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76화 (376/633)

376. 날개 달린 사람 (1)

올리버의 전신을 뒤덮은 나무와 콩 줄기에서 입이 돋아나 뭐라 형용하기 힘든 괴성을 질렀다.

끼이이이이이이잉━━!!

사람은커녕 짐승, 더 나아가 생물의 것도 아닌 괴성.

그뿐 아니라 뒤이어 콩 줄기와 나무 곳곳에서 불룩불룩 종기 같은 것이 솟아오르더니, 쩌억하고 갈라져 그 자리에 눈이 생겨났다.

생겨난 눈은 뒤룩뒤룩 구르며 주변을 살펴봤고, 그 광경을 지켜본 서번트와 성기사는 본능적인 혐오감과 불쾌함을 느꼈다.

생명이지만, 생명이 아닌 것을 본 듯한 이질적인 불쾌함.

한평생을 성기사로 살아온 갈라하우트마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어디서 개수작을······!”

철퇴를 든 성기사가 본능적인 혐오감과 위기감을 이기지 못하고 무기를 휘둘렀다.

눈앞의 존재가 너무나도 불길하고 불쾌해 당장이라도 배제하고 싶었기에.

이번 작전의 지휘자인 갈라하우트는 이런 식으로 없애면 안 된다며 말리려 하였지만, 다행히 그가 우려하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성기사의 공격을 올리버가 가볍게 피하곤 건물 꼭대기로 도주했기에.

올리버는 아까 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반사신경과 신체 능력이 생겼다. 아무래도 몸에 두른 식물 갑옷 덕분인 듯했다.

“흥!”

창을 든 성기사가 콧방귀를 뀌곤 두 발로 건물 벽면을 타고 올라 올리버의 한쪽 다리를 향해 창을 팍하고 내질렀다.

그 역시 이번 임무의 진짜 목표를 알고 있었기에, 기동력만 제거하려던 것인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올리버가 몸에 두른 식물 갑옷에 입이 돋아나더니 이빨로 창 촉을 깨물어 방어한 것이다.

분명, 올리버가 반응하지 못하게 바로 쫓아 공격하였는데.

곧 그 의문은 해결됐다.

갑옷 곳곳에 난 눈알과 눈이 마주쳤기에.

저 눈알, 장식이 아닌 진짜 눈으로 주인을 대신해 주변의 살펴보며 자체적으로 대응하였다.

정말 살아있는 생물처럼.

‘처음 보는 술법······! 그렇다 해도 성법이 깃든 나의 창을 어떻게 막은 거지?’

본인의 힘에 자부심이 강한 성기사가 어떻게 자신의 공격을 막은 것인지 의문을 가지려는 찰나, 올리버의 몸을 감싼 콩 줄기가 스스로 움직여 성기사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공격이 막혀 당황한 성기사는 한 박자 느리게 반응해 대응이 늦었는데, 바로 그때 건물 아래쪽에서 갈라하우트가 뛰어올라 동료 성기사를 구해주었다.

캬햐햐햐햐하하하!!

잘려나간 콩 줄기들이 비명을 질렀고, 갈라하우트는 소리쳐 동료에게 충고했다.

“방심하지 마라! 자연의 힘과 흑마법을 섞은 거야. 그 위력을 알 수 없으니, 조심해!”

그는 단숨에 올리버의 술법을 간파하고는, 성법을 사용했다.

[홀리 라이트(Holy Light)]

성법을 사용하자 부드러운 빛이 올리버를 비췄고, 놀랍게도 입과 눈이 돋아난 식물 갑옷은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사라지진 않고, 성법에 저항했다.

“······!”

갈라하우트는 이미 어느 정도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놀랐다.

성법에 저항하는 흑마법사라니. 자연의 힘이 섞였기 때문인 건가 싶었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으나, 뭐가 됐건 아주 보기 드문 경우인 건 확실했다.

“메이슨!”

갈라하우트는 놀란 감정에 먹히지 않고, 침착하게 다음 작전으로 넘어갔다.

그의 외침에 맞춰 건물 아래에 대기하고 성기사 메이슨이 철퇴를 번쩍 들어 성법을 두르더니 그대로 건물을 후려쳤다.

쿵━! 하고 땅과 건물이 울렸으며, 건물이 기우뚱 기울더니 이윽고 균열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덕분에 갈라하우트에게서 벗어나 거리를 벌리려던 올리버는 그만 균형을 잃어 도망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반대로 갈라하우트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부드러운 빛을 칼날에 모아 올리버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블레이드 오브 머시(Blade of Mercy)]

[래피드 그로우(Rapid Growth)]

건물이 무너짐과 함께 빛의 칼날이 유성처럼 떨어져 올리버를 덮쳤고, 올리버는 식물이 머금고 있는 자연의 힘을 폭발시켜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나무와 콩 줄기를 잡초처럼 성장시켰다.

흡사, 녹색 해일.

사람 팔뚝보다도 굵은 콩 줄기와 거친 나무는 주변의 모든 것을 밀어냈으나, 갈라하우트는 성력(聖力)이 깃든 칼날로 모든 것을 베어내며 올리버에게 가까워졌다.

파바바바바밧!

빛의 검이 목표물에 닿으려는 찰나 올리버와 갈라하우트는 무너진 건물 더미 위로 추락하며, 흙먼지 속으로 그 모습을 감췄다.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던 한 서번트가 중얼거렸다.

“해치웠나?”

“야.”

“이런 씨······.”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재수 없는 말을 한 서번트에게 핀잔을 주자, 말을 한 서번트가 항변하듯 중얼거렸다.

“아니, 그래도 저 정도면 당할 수밖에 없잖아?”

상식적으로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발판이 무너진 탓에 피하지 못했고, 그 갈라하우트가 공격했으니. 제아무리 두터운 방어막을 펼쳐도 무사하기 힘들 터였다.

여기서 끝나야 하는 게 옳았다. 그게 정상이었다.

허나, 문제는 세상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저게 뭐야······.”

흙먼지가 가라앉고 시야가 확보되자 누군가 말했다.

엄청난 규모로 자란 콩 줄기와 나무줄기가 쿼터스태프를 중심으로 복잡하게 뒤엉켜 압축되더니 갈라하우트의 공격을 막았다.

물론, 아슬아슬한 수준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막은 것은 막은 것.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가짜 신치고는.”

“전 신이 아닙니다. 어쨌건 칭찬 감사합니다.”

올리버가 갈라하우트의 말에 화답하며 주변에 잘려나간 콩 줄기와 나무줄기를 움직였다.

감정과 생명력, 자연의 힘이 깃든 나무줄기와 콩 줄기는 올리버의 의지와 반응해 뱀처럼 꿈틀꿈틀 움직이더니, 이윽고 돋아난 입을 내세워 갈라하우트를 사방에서 덮쳤다.

샤햐하하하핫!!

움직임, 기세, 소리까지 모두 뱀을 연상케 할 정도로 사나웠으나 갈라하우트는 대치하던 올리버를 밀어내곤 검이 수십 개로 보일 정도로 빠르게 휘둘러 자신을 덮치는 콩 줄기와 나무줄기를 단숨에 베어냈다.

흡사, 나무 파쇄기.

올리버는 생명력과 자연의 힘을 추출해 잘려나간 콩 줄기와 나무뿌리를 재생시켜 갈라하우트를 계속 압박했으나, 그는 지친 기색 없이 모조리 자르고 또 잘랐다.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

그렇다 해도 한계는 있는 법.

콩 줄기와 나무뿌리가 끝없이 증식하며 군체를 이루자, 어느새 진흙처럼 밀도가 높아져 갈라하우트의 검 역시 느려졌다.

이대로만 간다면 뭉갤 수 있을 듯했는데, 본인도 이를 아는지 검을 크기 휘둘러 잠깐의 여유시간을 확보한 뒤 검을 십자가처럼 쥐어 힘을 응축, 성법을 발동시켰다.

[퓨리파이(Purify)]

갈라하우트의 외침과 함께 검에 깃든 힘이 불타오르더니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아름다운 노란빛 화염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달리 주변의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불태워버렸으며, 그뿐 아니라 갈라하우트의 검에 맞춰 올리버에게 돌진해왔다.

올리버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갑옷의 범위와 두께를 늘려 방어했지만, 성스러운 노란 화염은 강력하고 무자비하게 올리버의 갑옷을 반쯤 불태워 숯으로 만들었다.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열기와 화염의 기세에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찰나, 성기사 메이슨이 철퇴를 든 채 접근, 올리버를 후려쳤다.

콰앙━!

다행히 갑옷의 눈알이 먼저 포착해 대비해줘 충격을 줄일 수 있었으나, 성법으로 약해진 갑옷은 박살 났고, 올리버는 저 멀리 날아가 맨몸으로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끝이다.”

창을 든 성기사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다시 한번 뛰어올라 올리버의 빈틈을 노렸다.

예상한 대로 말이다.

[탐화(貪火)]

올리버는 성기사가 접근해올 것임을 예상했음에도 방어하는 대신 손안에 응축해놓은 탐욕의 감정과 마력을 뒤섞어 검은 화염을 만들었다.

콰화화하항━━!!

“크윽!”

갑작스러운 반격과 예상 이상의 열기에 성기사는 물러서며 성법을 발동했다.

[홀리 라이트(Holy Light)]

흑마법을 무력화시키는 성스러운 빛.

가뜩이나 사용한 재료가 적어 평소에 만든 탐화보다 덩치가 작은 탐화는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며 그 크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마력과 감정을 뒤섞인 탓에 힘의 격이 한 단계 높아졌음에도 성법에 피해를 입는 것. 허나, 올리버에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왜냐면 주변에 탐화의 먹이가 널리고 널렸으니까.

가령, 아직 감정과 생명력, 자연의 힘을 머금고 있는 콩 줄기와 나무 파편이라든가.

올리버는 탐화를 조작해 갈라하우트의 공격을 막느라 잘린 주변의 콩 줄기와 나무들을 삼키게 했고, 탐화(貪火)는 콩 줄기와 나무 안에 깃든 감정, 생명력, 자연의 힘을 연료 삼아 그 덩치를 기하급수적으로 불렸다.

성법의 압박을 이기며 말이다······. 충분히 해볼 만했다.

“말도 안 돼······.”

창을 든 성기사가 압도적인 힘으로 성법을 견디며 덩치를 키운 탐화에 경악했다.

믿었던 보험이 휴짓조각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당황한 성기사와 다르게 탐화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게 누군지 기억하듯 자신의 몸 곳곳에 있는 이형(異形)의 눈을 가늘게 뜨곤, 거대한 입을 벌려 성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기사는 성법을 두른 창 촉을 휘둘러 검은 화염에 유의미한 상처를 줬지만, 먹이를 먹어 덩치를 키운 탐화(貪火)는 이를 무시, 전설 속 괴물처럼 성기사를 한입에 삼켰다.

족히 수십 개나 될법한 탐화의 이빨은 성기사가 두른 철 코트를 부수며 불태웠고, 성기사는 충격, 당혹, 공포란 감정을 빛내며 비명을 질렀다.

반응을 보아하니 아파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

“끼아아악!! 뜨, 뜨거워!! 뜨거······!”

이 기세면 충분히 불태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뼈도 남기지 않고 말이다.

무엇보다 탐화(貪火)도 그걸 원했고.

“으아아악······! 이런 개자식이!!”

메이슨이 철퇴를 크게 휘둘러 탐화를 찢어버린 다음 동료 성기사를 구했다.

그는 동료가 당했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분노했다. 표정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올리버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러나 덩치를 키운 탐화는 건물도 일격에 무너트리는 철퇴를 맞고도 곧 원래 형체를 회복해 다시 덤벼들었고, 메이슨 역시 겁먹지 않고 철퇴에 성법을 둘러 계속해 휘둘렀다.

징이 박힌 거대한 쇳덩어리는 한번 움직일 때마다 강력한 돌풍을 형성했고, 빠른 속도로 휘두르자 태풍과 같은 강풍을 일으키며 탐화를 서서히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당황한 탐화는 앞의 성기사에게 했던 것처럼 거대한 입을 벌려 달려들었으나, 메이슨이 무기에 부여한 성법을 폭발시키며 오히려 반격을 가했다.

이러한 시도는 성공.

탐화는 형용하기 힘든 비명을 지르며 그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 순간 메이슨은 약해진 탐화 사이를 뚫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올리버를 볼 수 있었다.

큰 공격 직후 빈틈을 노리듯.

“바보 같은!”

메이슨은 자신을 우습게 본 올리버를 비웃으며 물 흐르듯 철퇴를 한 바퀴 회전시켜 힘의 낭비를 없애 자연스럽게 올리버를 강타했다.

와직━!!

이번에는 진짜였다. 아까 전처럼 아슬아슬하게 뒤로 몸을 빼 충격을 줄이지도 못하게 제대로 때렸다.

비록, 진짜 주인공이 등장하는 모습을 연출하진 못했지만, 메이슨은 동료의 복수를 직접 했다는 통쾌함에 깊은 뿌듯함을 느꼈다.

‘그런데 감촉이 이상한데······.’

메이슨이 생각했다. 수많은 이단과 흑마법사, 악당을 이 철퇴로 부숴왔기에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러지며, 장기가 터지는 감각을 누구보다 잘 알았건만, 이 감촉은 아니었다.

사람을 부수는 거라기보다는 나무 따위를 부순 감각에 더 가까웠다.

“다행이네요. 성기사의 눈은 절대 못 피하는 건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나 보군요.”

메이슨 맞은편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올리버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말했다.

은신 흑마법인 셰이드 클록을 통해 숨어있었던 것인데, 메이슨이 후려친 건 올리버가 아닌, 사람 형태로 엮인 콩 줄기에 위장 마법을 덧씌운 가짜였다.

그 증거로 공격의 충격에 겉에 씌운 마법이 벗겨지며 인형처럼 엮인 콩 줄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패러사이트(Parasite)]

올리버는 사람 형태로 엮은 콩 줄기를 조작해 당황한 메이슨을 포박.

생명력을 갉아먹는 질병 계열 흑마법 패러사이트를 발동해 콩 줄기를 매개로 성기사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성기사의 넘치는 생명력을 말이다.

메이슨이 성법을 사용해 이를 무력화시키려 했지만, 콩 줄기가 몸에 뿌리내려 사지와 입까지 틀어막자 사용할 수 없었고, 힘으로 끊으려 해도 실시간으로 생명력이 빨리는 통에 기력이 약해져 이마저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려는 찰나, 갈라하우트가 황금빛 화염을 두른 장검을 휘둘러 메이슨을 구해주었다.

카하하하하하학!!

갈라하우트의 공격에 당한 콩 줄기가 비명을 지르며 메이슨의 몸에서 떨어져나왔다.

몸에 붙은 황금빛 불 때문.

아직 더 생명력을 뽑을 수 있었지만, 올리버는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이미 필요한 생명력을 어느 정도 얻은 터라, 올리버는 망설임 없이 콩 줄기가 빨아들인 생명력을 모조리 가져와 탐화에 먹였다.

성기사의 넘치는 생명력을 먹은 탐화는 아까 전보다 더 거대해지며 그 덩치가 몇 배로 커졌다.

성기사······. 좋은 재료였다.

“기사님들을 지원하자!”

옆에서 포위만 유지한 채 전투를 지켜보던 서번트들이 성기사 둘이 당하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끼며 합세하려 했다.

올리버는 거대해진 탐화를 움직여 서번트는 물론 성기사들까지 단번에 휩쓸어버렸다.

콰화화화화화하하하하하항항━━━━!!!!

사납게 몰아치는 검은 화염 폭풍.

성기사와 서번트는 각각 가지고 있는 성법과 아이템을 사용해 방어막을 펼쳤으나, 감정과 자연의 힘, 성기사의 생명력까지 먹어치운 탐화는 이를 찍어 누를 뿐이었다.

이미 진즉에 서번트들의 아이템은 부서져 탐화에 삼켜졌고, 갈라하우트는 동료 성기사를 지킬 뿐 반격하지 못했다.

충분히 힘의 차이를 보여줬다고 판단한 순간 올리버는 날뛰는 탐화의 목줄을 당겨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다.

성난 짐승처럼 날뛰던 검은 화염은 불만스러운 듯 흉흉한 울음을 내면서도 올리버의 뜻에 따라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뒤집힌 상황.

서번트와 갈라하우트 모두 충격을 받았다.

성기사를 세 명이나 동시에 상대한 것도 모자라 이렇게 몰아붙이다니.

이런 게 가능한 흑마법사는 오직 검은손, 그것도 검은손을 대표하는 4개의 손가락뿐이었다.

순리를 거스르는 인류의 적들 말이다.

“너 진짜 정체가 뭐냐?”

유일하게 두 다리로 서 있던 갈라하우트가 물었다.

그는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했다. 아니, 한편으로 반기기까지 했다.

“올리버입니다. 기사님······. 앞서 몇 차례 말씀드렸듯이요.”

“진심인 거 같군.”

“그게 사실이니까요.”

갈라하우트는 신기하고 이상한 걸 보듯 올리버를 바라봤다. 흥미롭게도 아까 전에 비해 적의는 줄어들었다.

“끝내지 않는 건가?”

갈라하우트가 질문했다. 도발이라 판단했는지 탐화는 이형(異形)의 눈을 부릅뜨며, 거대한 입을 쪽 벌려 공기를 태우는 흉흉한 울음소리를 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

그러나 올리버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기사님. 전 여러분을 해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닌, 마리를 조금 도와주러 왔을 뿐입니다.”

“우릴 해할 생각이 없다?”

올리버가 주변에 쓰러진 서번트들과 성기사 둘을 보았다.

“······여러분도 절 죽이려 했으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화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진심이군, 제정신도 아니고.”

“그렇습니까?”

“그래······.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감사를 표하지.”

갑작스러운 발언에 올리버가 고개를 갸웃댔다.

“무슨 말씀인지요?”

“너로 인해 최고의 그림이 완성됐거든. 너의 희생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첫 단추가 완성될 거야.”

올리버가 ‘예?’라고 되물으려는 찰나, 하늘 저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포착됐다.

잘못 본 게 아닌지 해가 뜬 것처럼 밤하늘이 빛에 물들더니, 그 가운데로 뭔가가 보였다.

바로, 날개 달린 사람이었다.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