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83화 (383/633)

383. 쿠키 대화 (2)

쏴아아아아아아.

잠에서 깬 올리버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올리버의 머리 위에 쏟아졌고, 그 물줄기들은 머리를 시작으로 목, 등, 가슴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 올리버의 몸에 묻은 이물질과 함께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잠을 푹 잔 덕분에 개운해진 머리는 더욱 선명해졌으며, 올리버는 몸을 씻기 시작했다.

샤워를 마친 후, 올리버는 밖으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고, 보습제를 얼굴과 몸에 바른 다음, 가죽 가면을 뒤집어쓰고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에는 올리버가 아닌 란다의 해결사 데이브가 서 있었다.

“음······.”

이리저리 거울을 살펴보고 별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올리버는 옷을 갈아입은 다음 몸에 향수를 뿌렸다.

천사의 집 아가씨들이 진정한 왕국 신사는 향수를 뿌려야 한다고 했기에.

‘저는 왕국 신사가 아닌 란다 사람인데요?’

‘제발 대충 알아먹어 주시면 안 될까요?’

향수까지 다 뿌려 평소 데이브의 모습으로 돌아온 올리버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수십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거실 구석과 계단 등에 웅크려 앉아 있었다.

집이 크지만, 대피시킨 선택받은 사람들 역시 많았기에 좁게 지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올리버를 보자마자 주뼛주뼛 일어나 어색하게 허리와 머리를 숙였다.

그들의 감정에는 두려움과 경외감 그리고 난감함과 혼란이 있었다.

아까 전 올리버가 자신에게 무릎 꿇지 말라 부탁한 게 어지간히 곤혹스럽고, 혼란한 듯 말이다.

‘음······. 할 게 많네.’

올리버가 자신에게 고개 숙인 수십 명의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다 씻으셨습니까? 주인님.”

올리버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던 마리가 앞으로 나왔다.

“예, 개운하고 좋네요.”

“그러시다니 저 역시 기쁩니다.”

허리를 숙이며 정중히 대답하는 마리를 보며 올리버는 뭐부터 해야 할지 정했다.

“마리.”

“예, 주인님.”

“다들 식사는 잘하고 계시나요? 떠나기 전 냉장고에 음식을 가득 채우긴 했는데, 모자라진 않나요?”

올리버가 와인햄으로 떠나기 전 여차하면 사람들을 이곳으로 대피시킬 계획을 세웠기에, 포털 마법이 깃든 종이뿐 아니라 음식도 가득 준비해 놨다.

도망치든 대피 중이든 사람은 먹고살아야 했으니.

채소와 고기, 빵, 통조림 등을 가득 쌓아놓았는데, 생각 이상으로 대피시킨 사람들이 많아 충분할지 걱정이었다.

마리가 대답했다.

“예, 다들 주인님께서 베풀어주신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에 감사히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거기다, 차일드 님들께서 양식을 잘 분배해주셔서 굶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부탁대로 잘······. 응? 차일드 님이요?”

올리버가 말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일드 님이라니······. 어째 표현이 이상했다.

“예······. 주인님의 위대한 피조물이라며 자신들을 그리 부르라고 하셔서요.”

“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올리버가 탄성을 냈다. 설마, 그런 식으로 자신들을 소개할 줄이야.

“혹시 저희가 잘못 아는 게 있습니까?”

“아뇨, 그건 아닌데······. 차일드는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퍼스트랑 써드요.”

“지금 두 분은 식사 중입니다.”

“식사······요?”

“예.”

***

슈하아━!

슈하아━!

마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올리버의 저택 내부 쓰지 않는 빈방에서 차일드-퍼스트와 써드가 식사 중이었다.

올리버가 대피시킨 선택받은 사람들의 생명력과 감정으로 말이다.

“이건······. 예상 밖이네요.”

올리버가 방 안으로 들어와 눈앞의 광경을 보며 말했다.

송장인형-바토리와 셰이머스에 들어간 퍼스트와 써드는 사람들을 무릎 꿇린 채, 입을 벌려 그들의 감정과 생명력을 조금씩 조금씩 빨아 먹고 있었다.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말이다.

꽤 만족스러운 듯 그들은 웃으며 식사하였는데, 방으로 들어온 올리버와 눈을 마주치자 화들짝 놀란 감정을 빛냈다.

“······어?”

“데, 데이브······?”

올리버는 퍼스트와 써드, 무릎 꿇은 채 순순히 생명력과 감정을 공양하는 사람들을 다시 훑어봤다.

다시 봐도 그렇게 치명적인 양은 아니었다.

감정은 스스로 회복될 정도고, 생명력 역시 잘 먹고, 잘 쉬면 회복할 수준.

그렇다 해도 뭐랄까······. 좀 그랬다.

“······.”

말없이 안을 둘러보던 올리버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안으로 들어가 뚜벅뚜벅 퍼스트와 써드에게 다가갔다.

이질적인 올리버의 분위기에 사람들은 뭐에 홀린 듯 옆으로 길을 텄으며, 퍼스트와 써드는 서로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뒷걸음질 쳤다.

그래 봤자 방이 좁아 멀리 가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올리버는 어느새 그들 앞에 다가갔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모두가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침묵하던 중 올리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퍼스트, 써드.”

“으응······.”

“어어······.”

“두 분 혹시 많이 배고프셨나요?”

퍼스트와 써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부모에게 혼나는 아이처럼 굳은 채.

“제가······. 드실 것 준비해 놓고 가지 않았나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와인햄으로 가기 전 차일드들이 먹을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넉넉히 준비하고 떠났다.

일이 얼마나 걸릴지 몰랐기에.

허나, 예상한 것보다 일은 훨씬 빨린 끝났고, 덕분에 차일드가 먹을 감정과 생명력 마력은 부족할 수가 없었다. 과식한다 해도 말이다.

“근데 왜 이분들 감정과 생명력을 뽑아 드신 거죠?”

신경질적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올리버가 물었고, 퍼스트와 써드는 서로를 꼬옥 잡았다.

“그······갓 뽑은 게······맛있어서?”

퍼스트가 용기 내 말했다.

실제로 퍼스트와 써드가 올리버가 준비해 둔 감정과 생명력 등이 남았음에도, 사람들의 감정과 생명력을 뽑아 먹은 이유는 갓 뽑은 게 맛도 영양도 훨씬 높아서였다.

비유하자면 고기 통조림과 신선한 고기의 차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거기다 여기 사람들이 올리버에게 품은 감정은 차일드들의 입맛에 너무 딱 맞기도 했고.

“그래서 먹었다······. 조금씩······.”

올리버의 안색을 살피며 퍼스트가 마저 말했고, 셰이머스에 들어간 써드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올리버는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없이 퍼스트와 써드를 바라봤다.

조금 기괴할 뿐 그렇다 할 위협이 없는 모습이었건만, 방 안에 있는 모두 숨을 참으며 올리버를 주시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보듯.

한참의 침묵 후, 올리버가 퍼트스와 써드의 손을 천천히 잡았다.

송장인형-바토리와 셰이머스의 손을.

느린 동작이었음에도 퍼스트와 써드는 반항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고, 손을 잡은 올리버는 그 상태로 자신의 두 손을 모았다.

“퍼스트, 써드······. 혹시, 두 분은 자유를 원하나요?”

“······?”

“절 떠나서 자유롭게 살고 싶나요?”

퍼스트와 써드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화난 것도, 무슨 속셈이 있는 것도 아니니, 솔직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솔직히요.”

퍼스트와 써드는 서로를 바라봤고, 아까와 똑같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 아니······아니다.”

“응······. 아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올리버가 그 둘의 손을 잡은 채 살짝 힘을 줬다. 아플 정도는 아니었지만, 퍼스트와 써드는 그것만으로 불편해 보였다.

“일할 때 외에는 함부로 다른 사람들 감정과 생명력, 마력 등을 뽑아 먹지 말아주시겠어요? 일할 때도 저한테 한번 물어봐 주시고요. 가능할까요?”

올리버의 정중한 부탁에 퍼스트와 써드 모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알았다.”

“이해······. 이해했다.”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이해해주셔서······. 무슨 할 말 있으십니까?”

올리버가 방안에 무릎 꿇은 사람 중 한 명을 보며 물었다. 그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그게······저, 저희는 괜찮습니다.”

올리버가 한쪽 무릎을 꿇어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무엇이 괜찮다는 말씀이죠?”

“가, 감정과 생명력······. 저희가 원해서 바친 겁니다. 신의 위대한 피조물인 차일드 님을 위해서라면 저희는 얼마든지-”

올리버는 말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살며시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평범한 몸짓이었음에도 아주 부드럽고, 자비로워 보였다.

“괜찮지 않습니다.”

“······예?”

“괜찮지 않다고요. 자기 몸을 그렇게 다루는 건요. 또······.”

“······.”

“전 신도 뭣도 아닙니다. 차일드도 차일드 님이 아니라 그냥 차일드고요.”

“차일드 님이 좋은데······.”

퍼스트가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렸고, 써드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가 슥 한번 보자 입을 다물었지만 말이다.

올리버는 다시 시선을 돌려 차일드에게 자신의 생명력과 감정을 바친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다들······. 자기 몸을 소중히 생각하세요. 여러분 몸이니까요.”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했고, 올리버는 그대로 일어나 퍼스트에게 질문했다.

“집에 먹을 게 얼마나 남아 있죠?”

질문을 들은 퍼스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얼마 없다······. 사람 많아서······.”

“잘됐네요······. 마리.”

“예, 주인님.”

“저랑 같이 장 좀 보러 가주실 수 있을까요?”

“장이요?”

“예.”

***

부탁대로 마리는 올리버와 함께 시장으로 와 장을 봤다.

사람 인원수를 고려해 채소와 과일, 빵, 고기 등을 샀는데, 사람 인원수가 인원수다 보니 가게 주인의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주문했다.

가게 주인은 정말 그만큼 주문하는 게 맞는지 확인했고, 올리버는 돈을 보여주며 맞다고 대답해줬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현금을 보여주자 가게 주인들은 양 소매를 걷어붙이곤 올리버가 말한 물건을 직접 준비해 건넸다. 덤까지 얹어가며 말이다.

“여기 주문한 고기 나왔습니다.”

정육점 주인이 가게에서 쓰는 세 발 수레에 포장된 고기를 한가득 담아오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대량 주문에 그는 몹시도 기뻐했다.

“고기는 모두 신선한 거고, 덤도 몇 개 얹었수다.”

진심. 올리버는 정육점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며 바로 돈을 지불했다.

두툼한 지폐 다발을 받은 주인장은 기뻐하며 돈을 헤아리고는 제안했다.

“고맙긴 내가 고맙지······. 그보다 저거 어떻게 들고 갈 생각이요? 두 사람으로는 다 못 들고 갈 것 같은데, 원하면 주소 불러주쇼. 우리 애들 시켜 배달해 드릴 테니.”

앞의 채소 가게와 빵 가게 주인들과 같은 제안.

올리버는 그들의 친절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정중히 거절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들고 갈 수 있거든요.”

올리버는 대답하며 등에 멘 가방을 앞으로 돌려 열었다. 그런 다음 앞의 빵 가게와 채소 가게처럼 고기를 하나하나 넣었다.

“호오······. 마법 가방인 거요?”

놀란 정육점 사장의 질문에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런 이런. 주문량을 보고 보통 손님은 아닐 줄 알았지만, 그 이상이었구만. 설마 마탑에서 일하시는 거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저도 물어봐야 해서요.”

“아, 마탑에 취직하러 온 마법사였구만! 좋은 소식 있길 바라겠소. 만약, 여기 자리 잡으면 또 오고. 내 좋은 고기로 싸 드릴 테니,”

“말씀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정육점 사장과 자연스럽게 담소를 나누곤 자리를 떠났다.

가게를 나와 거리로 들어섰을 때 올리버가 마리에게 말했다.

“같이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주인님······. 장 보는 건 저희를 시키셨으면 됐을 텐데, 오히려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장을 보고 싶어 나온 것뿐입니다. 즐겁거든요. 장 보는 것 자체가요······. 또, 여러분은 아직 집 밖으로 나오면 안 되고요.”

“예?”

“그게 여러분이 란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려면 먼저 시(市)에 허락을 구해야 하거든요······. 거기다 마리에게 제가 따로 할 이야기가 좀 있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장 보러 온 거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리는 대답하지 않고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주인님······. 혹시, 또 떠나실 생각입니까?”

마리가 눈에서 온갖 불안한 감정을 머금은 채 물었다. 그도 그럴 게 올리버가 떠나기 전 상황과 너무나 비슷했다.

벗어난 위기와 찾아온 안정, 정착······. 아이러니하게도 마리는 안정이 찾아올수록 두려웠다.

과거처럼 자신의 주인이, 신이 떠날 것 같았기에.

올리버는 그 질문에 발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렸다.

“혹시, 달콤한 거 좋아하세요?”

“예?”

“달콤한 거 좋아하시냐고요. 쿠키나 케이크, 아이스크림 같은 거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마리가 갈피를 잡지 못하며 대답했다.

“아······. 예, 좋아합니다. 주인님.”

“그럼, 지금 먹으러 갈까요? 저도 지금 쿠키가 먹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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