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72화 (372/633)

372. 도움 (1)

서번트가 말한 대로 성기사들의 임시 아지트에 드루이드가 침입해 왔다.

정확히는 드루이드가 침입해 왔다고 생각한 거였지만 말이다.

‘그게 가장 합리적이긴 하지······.’

나무 마스크를 쓰고, 녹색 망토를 두른 올리버가 드루이드의 주술을 사용해 서번트들을 제압하며 생각했다.

참고로 나무 마스크와 망토는 약사가 준 것으로, 그는 올리버에게 드루이드 흉내를 내라고 했다.

‘가급적이면 정체를 숨기는 게 좋지. 미지(未知)야말로 가장 좋은 무기인 동시에 방패니 말이야.’

그는 올리버가 드루이드 흉내를 낸 것만으로 성기사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그렇게 틀린 말 같진 않았다.

성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드루이드의 등장만으로 성기사들이 당황하기 충분할 테고, 엔조이먼트라는 존재 탓에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으니.

‘뭣보다 내 정체도 숨길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야.’

마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정체가 들통날 것을 각오한 올리버였지만, 숨길 수 있다면 가급적 숨기고 싶었다.

이왕이면 란다로 조용히 돌아가고 싶었기에 말이다.

“드루이드라니······! 엔조이먼트 용병인가?!”

올리버가 복도에 있던 서번트들을 거의 제압하던 중 지원 온 서번트 하나가 소리쳤다.

그는 올리버를 보자마자 십자가 형태의 거대한 총을 번쩍 들어 겨눴다.

과거, 요안나의 서번트가 사용한 걸 본 적 있었다.

‘파테르교 제식무기? 내 기억이 맞다면 관통력이-’

――――탕!

올리버가 생각하는 도중 총알이 발사됐고, 자연의 힘으로 반사신경이 좋아진 올리버는 바닥에 바짝 엎으려 총알을 피했다.

총에서 날아온 총알은 올리버를 맞추지 못한 채 그대로 날아가 반대편에 있던 아군 서번트들을 맞췄다.

총의 위력이 올리버가 기억하던 대로 괴악해 철 코트로 무장한 서번트 셋을 관통했다.

“끄으으윽······!!”

“팔! 팔이······!”

“크로스 건(Cross Gun) 함부로 쏘지 마!!”

좁은 복도에 비명과 혼란이 울려 퍼지며, 날아간 팔과 손가락, 피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것.

크로스 건을 든 서번트는 당황하면서도 올리버를 다시 겨눴고, 올리버는 바짝 엎드린 상태에서 있는 힘껏 뛰어올라 천장까지 도약.

그리고는 천장을 다시 발로 차 크로스 건을 든 서번트 앞으로 날아갔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서번트는 총구가 흔들릴 정도로 당황했으나, 방패 역할을 맡은 다른 서번트 셋이 각각 방패와 무기를 들어 올리버 앞을 가로막았다.

훌륭한 협동력이었다.

꽝━━!!

올리버는 주먹에 쥔 녹색 콩을 싹 틔워 성장시킨 다음 팔에 감싸 휘둘렀다.

콩 줄기를 두른 주먹은 상식을 초월한 위력을 내며 서번트 셋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서번트들은 훈련과 무장을 통해 전투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뛰어난 전사들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성기사만큼의 육체 능력을 가진 건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되지만.’

아군이 시간을 버는 사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크로스 건을 겨눈 서번트를 보며 올리버는 생각했다.

올리버는 자신을 겨눈 총구를 보고 당황하는 대신 콩 줄기를 방패처럼 엮어 들었다.

그와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다.

탕━━━━!

크로스 건에서 화염이 뿜어지며, 올리버가 팔에 두른 콩 줄기가 터지듯 찢어졌다.

강력한 화력에 박살 난 것.

실로 대단한 위력이었다. 단순한 콩 줄기도 아니고 자연의 힘까지 머금은 콩 줄기인데.

아마, 콩 줄기의 두께가 조금만 얇았거나, 자연의 힘이 모자랐으면 팔도 같이 날아갔을 터였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다.

올리버는 최대한 정체를 숨기는 쪽으로 가면서도, 여차하면 마법과 흑마법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죽거나 붙잡히면 다 소용없는 일이었으니.

서번트들의 수준을 확인한 올리버가 판단 내리며 녹색 콩을 다시 꺼내 자연의 힘으로 성장시킨 다음 채찍처럼 휘둘러 장전 중인 서번트의 목을 붙잡았다.

촤락━━━탁!

서번트는 목이 조이는 와중에도 올리버를 겨누는 의지를 보였지만, 올리버가 힘껏 잡아당기자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반대편 복도를 향해 날아갔다.

덕분에 올리버의 뒤를 노리던 서번트들은 갑자기 날아온 아군에 의해 잠시 멈췄고, 올리버는 그사이 다른 서번트들을 같은 방식으로 모조리 던져 그들의 발을 묶었다.

“고작 이따위 시간 벌기가━!”

“그 정도면 충분해서요.”

올리버가 대답하며 한쪽으로 몰은 서번트들을 마주 본 채, 오는 길에 꺾은 나뭇가지를 품 안에서 꺼내 자연의 힘을 때려 박았다.

구구구구구구구구······!

자연의 힘을 받은 나뭇가지는 새로운 생명을 얻어 거대한 나무로 성장하더니 이윽고 좁은 복도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잠깐, 멈춰!”

“막아!”

“빌어먹을! 노린 건가?!”

나뭇가지가 복도를 완전히 틀어막기 전 한 서번트가 당황하며 소리쳤고, 그의 말은 정답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제한된 힘을 사용해야 하는 올리버는 상대와 접촉을 줄이고, 소모되는 힘을 아끼기 위해 진입하기 전 흑마법사의 눈을 사용, 내부 인원을 파악한 뒤, 도면을 참고해 일부러 대피소 정중앙의 좁은 복도로 침입했다.

공간이 좁아 상대측 대응이 제한적인 데 반해, 소란을 일으켜 병력을 집중시키기 좋았고, 뭣보다 이런 식으로 길을 차단할 수 있었기에.

올리버는 뒤를 돌아 흑마법사의 시야를 사용했다.

아까 전 확인했던 대로 대피소 뒤쪽에는 붙잡힌 사람들과 이들을 감시, 신문(訊問)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이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올리버는 품 안에서 자연의 힘이 든 시험관을 꺼내 추출한 다음, 성장시킨 나뭇가지를 더욱 강화했다.

복도를 틀어막은 나무 너머로 부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기세를 봤을 때 아무래도 2, 3분을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그 전에 해결해야 한다는 거네.’

올리버가 판단 내리며 추출한 자연의 힘 일부를 몸에 투여해 소모한 힘을 채우곤, 흑마법사의 시야로 뒤를 살펴봤다.

이미 여섯 명의 서번트가 복도 앞에서 매복 중.

올리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앞으로 걸어가다 입구 바로 앞에서 벽을 부숴 옆으로 빠져나갔다.

“······!!”

대기하고 있던 서번트들은 당황했고, 올리버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품 안에서 나뭇가지를 꺼내 몽둥이로 성장시켰다.

과거 셰이머스와 다른 드루이드들이 사용한 주술을 참고한 것.

올리버는 몽둥이를 만들자마자 양손에 쥐곤 벽 너머의 서번트들을 향해 있는 힘껏 휘둘렀다.

쾅━━!!

자연의 힘으로 강화된 올리버의 육체와 몽둥이는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단단하게 설계된 대피소 벽면을 시원하게 파괴하며, 흙먼지와 함께 다량의 파편과 충격파를 앞으로 날려버렸다.

이런 공격은 예상치도 못한 서번트들은 그렇다 할 방어도 하지 못하고 충격파와 파편에 맞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누, 누구십니까?”

쓰러트린 서번트들을 살펴보던 올리버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감옥(대피소 방) 안에 갇힌 세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마리 쪽 사람들인 듯했다.

남성 둘에 여성 하나로, 하나같이 몸이 성치 않았다.

“안녕하세요.”

올리버가 그들에게 손을 살짝 들어 인사했다.

상황과 분위기에 맞지 않는 태도에 그들은 혼란을 빛냈다. 적인지 아군인지도 구분 못 한 듯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올리버가 자신을 소개하려 했다.

“전━”

━쾅!!

올리버가 자신을 소개하려는 찰나 기회를 포착한 성기사 하나가 올리버처럼 벽을 부수며 단숨에 접근해 왔다.

올리버가 방심했다고 생각한 성기사는 철 코트와 도끼로 무장한 채 저돌적이라 할 정도로 바짝 붙어 도끼를 휘둘렀다.

올리버는 벽을 사탕처럼 부순 몽둥이를 들어 성기사의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경악스럽게도 성기사의 도끼는 올리버의 몽둥이를 너무나도 가볍게 박살 냈다.

파각━!!

분쇄되다시피 부서진 나무 몽둥이.

올리버가 놀랐다.

성기사를 가볍게 볼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드루이드의 힘이 있으니 전보다 상대하기 편할 거라 생각했는데 잘못 판단한 거였다.

성법에 의해 무력화만 안 된다뿐이지, 성기사의 강력한 육체는 그대로였다.

올리버는 일단 거리부터 벌리려 했는데, 한 박자 더 빠르게 성기사가 손을 휘둘러 올리버의 얼굴을 후려쳤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나무 마스크가 부서지며 올리버는 복도 쪽으로 날아갔다.

“어디 감히 드루이드 따위가······!”

성난 성기사의 고성이 들렸다. 그러나 올리버는 운이 좋다고 안도할 뿐이었다.

주먹에 맞아 아프긴 했지만, 성기사는 여전히 자신을 드루이드라 생각했으니.

‘또, 나와주셨고.’

올리버가 그리 생각하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 씨앗을 자연스럽게 바닥에 흘렸다.

“도망칠 수 없다!”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성기사는 놀라운 신체 능력을 이용해 다시 한번 올리버 앞까지 접근, 도끼를 치켜들었다.

단숨에 끝장내려는 것.

도끼날이 올리버의 머리를 쪼개려는 찰나 올리버는 아까 전 바닥에 흘린 씨앗을 발동시켰다.

자연의 힘이 깃든 씨앗은 술사의 의지에 따라 곧바로 발아(發芽)해 녹색 풀줄기가 싹트더니 순식간에 성장.

성기사의 발목을 시작으로 다리, 허리, 몸통, 어깨, 팔을 붙들었다.

덕분에 올리버는 종이 한 장 차이로 도끼날을 피할 수 있었다.

“이따위 거······!”

성기사가 자신의 몸에 엉킨 녹색 풀줄기를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고된 훈련과 성법으로 강화한 육체를 이용해 자연의 힘이 깃든 억센 풀을 뜯어냈다. 몇 초만 시간을 주면 자력으로 빠져나올 기세였다.

몇 초만 주면 말이다.

뻑━!

성기사가 풀줄기를 빠져나오려고 할 때 올리버는 바닥에 떨어진 나무 파편으로 몽둥이를 만들어 양손으로 있는 힘껏 쥐고 성기사의 안면(顔面)을 후려쳤다.

복도 전체가 울리는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발생하며, 성기사는 머리가 완전히 뒤로 젖혀진 채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상당한 운이 따라줬다고 할 수 있었다.

붙잡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방심했다는 인상을 심어줘 성기사가 필요 이상으로 저돌적인 공격을 해왔기에 빈틈을 노리기 한결 쉬웠다.

‘계속 운이 따라주네. 이곳에 오자마자 셀린을 만나고, 약사님에게 도움을 받고······.’

올리버가 거듭되는 행운에 감사를 표하며 성기사를 콩 줄기로 포박. 아까 전 만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그들은 여전히 올리버를 경계한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혹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까?”

“······예.”

붙잡힌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올리버가 답했다.

“아, 다행이네요. 괜찮으시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 시간은 없는데, 할 게 많아서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혹시, 로렌스 씨가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그분께 여쭤볼 게 있어서요.”

올리버의 연이어지는 부탁에 그들은 현실성 없는 표정을 짓더니, 아까 전 못 들은 질문을 다시 했다.

“다, 당신은 누굽니까?”

“아, 죄송합니다. 자기소개하는 걸 잊었네요······.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올리버라 합니다.”

“······신 님입니까?”

“아뇨. 그냥 올리버입니다.”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