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 와인햄 (1)
“많이······. 달라졌네.”
포레스트와 작별 인사를 마친 후, 올리버는 열차를 타고 와인햄 인근에 도착, 기차역에서 택시를 잡아타 와인햄으로 들어왔다.
와인햄 거리를 둘러보던 올리버의 혼잣말에 턱수염을 수북이 기른 운전기사가 반응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란다의 택시기사보다 지저분한 외관을 했음에도, 술은 마시지 않았다.
“와인햄에 와본 적 있습니까?”
올리버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예, 잠시 와인햄에서 지낸 적 있습니다.”
“호오······. 그래요? 언제입니까?”
택시기사가 호기심을 빛내며 한층 더 자세히 물었다.
허나, 올리버는 딱히 수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속셈이나 악의가 없었고, 또, 대부분 택시기사가 손님과 대화 나누는 걸 즐긴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차 안에서 운전만 해야 하는 그들에게 있어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게 그나마의 즐거움일 테니.
그걸 알기에 올리버도 예의를 갖춰 대답했다. 물론, 적당히 둘러대서 말이다.
“음······. 정확히는 모르겠네요. 다만, 제가 좀 어릴 때였습니다.”
“하하! 그렇구만······. 많이 변했습니까?”
“예.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많이 변했네요.”
실로 그랬다. 처음 조셉을 따라왔을 때 올리버는 와인햄의 규모에 꽤 놀랐다.
당시 올리버의 세상은 고아원과 광산이 전부였던지라, 와인햄과 같은 도시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그 압도적인 규모와 그 안에 있는 격정적이고 무수한 감정들······.
허나, 근 몇 년 만에 돌아온 지금은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조셉이 말하긴 와인햄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도시라 했건만, 란다에서 몇 년을 보낸 탓인지 올리버가 기억하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작아져 있었다.
약간 과정을 보태며 와인햄 전체가 란다 한 구역 하나만도 못해 보였다.
‘하지만 감정 상태는 훨씬 나아졌어.’
와인햄은 분명 몰락해가는 도시인지라, 처음 봤을 때는 짜증, 분노, 원망, 절망, 무기력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판쳤는데, 지금은 눈에 띄게 그 상태가 호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에 걸맞게 도시에 나름 생기(生氣)도 돌고 있고.’
올리버가 뒷좌석 창문을 통해 도시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올리버가 기억하던 와인햄은 대부분 오래되고 빈 건물에, 거리에는 사람이 없었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란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올리버가 기억하던 것에 비해 사람이 많았고, 활기도 있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집, 치안이 확보되어야지만 나올 수 있는 활기가 말이다.
와인햄은 척 봐도 전보다 살기 좋아진 상태였다.
“약사 선생님 덕분입니다.”
“약사 선생님요?”
“예, 이 동네에서 살았다면 아실 텐데요?”
“아······. 혹시, 도널 매슨 님 말씀입니까?”
“하! 이 동네 사셨던 것 맞구만! 의심해서 미안합니다. 맞습니다. 도널 약사 선생님!”
도널 매슨. 일명, 약사. 조셉을 포함한, 도미니크, 앤서니. 총 세 개 흑마법 패밀리와 거래한 이 도시의 유지(有志)이자 뒷골목 거물이었다.
올리버가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와 거래했다.
택시기사는 약사의 이름을 듣자마자 반가워했다.
단순히 겉으로가 아닌 진심으로 말이다. 그는 약사에게 꽤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아······! 이렇게 그분을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우연치고 꽤 재밌습니다, 혹시, 손님도 약사 선생님께 도움을 받은 겁니까?”
올리버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받은 건 사실이었으니.
대답을 들은 택시기사가 다시 한번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역시! 이 도시에서 그분 도움을 안 받은 사람이 없지!”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요! 도움받아 놓고 모르는 겁니까?!”
택시기사는 많이 놀랐는지, 운전 중임에도 뒤돌아 올리버를 봤다.
올리버는 다시 둘러댔다.
“죄송합니다. 어릴 때라서요. 음······. 혹시, 괜찮으시다면 이야기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럴 수 있구만. 그럼, 내 이야기해 드려야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앞을 봐주시겠습니까? 겁이 나서요.”
“아아, 미안합니다. 내 너무 기뻐서.”
택시기사가 서둘러 고개를 돌리곤 사과했다. 그리곤 약사가 와인햄에 얼마나 많은 기부와 은혜를 베풀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와인햄이 여태까지 안 망하고 버틴 건 약사 선생님 덕분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그 아버님 때부터였지.”
“아버님요?”
“예예, 약사 선생님 아버님요. 그분도 지역 유지(有志)로, 이 도시에 은혜를 베풀었거든요. 내 할아버지 병원비도 대신 내주셨고요.”
“아, 그렇군요.”
“예, 그렇습니다. 그 외에도 명절마다 가난한 집에 닭요리도 보내주고, 돈이나 일자리도 기부해주셨죠.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물론, 아버님 이상을 한 약사 선생님도 대단하지만요.”
“아버님 이상을요?”
“예. 아버님 이상요! ······최근 투자한 사업이 대박을 쳐 엄청난 떼돈을 버셨다는데, 그 수입 중 상당수를 이곳에 투자하고 기부하셨죠.”
“최근이라면 구체적으로 언제죠?”
“글쎄······. 4, 5년 정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해외에서 약을 수입해와 팔았다 하더군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분이 이 도시를 위해 돈을 기부했다는 겁니다. 건물을 대거 구매해 재건축한 뒤 싸게 임대 해주고, 은행에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운송, 택시 회사 등을 세워 사람들을 고용해줬죠. 높은 임금에, 수수료 같은 것도 걷지 않고요!”
택시기사가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의 감정은 기쁨과 존경으로 빛났다.
“······기사님께서는 약사 선생님을 많이 좋아하시나 보군요.”
“좋아한다고요? 아뇨, 존경하는 겁니다! 요즘 돈 좀 번 인간들은 대부분 란다로 가는 마당인데, 그분은 그렇지 않고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위해 희생하시니까요. 저기 거리 보이죠?”
택시기사의 손가락을 따라 올리버는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길을 따라 세워진 건물이 있었고, 건물 1층에는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공장 덕분에 노동자들이 이 도시로 왔고, 노동자들이 모이니 가게가 하나둘씩 문을 열었습니다. 참고로, 저 가게들 넷 중 하나는 약사 선생님이 자금을 빌려줬습니다. 그분이 이 도시를, 내 고향을 살린 겁니다! 그러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음······. 맞는 말 같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시군요. 약사 선생님요. 그럼, 그분께선 지금 뭘 하고 계시죠?”
그 순간 여태까지 쉬지 않고 말하던 택시기사가 불안, 불만, 불편, 두려움과 같은 감정을 빛내며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 지난 후 그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크음, 그게······. 좀······.”
극도로 불안해하고, 불편해하는 택시기사.
올리버는 본능적으로 약사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리와 성기사와도 관련되어있음을 직감했다.
솔직히 질문을 더 해 자세한 내막을 알고 싶었지만, 올리버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이미 택시기사의 설명으로 충분히 많은 것을 들었고, 그의 감정을 통해 마리가 이 도시에 행한 것을 엿볼 수 있었기에.
‘약사님께서도 기부를 많이 하셨겠지만, 마리의 손을 탄 것도 많을 거야. 아마, 약사님이 벌어들인 막대한 수익은 마리를 통해 얻은 게 상당할 테니······.’
올리버가 추측했다. 마리의 사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약사의 도움이 필요했을 테니,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올리버가 생각에 빠진 사이, 겸연쩍어진 택시기사가 소극적으로 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거······. 그런데 손님께선 여기 왜 온 겁니까? 복장이 세련된 걸 보아하니, 란다에서 온 것 같은데?”
올리버는 열심히 설명해준 택시기사에게 보답하기 위해 한쪽 손을 가슴에 얹으며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친······. 음······. 지인을 만나러 왔습니다.”
“지인요?”
“예. 일이 생긴 것 같아서요······. 아, 차는 여기서 세워주십시오.”
올리버가 바깥 풍경을 확인하며 말했다. 익숙한 거리로, 조셉 패밀리의 근거지인 <햄 소시지 공장>이 있는 거리였다.
올리버가 조셉 패밀리를 잠시 맡고, 성기사 요안나의 습격으로 옮기게 된 제2의 아지트.
올리버는 품 안에서 지갑을 꺼내 원래 나온 금액에 팁을 약간 더 얹어 기사에게 정중히 내밀었다.
지폐를 받아 든 기사가 말했다.
“많은데요?”
“팁입니다. 그게 매너라고 배워서요······. 또, 기사님 말씀이 재밌고 유익했고요. 그러니 받아주십시오.”
올리버의 정중한 태도에 택시기사는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친절한 분이군요······. 솔직히 란다에는 돈만 많고 재수 없는 인간들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요.”
“사람이 많다 보니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합니다.”
끝까지 예의를 잃지 않는 태도에 택시기사가 감동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하아······. 잠시만 이쪽으로.”
“······?”
올리버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가까이 댔다.
택시기사가 속삭였다.
“그····. 손님이 누굴 만나러 온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도시에서 행동 조심하십시오.”
“음······. 왜 그러시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그 성기사인가, 뭐시긴가 하는 양반들이 지금 있습니다.”
올리버는 처음 듣는 척 연기했다. 그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그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 양반들이 말하길 이 도시에 위험한 사이비 종교가 있다며 여기저기 들쑤시고 있습니다. 우리 시장과 경찰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있고요.”
“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거리에서 사람을 패거나 고문하진 않지만,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면 소리소문없이 끌고 간다 합니다. 남자는 물론, 여자나 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자주 가는 술집에서 듣길, 아직까지 못 풀려난 사람도 있다 하던데, 손님도 조심하십시오. 그 인간들,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 같으니.”
택시기사의 말은 진심이었고, 그와 함께 불안함과 두려움을 빛냈다.
그는 용기 내 올리버에게 조언을 해 준 거였다.
힘과 위상이 한풀 꺾이긴 했지만, 악마 숭배와 흑마법사에 관해 상당한 권한을 발휘한다더니, 아무래도 허언이 아닌 듯했다.
“혹시, 약사 선생님도 그것과 관련되어있는 겁니까?”
“글쎄요······. 저는 잘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성기사들이 오고 나서 집에 틀어박혀 계십니다. 참 성실하고 선량한 분인데······. 그래서 다들 그거 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약사 선생님이 혹여 피해를 볼까 봐요.”
“아,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그 사이비 종교가 아주 악질인가 보군요?”
올리버가 지나가듯 툭 던지며 질문했다. 말과 달리 올리버는 눈에 신경을 집중해 택시기사의 감정 상태를 살펴봤다.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겠습니다. 관심이 없거든요.”
거짓. 택시기사의 감정 상태를 확인한 올리버가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친절한 설명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
‘에디스 님이 주신 자료와 똑같네.’
올리버가 과거의 거주지 <햄 소시지 공장>을 멀리서 살펴보며 생각했다.
한때, 올리버가 머물었으며 조셉 패밀리와 도미니크, 앤서니 패밀리의 잔당이 머물던 커다란 공장은 쓸쓸하게 폐쇄되어 있었다.
문과 창문은 널빤지를 덧대 봉했으며, 건물 위에는 검과 비슷한 형상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마치 점령지에 꽂은 깃발처럼 말이다.
‘사이비 교단을 격퇴했다는 상징물 같은 건가?’
올리버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올리버의 추측대로라면 이 도시가 다시 번성하게 된 데는 분명 마리의 지분도 있을 텐데, 정작,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파테르교가 저길 점거했다는 게 말이다.
뭔가 안타깝고,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궁금하네. 왜 갑자기 파테르교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을 토벌하려고 한 걸까?’
올리버가 문득 의문을 품었다. 에디스가 건네준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인물이 공을 세우게 하려는 내부 정치의 일환이라 하였는데, 왜 하필 이곳인지 의문스러웠다.
선택받은 사람들이 신도들의 감정을 추출해 흑마법 아이템을 만들어 판 건 맞지만, 그래도 정도는 넘지 않았는데.
왜 하필 여기인지 의문이었다.
직접 와서 보니 에디스가 미처 조사하지 못한 사실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하다 보면 알겠지.’
두 눈으로 상태를 확인한 올리버가 자리를 뜨려는 찰나 어디선가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저, 꼬맹이 잡아! 저 꼬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