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대화 시도 (2)
솨악━!!
갈라하우트는 장검을 휘둘러 올리버를 벴다.
아니, 베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완벽한 타이밍이었고, 검날에 성법을 둘렀기에.
성법을 두른 무기는 그 위력이 막강해 상성에서 우위가 있는 흑마법과 마법은 물론, 두꺼운 쇳덩어리조차 짓이겼다.
성법은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힘.
그 증거로 정체불명의 사내가 방어막으로 펼친 다섯 겹의 나무줄기조차 단숨에 잘라냈다.
방금 그 일격으로 모든 게 끝나야 마땅했다.
“······그건 뭐지?”
갈라하우트가 자신의 검을 막은 쿼터스태프를 보며 물었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할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막대기에 불과했으나 분명 자신의 검을 막았다.
성법을 두른 자신의 검을······. 수십 년간 성기사로 일하면서 처음 보는 경우였다.
“너 보통 놈이 아니구나.”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진심으로 물었다. 성기사가 자신을 높게 평가해준 것 같기에.
“건방진 놈이 어딜 비아냥거려!”
올리버의 뒤를 노리던 성기사가 말뜻을 오해했는지 철퇴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갈라하우트와 대치 중이던 올리버는 그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 몸을 뒤로 날리며 충격을 흡수하는 동시에 거리를 벌렸다.
자연의 힘으로 육체를 강화하고, 반사신경을 극도로 높인 덕분에 가능한 동작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이 뼈를 타고 전해졌다.
몸 내부가 저릴 지경. 새삼 성기사가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실감했다.
‘흑마법은 아예 안 먹히고, 마법 역시 약화시키는 데다 신체 능력을 저 정도로 강화하다니······. 거기다-’
“-기사님. 저희도 합세하겠습니다.”
신전 주위를 포위한 수십 명의 서번트들이 외쳤다.
개개인의 질과 조직력은 란다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인 서번트들.
저만한 무장 집단이 단체로 덤벼들면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았다.
혼자서 버티는 거라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싸움이 커져 난전으로 가면 마리를 포함한 그녀의 동료까지 도저히 지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걱정을 하던 중 갈라하우트란 성기사가 한숨 덜어주었다.
“대기하도록.”
“예? 하지만-”
“-대기하라 명했다.”
갈라하우트라는 사내가 단호하게 명하자, 수십 명이나 되는 서번트들이 그 말에 따랐다.
확실히 보통 인물은 아닌 거 같았다.
‘속도 알 수 없고······.’
올리버가 의외, 고민, 낙관, 기회 등. 여러 감정을 빛내는 갈라하우트를 보며 생각했다.
그는 올리버란 불청객을 보면서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오히려 어떠한 기회마저 엿보고 있었다.
란다에서 소란이 일어났을 때 기뻐하는 투기꾼이나 사업가, 정치인들과 비슷했는데, 차이가 있다면 사적인 욕심은 없다는 거였다. 꽤 특이한 경우였다.
사욕이 없는 음험함이라니.
“정체가 뭐냐?
갈라하우트가 올리버에게 장검을 겨누며 질문했다. 아까 전처럼 속셈을 품고 있었다.
“제가 대답해 드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저나 저 아랫사람들을 놓아주실 생각이 없으신 것 같은데요.”
“맞아. 너나 저 아래 있는 사이비 모두 놓아줄 생각이 없다.”
“그런데 제가 왜 대답하겠습니까?”
“대답하지 않으면 당장 전 병력을 동원해 공격할 거니까. 그럼, 너는 물론 저 아래에 있는 놈들도 무사하지 못할 테지······. 납득되나?”
“아······. 납득됐습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래 신전에 있는 마리가 자기들 따위는 신경 쓰지 말라 소리쳤으나, 올리버는 그녀를 만류하며 계속 거기 있으라 당부했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올리버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당장은 마리 일행을 도와주러 온 거였으니, 이왕이면 모두 무사했으면 좋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갈라하우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질문을 바꾸지. 혹시, 너 올리버인가? 이 사이비교의 신.”
성기사 갈라하우트는 올리버가 보인 모습과 상황, 교주의 태도, 자신의 경험, 직감을 종합해 추측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물론, 신은 아니지만요.”
순순한 올리버의 인정에 갈라하우트와 마리를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마리 쪽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이 강림해 놀랐고, 갈라하우트 쪽 인사들은 설마 사이비 신을 여기서 만날 줄 몰랐기에 놀랐다.
분명,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라졌다고 했는데······.
‘운이 좋군.’
갈라하우트가 속으로 평했다.
사이비교를 토벌하는 건 큰 공이었지만, 그 사이비교의 신을 척살하는 건 그 이상의 공이었으니.
세상에 발표할 때 그 임팩트도 남달랐다. 신이 도우신 거였다.
“여기서 사이비교의 가짜 신을 만날 줄은 몰랐군.”
“어······. 죄송하지만, 기사님. 전 신이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요.”
“목숨이 아까워 거짓말을 하나?”
“목숨이 아까운 건 맞지만, 거짓말은 아닙니다. 전 제가 신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진심으로요.”
갈라하우트는 멈칫했다.
같잖은 힘으로 권능감에 빠진 어리석은 인간과 위기에서 민낯을 보이는 추잡한 인간, 겉과 속이 다른 음흉한 인간 등. 수많은 인간군상을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신으로 떠받들어지면서 최소한 자기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법인데, 놈에게선 그런 오만의 죄악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질색하는 기색마저 느껴졌다.
“제가 사이비 신 취급을 받은 건 마리가······.”
올리버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정정했다. 착각이었는지 몰랐지만, 그 모습은 꽤 엄숙하기까지 했다.
“음······. 아뇨, 제 잘못이 맞습니다. 제가 확실히 하지 않았으니까요. 만약, 저로 인해 파테르교가 피해를 보았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확실히 책임지고 정리할 테니 혹시 자비와 기회를 베풀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사이비교의 가짜 신이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거지?”
“만약, 자비를 베풀어 저희를 풀어주시면, 제가 책임지고 이 사이비 종교를 폐(廢)하도록 하겠습니다.”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성기사들에게 있어도, 파테르교에 있어도 말이다.
“모욕적이군. 우리가 그따위 거짓말에 속을 바보로 보이나?”
철퇴를 든 성기사가 성을 내며 끼어들었다.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긴 했다.
사이비 신이 사이비교를 없애겠다니. 어불성설이었다.
올리버 역시 이를 알기에 차분히 대답했다. 뭐가 됐건 지금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부분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비를 베풀어주실 수 없습니까? 파테르교의 가르침 역시 사랑, 믿음, 자비, 관용, 용서이지 않습니까?”
“개소리하지 마라. 감히, 신의 가르침을 언급하다니······. 불경이고, 죄악이다! 너희 따위가 신의 자비와 관용, 용서를 구할 자격이 된다 생각하나!”
철퇴를 든 성기사가 눈에 불을 켰고, 미간과 입은 맹수의 그것처럼 사납게 일그러트렸다.
척 보기만 해도 기가 꺾일 것 같은 모습.
그러나 올리버는 의문을 느낄 뿐이었다. 정말 순수한 의문을 말이다.
“저희 같은 사람들일수록 신의 자비와 관용,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왜 그토록 미워하시는 겁니까?”
“이놈이······!”
성기사는 분노가 임계점을 넘으며 그대로 철퇴를 휘둘렀다.
올리버는 그의 감정을 읽으며 반 박자 더 빠르게 움직여 공격을 피했으나, 곧 몸을 비틀거렸다.
철퇴가 움직일 때 발생한 강력한 바람 탓에 몸의 균형을 잃었기 때문.
그 짧은 순간 성기사 갈라하우트가 소리 없이 접근해 장검을 뒤로 젖히며 물었다.
“정말 이유를 모르나?”
그리고는 올리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너무나도 빠른 공격. 올리버는 타겟팅을 사용해 자신의 몸을 주변 구조물과 연결해 척력(斥力)을 높이며 억지로 몸을 잡아당겨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 와중에도 올리버는 대답했다.
“예, 모르겠습니다.”
[홀리 라이트(Holy Light)]
갈라하우트는 올리버가 흑마법을 사용하자마자 성법을 사용해 흑마법을 소멸시켰다.
요안나와 던칸 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무력하다니.
문득, 성법이 보이는 힘의 근원과 그 한계가 궁금해졌다.
파앙━!
올리버가 멈추자마자 갈라하우트는 검 끝으로 올리버를 겨누며 돌진해 그대로 찌르기 공격을 가했다.
돌풍이 분 것처럼 아주 빨랐는데, 단순히 육체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움직임에 군더더기도 없었다.
다행히 올리버는 그동안의 전투 경험 덕분인지,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간신히 피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위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팟━!
올리버는 갈라하우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자마자 머리 위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반응해 몸을 틀었고 바로 그때 어깨에서 상당한 통증을 느꼈다.
창을 든 또 다른 성기사가 높게 뛰어올라 위에서 아래로 창을 내지른 것.
공격이 어찌나 빠른지 올리버가 반 박자 더 빠르게 움직였음에도 공격을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갈라하우트의 공격 역시 매한가지였다.
그는 올리버가 억지로 몸을 틀어 피해 균형을 잃은 순간 다시 칼을 휘둘러 올리버의 어깨에 추가로 상처를 입혔다.
이상했다. 분명 몸통을 동강 낼 수 있었을 텐데.
“너희 선택받은 사람들은 신도들의 감정을 착취해 마약을 만들었지. 그것만으로 너희는 처단당해 마땅하다.”
올리버가 반박하려 했다.
“그건━”
“━흥!”
올리버가 대답하려고 하자 철퇴를 든 성기사가 빠르게 돌진해 철퇴를 휘둘렀다.
징이 박힌 철구(鐵球)는 겉모습처럼 흉흉하게 올리버에게 날아들었고, 올리버는 신전에 뿌리내린 나무를 이용해 벽을 세웠다.
꽝━━!!!
분명, 생명력과 자연의 힘을 꽉꽉 넣은 나무라 그 강도(剛度)가 강철과 맞먹을 터인데, 처음 그때처럼 산산이 부서질 뿐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올리버까지 맞은편 폐건물로 날려버렸다.
충격이 너무 강해 뭐가 뭔지도 모를 지경.
그럼에도 올리버의 머릿속에는 계속해 의문이 생겼다. 아주 많은 의문이 말이다.
“끄으윽······. 기사님들. 변명처럼 들릴 수 있지만, 선택받은 사람들이 신도들의 감정과 생명력을 추출한 건 맞지만,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적정량만 추출했기 때문이죠. 그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헌혈과 비슷한 거지요.”
올리버가 포션을 마시며 건물 아래로 내려왔다. 마스크는 부서지지 않았으나, 몸은 고장 난 듯 끼익끼익 울렸다.
“그래서 그게 옳다는 건가?”
갈라하우트를 비롯한 철퇴 성기사와 창 성기사가 신전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그들의 관심은 더 이상 마리에게 있지 않았다.
“글쎄요······. 전 제가 옳고 그름을 구분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또 구분하기도 어렵고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자니 세상은 너무 복잡하더군요. 하지만 그래도 선택받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선을 지키려고 했다는 건 압니다.”
“그런 걸 타협이라 하지. 그리고 타협은 죄를 낳지.”
“성기사님들은, 파테르교는 단 한 번도 타협한 적 없습니까?”
올리버가 다 마신 포션 병을 바닥에 내리며 질문했다. 과거, 요안나의 일을 떠올랐다.
우연의 일치인지 갈라하우트는 당시 요안나처럼 침묵했다.
그 침묵에 철퇴를 든 성기사가 불쾌함을 느끼며 다시 끼어들었다.
“감히, 사이비 따위가 우리 파테르교에 옳고 그름을 따지는 건가?! 이번에는 진짜 머리를 깨주지!!”
“돌을 던지기 전에 본인들은 죄가 없는지 여쭤보는 겁니다. 경전에도 나와 있는 말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올리버가 다른 질문을 꺼냈다. 사실 가장 궁금한 거였다.
“설사, 이쪽이 죄가 없더라도 놓아줄 생각은 있긴 합니까?”
“무슨 뜻이지?”
갈라하우트가 다른 두 성기사를 멈추며 질문했다.
“지금 기사님께서 하는 일은 옳은 일이라 하는 건지, 아니면 필요한 일이라 하는 건지 여쭙는 겁니다.”
갈라하우트는 잠시 눈을 감은 뒤 입을 열었다.
“대답할 가치조차 없군······. 그 두 개는 일치한다.”
“역시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올리버는 말아쥔 한쪽 손을 조용히 펴며 대답했다.
손에는 나무 파편과 녹색 콩이 있었으며, 곧이어 올리버의 의지에 따라 감정과 생명력, 자연의 힘이 깃들어졌다.
그러자 나무 파편과 콩 줄기는 갑옷처럼 올리버의 전신을 뒤덮었으며, 뒤이어 입과 눈이 돋아나 사람도 짐승도 아닌 것이 괴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