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 Z구역 (1)
X구역의 로베르토.
그는 X구역의 생활 단위인 공동체의 수장이었다.
공동체란, 경찰이 없는 X구역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생활 단위로, X구역에 사는 자들은 모두 공동체에 직간접적으로 소속되어 있었다.
도둑, 강도, 살인마와 같은 존재로부터 스스로 지키기 위해 말이다.
당연히 공동체는 여러 형태가 있었다.
이웃끼리 뭉쳐 거대한 가족이 돼 서로를 지켜주는가 하면, 힘을 기반으로 한 조직 폭력배 형태가 있었고, 혹은, 그나마 가진 자산을 이용해 공동체를 이룩하는 경우도 있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돈다발에 홀린 로베르토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형편없는 투기꾼으로, X구역의 개발 당시 그동안 모은 재산을 탈탈 털어 이 대형 다세대 주택을 구매했다.
남은 여생 집세나 타 먹으며 유유자적 살기 위해.
허나, 기대와 다르게 X구역의 개발은 시의원의 부패와 개발 반대 위원회의 테러, 다른 시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어정쩡하게 멈췄고, 덕분에 로베르토의 할아버지는 완성돼다만 시멘트 덩어리만 얻고 화병으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의 나이 향년 72세.
그나마 다행인 건, 그의 아들이자, 로베르토의 아버지는 수완이 뛰어나 그 와중에도 이 시멘트 덩어리를 기반 삼아 공동체를 설립했다는 거였다.
갈 곳 없는 길거리 부랑자 중 힘 좀 쓸 것 같은 자들에게 잘 곳을 제공해줘 주먹으로 쓰고, 여자와 아이들은 가게를 소개해줘 집세를 마련하게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계획은 성공적이었으며, 현재의 로베르토 때까지 무난하게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나쁜 삶은 아니었다.
X구역의 공동체 수장으로 사는 것 말이다.
길을 걷다 언제 총을 맞을지 모르고, 다른 공동체와 쓰레기를 두고 으르렁대야 하긴 하지만, 뱀 머리로서 나름 풍족하고, 우월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실제로 로베르토도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이런 삶에 만족했다.
그런데 지금 다른 선택지가 나타났다.
“액수는······.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요?”
자신을 포레스트라고 소개한 재수 없는 앞 구역 늙은이가 말했다.
다짜고짜 찾아와 자신의 건물을 사고 싶다 하더니, 돈더미를 내밀어 꺼드럭대는 꼴이라니······. 실제로 효과가 있어 더 자존심이 상했다.
로베르토는 숨을 거칠게 쉬며 머리를 굴렸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큰 기회를 어찌 활용할지 고민하며 말이다.
‘왜 이 건물을 원하는 거지? 이 근방에서 가장 큰 다세대 주택이긴 하지만 그냥 시멘트 덩어리인데······. 일단, 튕겨볼까? 이만큼 내놓았으면 더 쥐어짤 수 있을 거 같은데. 저놈 앞 구역에 사는 부자니까 더 뜯어내도 정의로운 행동이잖아?’
그렇게 로베르토가 정의를 실현하려는 찰나, 그의 눈에 누군가 들어왔다.
다름 아닌 돈이 가득 든 더플백을 올려놓은 너클 조와 그의 동료 쌍권총 샘, 쇠몽둥이 오언이었다.
파이터 크루.
크라임 펌과 전속 계약을 체결해, 현 X구역에서 가장 부유한 공동체로 떠오른 그들이 말없이 이쪽을 바라봤다.
씨발 유니폼처럼 똑같이 맞춘 양복 탓인지, 더 위협적이었다.
도대체 이 영감탱이가 뭔데 따라온 거란 말인가? 크라임 펌 관계자?
로베르토가 조금이라도 돈을 더 얻기 위해 신경질적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탁자 위에 놓인 돈만 있으면, 앞 구역으로 가도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괜찮은 집과 가게를 마련하고, 어쩌면 차도 살 수 있을지 몰랐다······.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였다.
“······로베르토 씨?”
“음?!”
“건물을 파실 건지 마실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재촉할 생각은 없지만, 저희도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포레스트가 손목시계를 톡톡 두들겼다.
‘재수 없는 놈!’
로베르토가 속으로 욕하곤 대답했다.
“······솔직히 큰돈이긴 하구려. 허나, 할아버지 때부터 터를 닦은 이 건물을 팔기란 쉽지 않소. 여기 사는 사람들도 있고, 일단 생각을 좀-”
“-조.”
“예. 포레스트 씨.”
“돈 챙기고 일어나지. 안타깝게도 파실 생각이 없다는구만.”
포레스트의 말에 맞춰 조는 동료들과 함께 탁자 위에 있는 돈다발을 도로 더플백에 담아 어깨에 둘러멨다.
돈의 주인이 다름 아닌 올리버였으니.
“잠깐!”
포레스트가 조와 같이 떠나려는 찰나, 건물주 로베르토가 소리쳐 포레스트를 불러 세웠다.
“지금 장난하는 거요······!”
로베르토의 탐욕과 생각을 읽은 포레스트가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이미 저자는 돈의 마력에 잡아먹힌 상태. 이제는 값을 깎을 시간이었다. 합리적이게 말이다.
“아, 불쾌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로베르토 씨. 다만, 파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기에······. 앞서 말했듯이 저희 쪽은 시간이 많이 없거든요.”
“이쪽도 고려할 게 많다니까! 이미 거주하고 있는 거주민들도 있고!”
그 말에 맞춰 포레스트가 조에게 신호를 줬다.
조는 동료와 같이 더플백을 탁자 위에 다시 올렸다. 단, 이번에는 3개가 아닌 2개였다.
“······지금 뭐 하는 거요?!”
“협상하는 겁니다.”
“협상!?”
“예. 기존 거주민들 문제는 저희가 해결하도록 할 테니. 그만큼 깎아주시지요.”
“고작 그거에 이만큼이나 후려치겠다고?! 내가 병신으로 보여!!”
“물론 그것 때문만이 아닙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시간이 없습니다. 시간은 귀중한 자원인데, 선생님과 대화하며 점점 소모되고 있거든요. 그 손해 비용도 포함한 겁니다.”
“이런 미친 늙은이가 돈 좀 있다고 장난질을 하나!!”
포레스트의 말을 듣다 못한 로베르토 쪽 덩치가 성큼성큼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는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끄아아아악!!”
앞으로 나온 덩치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다름 아닌 조에게 볼때기가 붙잡혔기 때문으로, 흑마법을 쓰지 않았음에도 조는 본인의 완력만으로 덩치를 제압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덩치의 뺨이 모차렐라 치즈처럼 쭉쭉 찢어질 것 같았다.
“움직이면 이 새끼 대가리 터트린다.”
조가 로베르토의 주먹들에게 경고했다. 이미, X구역에선 조의 실력과 성격을 알기에 반사적으로 저항하려던 그들은 꼬리를 내렸다.
란다. 특히, 이 X구역에서는 주먹이 정의였으니.
갑자기 수세에 몰린 로베르토.
그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땀만 뻘뻘 흘렸는데, 그때, 포레스트가 선택지를 내밀었다.
“다시 제안하죠. 지금 탁자 위에 있는 돈을 받으실 겁니까? 안 받으실 겁니까? 자잘한 뒷정리는 저희가 맡을 테니, 로베르토 씨는 돈만 챙긴 뒤 원하시는 곳으로 떠나시면 됩니다······. 거절하시는 건 자유지만, 단 한 가지 명심하실 게 있습니다.”
“······?”
“다음 더플백은 지금보다 숫자가 더 줄어든 상태일 겁니다.”
***
X구역 대형 다세대 주택 앞.
올리버는 말없이 앉아 포레스트와 조 등을 기다렸다.
정말 다행히도, 시(市)는 카버의 말처럼 올리버는 물론, 선택하는 사람들 역시 란다에 거주할 것을 허락해주고, 보호해줄 것을 약속해줬다.
종교 활동을 금하며, X구역에 거주하고, 정기적으로 시(市) 보안국의 감사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 조건이 달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딱 한 번 시(市)가 요청할 시 무슨 일이든 도와줘야 한다는 조건도······.’
가만 생각해보니 꽤 많은 요구조건. 그럼에도 올리버는 만족스러웠다.
시(市) 입장에서 뭐가 됐건 부담스러울 텐데, 이를 감수하고 우리를 받아준 거였으니.
그 정도 대가면 충분히 정당한 요구란 생각이 들었다.
“주······. 데이브 님.”
마리가 주인님이라 부르려다 다급히 정정하며 올리버를 불렀다.
“예, 마리.”
“포레스트 씨가 나오셨습니다.”
상념에 빠진 올리버에게 마리가 말했고, 올리버는 고개를 돌려 대형 다세대 주택 입구 쪽을 봤다.
대형이란 단어가 괜히 붙은 게 아니듯, 여러 개의 다세대 주택을 이어붙인 듯한 거대한 건물에서 포레스트가 파이터 크루 대원 둘을 양옆에 대동한 채 당당히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건물 소유 증명서가 들려 있었다.
“협상은 성공했네. 가격도 합리적으로 깎아서.”
실제로 호위의 어깨에는 돈이 가득 든 더플백이 하나 들려 있었다.
올리버가 생각한 액수의 1/3이나 깎은 거였다.
“아, 감사합니다. 어떻게 깎으신 겁니까?”
“협상의 기술이라는 거지. 이 돈은 저 건물을 마저 공사할 때 보태도록 해.”
파이터 크루원이 마리 일행에게 더플백을 건네줬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됐어. 내가 도와주고 싶은 거니. 애당초 내 최대 거래처인 자네가 혼자 힘으로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 시(市)와 협상까지 했으니. 이 정도 자잘한 일은 내가 하는 게 맞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중개인 바꿀 건가?”
포레스트가 마지막에 농담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왜냐면 포레스트와 일하는 게 좋았기에.
“다행이군. 이제 편하게 잘 수 있겠구만. 안 도와줬다고 거래 끊을까 봐 겁먹었거든.”
“그런 걱정하지 마시지요. 포레스트 님께 이미 여러 번 신세 졌는데요······. 그런데, 조와 나머지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아, 그 친구들은 지금 교통정리 중이야.”
“교통정리요?”
“그래. 저 건물에 원래 살던 주민들 있을 거 아니야.”
“예.”
“그들을 설득하고 있어. 건물 주인이 팔았으니, 저들도 떠나야지. 조가 잘 설득 중이네.”
포레스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세대 주택 창문이 와장창! 깨지더니 한 덩치가 건물 밖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건물 높이가 그렇게 높지 않고, 아래에는 쓰레기 더미가 쿠션처럼 있어 죽진 않았다.
“교통정리라는 게 원래 이런 건가요?”
“어, 원래 이런 거야. 재개발 붐 때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 추억이구만.”
“어······. 갑자기 쫓아내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별로? 새 주인이 왔으면, 기존 세입자들은 나가는 게 당연하지. 저들 때문에 자네 재산권이 침해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이럴 줄 몰랐나?”
“솔직히, 예. 몰랐습니다. 이런 건물은 처음 사봐서요.”
“다행이군. 내가 대신 협상해서······. 그럼, 어떡하겠나?”
올리버가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때 마리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데이브 님?”
“예, 마리.”
“괜찮으시다면 이 문제 제게 맡겨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리가 정중히 부탁했고, 올리버는 좋은 의견이라 생각했다.
마리가 이쪽 문제에 관해서는 올리버보다 아는 게 많고 요령도 있을 테니.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저 아가씨가 자네 제자라고?”
“음······. 제자까진 모르겠지만, 흑마법을 조금 가르쳐드리긴 했습니다.”
포레스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올리버가 교육에 얼마나 재능 있는지 파이터 크루를 통해 봤기에, 그가 말하는 조금이란 단어는 전혀 믿을 수 없었다.
묘하게 자기에 관해서는 평가가 박해 허풍선과 다른 의미로 신용할 수 없었다.
“어쨌건 자네에겐 필요한 아가씨군. 똑 부러지고, 유능해 보이니 말이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마리가 들어간 후 건물 안에서 은은히 들리던 비명이 잦아들었다.
“마리가 대단하긴, 대단하죠······. 건물을 마저 완성하려 하면 어디 연락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글쎄, 내가 한번 알아보지. X구역까지 들어올 회사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포레스트에게 감사를 표했다. 건물을 대신 협상해 사줄 뿐 아니라, 그런 일까지 맡아준다니.
가뜩이나 할 게 많은 올리버로서는 너무나도 고마운 제안이었다.
‘마탑도 방문해 논문 결과도 살펴보고, 어르신께 상황 보고도 해야 하고, 송장인형도 업그레이드시켜야 하고, 피의 영약도 더 생산하고, 바토리 님 제자 분들도 찾아가야 하고, 또······.’
“······아, 그런데 포레스트 님? X구역까지 올 회사가 있을지 의문이란 건 무슨 말씀이시죠?”
“개발 반대 위원회 때문이야.”
“개발 반대 위원회요?”
“그래, 저기 봐.”
포레스트가 한쪽을 가리켰다. 저 멀리 셈 강과 그 너머의 구역을.
“공교롭게도 X구역은 Y, Z 구역과 가장 가깝고, 통상적으로 Y, Z구역의 출입구 역할을 하는 곳이거든.”
“예.”
“그런 탓인지 모르겠지만, X구역에서 뭔가 공사를 하려고 하면 개발 반대 위원회가 훼방을 놓아. 당연히 훼방은 평화적인 것과 거리가 멀고. 그래서 대부분 X구역에 건설업체가 공사하러 잘 안 와. 아직까지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기도 하지.”
올리버는 대충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즉, X구역은 시(市)도 포기한 Y, Z구역의 완충지대란 이야기였다.
“그럼, 공사는 힘들까요?”
“음, 아니. 여긴 란다니까. 액수만 맞춰주면 한번 도박해볼 인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정 안 되면, 크라임 펌에 소속된-”
-부아아아앙!!
포레스트가 말하는 도중 갑자기 차 소리가 들렸다.
묵직한 6륜 트럭 소리로, 한두 대가 아니었다.
모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쪽으로 오고 있는 다수의 트럭을 볼 수 있었다.
“제대로 온 것 맞네.”
선두 차량이 멈추더니 한 남자가 내렸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로, 제임스였다.
약사의 직원이자, 흑마법에 재능이 없었던 갱, 올리버가 눈에 강제로 감정을 주입해 눈을 개안(開眼) 시켜주고, 그 보답으로 마법사나 란다, 길거리 생활 등. 바깥 이야기를 해준 사람.
그는 다수의 트럭을 이끈 채 나타나 올리버에게 과하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데이브 씨. 제임스라고 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작위적인 인사와 장난기 가득한 표정. 아무래도 그는 약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안녕하십니까? 제임스 씨·····. 오랜만입니다.”
“하! 씨는 빼라니까. 여하튼, 만나서 반갑다. 갑자기 떠나 많이 아쉬웠는데 말이야······. 아, 이제는 이런 말투로 말하면 안 되나?”
“아뇨, 편하신 대로 부탁드립니다.”
제임스는 한쪽 입술을 비죽 올렸다. 올리버가 자신이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라 만족한 거였다.
하긴, 그러니 사장님께서 다시 거래를 튼 거겠지.
“할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일단, 급한 일부터 하지. 이봐, 내려.”
제임스가 다른 직원들에게 명하자, 약사의 직원들은 일제히 짐칸을 열었다.
트럭 짐칸에는 족히 수십 명이 되는 사람이 내렸다.
모두 선택받은 사람들로, 그중에는 올리버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셀린.”
와인햄에서 처음 만난 선택받은 사람 중 하나인 셀린으로, 그녀는 피로로 핼쑥해졌음에도 올리버를 보자 생기를 보였다.
그 외 다른 사람들 역시, 올리버가 올리버인 걸 눈치채고 무릎을 꿇으려 했다.
미리 란다로 온 다른 사람들이 말려 막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하······. 아직도 믿기지 않네. 저 사이비들이 란다로 정착하다니. 용케도 허락을 맡았네?”
“저도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저분들을 무사히 데려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임스 씨.”
제임스가 콧잔등을 긁적이며, 조심스러운 감정을 빛냈다. 뭔가 할 말이 이는 눈치였다.
“솔직히 고맙긴 이쪽이 고맙지.”
“예?”
“아, 광신도 놈들 쫓아내 줬잖아? 솔직히 우리도 그놈들 싫어했거든.”
제임스는 진심이었다. 하긴, 성기사들 덕분에 도시 분위기 전체가 침체하고, 가게 문을 20분 이상 닫아본 적 없는 약사가 칩거 생활까지 했으니, 불만을 가진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게 전부는 아닌 듯했다.
“사장님께서 따로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씀 전해달라고 하셨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성기사들 때 제대로 도움 못 준 거. 진심으로 미안하다더군.”
제임스의 감정에서 조심성과 미약한 두려움이 빛났다.
“아······. 아닙니다. 오히려 전 충분히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약사님이 아니셨으면 늦을 뻔했거든요. 또, 이렇게 나머지 분들도 데려와 주셨고요. 멋대로 떠난 절 위해. 전 감사할 뿐입니다.”
제임스가 그 말에 안도했다.
“그럼······.”
“이곳 정리가 되는 대로 약사님과의 약속도 당연히 이행하겠습니다.”
제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가 갑자기 사라진 것과 별개로 여전히 올리버를 믿는 눈치였다.
“혹시, 누구신지 소개해 줄 수 있겠나?”
가만히 바라보던 포레스트가 이야기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끼어들었다.
때마침 할 이야기도 다 끝나가던 중이라 올리버는 자연스럽게 포레스트를 제임스에게 소개해줬고, 제임스에게도 포레스트를 소개해줬다.
약사의 직원과 란다의 중개인을 말이다.
때마침 조와 마리까지 건물 밖으로 나왔다.
몰랐는데, 꼭 무슨 모임을 하는 것 같았다.
올리버가 조에게도 제임스를 소개해 주려 하는 그때, 끔찍한 단말마가 들렸다.
━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악악앆!!!
모두 하던 말을 멈추고,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끄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악악앆!!!
단말마는 다름 아닌 올리버의 품 안에서 들렸다.
올리버가 양해를 구하듯 손을 들어 보이며 품 안을 뒤졌다.
잠시 후, 뭔가가 나왔다.
작고 둥그런 고깃덩어리. 압축 건조한 사람의 머리였다.
이완에게서 받은 통신 장치의 일종.
소리만큼이나 흉물스러운 아이템에 다들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고, 올리버는 다시 양해를 구하며 통신 장치를 받았다. 평범하게 말이다.
압축 건조한 사람의 입 부분에서 미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귀를 가까이 된 올리버에게만 들릴 미세한 소리가.
포레스트가 질문했다.
“무슨 일인가?”
“이완 님입니다······. 주문한 물건이 완성됐으니 직접 찾아오라고 하십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다행이군. 어디로 오라 하던가?”
“Z구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