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 쿠키 대화 (1)
푹.
올리버가 쿠키를 들어 자기 앞에 놓인 머그잔에 담갔다.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남자가 말했다.
“역시 그렇게 먹는 게 맛있지?”
올리버는 새하얀 우유에 담긴 쿠키를 건져 입에 넣어 맛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게 더 맛있는 거 같습니다.”
“다행이네. 많이 먹어.”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운 남자가 탁자 위에 산처럼 쌓인 쿠키를 가리켰다.
주먹만 한 쿠키는 초콜릿이 촘촘히 박혀 있어 척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 쿠키 더미 보다 눈앞의 남자에게 더 눈이 갔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말이다.
조명 탓인지, 이 공간의 특성 탓인지 남자의 얼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생김새를 제대로 살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제대로 살펴볼 수 없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도 뭔가 이상했다.
빼빼 말라 보이는가 하면, 에디스처럼 뚱뚱해 보이기도 했고, 포레스트처럼 잘 차려입었는가 하면, 캔트처럼 남루한 복장을 한 것 같기도 했다.
제대로 보려고 집중할수록 혼란만 더 깊어졌다.
‘심지어 감정도 전혀 볼 수 없네······. 어르신처럼 뭔가 가로막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안 보여. 전혀.’
올리버가 쿠키를 먹으며 맞은편 남자를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볼 수도 알아낼 수도 없었다.
전혀 아무것도 말이다.
단 하나 확실한 거라면, 올리버가 여태까지 봐온 사람들보다 대단한 존재라는 것뿐이다. 심지어 말을 탄 노인보다도.
어떠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 널 해칠 생각은 없으니. 당장은.”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 남자가 말했다. 진심인지, 거짓인지 올리버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믿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올리버는 그의 배려와 친절에 감사를 표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고, 올리버는 쿠키를 말없이 먹었다.
초콜릿이 촘촘히 박힌 쿠키를. 맛 하나만큼은 좋았다. 마치, 올리버의 입맛에 딱 맞춘 것 같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질문 하나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올리버가 커다란 머그잔에 든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며 질문했다. 놀랍게도 다 마셔 밑바닥이 보였음에도, 마법처럼 우유가 다시 채워졌다.
“뭐니?”
“여기가 어딘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그보다 넌 여기 어떻게 왔니?”
남자가 되물었다.
그 말에 올리버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여기 어떻게 왔더라?
“음······. 포털을 열어 거주지로 돌아갔습니다.”
“거주지가 어디지?”
“란다······. L구역입니다. 중산층 거주지죠.”
“살기 좋아?”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실까지 딸린 2층 주택이라 생활공간을 나누기도 편했으며, 한밤중에 취객의 술주정이나, 총소리에 깨지 않아도 됐으니 말이다.
여러모로 살기 좋았다.
물론, 그만큼 비싸기도 비싸 아주 처음에는 좀 과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생활을 시작하며 곧 생각이 바뀌었고, 오늘은 이사하길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이유가 뭐지?”
“대피시킨 수십 명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서요. 넉넉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지낼━아.”
올리버가 대답하다 말고 탄성을 냈다. 자신이 여기 어떻게 왔는지 깨달았다.
올리버는 성기사들에게 사과하고, 포털을 열고 거주지로 돌아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침대로 가 바로 잠을 청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너무 피곤해서.
“이거······. 꿈이군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수수께끼 같은 말에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꿈이······. 아닐 수도 있다고요?”
올리버가 다시 쿠키를 먹었다. 맛이 났다. 선명하게.
“대답했잖아. 꿈일 수도 아닐 수 있다고. 아이가 생각하기 나름이지.”
“아이요? 혹시, 절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아이야.”
“아······. 제 소개가 늦어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올리버입니다.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선생님.”
“나도 만나서 반갑구나. 아이야.”
올리버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음에도 남자는 올리버를 아이라고 칭했다.
올리버는 정정할까 고민하다 고개를 저으며 관뒀다. 딱히, 악의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고, 굳이 정정할 이유도 없었으니.
뭣보다 눈앞의 남자가 자신이 말한다고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올리버는 좀 더 생산적인 질문을 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의 성함을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
남자가 대답했다. 올리버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발음이 어려운 걸 아득히 넘어서는 수준.
올리버는 다시 한번 이름 이름을 물어봤다.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
“······죄송합니다. 무슨 이름인지 발음조차 알아듣지 못하겠습니다.”
“괜찮아. 이상한 게 아니야.”
놀랍게도 올리버는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죄송하지만, 뭐하시는 분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
“예?”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라 했다. 왜냐면 아무것도 안 하고 있거든.”
“아······. 그러시군요.”
“한심해 보이니? 아이야?”
남자가 대뜸 물었다. 자신이 한심해 보이냐고.
올리버는 남자를 다시 관찰하고는 대답했다.
“아뇨.”
“그래?”
“예······. 일단, 제가 누굴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또, 선생님이 누군지도 모르니까요······. 혹시, 아무것도 안 하기 전에는 뭘 하셨죠?”
남자는 침묵했다. 감정을 전혀 읽을 수 없고, 얼굴도 그림자 탓에 볼 수 없어 그 속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건 생각 이상으로 답답하고, 두려웠다.
“······혹시, 실례되는 질문이었다면 사과-”
“-정원사를 했지.”
“정원사요?”
“뭔지 아니?”
어른이 아이에게 묻듯 남자는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올리버가 고민하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아는 게 제대로 맞는 건지 의문을 가지며.
“그······정원을 관리하는 분 아닙니까?”
“맞아. 하찮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로 하는 일이지. 인내심도······. 업무 강도도 높고.”
“주제넘을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하찮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원사를 포함한 모든 일이요.”
“그러니?”
“예. 누군가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요······. 필요로 하는데 어찌 하찮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정원사는 어떻게 하게 되신 거죠?”
“재능이 있었고, 나밖에 할 사람이 없어서.”
“아······. 많이 힘드셨습니까?”
남자는 잠시 고민했다.
“많이 힘들었어. 그래서 쉬고 있는 거고······. 정원이라는 게 관리하기 많이 힘들더라고.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고. 피곤해.”
“아······. 그렇군요. 많이 힘드셨겠군요.”
“그래.”
“음······. 그럼, 보람찬 적은 없으셨습니까? 힘들 정도로 오래 하셨으면 그래도 보람찬 적이 있었을 것 같아서요.”
올리버는 의식과 대화의 흐름대로 질문했다. 궁금하기도 궁금했다. 정원사 일이 보람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다.
남자는 해당 질문이 언짢았는지, 긴 시간 동안 침묵하였다. 올리버가 사과해야 하나 싶은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원래는 어떻게 하려고 했지?”
“예?”
뜬금없는 질문에 올리버가 되물었다.
“원래는 어떡하고 싶었냐고 물었다. 보니파란 성기사.”
“아······.”
올리버가 그제야 질문이 뭔지 깨닫고 소리 냈다. 어떻게 그걸 아는지 물어봐야 마땅했으나, 올리버는 그런 의문을 품지 않고 이야기 흐름대로 대답할 뿐이었다.
왠지 눈앞의 남자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기에.
“음······.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엄지손가락으로 눈을 짜부라트리려 했습니다.”
“왜 눈을 짜부라트리려 했지.”
“멀쩡해서요?”
올리버가 말에 물음표를 붙이며 대답했다. 정확한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는 듯이. 실제로 모르기도 했다. 어쩌면 비명을 듣고 싶어서 그런 걸지도······.
“눈을 찌른 다음에는 어쩌려고 했지?”
“음,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어쩌면 양 팔다리를 뜯으려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왜?”
“달려 있으니까요?”
남자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아무래도 웃는 거 같았다.
“그다음엔 무엇하려 했지?”
“음······. 양 고막을 터트렸겠죠. 귀가 멀쩡하니까요.”
“그다음엔?”
“살가죽이나 혀, 턱을 뽑았으려나요? 뜯을 게 그거밖에 없으니.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아프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왜 그러지 않았지?”
남자가 다시 질문했다. 허나, 앞에 했던 질문과 달리 뭔가 진지했다.
질문을 들은 올리버는 평소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창피해서요.”
“뭐가 창피하지? 소중한 사람이 죽을 뻔했으면 분노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니?”
올리버가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분노하는 게 당연하겠죠. 하지만 그게 뭐든지 해도 된다는 건 아니잖습니까.”
올리버가 자신이 벌였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건물에 새겨진 무의미한 폭력과 자신으로 인해 평화가 깨져 공포에 물든 가족을 말이다.
올리버는 그때 보았다.
자신에게 엄청난 공포를 느낀 어린아이와 그런 아이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는 약간 더 큰 아이들을.
그 아이들은 자신들도 무서운 와중에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고, 그 아이들의 부모로 보이는 늙은 여자와 남자는 스스로 방패막이가 돼 아이들을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다.
본인들조차 당장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싶었음에도 말이다.
올리버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마치 그 기억을 이런 식으로라도 지우고 싶다는 듯이.
올리버는 중얼거렸다.
“다시 떠올려도 창피하네요.”
“그게 왜 창피하지?”
“죄송하지만, 왜 창피하지 않아야 하는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힘이 있으니까.”
“그런가요?”
“그래, 그게 현실이지.”
올리버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소리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창피한 거요.”
“······?”
“전 힘이 있어서, 전부 부수고, 고통을 줬는데, 그들은 힘이 없음에도 소중한 걸 지키려 했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너무 추하더군요.”
그 순간 그림자가 드리운 남자의 얼굴이 살짝 요동쳤다. 그는 표정이 어째━
━번쩍,
남자와 대화를 나누던 중 올리버가 눈을 번쩍 떴다.
아주 푹 잤는지, 눈이 시원할 정도로 개운했으며,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이어진 소란과 업무로 쌓인 피로가 다 날아갔다.
올리버는 눈알을 돌려 자기 바로 옆에서 양 무릎을 꿇은 채 기다리는 마리와 그녀의 부하들을 봤다.
그들은 올리버가 깨자마자 입을 다문 채 일제히 바닥에 이마를 대며 머리를 조아렸다.
제각기 두려움과 경외감을 품으며.
올리버는 천천히 일어나 침대 위에 걸터앉으며 말없이 그들을 내려다봤다.
자신에게 절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주인님.”
“말씀하세요. 마리.”
“보관하라 명하신 성물(聖物) 여기 있습니다.”
마리는 떨리는 두 손으로 아주 조심히 쿼터스태프를 들어 올리버 앞에 바치듯이 올렸다.
쿼터스태프의 높이가 마리의 머리보다 더 높았다.
올리버는 다시 그 모습을 말없이 내려다보다, 천천히 쿼터스태프를 받아 들었다.
“고맙습니다. 마리······. 잘 보관해 주셔서요.”
올리버는 쿼터스태프를 쓰다듬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