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87화 (387/633)

387. 조정 (3)

“재밌는 이야기가 있을 거 같아서. 킥!”

주황 머리에 밉살맞게 생긴 소년이 아이 특유의 넘치는 자신감으로 말했다.

마치, 세상 모든 게 자기 발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치기 어린 우월감마저 느껴졌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리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수준.

소년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 밉살맞게 굴었다.

바로, 지금처럼.

“흠······. 흐음············! 흐으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지 그래? 혀라도 잘렸나?”

인육 요리사가 짜증을 참으며 말했다.

팬은 아! 하고 손가락을 튕기더니 입을 열었다.

“차 멋진데?”

팬이 인육 요리사가 타고 온 차를 가리켰다.

실제로 멋진 차였다. 란다의 B사에서 만든 최신 차량으로, 전 세계에 10대밖에 없는 한정품이었으니.

원래는 왕족이나 고위 관료에게만 팔려고 만든 차량이었으나, 인육 요리사가 여러 사람의 이름을 이용하고, 몇 배나 되는 돈을 얹어가며 구매했다.

자신의 탐욕과 과시욕을 채우기 위해.

“어······. 고맙군.”

“더 이상은 아니지만.”

팬이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고, 그와 동시에 하늘 위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쿵! 하고 떨어졌다.

밤하늘 속에 숨은 팬의 또 다른 괴조(怪鳥)가 떨어트린 것.

덕분에 집 몇 채 값이 든 차는 말 그대로 짜부라졌다.

“씨발, 내 차······.”

인육 요리사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차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자도 있었지만, 그건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차가 뭉개졌다는 거였으니.

스릉━

인육 요리사는 소매 안에 숨겨둔 프렌치 나이프 꺼낸다. 슬쩍 손만 대도 베일 듯 몹시 날카로워 보였다.

“호······. 해보게?”

인육 요리사의 태도에 팬은 전혀 겁먹지 않고 과시적으로 두 손을 들어 보였다.

그에 맞춰 괴조가 눈을 번뜩이며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고, 마을을 둘러싼 숲 한쪽에 무수한 눈빛이 번뜩번뜩 빛났다.

개중에 몇몇은 거인과 같이 거대해 숲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났다.

검은손을 대표하는 네 명의 손가락 중 둘이 부딪히려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상황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또 다른 손가락이었다.

“싸우고 싶으면 내가 간 뒤에 싸우지. 우선은 대화부터 하자고.”

끼어든 퍼펫. 그 말을 들은 인육 요리사와 팬은 서로 각기 다른 방향을 봤다.

마을을 둘러싼 심상치 않은 기운이 다수 포착되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송장인형이 더 있는 듯했다.

잠시, 흐르는 침묵. 퍼펫이 어르듯 말했다.

“그리 길지 않을 거야. 부탁 좀 하지.”

“······알겠습니다.”

“뭐, 좋아! ······하지만 그전에 내 질문부터 먼저 대답해줘!”

“뭐지?”

“피리 부는 사나이는 안 왔어?”

팬이 허공에 둥둥 뜨며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괴조의 머리 위에 앉으며 물었다.

덕분에 여기서 가장 키가 작음에도 모두 팬을 올려다봐야 했다.

퍼펫이 대답했다.

“당연히 안 왔지. 그자는 이런 데 관심 없으니.”

“저번에는 나온 것 같은데? 수십 년 전에 말이야.”

“그때는 근처에 있었으니까. 지금은 여기 없고. 더 이상 괴롭힐 사람도 없으니.”

퍼펫이 대답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더 이상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을.

“좋아! 이해!”

팬이 만족했다는 듯 괴조의 머리 위에 옆으로 누웠다. 자기 볼일은 끝났다는 태도.

참으로 아이와 같았다. 흥미를 쉽게 가지면서도, 쉽게 잃고, 오래 집중 못 하는 태도가 말이다.

“흠······. 자넨 내게 물어볼 게 뭔가?”

퍼펫이 인육 요리사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번 소집은 단순히 퍼펫의 요청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다.

인육 요리사가 퍼펫을 만나고 싶어 했기에, 겸사겸사 팬까지 초대해 이뤄진 소집이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겨서요.”

“뭐가?”

“데이브란 해결사 녀석을 건드리지 말라 한 이유가 뭡니까. 저번에 깜빡하고 묻지 못했군요.”

인육 요리사가 프렌치 나이프를 놓지 않은 채 질문했다.

달빛도 희미한 어둠 속에도 나이프는 스스로 흉흉한 빛을 발했다.

퍼펫이 대답하려는 찰나 팬이 끼어들었다.

“데이브가 누구야? 아냐! 말하지 마! 내가 맞춰 볼 테니! 난 똑똑하니까! 음······. 혹시, 네 멍청한 여동생을 방해한 놈 아니야? 너 지금 그거 때문에 완전히━”

━촤악!

인육 요리사가 어깨 아래만 움직여 프렌치 나이프를 휘둘렀다.

프렌치 나이프에 깃든 감정은 술사의 의지에 따라 검은빛 칼날로 변해 앞으로 날아가 괴조와 땅, 저 멀리 있는 집, 나무, 숲에 숨은 크리처 등.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딱 하나 팬만 빼고.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봐 늙은이. 전만 못한 것 같은데?”

팬이 자신의 그림자를 방패로 내세워 인육 요리사의 공격을 막았다.

괴조뿐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집과 숲까지 베어버린 칼날을 말이다.

“왜냐면 가볍게 휘두른 거니까.”

“헤······. 나이 먹고 내세울 것 없는 늙은이 허세 같은데? 한번 시험해 봐?”

팬이 얄밉게 웃으며 도발했다.

팬의 그림자는 그런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듯 주변의 어둠을 집어삼켜 스스로 그 크기를 키워 허리춤에 찬 단검을 뽑아 들었다.

해적 놀이를 하는 소년처럼 활기차게.

“내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것 같았거든.”

멈칫.

싸우려는 둘 사이에서 퍼펫이 대뜸 말했고, 인육 요리사와 팬은 행동을 멈췄다.

“목표······?”

“그래, 죽은 사람을 되살리며, 완벽한 영혼을 만드는 것.”

인육 요리사와 팬이 관심을 보였다.

왜냐면 퍼펫이 해당 연구를 위해 평생을 바치고 있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었기에. 물론,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페펫이 얼마나 진심이고, 그 연구가 얼마나 어려운 연구인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런 애송이 해결사가 퍼펫 님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을요?”

“그래······. 나름 흥미로운 점이 있었거든.”

“호······. 흥미라면 구체적으로?”

팬이 얼굴을 쭈욱 내밀며 물었다.

“거래를 제안하는 건가?”

“아, 안 넘어오네.”

팬이 아쉬워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검은손끼리는 사소한 것도 거래했으니. 물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도와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거래를 했다. 사소한 것조차도.

“기대에 부응합니까?”

인육 요리사가 대뜸 물었다.

“데이브 말인가?”

“예······. 아니, 대답하지 마십시오. 뭐든 상관없으니까요. 퍼펫 님. 유감스럽게도 그 녀석 제가 죽일 생각입니다.”

“이유는?”

“손해가 막심하거든요. 그 녀석 때문에.”

퍼펫은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 레이크 빌리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는 알고 있었기에.

왜냐면 레이크 빌리지의 세계수를 통제해 외부와 단절시킨 게 자신이었으니.

‘정확히는 내가 아닌 릴리스 덕분이지만, 여하튼.’

인육 요리사가 눈을 번뜩이며 식칼을 흔들었다. 현재 신경이 예민하다는 증거였다.

“저번에 그 녀석이 절 방해하고, 제 제자들을 죽였을 때 그냥 넘어가 줬습니다. 솔직히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퍼펫 님 부탁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놈 때문에 일이 틀어졌거든요.”

“자네 일이 틀어진 게 아니라, 자네 여동생 일이 틀어진 거지.”

척.

인육 요리사가 프렌치 나이프 끝으로 퍼펫의 목을 겨누며 얼굴을 가까이 댔다.

“그게 그겁니다.”

“······그렇군.”

퍼펫이 대답했고, 팬은 주머니에서 땅콩을 꺼내 먹으며 구경했다. 재밌다는 듯이.

“이미 전 퍼펫 님이 주신 선물값을 다 치른 것 같습니다. 이제 그놈을 죽여 제가 먹어치워도 문제없겠지요? ······참고로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닌 통보입니다.”

진심이었다. 인육 요리사는 진심으로 분노하고, 죽일 생각이었다.

하긴, 레이크 빌리지의 실패와 로큘리 대학 건으로 마법사 사회 전반은 물론, 갈로스 현 정권과도 척을 져 상황이 나빠졌으니.

심지어 파테르교 역시 점점 움직이고 있었고.

신경질적인 것도 이해됐다.

‘가장 큰 이유는 여동생 때문이겠지만.’

퍼펫이 판단, 분석하며 대답했다.

“마음대로 하게.”

“······진심입니까?”

“그래. 뭐랄까. 재능도 실력도 있는 놈 같은데, 내가 기대한 것과 달라서. 검은손으로 스카우트할까 했는데, 거절하더군······.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대답이 됐나?”

인육 요리사는 찜찜함을 느꼈다. 애당초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인간이 아닌데.

검은손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았음에도 같은 연구에 매달린 게 그 증거.

허나, 그렇다고 따질 수도 없었다. 원하는 대답은 들었으니 말이다.

“하나 더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저희를 부른 이유는 뭡니까? 팬까지 불렀으면 뭔가 할 말이 있어 부른 것 같은데 말입니다.”

“별거 아니야.”

퍼펫이 그리 대답하며, 한쪽에 버려진 통 위에 앉았다.

“다들 앞으로 어떻게 지낼 건지 물어보려고 부른 거야. 파테르······. 그 광신도들도 종말이 찾아오는 걸 느끼고 있거든. 사실상 기정사실이지.”

퍼펫은 세상이 멸망할 거란 이야기를 너무나도 가볍게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게 아니긴 했지만.

“넌 어떻게 지낼 건데?”

가만히 땅콩이나 씹고 있던 팬이 반대로 질문했다.

“난 계속 연구를 해야지. 자네들은?”

팬은 어깨를 으쓱였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나도 평소처럼 지내야지. 왜냐면 알아서 전부 다 잘 될 테니까.”

“전 다가올 새 시대에 맞춰 준비할 겁니다.”

“결국, 다들 평소처럼 지내겠다는 거군. 좋아, 그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혹시, 내 연구에 도움 될 것 같은 게 있으면 연락해 줘. 가장 좋은 값으로 사줄 테니.”

인육 요리사와 팬은 석연찮음을 느꼈다.

퍼펫이 부른 것 치고는 너무 싱거웠다. 왜냐면 그는 검은손 중 가장 오래된 존재이자, 그 세력이 가장 클 것이라고 추측되는 존재······. 아니, 그 이전에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같은 손가락조차도.

그런 그가 고작 그런 이야기나 하러 부르다니······. 이상했다.

“퍼펫 님.”

정말 볼일을 마쳤다는 듯 떠나려는 퍼펫을 인육 요리사가 불러 세웠다.

“할 말 있나?”

“예······. 거래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좀비 병사와 그들을 운용할 수 있는 흑마법사, 시설 등을요. 조만간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군. 내 제자 놈에게 이야기해두지. 자세한 건 그놈에게 이야기해.”

“알겠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퍼펫은 다시 발걸음을 옮겨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퍼펫이 떠나자 팬도 떠나려고 했다. 애당초 팬이 여기 온 이유가 퍼펫이 불렀기 때문이었으니.

하늘을 날던 또 다른 괴조가 땅으로 내려오며 팬이 그 위에 올라탔다.

“멈춰 봐.”

“응? 왜? 한번 해보게?”

팬은 여느 때와 같이 도전적인 아이처럼 굴었다.

“원한다면······. 하지만 그전에 이야기부터 나누지.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음, 어디 보자······. 난 역시 관심이 없는데?”

“아니, 관심이 있을 거야. 파테르교 천사의 아들과 관련된 거니.”

“······뭐?”

팬이 멈칫하며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이럴 줄 알았다. 놈은 자신이 왕자라 생각하는 망상에 빠진 미친 꼬맹이였으니.

“천사의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했다······. 들을 거야 말 거야?”

인육 요리사가 다시 말했고, 팬은 괴조에서 내렸다.

곧 둘은 대화를 시작했다.

***

란다의 낙후 구역 중 하나인 X구역.

그중 한 대규모 다세대 주택에서 큰 언성이 들렸다.

“건방지군! 감히, 내 할아버지 때부터 받아온 이 건물을 달라니! 당신 눈에 이게 사고팔 수 있는 물건처럼 보이는가?! 이 건물은 우리 집안은 피와 눈물, 땀으로 이룩한 재산 그 이상이야! 우리의 터전, 긍지라 이 말이지! 명예도 모르는 자들 같으니. 어디 산더미 같은 돈다발을 가져와 봐라! 내 눈 하나-”

-쿵.

다세대 주택의 주인이 열변을 토하던 중 조가 동료들과 함께 거대한 더플백을 3개 탁자 위에 던지듯 올렸다.

하나같이 안이 꽉 차 척 보기에도 빵빵했고, 묵직해 보였다.

건물 주인이 묘하게 압도돼 물었다.

“이게······. 뭐요?”

건물 주인 맞은편에 앉은 포레스트가 특유의 신사적인 태도로 권했다.

“열어보시지요. 선생님.”

건물 주인은 의심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더플백을 열어보았다.

놀랍게도 빵빵한 입구가 열리자, 돈다발이 쏟아져 나왔다.

아까 전 자신이 말한 산더미 같은 돈다발이.

공기가 변했으며, 포레스트는 이를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액수는······. 굳이 말할 필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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