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 창피함 (2)
올리버는 보았다.
폐건물 지하실에 숨어 사는 빈민 가족을.
그들은 하나같이 꼬질꼬질했으며,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자기 발에 너무 커 헐렁헐렁한 신발이라던가, 망토 같은 겉옷, 눈마저 가릴 커다란 모자와 같은.
특히, 아이들이 가장 심했는데, 그중 덩치가 가장 작은 아이는 올리버에게 극한의 두려움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았다.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필사적이게 말이다.
형과 누나로 보이는 다른 아이들은 자신과 아이의 입을 틀어막아 억지로 눈물을 참았지만, 올리버와 눈을 마주치자 이윽고 다 끝났다는 듯 크나큰 절망감에 하나둘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으으······. 으아아아앙······!”
“흐어어어어어······엄마······엄마.”
“조용해······. 다들 조용해!”
아이들의 부모로 보이는 늙은 여자와 늙은 남자가 낮게 소리쳐 아이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들 역시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겁을 먹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부모로서 책임감을 불태워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방패막이를 자처했다.
그 감정은 꽤······. 예뻤다. 너무나도 예뻤다.
“음······.”
올리버는 갑자기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차분해지며, 주변을 둘러봤다.
곧 저들이 왜 두려워하는지 깨달았다.
자기 때문이다. 올리버 자신 때문.
올리버는 보니파의 한쪽 눈을 포도처럼 으깨려는 자세에서 고개만 움직여 자신이 행한 가볍고, 같잖은 분노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구멍이 뻥 뚫린 천장과 이미 온몸이 부서지고 으깨져 전의를 상실한 보니파.
이미 끝났어도 진작에 끝난 싸움이었다.
그럼에도 올리버는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 전투 불능이 된 보니파의 눈을 으깨버리려고 했다.
과해도 한참 과했다.
도대체 이 이상으로 상처 입혀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이러는 건지······.
그 사실을 깨달은 올리버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으며, 아이들을 지키는 부부를 다시 봤다.
그들은 망가진 집과 어질러진 가재도구 사이에서 강렬한 공포에 맞서 아이들을 지키려 했다.
너무나도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아까 전 느낀 분노를 설명할 수 없듯,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이유 역시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으나, 올리버는 창피하고 수치스러웠다.
고개를 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 창피해 올리버는 이곳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아르크 고아원의 원장이 맞았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죄로부터 멀어지고 싶어 한다고 하였는데, 올리버는 이제야 그 말이 뭔지 실감했다.
올리버는 공포와 절망에 물든 채 자신의 엄지손가락 끝을 바라보는 보니파를 놓아줬다
만신창이가 된 그는 최악의 사태를 벗어났다는 사실에 긴장이 풀려 그대로 의식을 잃으며 바닥 위로 쓰러졌고, 올리버는 그의 한쪽 다리를 쥔 채 폐건물 지하실을 벗어나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터벅. 터벅. 터벅. 뚝.
올라버가 지하실 계단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 모습에 움찔하는 빈민 가족들.
올리버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거부감을 느낌에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실례했습니다. 정말······죄송합니다.”
올리버가 나직이 사과하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계단을 타고 건물 밖으로 사라졌다.
***
뚜벅. 뚜벅. 뚜벅. 질. 질. 질.
폐건물 밖으로 나온 올리버는 기절한 보니파의 다리를 잡아끌며 앞으로 걸어갔다.
올리버는 걸어가며 흑마법사의 시야를 사용해 주변 사람들의 감정을 읽어보았다.
이곳은 와인햄에서도 낙후된 곳이었지만, 사는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빈민을 포함해 거지까지 나름대로 적잖은 수의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분명 전투 초중반까지만 해도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올리버와 성기사들의 싸움을 살펴봤건만, 지금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이 상황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올리버는 저들의 감정을 이해했다.
자신이 행한 폭력의 흔적을 보고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기억했기에.
너무나도 과했다.
보니파를 날려버렸을 때 사실상 싸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니파는 전투 불능이었으며, 성기사와 서번트들 역시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었다.
최소한 올리버가 포털을 열어 도망쳤더라도 막지는 않았을 터.
그럼, 최소한 이번 사태는 그것으로 일단락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리버는 그러지 않았다.
즉흥적이고, 가벼우며, 같잖은 감정에 휘둘려 멈춰야 할 때를 놓치고 불필요한 파괴와 고통을 일으켰다.
참으로 추했다. 참으로 말이다.
“죄송합니다.”
보니파를 질질 끌고 나타난 올리버가 보니파를 갈라하우트 앞에 놓으며 말했다.
참고로 보니파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성기사 전용 철 코트는 짐승에게 난도질당한 듯 걸레짝이 되었으며, 얼굴 한쪽은 크게 부풀고 살가죽이 다 벗겨져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또 슬프게도 망가진 턱과 부러진 코, 으깨진 양쪽 어깨, 보라색, 붉은색 멍으로 뒤덮인 육체 탓에 상대적으로 얼굴 한쪽의 상처는 그리 심해 보이지 않았다.
몸도 옷도 똑같은 걸레짝······.
그런 상태에서 바닥에 질질 끌려오느라 온몸에 시커먼 먼지를 뒤집어쓴 보니파의 모습은 흡사 까마귀를 연상케 했다.
높이 날다 땅에 추락해 죽은 추한 까마귀 말이다.
올리버가 그런 보니파를 보고는 말했다.
“제가······. 조금 심했던 것 같습니다.”
“······.”
공식적으로 이번 작전의 지휘를 맡은 갈라하우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기백만으로 자신들을 제압하고, 천사의 아들로 완전히 각성한 보니파를 죽느니만 못한 꼴로 만든 자였으니, 섣불리 대답해 자극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살이나 다름없었으니.
허나, 그와 별개로 속이 복잡해 대답 못 한 것도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눈앞의 사이비 신에 대해 자세히 아는 건 없었으나.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의 놈은 자신들을 가볍게 죽일 힘이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보니파가 그 증거.
그런데 놈은 그러지 않았고 사과까지 했다. 자신이 조금 심했다고 말이다.
조롱인가 싶었지만, 갈라하우트는 어째서인지 그가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놈의 무감각한 눈에 후회라는 희미한 감정이 느껴졌기에.
수많은 인간군상을 봐왔기에 갈라하우트는 진심으로 참회하는 자와 거짓으로 참회하는 자를 구분할 수 있었다.
뭐가 됐건 자신은 개인 임무만 세 자릿수, 단체 임무는 두 자릿수를 완수한 베테랑 성기사였으니.
‘아냐, 그럴 리가 없어.’
갈라하우트는 속으로 부정하며 자신이 홀린 게 아닌가 의심해보았다.
어쩌면 그거일지도······. 이런 악마 같은 힘을 보이는 자라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몰랐다.
악마들은 그 초월적인 힘 이상으로, 사악한 꾀와 독과 같은 혀를 자랑했으니.
‘하지만 섣불리 움직여선 안 돼, 이미 임무는 실패. 그렇다면 최대한 살아남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 사실을 교단에 보고하기 위해서라도.’
갈라하우트는 장검을 조심스럽게 잡은 채, 등 뒤로 손을 움직여 다음 플랜을 비밀리에 전파, 말없이 올리버를 바라보며 대치했다.
마치 위험한 맹수를 마주한 듯.
여차할 경우 갈라하우트는 자신이 올리버를 맡아 나머지가 도망칠 시간을 벌게 할 생각이었다······.
몹시도. 아주 몹시도 긴 침묵이 흐르고, 적막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 올리버가 다시 움직였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그는 어색하게 사과하고는 갈라하우트를 비롯한 동료들을 순식간에 지나쳤다.
그리고는 아까 전 사이비 신도들을 대피시켰을 때처럼 허공을 잡아 찢으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모두 숨을 제대로 쉬기 시작했다.
가슴을 누르던 납덩어리가 치워진 듯.
허억. 허억······. 허공에 울리는 숨소리. 그제야 다들 몸을 적신 식은땀을 닦으며, 만신창이가 된 보니파를 부축했다.
“오, 세상에 신이시여······. 기사님들 치료가 필요합니다! 몸이 성한 곳이 없습니다.”
“정신 차리십시오! 기사님! 눈 뜨셔야 합니다!”
서번트들의 말에 성기사들이 다급히 움직여 보니파를 성법으로 치료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치료약 포션 그 이상의 성능을 가진 신의 기적으로.
“빌어먹을······! 갈라하우트 경! 뭔가 이상합니다. 앞의 서번트들처럼 성법이 제대로 먹히지 않습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갈라하우트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다급히 합류했다.
성기사 메이슨의 말은 사실이었다.
보니파의 상처는 앞의 서번트들처럼 성법을 부여해 상처를 치료하려 함에도 마치, 이물질이라도 덮은 듯 치료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치료 성법이 메이슨의 특기가 아님을 고려해도 이건 이상한 경우였다.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단 두 존재뿐이었다.
하나는 경전에 기록된 악마, 다른 하나는·····.
“크으······! 역시, 이거 이상합니다. 치료되는 거에 비해 소모되는 힘이 너무 크고, 흉터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갈라하우트가 그 말이 맞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보았다.
사실이었다. 보니파의 몸 곳곳에 나 있던 상처는 성법을 사용함에도 그 치료가 느렸을 뿐 아니라 상처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흉측한 흉터가 남았다.
멍투성이가 된 몸은 물론, 벽에 갈린 듯한 한쪽 얼굴까지.
그 모습을 어깨너머로 살피고 있던 서번트 하나가 조용히 경악했다.
“성법으로 치유함에도 흉터가 남다니······. 이게 가능합니까?”
다른 이들도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이런 반응인 것도 당연했다. 서번트들 모두 성기사가 못 됐다 뿐, 기본 이론은 교육받았으니.
성법이란 신께서 천사를 통해 인간에게 부여한 기적의 힘. 그 어떠한 상처도 깔끔하게 수복할 수 있었다.
단순한 타박상뿐 아니라, 자상, 치료하기 까다로운 화상과 부패, 더 나아가면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장님의 눈도 뜨게도 할 수 있었다.
분명, 그것이 그들이 배운 상식. 그런데 지금 그 상식이 깨지고 있었다.
성법의 치료로도, 완전히 낫게 하지 못하다니.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천사가 부여한 힘에 저항할 정도로 사악하고 강력한 무언가.
“그, 그럼 그 가면 쓴 놈이 정말 이교도 신-”
“-불경하다, 입 다물라.”
요동치던 불안감이 누군가의 입을 통해 표출되려는 찰나, 갈라하우트가 단호히 말을 잘라 불안을 멈췄다.
단호한 군율은 불안과 공포를 없앨 수 없었지만, 통제할 수 있었다.
“이 세상의 신은 오직 우리 파테르교의 아버지 신밖에 없다. 보기 아주 드문 경우지만 성법에도 저항하는 사악한 술수를 부리는 자들이 있으니, 불경스러운 말을 함부로 내뱉어 죄를 짓지 말라.”
갈라하우트가 단호하게 말했다. 실제로 사실이기도 했다.
성법으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흑마법사가 있긴 있었으니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기사님.”
서번트가 정신을 차리며 사과했다.
“알면 됐다. 일단, 할 수 있는 대로 보니파를 치료하고 교단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지금 돌아간다고 했습니까?!”
성기사 메이슨이 놀라 되물었다.
커다란 덩치와 용맹한 생김새 때문에 그 위압감도 남다른 그였지만, 갈라하우트는 지휘관이라는 직책에 어울리게 주눅 들긴커녕 담담히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저희의-”
“-그건 지휘관인 내가 신경 써야 할 일이지 그대가 할 일이 아니야.”
그 말의 사실이었다. 실패의 책임은 이번 임무의 공식적인 책임자인 갈라하우트의 몫이었다. 만약, 성공했다면 보니파의 공이었을 테지만.
그걸 알기에 메이슨도 아무 말도 못 했다.
메이슨이 냉정해지며 침묵하자 갈라하우트는 차분히 그를 설득했다.
“여기 있다고 뭔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지. 도망친 자를 쫓을 방법도 없고, 쫓는다 해도 당장 우리 힘으로 제압할 수 없으니······. 차라리 빨리 돌아가 상황을 보고해 대응하는 게 교단 전체로 봤을 때 옳아.”
더할 나위 없이 맞는 말.
대신 문제는 갈라하우트가 져야 할 책임이 엄청나다는 거였다.
본인도 그걸 모르지 않을 터.
그럼에도 그는 복귀할 것을 주장했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해 말이다.
창을 든 성기사가 말했다.
“그럼, 최소한 놈의 정체라도 알아보고 가지요.”
“정체?”
“예, 정체도 알 수 없는 자에게 당했다고 한다면, 그건 도저히 안 됩니다. 최소한의 정체라도 알아내 복귀하도록 하죠.”
다른 이들 모두 동의했다. 그만큼 갈라하우트를 지지했기에. 그러나, 갈라하우트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럴 필요 없어.”
“어째서입니까?”
“왜냐면······.”
갈라하우트가 자신의 손에 쥔 콩 줄기를 봤다. 자연의 힘으로 기른 콩 줄기를 말이다.
“·····대충 예상이 가기 때문이야.”
***
올리버는 눈을 떴다.
아주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 벽, 천장이 구별되지 않는 이형(異形)의 검은 공간. 마치 허공과 같았는데,
올리버는 그곳의 한 안락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 역시·····.’
올리버는 자신의 앞에 높인 탁자와 그 위에 가득 쌓인 초콜릿 쿠키, 따뜻한 우유가 담긴 커다란 머그잔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나 있었다.
‘그렇다면······.’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다시 앞을 봤고, 그곳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얼굴을 알 수 없는 남자가.
그가 올리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쿠키를 찍어 먹기 편하게 컵을 좀 더 큰 거로 바꿨는데······. 마음에 드니, 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