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9. Z구역 (2)
부후후후후후후훙!
거대 도시 란다를 관통하는 셈 강.
셈 강은 도시의 크기에 걸맞게 그 폭이 아주 넓었다.
그렇기에 고역이었다.
이 도시의 온갖 오물과 폐수가 이 갈색빛 강으로 쏟아졌기에 배를 타고 지날 때면 엄청난 악취에 적잖게 시달려야 했다.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
그건 X구역에서 나고 자란 조도 예외가 아니었건만, 정작 올리버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냄새요.”
조가 코를 막으며 물었다. 배 선두에서 Y구역을 바라보던 올리버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냄새요? 아······. 좀 냄새가 나긴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조는 경악했다.
강 인근에 살면 자식들이 돌연변이로 태어날 정도라는 셈 강의 악취를 맡고도 그럭저럭이란 표현을 쓰다니. 허풍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눈앞의 인간이 절대 허풍을 칠 인간이 아닌 걸 알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허풍을 현실로 이루는······.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지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말이다.
‘하긴 그러니까, 혼자 Z구역으로 가려는 거겠지.’
조가 상념에 빠진 사이 어느새 맞은편 Y구역이 점점 가까워졌으며, 배의 선장 노아 영감이 소리쳤다.
“자, 배를 댈 테니 다들 조심해! 머저리처럼 굴다 강에 빠져도 난 모르니까.”
밀수꾼 겸 수상 택시를 운행하는 노아 영감의 말마따나 배가 조금 흔들리더니 Y구역에 배를 댔다.
질척질척한 흙바닥과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 그 쓰레기 더미만도 못한 움막 등. Y구역은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훔쳐 먹을 게 없나 살펴보는 강도나 돌연변이를 포함해 말이다.
‘죽지도 않고 여전히 있군······. 역시 기분 나쁜 곳이야.’
일반인의 시야뿐 아니라 흑마법사의 눈으로도 주변을 살핀 조가 생각했다.
위협 여부를 떠나 악의를 가진 무수한 감정을 보는 건 참으로 불쾌한 일이었다.
“하······. 정말 혼자 가실 생각입니까?”
조가 배에서 내리는 올리버를 보며 물었다.
이완이라는 그 작자가 주문한 물건을 받고 싶으면 Z구역으로 오라 그랬다 하던데, 참으로 찜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그게 약속이니까요.”
“이미, 저를 포함해 네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혹시 몰라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수상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상식적인 말이었다. 험한 동네이기로도 유명한 란다에서도 마굴(魔窟) 취급당하는 Z구역에 사람을 부르다니. 그것도 혼자서.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만약, 이게 수상하지 않은 거라면 세상 그 무엇도 수상하지 않은 게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조를 포함한, 마리, 포레스트, 제임스가 반대한 거였고.
“진짜 수상하지 않습니까? 혼자서 오라는 그럴듯한 이유조차 이야기해주지 않았잖습니까?”
“말할 수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고 하셔서요······. 뭔가 사정이 있으시겠죠.”
“그를 믿는 특별한 근거라도 있습니까?”
“예. 제 친구를 도와주셨거든요.”
올리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
결국, 조는 올리버를 설득하지 못하고 혼자서 그를 보내야 했다.
친구를 구해줬다는 알 수 없는 말에 설득된 것.
조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처음 계획대로 올리버에게 Z구역으로 가는 길만 설명해주고, 혼자 X구역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는데, Y구역부터는 란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배를 타고 떠나기 전 조가 올리버에게 진지하게 경고했다.
‘Y구역, Z구역은 말만 란다지. 사실상 란다가 아니니까요. 구역을 둘러싼 장벽이 그 증거입니다.’
조가 셈 강 너머 Y, Z구역을 둘러싼 장벽을 가리켰다.
시(市) 방위군과 중화기로 무장된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을.
참고로, 조의 말은 정답이었다. 저 장벽 자체가 사실상 Y, Z구역은 란다의 행정력이 닿지 않는다고 시인하는 거였다.
조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 경고했다.
‘Y구역부터는 별의별 놈들이 다 있습니다. 약탈자부터, 괴물이나 다름없는 돌연변이, 오염생물체, 그냥 미친놈들도요. 그러니 부디 조심하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올리버는 반드시 몸조심하겠다고 대답하며 조를 떠나보냈다. 그리곤 조가 준 약도를 따라 쭉 걸어갔다.
큰길을 따라 큰 사거리에서 꺾으면 됐는데, 약도를 따라 걷자 조의 경고가 허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란다란 험한 동네고, X구역은 그중에서도 더 험한 동네였건만, Y구역은 그 결이 달랐다.
빈민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낙서와 토템은 좀 더 흉흉한 느낌을 자아냈고, 시체는 굴러다니는 걸 넘어 건물 꼭대기에 꽂혀 있거나,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개중에 몇몇 시체에는 칼로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전쟁 선포!]
[이제부터 이 구역은 우리 거다!]
[불만 있으면 덤벼라!]
이곳 갱들의 구역 싸움인 듯했다. 거친 칼자국 탓에 글귀가 더 사납게 읽혔다.
하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건 광고 문구였다.
[와이즈 무기 공방. 특제 작살총 특가 세일.]
광고 문구가 있는 시체는 실제로 제품의 성능을 과시하듯 작살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아무래도 상품의 성능을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해당 시체에 글자를 남긴 것 같았다.
여러모로 세기말적인 곳이었다.
‘조나단 씨와 같이 진입했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지······. 아니, 더 심해졌나? 여하튼 약간 걱정이네. Z구역은 Y구역보다 더 심하다고 하던데.’
올리버가 속으로 걱정하면서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똑같은 속도로 똑같이 걸었다.
올리버는 조가 준 약도대로 계속해 나아갔고, 시체 매입소와 쇠창살에 갇힌 돌연변이들, 벌거벗은 갱 무리를 지나 Z구역으로 통하는 길목에 다다랐다.
Y구역이 생각보다 커 예상한 것보다 더 오래 걸어야 했으나. 그래도 조의 걱정과 달리 습격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명, 계속 주시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는데, 다들 경계만 하지 공격 의사는 없었어······. 다행이긴 한데, 뭐지?’
올리버가 Y구역의 미묘한 분위기에 의문을 품었다.
올리버를 주시하고 있으면서도, 건드리진 않는다니.
X구역처럼 해결사 데이브의 명성 때문인 건가 싶었지만, 솔직히 의문이었다.
Y구역은 X구역 보다 훨씬 거칠다 하는 데 그걸 신경 쓸지 의문이었고, 또, Y, Z구역은 란다에서 고립된 곳이라 일개 해결사인 데이브의 명성이 이곳까지 퍼졌을지 의문이었다.
실제로 해결사의 명성이란 허무한 구석이 있어, 안 믿는 자들도 있고, 셰이머스처럼 큰 특징이 없는 경우 얼굴을 못 알아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런데, 해결사 데이브의 명성 때문에 Y구역의 약탈자들이 자신을 습격하지 않는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거기다 묘하게 긴장하고, 두려워하고 있단 말이지.’
올리버가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의 감정을 읽으며 생각했다. 문제는 저 감정이 자신을 향한 것 같지가 않았다.
올리버보다는 다른 제3의 누군가를━
━지이이이이잉!!!
올리버가 계속 생각하며, 이완이 말한 Z구역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기계음이 들렸다.
Z구역으로 진입하는 벽 너머에서 들리는 것으로, 몇 년간에 걸친 해결사 생활로 다져진 올리버는 숨 쉬듯 자연스럽게 시험관에서 감정과 생명력을 추출.
전신에 블랙 슈트를 둘러 뒤로 가볍게 피했다.
그와 동시에 낡고 두꺼운 벽이 부서지며, 거대한 기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기체(機體)의 정체는 군용 장비인 외골격 장갑으로, 사람과 갑옷을 본뜬 쇳덩어리는 한 손에 거대한 집게, 다른 한 손에는 거대한 원형 톱날을 끼고 튀어나왔다.
올리버가 전문가가 아니라 섣불리 단정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 임의로 수리, 개조한 듯했다.
덕지덕지 땜질한 자국과 억지로 끼워 맞춘 부품이 그 증거.
그렇다 해도 놀랍긴 매한가지였다.
올리버가 알기로 외골격 장갑은 군용 장비 중에서도 높은 기술력이 있어야 다룰 수 있는 물건인데, 저 정도로 개조한 것 자체가 엄청난 기술력을 보유했다는 거였다.
‘그래도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외골격 장갑 조종석에 뿌리내린 살덩어리지만.’
올리버가 각종 고철을 덧대 누덕누덕해진 외골격 장갑 몸통 가운데 있는 살덩어리를 봤다.
찰흙을 뭉친 듯한 외형에 붉고 핑크빛이 감도는 살덩어리는 껌딱지처럼 지저분하게 외골격 장갑에 들러붙어 올리버를 공격했다.
━지이이이이윙!!!
벽을 부순 외골격 장갑이 회전하는 원형 톱날을 있는 힘껏 휘둘러 올리버를 공격했다.
올리버는 블랙 슈트를 두른 다리로 가볍게 점프, 반대편 벽 위로 올라섰다.
허나, 외골격 장갑에 들러붙은 살점은 당황하지 않고, 둥그런 눈으로 올리버를 보며, 외골격 장갑을 조작, 집게 손을 날려 올리버를 잡아채려 했다.
매운 능숙한 조작.
덕분에 외골격 장갑은 쇳덩어리라 생각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였고, 올리버는 피하지 못하고 쿼터스태프로 방어하고 말았다.
콰직! 좌롸롸롸라라라탕━!!
약간 녹이 슨 집게 손은 쿼터스태프를 붙잡았으며, 그와 함께 집게 손에 달린 쇠사슬이 당겨져 올리버의 쿼터스태프를 잡아당겼다.
기계라 그런지 힘이 엄청났다.
블랙 슈트가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끌려가거나, 쿼터스태프를 빼앗겼을 정도.
다행히, 올리버는 블랙 슈트를 걸치고 있어 저항할 수 있었고, 덕분에 반격도 할 수 있었다.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
올리버의 영창과 동시에 몸에 저장한 마력이 밖으로 나와 입자 단위로 뭉쳐, 외골격 장갑 주변에 마법진을 형성했다.
형성된 마법진을 시작으로, 마력으로 이뤄진 다수의 기계 손이 자라나 그대로 외골격 장갑을 덮쳤다.
턱━!
위이이잉!!
와직!
콰가각!
텅! ······따다닥!!
놀랍게도 바늘과 메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가느다란 기계 손은 거대한 쇳덩어리인 외골격 장갑을 능숙하게 해체했다.
단순 힘으로 부수는 게 아닌, 체계적으로.
섬세한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와 올리버가 골렘 학문을 공부하며, 부차적으로 쌓은 외골격 장갑에 대한 지식 덕분이었다.
1, 2초 만에 외골격 장갑은 두 팔이 떨어졌고, 3, 4초 만에 다리를 잃은 채 주저앉았으며, 5, 6초 만에 외골격 장갑은 기능이 정지했다.
생각 이상으로 효율적인 제압 방식.
“혹시, 이거 이완 님이 만드신 겁니까?”
올리버는 프타스 어시스턴트를 이용해 쿼터스태프를 붙잡은 집게손을 떼어내며 질문했다.
아무리 봐도 외골격 장갑에 붙은 저 살덩어리는 이완이 제작한 고기-무기와 느낌이 비슷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질문에 대한 해답 대신 거대한 철판 칼날이 대답으로 날아왔다.
대검-붕대 사내가 휘두른 거였다. 셰이머스에게 고용돼 올리버를 두 번이나 공격한 개발 반대 위원회 사람 말이다.
올리버는 날아오는 칼날에 맞춰 쿼터스태프를 들었으며 곧 굉음이 울려 퍼졌다.
캉━━!!
칼보다는 쇳덩어리에 가까운 대검에, 비상식적인 개발 반대 위원회의 괴력이 합쳐져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냈고, 올리버는 뒤로 붕 날아갔다.
품 안에 넣어둔 감정이 든 시험관도 몇 개 떨어트릴 정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입니다.”
올리버는 대검-붕대 사내에게 인사했다. 뭐가 됐건, 두 번이나 얼굴을 마주한 사이였으니, 그게 예의인 것 같아.
허나, 대검-붕대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올리버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붕대 사나이들과 함께 사방에서 말이다.
[어소리티(Authority)]
올리버의 영창을 신호 삼아, 아까 전 떨어트린 시험관이 요동치며 안에든 감정이 시험관 뚜껑을 밀어 허공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리가 과거 사용한 흑마법으로, 올리버가 요령을 발휘해 흉내 낸 것인데,
검은색 감정 입자는 비슷한 성질의 감정끼리 올리버에 의해 억지로 접촉, 호환, 연결되며 쇠사슬처럼 합쳐졌다.
덕분에 분무기로 뿌린 물처럼 작은 입자로 퍼진 감정 입자는 일정한 형태를 가지게 됐고, 올리버는 이를 확인하자마자 한쪽 손을 아래로 누르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자 감정 입자들은 저들끼리 손 형태로 뭉쳐 올리버에게 접근하는 다수의 붕대 사내들을 짓눌러 무릎 꿇렸다.
꾸구구국······!
대검-붕대 사내를 포함한 모두가 흑마법에 저항해 억지로 일어나려 했으나, 바닥에 파이고, 금이 갈지언정 그 누구 하나 일어서지 못했다.
그저 무릎 꿇을 뿐.
참으로 엄청난 일이었다. 약간 오래되긴 했어도 대검-붕대 사내는 한때 올리버에게 일격을 먹여 날려버리기까지 한 실력자였건만, 지금은 무릎 꿇은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 당장 올리버가 쿼터스태프를 들어 머리를 깨버릴 수도 있었는데도.
물론, 올리버는 그러지 않았지만.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저 멀리 골목에서 쿼터스태프를 든 또 다른 붕대 사내가 나타났다.
다른 붕대 사내들과 달리 로브를 썼으며, 말도 능숙했는데, 그 역시 올리버와 안면이 있었다.
과거, 셰이머스를 붙잡으려고 했을 때, 그는 놀라운 움직임과 힘으로 헝거를 혼자 도륙하며 올리버에게도 큰 상처를 입힐 뻔한 사람이었다.
중간에 멈추고 그냥 물러났지만.
“이분들 모두 절 크게 해할 마음이 없으셔서요.”
올리버가 답했다. 실제로, 지금 습격한 붕대 사내 중 올리버에게 불만과 의심, 분노, 호승심을 느끼는 이들은 있을지언정 살의(殺意)를 품은 이들은 없었다.
조직적인 습격치고 이례적인 경우.
대답을 들은 쿼터스태프-붕대 사내가 말했다.
“친절하시군요. 너무 친절하십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대뜸 올리버를 향해 돌진해 왔다. 처음 봤던 그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