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 약사 (1)
“선택······하는 사람이요?”
셀린이 마치 처음 듣는 단어처럼 되물었다.
올리버는 시선을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더없이 진지하게.
“예······. 셀린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예요. 용감하고 강인한 사람이니까요.”
셀린은 다시 쑥스러워하는 감정을 빛내며 입을 다물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감동한 거 같았다.
올리버는 셀린의 감정을 살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셀린, 다시 한 번 물어볼게요. 부담 가지지 않고 대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혼자 가셔도 괜찮으세요?”
셀린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와 다른 동료들을 위해.
그녀의 결심을 확인한 올리버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곤 품 안에서 두툼한 지폐 뭉치와 함께, 종이 한 장, 혹시 몰라 챙겨 온 만년필 형태의 기계장치를 건넸다.
만년필 형태의 기계장치는 호출기로, 끝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상대방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판매자의 말에 따르면 기능은 제한적이나 그만큼 잔고장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하였는데, 범위도 란다 전역을 커버할 만큼 넓었다.
“이 돈은 필요할 때 쓰시고, 종이는 품 안에 넣어두세요. 그리고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이 호출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올리버가 호출기의 끝 버튼을 가리켰다.
“이거요?”
“예, 그럼 제가 도와드리러 갈게요.”
셀린은 기계장치와 올리버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믿음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 감사합니다. 올리버 님.”
“그냥 올리버라고 부르세요. 님이란 호칭이 붙을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거든요.”
“저, 전 님자가 편해서요.”
“그럼, 어쩔 수 없고요. 어쨌건, 셀린. 저도 당신을 만나 반가웠어요.”
올리버가 존중을 담아 인사했다.
그 인사를 들은 셀린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는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올리버는 육안(肉眼)으로 셀린이 사라지는 걸 확인한 후, 바로 다음 행동을 시작했다.
“역시, 마법이 좋겠지?”
중얼거림과 함께 올리버는 몸 안에 남은 자연의 힘을 이용해 점프, 적잖은 높이에 있던 하수도 천장에 가볍게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마력을 일부 출력해 그대로 천장에 가져다 대 마법을 발동했다.
가이아 소학파의 대지 마법으로, 올리버는 천장을 구성하는 벽돌과 시멘트에 동화(同化)를 시도, 자신의 몸을 그 안에 밀어 넣어 천장 너머 약사의 집으로 침투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방이 어두웠으며, 따뜻했고, 무엇보다 각종 풀, 약초, 꽃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계신 분도.’
철컥.
올리버는 뒤통수 너머로 총이 장전되는 소리와 함께 노인의 목소리를 들렸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누구지?”
약사가 램프를 켜며 질문했다.
노란 불빛이 사방을 밝히며, 각종 식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곳 지하실은 온실인 듯했다.
“약사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양손을 들고, 고개를 이쪽으로 돌려. 천천히.”
올리버는 시키는 대로 양손을 들어 보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얼굴에 부여한 위장 마법을 해제, 진짜 얼굴을 보여줬다.
올리버의 얼굴을 말이다.
더블 배럴 샷건을 든 약사가 노란 불빛을 내뿜는 램프를 올리버 쪽으로 가져다 댔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만······. 올리버 자네군.”
“예, 만나서 반갑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난 아니야.”
***
약사의 말은 아무래도 사실인 듯했다.
그는 올리버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주변의 불을 밝혀 시야를 확보해 줬지만, 총구는 내리지 않고 계속해 겨눴다. 올리버의 머리를 향해 말이다.
그는 올리버를 경계하고 있었다.
“어째 제가 안 좋은 타이밍에 온 것 같군요?”
올리버가 여전히 손을 든 채 물었다.
반쯤 벗어진 머리, 금테 안경을 쓴 약사가 통찰력을 빛내며 대답했다.
“이곳 상황 다 알고 온 거 아닌가?”
“아······. 예, 그렇긴 합니다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첫 번째는 이런 식으로 온 것부터가 여기 상황을 안다는 거고, 두 번째는 저 밑 폐쇄된 하수도에서 나눈 이야기를 들었거든.”
“아, 역시······. 하수도에 설치한 통신 장치는 약사님께서 설치하신 거군요.”
올리버가 하수도에서 본 마력을 머금은 기계장치를 떠올리며 물었다. 매우 작은 물건이라 흑마법사의 시야가 아니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였다.
“그래, 빈틈을 보여야 상대가 안심하거든. 대응하기도 편하고······. 이제 나도 자네에게 질문하지. 궁금하거든. 이런 시국에 왜 날 찾아왔는지 말이야.”
약사는 근처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자리에 앉았다.
보통 사람에 비해 왜소하고, 키도 작은 편에 속했지만, 올리버는 그에게서 란다의 수완가 못지않은 기백과 용기, 냉철한 이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든 총으로 올리버를 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또, 여차하면 주변을 감시하는 성기사와 서번트를 부르기 위해 총으로 올리버를 겨누고 있었다.
올리버가 솔직히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약사님 도움이 필요해 찾아왔습니다.”
“내 귀가 의심스럽군. 지금 내게 도움을 청하는 건가?”
“예.”
“음······. 대답에 앞서 내 질문에 대답해 보게. 내가 호의를 베풀어주고, 도와줬음에도 갑자기 떠나버린 자네를 왜 도와줘야 하나?”
질문을 들은 올리버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솔직히 약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뭐가 됐건 약사는 올리버를 많이 도와준 사람이었다.
올리버가 조셉을 죽여 소란스러울 때 도미니크와 앤서니 두 패밀리와 회담을 가질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줬고, 이후, 성기사와 관련해서도 여러 도움을 줬다.
그 외에도 새로운 아지트와 생산설비를 마련해줬으며, 호의의 표시로 성기사에 의해 해체된 도미니크와 앤서니 두 패밀리의 잔당을 넘겨줬다.
물론, 이 모든 행동이 이익에 기인한 타산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도움받은 것은 사실.
올리버는 약사에게 사과부터 했다.
“그 점은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약사 님. 친절을 베풀어주셨는데도, 말도 없이 떠나서요······. 최소한 인사는 드렸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뭐가 됐건 떠났을 거란 이야기군.”
“예······. 세상 밖이 궁금해졌고, 또, 설명하기 난감한 이유도 있거든요.”
올리버가 자신에게 점점 의존적으로 변하던 마리와 다른 패밀리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진심을 담은 대답이었지만, 약사는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계속 총을 겨눈 채 대화를 이어갔다.
“지나간 일은 집어치우지. 과거 이야기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으니······. 아까 전 내 질문에 대답해봐. 내가 지금 자넬 왜 도와줘야 하나? 여기 상황을 알고 있을 텐데.”
“성기사들이 마리의 교단을 타깃 삼아 사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꽤 위기고요.”
“정확해. 그 광신도는 지금 위기지. 성기사들이 하나도 아니고 한 트럭이 몰려왔으니. 강력한 위세를 떨치던 마리의 부하들은 성법 앞에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거나 체포됐고, 거래하던 다른 잡범들도 이단에게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끌려갔지. 경찰이 아닌, 성기사들에게 말이야.”
“그것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약사님은 무사하시군요.”
“난 다른 잡범들과 달리 이 도시에 명망이 있고, 이곳 신전을 비롯한 성기사 셀랜드 지부에도 기부를 많이 하고 있거든. 덕분에 조용히 지내는 것으로 화를 피하고 있지······. 완벽하진 않지만.”
완벽하진 않지만. 올리버는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성기사들이 약사의 집을 감시하고 있고, 20분 이상 가게 문을 닫은 적 없는 약사가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아슬아슬한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조금만 눈밖에 벗어나면 붙잡힐 만큼 말이다.
“그러니 대답해봐. 이런 상황에서 왜 내가 말도 없이 떠난 무책임한 자를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쓸모없는 사과가 아닌 생산적인 이유를 이야기 대봐. 돈이라면 난 충분히 가졌는데?”
사실이었다. 자세히는 알지 못했으나, 약사가 와인햄에 기부한 내용만 들어봐도 지난 몇 년 동안 얼마나 막대한 부를 축적했는지 쉬이 알 수 있었다.
택시 기사가 말하길 공장과 회사를 여러 채 세웠을 뿐 아니라, 건물을 대거 사고, 가게를 열 자금까지 빌려줬다 했으니······. 아마, 앞으로 평생 일하지 않아도 문제없을 거금을 모았을 터였다.
“그런데 그건 전에도 마찬가지 아니셨습니까?”
“뭐가?”
“진작에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부자셨지 않습니까?”
약사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면 맞는 말이었으니까.
택시 기사가 말하길 약사는 아버지 때부터 이 도시의 유지(有志)라 불릴 정도로 부유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뒷골목에 손을 대는 것부터가 어불성설.
그렇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약사가 범죄 자체를 좋아하는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던가, 아니면 지금 가진 것보다 더 큰돈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전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왜 후자라 생각하지?”
“약사님은 반사회적인 성향이 있는 분 같지는 않거든요. 이 도시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사업 자체도 합리적으로 운영하셨으니까요.”
택시 기사의 열변과 과거 약사의 사업장과 직원들을 떠올리며 올리버가 추측했다.
“그 덕분에 파테르교도 쉽게 날 못 건드리고, 직원들도 날 배신하지 않는 거거든. 선의의 갑옷이라 할 수 있지.”
“그럼, 이 도시에 애정이 전혀 없으신 겁니까?”
올리버가 되물었다. 그저 겉으로 보여주기라면 적선 정도로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굳이 공장까지 지어가며 일자리를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계속 가난한 채로 내버려 두는 게 더 이익이겠지. 또, 성기사가 있는 지금 상황에 불만을 품지 않을 거고.’
약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글쎄, 애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이민자였던 내 증조부가 처음 정착한 도시니. 최소한의 애정은 있지. 그래서 솔직히 지금 상황이 썩 유쾌한 건 아니야. 증조부께서 터를 닦은 곳에서 이방인이 날뛰니 말이야.”
진심. 약사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난 하루빨리 저 이방인들을 내쫓고 싶어. 어떤 방식으로든. 가령, 자넬 넘겨버리는 방법도 있지. 사이비 종교의 신이라 그런지, 성기사들이 자넬 신경 쓰고 있더군.”
“저한테 말씀해주시는 것을 보아하니. 그 방법은 내키지 않으신 듯하군요.”
약사가 약간 놀랐다.
“원래 이 정도로 눈치가 좋았나?”
“란다에서 지냈거든요.”
“호오······. 란다?”
“예. 거기서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럼, 거기 정착한 건가?”
“음······. 어느 정도는요.”
올리버가 대답했고, 약사는 올리버를 빤히 바라봤다. 거짓인지, 진실인지 가늠하기 위해.
약사는 고민 탓인지 올리버를 겨눈 총구가 조금씩 흔들렸다.
그러나 올리버는 총구를 바라본 채 약사의 생각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것이 멋대로 떠난 자신의 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해 말이다.
“······과거 내가 마리에게 조언한 적이 있지. 란다로도 세력을 넓혀, 여차하면 도망칠 안전 가옥을 마련해두라고. 란다는 숨기 좋은 곳이라고.”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켈 자유독립군을 잡을 때 포레스트에게서 해당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런데, 마리는 그럴 수 없다더군. 분명, 크라임 펌과 접근해 세력 확장할 기회까지 엿봤는데. 갑자기 전부 그만뒀지······. 혹시, 자네와 관련 있나?”
“아마, 저 때문일 겁니다.”
올리버가 마리와 란다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올리버는 마리를 제압한 후 자신의 일상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역시 자네나 마리나 마음에 안 드는군. 뭐가 됐건, 내가 최대 거래처인데 하나같이 날 무시하니 말이야. 한 명은 약속을 어겼고, 다른 한 명은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지······. 그대들 양심에 묻지. 존중이란 게 뭔지 아나?”
“죄송하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유감스럽군······. 하지만 더 유감스러운 건, 내가 마리의 최대 거래처인 것처럼, 마리 역시 내 최대 거래처라는 거야. 그녀가 내게 넘겨주는 상품은 지금 내 주력 상품이기도 하거든, 그녀를 잃으면 내 사업에 타격이 크지.”
올리버가 기회를 엿봤다.
“전 그 마리를 도와주러 온 겁니다. 제가 약사님에게 원하는 건 마리의 위치뿐이고요.”
“그 광신도 아가씨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알지.”
“그게 누구죠?”
“로렌스. 마리를 곁에서 지키는 수제자이자, 자넬 신으로 모시는 선택받은 사람의 사제. 2, 3일 전 마리를 대신해 싸우다 성기사들에게 붙잡혔어. 지금 아마, 고문받고 있을 거야. 파테르교 놈들은 신을 모시는 자들치고 고문을 좋아하거든.”
“음······. 혹시, 로렌스란 분이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왜? 성기사들에게 쳐들어가 구해주기라도 하게?”
“예.”
올리버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약사가 놀란 듯 한쪽 눈썹을 올렸다. 올리버에게 섭섭한 감정이 있는 것과 별개로 빤한 허세를 부릴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알았기에 의문스러웠다.
“······흑마법사 주제 성기사를 이길 자신이 있나?”
“아뇨. 이긴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기사 분들은 강하고, 훈련도 잘 받아서요. 다만, 대응할 방법은 몇 개 있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 잠시 손 좀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보여드리는 게 더 빠를 것 같아서요.”
약사는 망설임 없이 더블 배럴 샷건을 거두어 주었다. 어차피 소용없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러나 그와 별개로 올리버는 감사를 표하며 품 안에서 시험관을 꺼냈다. 녹색 빛이 깃든 시험관을 말이다.
“그건······?”
“잠시만요.”
올리버가 양해를 구하며 시험관에서 녹색 빛을 추출. 주머니에서 녹색 콩을 하나 꺼내 싹 틔웠다.
약사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말했다.
“드루이드의 힘이군.”
“예, 아시는군요?”
“엔조이먼트 드루이드와 작게 거래하고 있거든. 여기 온실 식물 중 몇 개도 그들에게 산 거고.”
올리버가 주변에 널린 식물을 둘러봤다.
“의문이군. 어떻게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거지? 그것도 흑마법사가?”
“설명하기 길어지는데, 어쩌다 보니 사용하게 됐습니다.”
별것 아닌 듯 말하는 엄청난 사실. 약사는 놀라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생각에 빠졌다.
자연의 힘을 사용하는 흑마법사라면 딱 한 명 알고 있었다.
그냥 헛소문인 줄 알았는데.
“자네가 데이브였구만? 근래, 란다에서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해결사!”
“······어떻게 아셨습니까?”
“자연의 힘을 다루는 흑마법사가 소문이 안 나길 빌었나? 물론, 난 헛소문인 줄 알았지만.”
“아······.”
올리버는 저도 모르게 소리 냈다. 하긴, 소문이 안 나는 것도 이상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사용하긴 했으니.
“나도 란다에 거래처가 있어 간간이 소문 같은 걸 듣지. 가령, 셰이머스라는 강력한 드루이드를 상대로 이긴 흑마법사라든가, 정말 3조란 돈을 되찾아 그냥 돌려줬나?”
“운이 조금 따라줬습니다.”
“그 운이면 성기사와도 해볼 수 있겠군. 자연의 힘은 성법과 결이 비슷한 축복 같은 거라 흑마법이나 마법처럼 영향을 안 받는다 하니.”
정답이었다. 올리버가 마탑에서 본 책에서도 그렇게 설명되어 있었다. 그 덕분에 드루이드들이 파테르교가 있음에도 존립하고 권위를 지킨 거였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약사는 소도시에 있음에도 상당히 박식하고 통찰력이 좋은 것 같았다.
“······자네가 만약 마리를 데리고 도망친다면 성기사들도 이 도시에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겠지. 이 도시보다는 이 도시에 뿌리내린 선택받은 사람들이란 사이비 종교에 관심을 가진 거니.”
약사는 올리버를 보며 어떠한 가능성과 기회를 엿봤다.
소극적이던 감정이 점차 의욕으로 변해갔다.
“만약, 마리를 구출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성기사들을 전부 죽일 건가?”
“아뇨, 성기사와 서번트 분들은 가급적 해칠 생각이 없습니다. 사정이 있어서요. 일단, 마리를 데리고 란다로 도망칠까 생각 중입니다.”
“란다?”
“예. 아까 전 약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란다는 몸을 숨기기 좋은 곳이니까요. 도시협약에 따라 파테르교도 행동이 제한되고요.”
약사는 올리버를 시험했다.
“그 도시협약도 악마나, 이단에 관해서라면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한번 도움을 요청해볼까 합니다. 될지 안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누구에게?”
“란다 시(市)에요. 어쩌다 보니 비공식 동맹이 됐거든요.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설명을 들은 약사가 멍하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랑 거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