일종의 대금.
올리버는 먼저 일지를 건넸다.
물건을 건네받은 이완은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빠르게 훑어보았다.
올리버는 그의 눈빛과 감정 상태를 통해 단순히 보는 게 아닌 내용을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역시, 이완은 흑마법에 다방면으로 조예가 깊은 듯했다.
“흥미로운 내용 있으십니까?”
올리버가 질문했다. 이완이 만족스러운지 궁금하기도 했고, 또, 어떠한 의견을 들어 가르침을 얻을 수 있을까 해.
“글쎄 좀 더 자세히 봐야 알겠어······. 어쨌건, 거래 성립. 받아.”
이완이 올리버에게 면피 조끼를 던져 줬다.
반사적으로 받은 올리버.
면피 조끼는 올리버의 손안에 들어오자 제각기 얼굴을 일그러트리다가,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 대단하군. 그 물건 내가 만든 물건 중에서도 성질이 고약했는데.”
이완이 일지 복사본을 망토 안에 넣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래. 여느 흑마법 아이템처럼 내 물건은 까칠하거든. 그만큼 기능은 뛰어나지만······. 마치, 나처럼. 그런데, 넌 꽤 마음에 드는 눈치야.”
올리버는 과거 고기-망치를 노획했을 때를 떠올렸다. 확실히, 다른 사람이 잡자 살점을 뭉텅 씹어 먹었건만, 올리버에겐 그렇다 할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협조해주기까지 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다행이네요.”
“그래?”
의미심장하게 묻는 이완. 올리버는 평소와 같이 대답할 뿐이었다.
“네······. 이완 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시만 실례할 수 있겠습니까? 할 일이 하나 더 있어서요.”
“뭔지 모르겠지만 해봐. 재밌을 거 같은데.”
이완이 허락해주자마자 올리버는 몸을 돌려 빅마우스를 바라봤다.
사실 이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참 많긴 했지만, 그럼에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개인의 호기심을 채우는 것보다 자기 할 일을 먼저 하는 게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빅마우스. 그거 좀 꺼내주시겠습니까?”
올리버의 부탁에 빅마우스는 다시 한번 물건을 토해냈다.
예쁘게 포장된 와인과 케이크였다.
생뚱맞은 물건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와중 올리버는 방금 전까지 싸웠던 바솔로뮤에게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다가가 정중히 와인과 케이크 상자를 내밀었다.
모두 고개를 더 갸웃거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위대하신 분이여.”
“케이크와 와인입니다. 이사 선물이지요.”
“맙소사, Z구역 이 똥통으로 이사 왔나?”
이완이 너무 놀라 진심으로 물었다.
“정확히는 X구역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사한 건 아니지만, 제 지인분들이 이사하셨습니다. 설명하면 조금 길어집니다.”
“척 들어봐도 그래. 너한테 지인이 있다니.”
이완은 계속해 농담했고, 올리버는 양해를 구하곤 다시 바솔로뮤에게 정중히 말했다.
“원래는 좀 더 예의를 갖춰 인사를 드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인사드리게 됐습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부탁 하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괜찮으시다면 말이지요.”
“말씀하시지요.”
바솔로뮤가 올리버가 준 와인과 케이크를 받으며 대답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제 지인분들이 X구역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지낼 건물이 아직 미완성인 상태입니다. 시멘트 가루가······. 마감이 필요한데. 괜찮으시다면 그것만 좀 허락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X구역에서 공사를 할 때마다 개발 반대 위원회가 방해한다는 포레스트의 말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부탁했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처리할 생각이 아니었지만, 이왕 온 거 올리버는 해당 문제의 답변을 듣고 싶었다.
허락받든, 거절 받든 그래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었으니.
다행히 운이 따라주는 듯했다.
“원하는 대로 하소서. 위대한 분이시여. 그대께서 무엇을 하셔도 저희는 감히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 허나, 신경 쓰이는 단어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바솔로뮤 님······. 그런데 혹시 위대한 분이라는 게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사람을 잘 못 보신 듯한데요.”
“비록 제가 미천한 죄인이지만, 위대한 분을 몰라뵙진 않습니다.”
“죄인요?”
“그렇습니다.”
“무슨 죄를 지으셨길래 스스로 죄인이라 칭하신 거죠?”
“죄 많은 인간으로 태어난 죄입니다.”
바솔로뮤가 확고한 의지를 빛내며 말했다. 마리의 그것과도 비슷해 썩 달갑진 않았다.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았으니.
“바솔로뮤 님. 위대한 분이라는 건 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알 수 없는 것투성이라서요.”
“죄송하지만, 그건 미천한 저희가 입에 담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위대하신 분 스스로 깨달으셔야 하지요.”
바솔로뮤가 처음과 같이 진지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냥 어물쩍 넘기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참으로 이상했다.
평소 자신이었다면 그 위대한 분이란 것에 더더욱 관심을 가졌을 텐데, 딱히, 아쉽거나 궁금증이 더해지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죄송하지만, 바솔로뮤 님. 친절하게 부탁을 들어주신 분들께 괜한 오해를 드리기 싫어 감히 말씀드리 건데, 전 여러분이 말하는 위대한 분이 아닙니다. 전 그냥 저일-”
“-위대한 분이여. 용이 이빨과 발톱을 숨기고, 스스로 날개를 접은 뒤, 몸을 웅크려, 맞지도 않는 쥐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용이 들쥐가 되는 건 아닙니다.”
“······.”
“해는 해이며, 땅은 땅이고, 바다는 바다. 본질이란 부정한다고 바뀌는 게 아닙니다. 선악 여부를 떠난 엄연한 진리입니다.”
“······제 본질이 뭡니까?”
“그건 스스로 깨닫게 되실 겁니다. 위대한 분께서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