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78화 (378/633)

378. 와인햄에서의 대결 (1)

“역시, 사이비와는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군요.”

보니파가 날개를 활짝 펴며 말했다. 그리고 날개에서 강렬한 빛을 발산했다.

너무나도 눈부셔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을.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눈을 가렸고, 그사이 보니파는 빠르게 날아와 독수리처럼 올리버를 낚아챘다. 피할 틈도 없었다.

“감히, 불경한 혀로 신을 들먹인 대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손을 놓았고, 올리버는 그대로 날아가 신전 벽면에 부딪혔다.

콰광!!

올리버가 부딪히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신전 벽면이 무너졌다. 아마, 몸에 깃든 자연의 힘이 없었다면 벽 대신 올리버의 몸이 박살 났을 터였다.

‘그래도 다행이네. 집어던지지 않고 바로 칼로 벴으면 꼼짝없이 당했을 텐데.’

올리버가 무너진 신전 벽면 위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벽에 부딪힐 때 충격이 커 거동이 약간 힘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면을 보려고 했다.

분풀이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갈라하우트가 말한 최고의 그림을 위한 탓인지, 그는 속전속결로 끝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올리버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탐화(貪火)와 격풍(激風)을 단숨에 무력화시켰으니, 자연의 힘으로도 한계는 있을 테고······. 역시 그 방법밖에 없나?’

올리버가 어떻게 보니파를 상대할까 고민하던 중 마리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며 다가왔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올리버는 손을 들어 마리를 비롯한 신전 안에 있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현재 성기사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몰려있다 뿐, 마리가 완전히 관심 밖으로 나간 게 아니었다.

눈에 띄는 행동을 하면 이쪽이 다시 표적이 될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올리버로서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역시 성법이란 건 대단하구나······. 그새 다 회복하셨네.’

올리버가 완전히 회복한 성기사들과 서번트를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분명 탐화에 당했건만, 보니파의 치료 성법으로 전부 회복했다. 상처뿐 아니라 기력까지.

여차하면 공간 마법을 사용해 마리 일행을 빼돌릴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사용하자마자 성법에 의해 무력화될 테고, 그 이후로는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었다.

‘이겨야만 모두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한 올리버가 주변을 둘러보며 마리를 찾았다.

“마리.”

“예, 주인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저희가 필요한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당장 나가 싸우라면 싸우고, 저희 감정이 필요하시다면 기꺼이-”

“-여러분이 다칠 것 같은 상황이 아니면 제가 말하기 전까지 이곳 신전 밖으로 나오지 말아 주세요.”

“예?”

“여러분이 다칠 상황이 아니면 신전 밖으로 나오지 말라 말씀드렸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마리는 여기서 사람들을 챙겨주세요.”

올리버가 신전 내부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모두 성기사에게 쫓기느라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의 곁을 끝까지 지킨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래야 제가 마음에 편할 것 같습니다······. 믿고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리.”

올리버가 다시 한번 부탁하자 마리는 하고 싶은 말을 꾸욱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

대답을 들은 올리버는 그제야 안심하며 밖으로 나갔다.

이로써 혹시 모를 마리의 행동을 막을 수 있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님.”

신전 밖으로 나온 올리버가 하늘 위에 떠 있는 보니파를 보며 인사했다.

그는 은은한 분노와 불쾌함, 경멸이 담긴 눈으로 올리버를 내려다보았다.

“수작을 부릴 줄 알았는데, 안 부리는군요.”

“실망하시게 해 죄송합니다.”

속을 꿰뚫는 올리버의 말에 보니파가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게 그가 올리버를 신전으로 던진 건 단순히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속셈이 있었다.

가령, 올리버가 신전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고 나와 단체로 덤벼들거나, 혹은 그들을 재료로 사용해 덤벼주길 바랐다.

이유는 올리버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는 게 보기 좋을 테니 말이다.

갑작스러운 보니파의 등장으로 혼란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갈라하우트와 서번트들이 했던 발언까지 잊은 건 아니었다.

성기사들이 이곳에 온 건 단순히 선택받은 사람들을 토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보니파가 선택받은 사람들을 토벌하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온 거였다.

올리버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었으나, 그 추측에 가능성을 한번 걸어보기로 했다.

“혹시, 제가 준비하게 기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보니파가 어이없어했다.

“지금 제정신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예. 아까 전 탐화와 격풍을 붕괴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보통 방법으로는 기사님을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올리버가 할 수 있는 공격 중 탐화와 격풍은 꽤 강력한 기술에 속했다. 그렇다면 이를 정면으로 붕괴시킨 보니파에겐 웬만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게 됐다.

그래서 올리버는 뻔뻔하게 부탁했다. 보니파의 상황과 감정을 고려해 말이다.

그는 자부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데 반해, 올리버를 업신여기고 있었으며, 좀 더 극적인 것을 필요로 했다.

충분히 해볼 만했다.

“기사님이 이 상태로 이겨도 약간······. 허무하지 않겠습니까?”

예상대로 보니파는 겉으로 태연한 척했지만, 감정은 움찔거렸다.

만약, 아까 전 불기둥을 파괴하고, 동료들을 치료한 후 곧바로 올리버를 공격해 해치웠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멋진 그림이 됐을 테지만, 아까 전 나눈 대화 탓에 그림에 오점이 생기고 말았다.

영상 편집으로 가려질 수준을 벗어난 오점이 말이다.

그렇기에 보니파에겐 새로운 그림이 필요했다.

강력하고 비열한 악을 상대로 혼자서 당당히 쓰러트리는 영웅 같은 모습이.

“어디 한번 해보시죠.”

보니파가 결정을 내렸다.

진심.

그만큼 자신 있다는 것.

올리버는 기꺼이 그가 준 기회를 잡으며 발버둥 칠 준비를 했다.

올리버는 겉옷을 벗으며 어떻게 싸울지 고민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필거렛으로, 현재 올리버가 쓸 수 있는 수단 중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허나, 그만큼 사용하기 망설여지기도 했다.

일단, 필거렛은 아주 귀한 물건이라 아까웠고, 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

‘그 꿈은 도대체 뭐였을까?’

올리버가 멀린의 테스트를 받을 때 피웠던 필거렛을 떠올렸다.

필거렛을 피우자 의식이 사라지며, 흐릿한 꿈을 꿨다.

기억이 나는 것이라고는 사방이 검은 이질적 공간에,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소파에 앉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눴다는 것뿐······. 아니, 하나 더 있었다.

꿈에서 대화를 나누며 따뜻한 우유와 쿠키를 먹었다. 초콜릿 쿠키로, 꿈임에도 불구하고 아주아주 맛있었다.

‘정말 뭐였을까? ······여하튼 필거렛은 좀 더 신중히 사용해야 해. 두 개비뿐인 데다, 내 마지막 수단이고, 의식이 날아가기도 하니. 지금 의식이 날아가면 위험해.’

올리버가 앞의 성기사와 뒤의 마리 일행은 의식하며 생각했다.

성기사는 죽여선 안 됐고, 마리 일행은 챙겨야 했다.

결국, 종합적인 조건을 고려해 필거렛은 아직 시기상조라 판단.

올리버는 필거렛 대신 두 번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다름 아닌 인공 영혼이었다.

결정을 내린 올리버는 감정 입자를 이용해 겉옷 안쪽에 가득 있는 시험관 뚜껑을 일제히 열어 안에든 내용물을 전부 추출했다.

자연의 힘은 이미 거의 다 소진한 상태였기에, 남은 것이라곤 감정과 생명력 마력뿐으로, 올리버는 그중 양이 가장 많은 감정을 먼저 사용했다.

[블랙 슈트(Black Suit)]

올리버는 감정을 실처럼 가느다랗게 가공해 천으로 엮어 자신의 몸에 겹겹이 둘렀다.

수많은 전투에서 올리버가 다치지 않게 해준 고마운 흑마법으로, 평소였다면 이걸로 충분했겠지만, 올리버는 거기에 하나를 더했다.

[블랙 아머(Black Armor)]

흑마법 능력이 미숙한 조를 위해 올리버가 개발한 흑마법으로, 철근 형태로 가공된 감정은 블랙 슈트 위에 덧씌워져 장갑(裝甲)을 형성했다.

근육의 구조에 맞춰 최대한 두껍게.

과거 조가 사용한 블랙 아머와 블랙 슈트를 차용한 것으로, 올리버는 막대한 감정을 쏟아부어 군용 장비인 외골격 장갑을 연상케 할 정도로 두꺼운 갑옷을 몸에 둘렀다.

높은 힘과 방어력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기동성을 잃는 형태. 과거 올리버는 이에 관해 조에게 조언했다.

‘장갑을 압축하면 좋겠습니다.’

올리버는 그때 자신이 했던 조언을 떠올리며 몸에 두른 블랙 슈트와 장갑을 그대로 압축시켰다.

꾸드득. 꾸드득.

감정 입자가 압축될 수 없는 지점까지 압축되자 비명을 질렀다.

상식에서 벗어난 통제력을 가졌기에만 할 수 있는 행위.

덕분에 올리버는 두꺼운 갑옷을 평소 사용하던 두께로 만들어 기동성을 확보하면서도, 더 높은 효율을 낼 수 있었다.

“고작 그게 끝입니까?”

보니파가 올리버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같잖다는 듯이.

충분히 이해했다. 탐화와 격풍도 정면에서 부순 그에게 있어 이 정도 장갑(裝甲) 역시 별거 아닐 테니.

아마 성법 한 번이면 눈 녹이듯 없앨 수 있을 터였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아뇨. 하나 더 남았습니다.”

그 말과 함께 올리버는 아직 남은 감정과 생명력, 마력을 한데 뒤섞어 주먹보다 약간 큰 인공 영혼을 만들었다.

파지지직!!

평소 만들 수 있는 크기보다 아주 조금 더 크게 만든 탓인지, 상당한 반발 작용이 일어났지만, 상황인 상황인지라 올리버는 이를 무시하며 인공 영혼을 완성해 자신의 블랙 슈트에 부여했다.

인공 영혼이 부여되자 몸에 두른 흑마법 갑옷은 요동치며 강해졌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땅을 박차, 보니파에게 달려들었다.

***

올리버의 예상은 적중했다.

감정, 생명력, 마력 하나하나는 성법 앞에서 무력했지만, 그 힘을 하나씩 더해 격(格)이 높이자 어느 정도 저항이 가능했고, 셋 모두를 합친 인공 영혼은 성법에 그렇다 할 피해를 입지 않았다.

보니파의 성법이 올리버의 블랙 슈트를 소멸시키지도, 약화시키지도 못한 게 그 증거.

올리버는 이 사실에 승리의 가능성을 엿보며 보니파에게 달라붙어 근접전을 시도했다.

인공 영혼이 가미된 블랙 슈트로 공격하자 한 방 한 방 공기를 찢는 충격파를 일으키며 천지를 진동시켰는데, 그 압도적인 모습에 갈라하우트를 포함한 성기사들과 서번트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경악한 건 올리버도 매한가지였다.

인공 영혼을 이용해 성법에 저항하며, 테어도어조차 제압한 블랙 슈트를 입었음에도, 보니파를 제압할 수 없었다.

아니, 제압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성법의 힘을 이겨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습니까?!”

보니파가 황금빛 화염을 두른 장검을 휘둘렀다.

여태까지 착용한 블랙 슈트 중 가장 강력한 것을 둘렀건만, 올리버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민감하게 공격을 피했다.

왜냐면 보니파의 공격에 올리버 최강의 갑옷이 너무나도 쉽게 뚫렸기 때문이었다.

“크윽.”

올리버가 피했다고 생각한 찰나 강렬한 통증이 일며 몸에 어김없이 상처가 생겼다.

이유는 간단했다.

보니파가 휘두르는 황금 칼이 올리버의 갑옷을 단번에 뚫을 정도로 강했고, 검술 또한 신묘해 피했다고 생각해도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불리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법으로 만든 빛의 날개를 단 보니파는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며 위치, 기동성 모든 면에서 올리버보다 우위를 점했다.

그에 반해 올리버는 그만큼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독수리를 상대하는 쥐가 된 기분이었다.

“정말 우리 파테르교를 이길 거라 생각한 겁니까?”

첨탑 꼭대기 위에서 보니파와 대치한 올리버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솔직히······. 약간은 기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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