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대화 시도 (1)
“성기사들은 대기. 서번트들은 계속해 전진해 밀어붙여. 천천히 지금처럼.”
와인햄 북 거리 582R 번지.
한 성기사가 무선 통신장치를 통해 지시했다.
그의 이름은 갈라하우트. 이번 와인햄-사이비교 토벌의 총책임자였다.
파테르교 강경파에 속한 그는 개인 임무만 세 자릿수에, 단체 임무는 두 자릿수인 베테랑 성기사로, 성기사들 사이에서도 높은 명성을 가진 이였다.
그 증거로 직속 휘하가 아닌 수십 명의 서번트는 물론, 자부심이 대단한 같은 성기사들조차 그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그만큼 갈라하우트를 믿고 인정한다는 것.
허나, 그러한 사실과 별개로 이번 임무의 주인공은 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갈라하우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무대 위 주인공이 아닌 감독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병력의 수와 질, 상성, 위치 등 모든 게 압도적임에도 한 번에 찍어 누르지 않고 구석으로 적을 몰아붙이고만 있었다.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하지만 솔직히 썩 내키냐면, 그렇진 않았다.
이미 수많은 전투와 임무를 해본 그에게 있어 이런 비효율적인 임무 수행 방식은 달가운 게 아니었다.
자신은 성기사지, 정치인이 아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라하우트는 순순히 원래 계획대로 임무를 진행했다.
성기사로서의 의무와 자부심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지만, 흐르는 세월과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았기에.
다가올 미래를 위해선 거북스럽더라도 이러한 연출은 필요했다.
인류는 하나로 뭉칠 구심점이 필요했으니 말이다.
칙━! 칙━!
무선통신장치에서 특유의 소리가 울리더니 보고가 들어왔다.
폐쇄된 신전을 진입한 팀 중 하나로, 저항하던 사이비 사제들을 격퇴했다는 거였다.
[현재 적들은 저항을 포기. 신전으로 후퇴 중입니다. 추격합니까?]
갈라하우트는 경험 많은 기사답게 작은 승리에 흥분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과 이번 임무의 궁극적 목표를 상기했다.
이번 임무의 공식적 목표는 셀랜드에 새롭게 생긴 사이비 종교를 토벌하는 거였지만, 그보다 더 궁극적인 목표가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압박을 가해 신전 안에 몰아넣되 진입하지는 마라. 도망치지 못하게만 철저히 포위만 유지해.”
[알겠습니다.]
무선통신장치를 통해 대답을 들은 후 갈라하우트는 위치를 이동해 전투 양상을 지켜보았다.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치고 들어가고 있지 않았다지만, 그와 별개로 흑마법사들은 나름 잘 대응하고 있었다.
성법이란 강력한 힘 앞에 대부분 흑마법사는 무력하게 당했건만, 여기 흑마법사들은 일반 화기로까지 무장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그래봤자 파테르교의 전문 훈련을 받은 서번트들에게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칙━! 칙━! 통신장치 특유의 소리가 들리며 사이비들을 격퇴했다는 보고가 거듭 전해졌다. 적들을 추격해도 되는지 묻는 질문이 쏟아졌다.
갈라하우트는 앞의 경우와 똑같이 포위만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두더지. 두더지. 그쪽은 문제없나?”
갈라하우트가 폐쇄된 신전 지하 하수도에 대기한 성기사들과 서번트들에게 물었다.
갈라하우트는 완벽한 임무 수행을 위해 두 개 팀을 하수도에 먼저 내려보내 도주로를 차단했다.
덕분에 사이비 놈들이 지하로 도망치지 못했다.
[문제없습니다. 몇몇 도망치려 했지만, 전부 해치웠습니다.]
“잘했다. 계속 대기하도록.”
[알겠습니다.]
갈라하우트는 독 안에 갇힌 쥐새끼처럼 버려진 신전에 갇힌 사이비들과 이들을 완벽히 포위한 동료 성기사와 서번트들을 봤다.
조금 아이러니한 것 같았다.
버려진 신전에 숨은 사이비 교단과 이를 포위한 성기사라니.
하긴, 삶이란 아이러니로 가득했으니 그리 이상한 게 아닐지도·····.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
임무 중 상념에 빠진 갈라하우트가 고개를 저어 잡생각을 떨쳐버리곤 옆을 지키는 서번트에게 물었다.
“기록장치는 작동 중인가?”
“예, 그렇습니다. 기사님.”
서번트가 대답과 동시에 회중시계와 비슷하게 생긴 기계장치를 꺼냈다.
일마리넨 공방이란 곳에서 만든 마법 기계장치로, 주변의 모습을 저장하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저 물건이 찍을 모습은 우리 쪽에 힘을 실어줄 터였고, 그렇게만 된다면 다가올 인류의 위기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일이 인류를 지키는 첫 단추인 셈이었다.
“좋아, 그럼━”
━위이이잉!!
갈라하우트가 다음 지시를 내리려는 찰나 저 하늘 위에서 작지만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벌레의 날갯짓과 같은 소리.
아직 여름이라 벌레가 날아다니는 건 이상한 게 아니나, 왠지 모를 이질감에 모두 고개를 들었다.
“씨발, 저게 뭐야······.”
한 서번트가 말했다.
갈라하우트도 같은 심정이었다.
갑자기 하늘 위에서 장갑차를 연상케 하는 차량이 뚝 하고 떨어진다니······. 두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현실성이 없는 광경이었다.
허나, 다음 장면은 더 현실성이 없었다.
차 보닛 한쪽이 열리며 크고 아름다운 게틀링건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사람 따위는 다진고기로 만들 것 같은 게틀링건이 말이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고강도 훈련을 마친 서번트들 조차 차에 시선을 빼앗겼다.
바로 그때 게틀링건이 하늘 위로 총구를 돌리더니 요란한 총소리를 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하늘 위를 향해 총알을 난사하는 것,
이쪽을 노린 것이 아님에도 게트링건의 엄청난 박력과 위력에 서번트들이 동요했고, 곧이어 탄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계속해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이어지던 중 누군가 여유롭게 차 문을 열고 나왔다.
녹색 망토에 나무 마스크를 쓴 자로, 그는 상식을 뛰어넘는 신체 능력을 이용해 차를 박차며 사이비들이 숨은 신전 위로 뛰어올랐다.
***
콰라라라라라롹━━!
올리버는 자동차 문을 열자마자 더욱 선명해진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막을 직접 때리는 느낌.
아무래도 너무 높은 곳에서 포털을 연 것 같았다.
‘조금 낮은 곳에서 열 걸 그랬나?’
올리버가 성냥갑처럼 작게 보이는 건물과 하늘 위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그리 나쁘지도 않을지도······. 뭐가 됐건 의도한 대로 마리 일행을 포위한 서번트들의 시선을 자신 쪽에 끌어당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 자동차와 게틀링건의 사격에 의식을 빼앗겼고, 올리버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차 문을 엶과 동시에 품 안에서 나뭇가지를 다수 꺼낸 뒤, 차를 박차며 그대로 뛰어올랐다.
마리가 있는 폐쇄된 신전 위로.
올리버가 뛰어오르자 차는 땅으로 추락해 엄청난 소리를 냈고,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쏴!”
명령이 떨어지자 신전 주변을 포위한 서번트들이 올리버를 향해 일제히 총을 갈겼다.
일반적인 권총과 소총부터 기관단총, 괴악한 관통력을 가진 크로스 건까지.
사격 실력도 좋아 적잖은 총알이 올리버의 몸에 맞았으나, 다행히 몸에 두른 콩 줄기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올리버는 그 상태로 자연의 힘과 생명력을 뒤섞은 에너지를 손에 쥔 나뭇가지에 부여, 신전 위로 던졌다.
파바바박━!
단검처럼 빠르게 날아간 나뭇가지는 올리버가 노린 대로 신전 지붕 위에 골고루 박혔으며, 올리버는 술식을 발동, 파테르교의 신전을 습격했을 때처럼 나뭇가지에 새 생명을 부여해 성장시켰다.
츠즈즈즈즈즈즈━━!!
신전 지붕에 박힌 나뭇가지는 올리버가 부여한 힘으로 새 생명을 얻어 신전 지붕과 벽에 뿌리를 내리며 거대한 나무가 되어 신전을 뒤덮었다.
그 지붕 위로 착지한 올리버는 나무를 조종하여 자신을 보호했다.
날아오던 총알은 벽처럼 자란 나무에 막혔으며, 올리버는 그 상태로 반격하지 않고 차분히 몸을 낮춘 채 기다렸다.
반격하지 않고 방어만 한다면 저들도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공격을 멈출 테니 말이다.
‘그럼, 그때 대화를 시도해━ 아······.’
올리버가 신전 지붕에서 성기사의 공격을 막던 중 뚫린 지붕 사이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마리는 놀랍게도 상당한 거리에 얼굴까지 가려져 있음에도 눈만 보고 올리버가 올리버인 걸 알아차렸다.
마리의 감정을 보고 알 수 있었는데, 마리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동요하더니, 뒤이어 엄청난 감동과 황홀경, 기쁨을 빛냈다.
“아······. 아······. 주-”
“-쉬이이.”
마리가 입을 열려는 찰나 올리버가 검지를 마스크 위에 얹으며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성기사가 있는 지금 올리버란 존재를 알리는 게 좋지 않다고 생각한 거였고,
두 번째는 마리 주변에 있는 수십 명의 사람에게 자신이 올리버이지만, 신 님은 아니란 이야기를 하기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타이밍이라든가 그런 게 말이다.
다행히 마리는 올리버의 뜻을 이해해 줬는지 두 손으로 자기 입을 막으며 올리버를 부르고픈 욕구를 참았다.
정말 필사적으로 말이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분명 혼자서 자기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인데, 어찌해 이러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마리의 감정이 요동치며 입을 두 손으로 막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자 주변의 사람들이 마리에게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어봤다.
그 와중에 올리버를 발견한 그들은 의문과 궁금증을 빛냈다.
마리의 이해 못 할 격한 반응과 갑자기 등장한 올리버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말이다.
올리버는 설명하는 대신 일단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겠다고 판단, 마리에게 바깥 문제를 자신이 맡아도 되는지 손짓으로 물어보았다.
수화라든가, 신호를 정한 것도 아닌 손짓과 발짓에 불과했지만, 마리는 고맙게도 올리버의 뜻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는 마리에게 감사를 표하며, 어떻게 성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였는데, 때마침 기회가 왔다.
“사격 중지.”
잔잔하면서도 차분하지만, 무게가 깃든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올리버를 향해 쏟아지던 총탄이 일제히 멈췄다.
올리버는 양손을 들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대는 누구지?”
신전을 완벽히 포위한 병력 사이로 한 중년의 남성이 나타나 말했다.
철 코트를 입은 그는 단정한 머리에 멋들어진 콧수염을 기른 자로, 눈이 날카롭고, 말랐지만 단단한 체구를 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감정과 분위기를 볼 때 그가 대장인 듯했다.
“드루이드입니다······. 죄송하지만, 선생님께선 누구신지요?”
“난 성기사 갈라하우트다. 와인햄의 사이비교의 토벌 책임자이지. 그대는 누군가?”
“드루이-”
“-감히 성기사 앞에서 거짓말을 말하지 마라.”
자신을 갈라하우트라 소개한 성기사가 단호하게 소리쳤다.
그냥 찔러보는 게 아닌 강력한 확신을 가졌다.
“······왜 제가 드루이드가 아니라 생각하시는지요?”
“난 드루이드를 만나봤다. 정통파, 개혁파, 엔조이먼트까지······. 넌 드루이드가 아니야.”
올리버는 감탄했다. 앞과 마찬가지로 허세가 아닌 진심이었다.
경험과 통찰력이 남달랐는데, 그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네가 사용한 자연의 힘에 인간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는 것도 느꼈다. 티 나지 않게 쓰려고 뒤섞은 것 같지만 날 속일 순 없다. 네놈 정체가 뭐냐?”
올리버는 고민했다.
드루이드의 변장을 꿰뚫리는 것을 넘어 생명력까지 사용한 걸 들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음······. 혹시, 솔직히 말씀드리면 평화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다.”
“거짓말이군요.”
올리버가 갈라하우트의 말을 듣자마자 대답하며, 신전에 뿌리내린 나무를 조작해 뒤쪽에서 은밀히 접근 중이던 성기사를 후려쳤다.
놀랍게도 웬만한 가로수 굵기의 나뭇가지는 성기사가 펼친 성법과 충돌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마치 벽에 부딪힌 유리병처럼.
콰자작━!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나무줄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자연의 힘에 인간의 생명력까지 뒤섞은 나뭇가지가 말이다.
보통 실력자가 아니었다.
“대화는 안 되나요?”
어느새 접근해온 갈라하우트를 향해 올리버가 질문했다.
성기사의 신체 능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았지만, 이 사람은 그 이상이었다.
그는 강철 건틀릿을 낀 손으로 허리춤에 찬 장검을 빠르게 뽑으며 대답했다.
“사이비 이단과 대화하지 않는다. 그게 더더욱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면.”
갈라하우트는 그 말과 함께 뽑은 장검으로 올리버를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