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69화 (369/633)

369. 와인햄 (2)

“저, 꼬맹이 잡아! 저 꼬맹이!”

멀리서 <햄 소시지 공장>을 살펴보던 올리버의 귓가로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들린 방향은 공장 뒤편.

올리버는 반사적으로 품 안에서 녹색 빛이 담긴 시험관을 꺼내 소량 추출,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공장 뒤쪽 복잡한 골목 끝에는 롱코트를 입은 건장한 남성 둘과 한 꼬마가 대치해 있었다.

꼬마는 뉴스보이 캡을 머리에 푹 썼으며, 자기 몸보다 한 치수 더 큰 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설마 이 근방에서 숨어 있을 줄이야. 다른 녀석들은 어딨어?!”

남성 중 하나가 소리쳐 물었다. 올리버는 그가 서번트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과거, 요안나의 서번트와 란다 셀랜드 지부에서 다른 서번트를 본 덕분이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막다른 길에 몰린 아이에게 상당히 화가 나 있는 듯했다.

“······당신들이야말로 우리한테 왜 이래?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교주님이 뭘 잘못했다고, 우릴 못살게 굴어!?”

꼬마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실제로, 강렬한 억울함과 분노를 빛냈다.

“저런 불경한······! 아무리 꼬마라지만 정녕 너희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는 거냐?!”

남성이 분노하자 다른 남성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감정 낭비하지 마. 어차피 이단이야.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심문실로 데려가자. 분명 다른 이단들이 어디 있는지 알 거야.”

“······그래도 꼬마잖아? 애는 풀어주는 게 낫지 않겠어?”

“꼬마라 해도 이단은 이단이야. 신의 뜻을 반하는 존재. 심지어 이 일의 중요성도 알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르치지 마. 데려가서 적당히 으르면 불 거야.”

“······좋아, 그게 맞겠네.”

남성 둘이 대화하곤 꼬마를 데려가기로 합의 봤다.

물론, 꼬마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열 살이 막 넘은 것 같은 꼬마는 품 안에서 시험관을 꺼내 흑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비록, 형태도 아슬아슬한 어설픈 흑마법이었지만 말이다.

[홀리 라이트(Holy Light)]

남성 하나가 손목에 찬 황금 팔찌를 들어 보이며 영창했다.

영창과 함께 팔찌에서 성스러운 불빛이 뿜어져 나와 부드럽게 사방을 감쌌으며, 동시에 꼬마가 시전 중이던 흑마법을 소멸시켰다.

아주 깔끔하게 말이다.

‘성법 아이템. 역시나 서번트가 맞네.’

올리버가 팔찌에서 뿜어져 나온 빛을 보며 생각했다.

과거 요안나와 던칸에게서 당한 적 있었기에.

흑마법을 무력화시키며, 마법도 약화시키는 성법.

올리버는 자신의 손에 머금어진 녹색 빛, 자연의 힘을 보며 고민했다.

‘송장인형-셰이머스에 들어간 써드(third)가 숲에서 모은 드루이드의 힘······. 직접 사용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책에서 본 것처럼 잘 되려나?’

서번트가 입을 열었다.

“어이 꼬맹이. 어려서 이번에 봐주지만, 한 번만 더 그 불경하고 요사스러운 걸 썼다간 봐주지 않을 거야, 조심해라.”

“친절하시군요.”

“당연하지. 꼬맹······응?”

서번트 둘이 소리가 들린 뒤쪽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대화 도중 끼어든 올리버가 서 있었다.

갑작스러운 이방인의 등장. 서번트들은 경계심을 내뿜으며 제각기 나이프가 달린 권총과 메이스를 꺼냈다.

행동이 참으로 빨랐다. 그만큼 잘 훈련받았다는 증거.

그에 맞춰 올리버 역시 자연의 힘을 자신에게 부여, 육체를 강화해 앞으로 내달렸다.

‘역시 다르네.’

올리버가 달리며 생각했다.

자연의 힘을 통한 육체 강화는 마법, 흑마법과 다르다고 예상했지만, 직접 사용해 보니 그 이상이었다.

다른 수준이 아니라, 더 뛰어났다.

흑마법과 마법은 방식이 다르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육체에 무리를 줬는데, 자연의 힘은 몸에 그렇다 할 부담을 주지 않았다. 거기다 육체 강화 효과는 더 뛰어났다.

고작 몇 걸음 뛰었을 뿐인데 서번트들 바로 앞까지 도착한 게 그 증거라 할 수 있었다.

“젠장!!”

생각 이상으로 빠른 올리버의 몸놀림에 당황한 서번트들이 나이프가 부착된 권총과 메이스를 휘둘렀다.

자연의 힘 덕분에 반사신경이 더 좋아졌는지 올리버는 상대적으로 공격이 느리게 보였고, 공격에 맞춰 제자리에서 가볍게 점프.

서번트들의 키보다 훨씬 높게 뛰어올라 그들을 가볍게 제쳤다.

“······!”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움직임에 서번트들은 충격을 받았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건 올리버도 매한가지였다.

몸에 부담감도 없는데 이 정도 신체 강화라니. 어떤 의미에서는 블랙 슈트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았다.

탁! 타다다다닥-!

가볍게 점프해 서번트들을 재친 올리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달려가 꼬마를 품 안에 안았다.

꼬마가 놀랐는지 악에 받친 아까 전 모습과 달리 얼빠진 소리를 냈다.

“어······?”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올리버가 그리 말하며 도주하려는 찰나, 서번트들이 소리쳤다.

“놓치지 마! 저놈도 이단이다!”

“나한테 맡겨! ······[홀리 라이트(Holy Light)]”

흑마법을 사용한다고 생각했는지 서번트 하나가 다시 황금빛 팔찌를 내밀며 영창했다.

영창과 함께 팔찌에서 성스러운 불빛이 뿜어져 나와 다시 주변을 감쌌다.

아마, 올리버가 흑마법, 혹은 마법을 사용해 신체를 강화했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렇다면 나쁘지 않은 대응이었다. 마법이든 흑마법이든 황금빛 팔찌에서 뿜어져 나온 빛에 그 힘이 소멸했을 테니.

흑마법이나, 마법이었다면 말이다.

“어디 한번 도망쳐 봐라!”

서번트들이 고함을 치며 돌진해왔고, 올리버가 이에 대답했다.

“예.”

대답과 동시에 올리버는 지면을 박차 막다른 벽을 수직으로 뛰어 넘어갔다.

마탑에서 읽은 내용이 사실이었다.

자연의 힘은 마법과 흑마법과 달리 성법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역시, 책은 유익하네.”

올리버가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

“제기랄! 어떻게 된 거야? 흑마법사 아닌가?!”

“몰라, 일단, 보고부터 해! 난 주변을 수색할게. 설마 이단들이 지원군을 부른 건가!”

올리버는 벽을 넘어 건물을 이리저리 타고 한 공간에 숨어들었다.

과거 마리가 가르쳐준 숨기 좋은 장소였다.

“괜찮으신가요?”

올리버가 자신에게서 떨어져 반대쪽 벽에 찰싹 붙은 꼬마를 향해 질문했다. 꼬마는 올리버에게 상당한 경계심을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올리버 입장에서는 도와준 거였지만, 꼬마 입장에서는 수상한 인간이 자길 납치한 거였으니.

올리버는 꼬마가 스스로 대답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거리를 확보,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곤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시간이 흐르자 꼬마가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은 누구세요?”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바, 바보 취급하지 마요. 도대체 누구냐고요?!”

꼬마가 버럭 소리쳤다. 두려움, 불안, 공포, 경계심 등. 심리상태가 많이 불안정했다.

올리버는 해칠 의사가 없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양 손바닥을 보이며 대답했다.

“거짓말 아닙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차와 택시를 타고 오늘 이 도시로 막 도착한 사람입니다. 확인할 게 있어 이곳을 지나가던 차에 큰소리를 듣고 오게 됐죠······. 그리고 죄송하지만, 목소리 조금만 낮춰주시겠습니까? 밖에 아직 사람이 있어서요.”

올리버가 서번트를 가리키며 숨은 공간 밖을 가리켰다.

꼬마는 알아들었는지, 흥분을 가라앉혔고, 그와 동시에 올리버에 대한 경계심도 조금씩 낮췄다.

침묵이 다시 도래하자 올리버는 꼬마의 감정 상태와 바깥 상황을 살펴보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이름을 물어볼 수 있을까요?”

“······이름은 왜요?”

“대화하기 전 이름부터 물어보는 게 예의라고 배워서요. 혹시, 말씀하시기 싫으면 안 하셔도 됩니다.”

올리버의 부드러운 태도에 꼬마는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셀린이요.”

꼬마. 아니, 셀린의 대답에 올리버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했다.

“대답해주셔서 감사해요. 셀린······. 뭐 하나만 여쭤볼 수 있을까요?”

“······.”

“아까 전 교주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마리를 아시나요?”

셀린의 경계심이 다시 빛났다. 아무래도 마리를 아는 눈치였다.

다시 도래하는 침묵.

올리버는 처음과 같은 태도로 꼬마를 바로 볼뿐이었다.

솔직히 대답해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자세한 사정은 약사에게서 들을 생각이었으니.

‘문제는 내가 그분 집을 모른다는 건데, 일단, 그분 가게와 사업장 위주로 찾아가 볼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에도 셀린은 입을 다물었고, 올리버는 대답 듣길 포기하고 셀린을 밖으로 데려다주려고 했다.

때마침 주변을 탐색하던 서번트의 기척도 사라졌으니.

“······당신 이름이 뭐예요?”

올리버가 움직이려는 찰나, 셀린이 반 박자 더 빠르게 입을 열었다.

올리버가 깜빡했다는 듯 대답했다.

“아, 미안합니다. 셀린. 제 생각만 하느라 제 이름을 못 알려 드렸네요. 제 이름은 올리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올리버가 자신의 손을 가슴에 대며 정중히 대답해줬다. 그 이름을 들은 셀린의 커다란 두 눈이 더 커졌다.

“······신님이요?”

“아뇨. 그냥 올리버입니다.”

***

뚜벅. 뚜벅. 뚜벅. 뚜벅.

올리버는 셀린과 함께 하수도로 들어갔다.

셀린이 앞장서서 한참을 걸었는데, 이윽고 한 지점에서 멈췄다.

하수도 귀퉁이 한쪽에 P라는 알파벳이 쓰여 있었다.

“여기 위가 약사님의 집이에요. 약사님 집 주변은 현재 성기사들이 포위해 감시하고 있지만, 이곳 하수도는 폐쇄된 곳이라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셀린이 아니었으면, 시간을 꽤 잡아먹을 뻔했어요. 정말 고마워요.”

올리버가 셀린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에 셀린의 감정은 기쁨과 부끄러움으로 물들었다.

“아, 아니에요······. 교주님을 돕는 거라면 저도 당연히 도와야죠.”

“마리를 많이 좋아하나 보군요?”

셀린이 부끄러워하고 올리버를 어려워하는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를 정말 좋아했다.

“셀린은 다른 분들과 함께 숨어 계신다고 그랬죠?”

“예······. 지금은 위치를 들켰지만, 다른 곳으로 가 숨으면 돼요.”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예! 전 어린애가 아니에요!”

셀린이 당당하게 소리쳤다. 올리버는 그 모습에서 감탄했다.

올리버는 저 나이에 저토록 용감해 본 적이 없었기에.

참으로 대단했다.

“그러니까······. 올리버 님께선 약사님을 만나서 빨리 교주님을 도와주세요······. 교주님 구해줄 수 있죠?”

셀린이 커다란 눈을 간절하게 뜨며 물었다.

올리버는 그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마리를 구할 수 있을지, 없을지요.”

엄밀히 말하면 도와주는 거지만, 상대가 상대다 보니 올리버는 이 부분까지는 따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셀린께 약속드릴게요.”

“······?”

“최선을 다해 마리를 구하도록 할게요. 제 목숨을 걸고요.”

겸손도, 허세도 섞지 않은 올리버의 대답에 셀린은 안도하는 감정을 빛냈다. 허나, 곧 다시 불안감에 물들었다.

“······솔직히 혼란스러워요.”

올리버는 한쪽 무릎을 꿇어 셀린과 눈높이를 맞추며 되물었다.

“무엇이 혼란스럽죠?”

“분명, 교주님께선 올리버 님이 신이라고 했거든요. 우리는 그런 신께 선택받은 사람이라 했고요······. 근데, 올리버 님께서 신이 아니라니······. 혼란스러워요.”

셀린은 진심이었다. 아이의 감정은 혼란과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마치, 디디고 있던 발판이 금이라도 간 듯.

안타까웠다. 고작 자신이 뭐라고, 용감한 아이가 겁을 먹는단 말인가?

“셀린?”

“예?”

“허락해주신다면 손을 잡아도 될까요?”

올리버가 천사의 집 종업원들이 가르쳐준 대로 물었다.

셀린이 당황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이 떨어지자 올리버는 셀린의 손을 부드럽게 잡은 다음 입을 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셀린을 속여서 죄송해요. 당신께서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 배신감에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안타깝게도, 전 저일 뿐입니다. 올리버요. 당연히 여러분 역시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고요.”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에 셀린은 실망의 기색이 빛냈다. 올리버는 그런 셀린의 손을 꼭 잡아줬다.

“하지만 셀린······. 당신은 그것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예요.”

“더······. 나은 사람요?”

“예. 조금 전에 봤거든요. 셀린이 얼마나 용감한지요.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남자를 자그마치 둘이나 두고도 용감하게 자기 할 말을 했죠.”

“아······.”

“전 감히 상상조차 못 하던 일이거든요. 저보다 크고 강한 어른한테 당당히 말한 거요. 그러니 셀린은 저보다 용감한 사람이고, 셀린은 저보더 더 나은 사람이 될 거예요.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라, 선택하는 사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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