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84화 (384/633)

384. 쿠키 대화 (3)

올리버는 자신의 말대로 마리와 함께 쿠키나 케이크,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한 호텔에 들렀다.

시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호텔로, 이름은 크로스로드였다.

“크로스로드 호텔······. 천사의 집 아가씨들이 말씀하시길 여기 디저트가 꽤 맛있다 하더군요,”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에 앉은 올리버가 메뉴판을 살피며 말했다.

“천사의 집이요?”

“예. 거기 종업원 아가씨들에게 여러 도움을 받았거든요. 화장술이라든가, 매너, 예법, 춤, 대화법 같은 거요.”

“아······.”

마리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탄성만 냈다. 그도 그럴 게 올리버가 웬 여자들을 안다고 하는 게 영 믿기지 않고, 기분도 묘했기에.

덕분에 마리는 손에 든 메뉴판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

“마리.”

“예? 예. 주인님.”

“메뉴 정하셨나요?”

“아······. 죄, 죄송합니다. 아직 못 정했습니다.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요.”

올리버는 천사의 집 종업원들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음······. 혹시, 괜찮으시다면 제가 대신 주문해 드려도 될까요?”

올리버가 제안하자 마리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얻자마자 올리버는 종업원을 불렀다.

“차랑 우유, 초콜릿 케이크하고, 초콜릿 쿠키 주실 수 있나요?”

천사의 집 아가씨들이 여기 초콜릿 케이크가 최고라 한 걸 떠올리며 주문했다.

잘 차려입은 종업원이 물론이라 대답하고는 물러나더니 곧바로 쟁반에 주문한 메뉴를 들고 나타났다.

“고맙습니다. 조지.”

올리버가 종업원의 이름표를 확인하며 팁을 건넸고, 종업원은 팁 액수에 걸맞게 친절한 미소로 화답했다.

“필요한 일 있으시면 얼마든지 불러주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종업원이 물러나자 다시 올리버와 마리, 단둘이 남게 되었다.

마리는 자연스럽게 주문하고 팁을 건네는 올리버를 묘하게 바라봤다.

감탄스러운 듯하면서도 낯선 눈빛으로 말이다.

올리버는 그런 마리의 시선을 읽었지만, 모른 척하며 은색 접시에 담긴 쿠키를 하나 들어 반으로 탁 쪼갰다.

올리버는 그중 한 조각을 자기 앞에 놓인 우유 컵에 담그고는 입에 넣어 맛봤다.

뭐랄까······. 맛이 있긴 있는데, 올리버가 기대한 그 맛은 아니었다.

‘역시, 꿈에서만 그 맛이 느껴지는 건가?’

올리버가 자기가 꿨던 꿈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무슨 꿈을 꿨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고민 있으십니까?”

올리버의 안색을 살피던 마리가 질문했고, 올리버는 아니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습니까?”

“예. 그러니 마리도 걱정하지 마시고 케이크 좀 드셔보세요.”

“아, 예······.”

마리는 올리버의 말에 따라 진한 초콜릿 케이크를 포크로 자르고, 찍어 입에 넣었다.

“맛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갈 때 케이크나 쿠키도 사 갈까요?”

마리는 뭔가 말하려다 다시 말을 삼키곤,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선······. 이런 호텔을 자주 이용하시나요?”

“데이브.”

“예?”

“데이브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여기서는 일단 그 이름을 쓰고, 또, 주인님이란 단어는 눈에 띄는 것 같아서요.”

평소의 마리라면 어찌 감히 그러냐라고 말했겠으나, 올리버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분위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답해드리자면 자주 이용하는 건 아니지만, 몇 번 이용해본 건 사실입니다. 호텔 같은 시설요.”

“그, 그러시군요.”

“예, 이곳에서 해결사 일을 하다 보니 몇 번 사용하게 됐습니다.”

“주인님······, 아니. 데이브 님이 해결사 일을 하는 건 이후 들었습니다.”

올리버는 님자란 소리도 빼게 할까 하다 이내 관뒀다. 마리가 이미 한번 양보한 터였고, 또 지금 대화 흐름을 놓치기 싫었기에.

“호텔을 처음으로 이용한 건 주인님 심부름했을 때입니다.”

“예?”

“조셉 주인님 말입니다. 마리와 저를 거둬준 그분요.”

“아······. 예.”

“그분이 제게 란다로 돈을 가져오라 했을 때, 절 데리고 호텔로 와 생선살 요리를 사주시며 이것저것 여러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나요?”

“흑마법사의 최대 소양이 열망이라면서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어쩌다 자신이 강력한 흑마법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요. 혹시, 마리는 아시나요?”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애당초 조셉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체 자신을 철저히 숨긴 사람이었기에.

“어릴 적 호텔을 방문했기 때문이라 하더군요.”

“호텔요?”

“예. 세상이 이렇게 멋진 곳이 있는 줄 몰랐다고 감동했다더군요. 또 동시에 슬펐다고 했습니다. 이대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세상을 맛보지 못한다고요······. 그래서 그분께서는 강력한 흑마법사가 될 열망을 가지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하찮은 사욕이군요.”

마리가 경멸감을 빛내며 말했다.

하긴, 마리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강해지기 위해 흑마법사 되려고 했지만, 이후에는 여러 사람을 도와줬으니. 비록, 잘못된 신앙심에 기반했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는 고쳐야 할 때지만.’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 뭐가 됐건, 사욕이긴 하죠. 하지만, 동시에 그분은 자신의 꿈? 목표? 열망? 뭐가 됐건 그것에 진심이기도 했습니다. 죽는 순간에도 포기하지 못했고, 갈망했거든요.”

올리버는 조셉이 죽기 직전 빛냈던 아름다운 빛을 떠올렸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자기 죽음조차 초월할 수준이었기에.

‘던칸, 셰이머스처럼.’

“음······. 그래서 전 사적인 욕심이라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의지니까요······. 그래서 마리가 절 신으로 모시는 것도 일단 허락해드린 거고요.”

“그것은 데이브 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할 필요 없어요. 엄밀히 말하면 허락해드렸다기보다는 제가 감히 막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 그런 것뿐이거든요. 전에도 말한 적 있죠?”

마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란다에서 마리를 처음 만나 싸운 직후 올리버는 그에 관해 말했다.

“마리가 한 일이라든가, 마리가 만든 종교에 의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을 걸 느꼈거든요······. 그래서 제가 마리를 막을 권리가 있는지 의문이라 허락한 것뿐입니다.”

“데이브께선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저희의 신이시니까요.”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마리.

올리버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초콜릿 쿠키와 우유를 먹었다.

“마리.”

“예······.”

“아까 전, 제가 떠날 건지 물어보셨지요?”

“예.”

마리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했다. 곧 이내 죄의식을 빛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 혹여, 제가 데이브 님을 귀찮게 해드린 거라면 죄송합니다. 저, 전 너무 두려워······.”

“귀찮지도 화나지도 않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올리버가 떠는 마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리는 그 순간 기쁨을 빛내며 떨림이 잦아들었다.

여성이 떨 때면 손을 잡거나, 안아주라는 천사의 집 종업원들의 조언이 아무래도 정답인듯했다.

“저, 정말입니까?”

“예. 물론입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옛날에 갑자기 떠난 거요. 당시 제가 책임자였는데, 너무 무책임하게 떠났습니다. 늦었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마리가 어찌할지 몰라 당황했다. 이런 식의 전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아, 아뇨. 데이브 님께서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저희가 모자라-”

“-아뇨. 제가 사과할 일이 맞습니다. 뭐가 됐건 떠날 생각이긴 했지만, 최소한 그런 식으로 떠나서는 안 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올리버는 진심으로 말했다. 고작, 쪽지 한 장 남기고 떠나다니. 그건 아니었다.

다소 귀찮은 일이 발생한다 해도 정식으로 인사하고 떠났어야 했다.

최소한 그랬다면 마리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그, 그럼······. 이제는 떠나실 생각이 아닙니까?”

“아뇨, 그건 좀 더 나중에 정할 문제일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허락을 구해야 하거든요. 시(市)에요.”

“시(市)요?”

“예, 이곳 자유도시 란다를 통치하는 기관으로, 먼저 이쪽에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건 마리와 전 지금 파테르교와 엮였고, 제 짧은 소견으로는 시(市)도 부담이 갈 것 같아서요.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미리 시(市)에 허락을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그러면 탈이 날 것 같아서요.”

“데이브 님께선 저희가 란다에 머무는 걸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일단, 저는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와인햄에 있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그전에 마리께 드릴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뭐든지 하겠습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을 폐(廢)해 주시겠습니까?”

***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발언에 마리의 두 눈이 흔들렸다.

하긴 당연할지도. 조직을 이끌고 성장시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과 시간, 자원을 소모해야 하는 일.

신도들의 수가 3에서 4만이나 되는 조직이면 더욱 그러했다.

그런 조직을 단숨에 폐(廢)해 달라니, 제아무리 마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란다에 머물려면 그래 주셔야 합니다.”

“······어, 어째서인지 감히 여쭐 수 있겠습니까?”

“첫 번째는 파테르교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종교를 유지한 채 여기 있다면 파테르교가 자체적으로 수사할 수 있거든요······. 두 번째는 시(市)에서 사이비 종교 단체를 좋아할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저희는 사이비가 아닙니다!”

마리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올리버가 타이밍에 맞춰 방음 마법을 전개하지 않았으면 식당 내 모든 사람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죄송하지만, 마리. 당신을 모욕할 생각은 없지만, 선택받은 사람들은 사이비 맞습니다.”

“어찌해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마리가 슬픔을 빛내며 물었다, 그녀의 두 눈은 촉촉해졌다. 단순한 분노나 서러움을 넘어선 감정이었다.

“왜냐면 제가 신이 아니기 때문이죠.”

올리버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애당초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지만.

자신은 신이 아니라니······.

허나, 마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그녀는 고집과 의지를 빛내며 자리에 앉지 않고, 몰이해와 슬픔, 믿음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진심을 담아.

“도대체······. 신이란 뭐죠?”

“예?”

“신이란 무엇이냐 여쭤봤습니다.”

예상치 못한 질문. 올리버가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올리버는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신(神)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세상을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며, 전지전능(全知全能)한 불멸의 존재······아냐, 아냐.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신이란 건 그것보다 좀 더······.’

“-그대께선 저희를 두 번이나 구해주셨습니다.”

고민하는 올리버를 향해 마리가 입을 열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조셉의 노예로 썩어가던 저희에게 선택권을 줘 인생을 구해주셨고, 또, 어젠 강대한 적으로부터 구해주셨지요. 본인조차 위험한데도 불구하고요.”

“······.”

“심지어 구해준 후에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저희에게 베풀기만 하셨죠. 돈을 주시고, 가르침을 주시고 용기를 주셨죠. 저희도 얼마든지 배우고 나아질 수 있다고요.”

“그게 사실이니까요.”

올리버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했고, 마리는 기쁨을 빛냈다.

“그래서 신으로 믿는 겁니다. 신이란 인간을 구원해주는 존재고, 데이브 님께선 저희를 구해주셨으니까요. 그것만으로 저희가 신으로 모실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마리는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고, 진심이었다.

올리버는 그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신이란 무엇인지 맥락을 잡은 느낌이었다.

“아······. 역시 세상은 재밌네요. 여기서 제가 마리에게 가르침을 받다니요.”

“예?”

“신에 관해서요. 마리가 말한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전 더더욱 신이 될 수 없고요.”

“······?”

“왜냐면 저 역시 사욕을 위해 사람을 죽였고, 즉흥적인 감정에 휩쓸려 큰 실수를 저질렀거든요.”

올리버는 해결사로서의 자신의 삶과 와인햄에서의 과도한 폭력, 빈민 가족을 떠올렸다.

“그러니 전 당연히 신이 아니고, 신과 아주 거리가 있는 존재입니다.”

“주-”

-척.

올리버가 손을 들어 마리의 말을 막았다.

평소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단호함이 깃들어 있어 마리는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그만하죠, 무엇보다 전 신이고 싶지 않거든요. 전 그냥 저이고 싶습니다. 고아인 올리버이자, 란다의 해결사 데이브, 마탑의 교수 개인 직원 제논요.”

그 말에 마리가 고개를 푹 숙이며 입에 담은 말을 도로 삼켰다.

그녀는 꽤 괴로워 보였다.

“만약······. 아주 만약 제가 데이브 님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저희를 떠나실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마리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와 대비되게 올리버는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안타깝게도 그럴 경우, 란다는 떠나야겠지만, 일단은 마리와 마리 동료분들이 안전해질 때까지는 옆에서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다른 소도시에 자리 잡거나, 해외로 떠나든 뭐든 해서요.”

마리는 식탁보를 꽉 쥐더니,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린 것. 이후, 그녀는 온갖 감정이 용솟음치며 격류처럼 요동쳤다.

안도, 기쁨, 다행, 혼란, 몰이해, 의문으로 말이다.

마리는 아까 전보다 더 촉촉해진 눈으로 질문했다.

“어, 어째서······?”

“음······. 이번에는 깔끔하게 끝까지 돕고 싶고, 또, 마리가 걱정되기도 해서요. 전······. 마리가 무사했으면 좋겠거든요.”

“진심·····입니까?”

“예, 마리는 절 도와줬을 뿐 아니라, 제게 글을 포함해 이것저것 알려준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소중한 사람. 그 단어에 마리의 눈은 크게 흔들렸다.

“물론, 란다를 떠나는 건 많이 안타깝긴 하겠지만요.”

“저, 저는-”

마리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리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려는 찰나, 갑자기 제3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밝고 활기차며 자신감이 깃든 목소리였다.

“-어머! 잘못 본 게 아니네요! 데이브······. 오랜만에요.”

다름 아닌 분홍 머리의 제인으로, 남성미와 여성미가 뒤섞인 정장을 입은 그녀는 한쪽으로 넘긴 긴 머리카락을 다시 넘기며 올리버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등장에 마리는 언짢음을 빛냈고, 올리버는 담담히 인사했다.

“아, 반갑습니다. 아가씨. 오랜만입니다.”

그리고는 그것도 모자라 올리버는 곧바로 마리와 제인을 서로 인사시켜줬다. 예절에 따라 말이다.

두 사람 다 딱히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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