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흑마법사-367화 (367/633)

367. 그런 놈 (3)

“제 선택이죠.”

차분하게 대답하는 올리버.

멀린은 그 잔잔한 목소리에서 강력한 의지를 엿봤다.

그 어떠한 회유와 위협으로도 꺾을 수 없는.

약속이라도 한 듯 멀린과 올리버는 서로 마주 본 채 대치했으며, 인위적이다고 할 정도로 깊은 침묵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침묵과 함께 긴장감이 고조됐으며, 이윽고 긴장감이 한계에 달했을 때 멀린이 침묵을 깼다. 커다란 웃음으로 말이다.

“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핫!”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멀린의 감정을 볼 수 없어 확신할 수는 없었으나, 그가 보인 웃음은 광소도, 냉소도, 실소도, 비웃음도 아니었다.

정말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올리버는 침묵한 채 멀린의 웃음을 바라봤으며, 한참이 지난 후에야 멀린의 웃음은 잦아들었다.

웃음의 여운 탓인지 멀린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한쪽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하아······. 역시, 무섭군, 무서워. 젊은이의 무모함이란, 정말 무서워.”

“허락······해주시는 겁니까?”

“어떻게든 가겠다는 인간을 어찌 말리겠나? 허락하고 자시고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인데.”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올리버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멀린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친절과 배려를 알았기에.

“대신, 조건······. 아니지. 부탁이 있네.”

“부탁요?”

“그래, 들어주든 안 들어주든 오롯이 자네 마음이지만 말이야.”

“말씀하시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하겠습니다.”

“거기 있는 성기사와 서번트(성기사 휘하 병력)들의 목숨은 빼앗지 말게.”

“알겠습니다.”

올리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멀린도 놀란 눈치였다.

“이유는 안 물어보나?”

“어르신께서 말씀하신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또, 절 이만큼 배려해주시는데 따지는 건 좀 아닌 것 같고요······. 어르신께서 베풀어주신 친절과 배려 진심으로 감사하며 잊지 않겠습니다.”

올리버는 인사와 함께 품 안에서 포털마법이 깃든 종이를 꺼내 다시 허공에 포털을 열었다.

“바로 움직이려는 건가?”

“예, 가기 전에 들려야 할 곳이 하나 더 있어서요.”

“그렇군.”

올리버는 멀린에게 다시 인사하고 포털로 발을 디디려 하였는데, 포털을 완전히 넘어가려는 찰나, 갑자기 다시 뒤돌아 말했다.

“어르신······. 임시로나마 어르신을 스승님으로 모실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듯한 인사. 그 탓인지 멀린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말을 했다.

“······자넨 내가 혐오스럽지 않나? 내가 케빈의 가족을 상대로 끔찍한 짓을 벌였는데.”

“솔직히 거기에 관해 여쭤보고 싶긴 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은 아니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르신께서도 어르신만의 사정이 있으시겠죠. 과거는 몰라도, 지금의 어르신은 존경합니다.”

올리버는 담백하게 대답하고는 포털로 들어가 사라졌다.

멀린은 올리버가 있었던 자리를 말없이 바라보다 고뇌에 찬 듯 중얼거렸다.

“하아, 돌겠군······. 정말 반하겠어.”

***

T구역 30번 거리에 있는 포레스트 레스토랑은 참으로 특이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임에도 노동자 계층이 주를 이루는 T구역에 버젓이 자리 잡다니.

주변과 너무나도 이질적이며, 고객층도 맞지 않아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 달도 못가 망할 거라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러한 예상과 달리 포레스트 레스토랑은 개업 후 현재까지 번창하고 있었다.

T구역에 얼마 없는 전문직 종사자와 공장주들뿐 아니라, 다른 구역의 부유층도 자주 방문한 덕분이었는데, 그 종류도 다양했다.

음지의 크라임 펌 간부와 보스, 양지의 자산가와 기업 임원, 공장주, 투기꾼까지.

이들 모두 도시의 부유층으로, 원한다면 어디서든 자신이 원하는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굳이 이곳에 온 건 다름 아닌 이 레스토랑의 주인 때문이었다.

포레스트 말이다.

왜냐면 그는 단독으로 파이터 크루라는 무력집단을 크라임 펌에 공급해주고, 이 도시에서 급속도로 이름을 떨친 거물 해결사와 거래하는 거물 중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도시의 부유층들은 레스토랑을 방문해 포레스트와 교류해 친분을 쌓는 동시에 정보를 캐고, 투자의 기회를 엿봤다.

신문에는 올리지 못하지만, 란다의 경제에서 폭력이 담당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높았기에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물론, 포레스트도 이를 알았기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성심성의껏 대접하며, 그들과 교류해 친분을 쌓고, 역으로 정보를 캐 도시 전반의 흐름을 읽었다.

중개인이란 애당초 그런 직업이었으니.

단순히 고객과 해결사를 연결해 주는 것을 넘어 도시의 흐름을 읽고, 거기에 맞춰 최대한 리스크를 제거하며, 기회를 잡는.

그리고 포레스트는 그런 일에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역시 당연한 거였다.

이쪽 일에 재능이 있었고, 또, 젊은 시절 가난뱅이로 죽기 싫다는 열망이 그 재능을 갈고닦았기에······. 거기다 운까지 따라줬다.

재개발 붐이 한창일 때 중개인으로 독립해 생각보다 큰돈을 만졌고, 이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소일거리나 하는 퇴물이 됐지만, 노년에 접어들어 의도치 않게 엄청난 실력자를 만나 중개인 인생 중 최대 황금기를 보냈으니.

아무리 본인의 실력이 괜찮아도, 거래하는 해결사의 실력에 따라 수입과 평판이 갈렸기에, 운 역시 중요한 분야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행운의 결정체가 대뜸 찾아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였다.

자신의 본명이 사실 올리버며,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는 사이비 교단을 도와주러 란다를 잠시 떠나겠다고 말이다.

심지어 몇 년 동안 쓰고 있었던 가죽 가면을 벗어 진짜 얼굴까지 드러냈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히는군.”

사무실 내부에서 포레스트가 혼란스러워하며 말했다.

포레스트는 아득해진 정신을 다잡기 위해 술을 마시며 맞은편 데이브······. 아니, 올리버의 얼굴을 살폈다.

앳된 소년의 얼굴을 말이다.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데이브라는 이름이 가명이고, 얼굴도 가짜일 거란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설마, 20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년이라니. 심지어 사이비 교단에서 신으로까지 모셔지고······. 이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말문이 막힐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이상한가요?”

올리버의 질문에 포레스트가 손을 산만히 흔들며 대답했다. 그만큼 혼란스럽단 증거였다.

“솔직히 복잡하군. 어떤 건 납득이 가는데, 어떤 건 너무 놀라워.”

“무엇이 납득되고, 무엇이 놀라우시죠?”

“자네가 웬 사이비 교단에서 신으로 숭배받는 건 이상하게 납득이 되는데, 자네가 소년이라는 건······. 뭐라 말하기 심경이 복잡하군.”

“만약, 폐를 끼친 거라면 죄송합니다. 그래도 말씀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서요.”

“아냐.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니, 그런 생각하지 말게.”

포레스트가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빛냈다. 그 이유는 올리버로서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린 이유는 포레스트 님에게 혹시 모를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또, 말씀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고요.”

“잠시 생각할 시간 좀 주겠나? 아주 잠깐이면 돼.”

포레스트가 올리버에게 부탁했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자 포레스트는 감사를 표하며 술을 마시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아. 왜 굳이 자네가 가려는 건지, 그만둘 생각은 없는지, 자네가 앞으로 누릴 권리와 지금 그걸 선택할 시 잃을 것들에 관해서 말하고 싶어······. 하지만 자네가 진짜 얼굴까지 보이며 말했다면 내 같잖은 말재주로 말릴 수준이 아니겠지?”

“예······. 아, 포레스트 님의 말재주가 같잖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 자네다운 대답이군.”

포레스트는 씁쓸하게 웃었고, 올리버는 그런 포레스트를 살펴보았다.

그는 지금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안타까워했고, 슬퍼하면서도, 무력감을 느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건 올리버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건 꽤 고마운 감정이었다.

‘그렇다고 결정을 바꿀 생각은 없지만.’

올리버가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포레스트 님.”

“뭔가?”

“일단, 조심하긴 할 거지만, 혹시 제가 가서 실수해 포레스트 님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뻔뻔한 부탁인 줄은 알지만, 포레스트 님께서도 자체적으로 대비해주셨으면 합니다.”

“걱정 말게. 나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으니.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인 아가씨나, 조, 카버 씨에게도 저 대신에 설명 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할 수는 있지만, 왜?”

“제인 아가씨는 제 친구고, 조에게는 아직 가르쳐 줄 걸 다 못 가르쳐 줬거든요. 카버 씨와는 시(市)의 비공식적 동맹으로 묶인 관계고요······. 할 수 있으면 제가 직접 찾아가 말하고 싶긴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요.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영영 떠날 사람처럼 말하는군.”

“그런 생각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으면 좋겠죠. 하지만 이 일이 생각보다 위험해서요.”

포레스트는 부정하지 못했다.

마법과 산업의 시대에 들어선 지금 파테르교가 과거에 비해 그 위세가 꺾였다곤 하나, 신을 섬기고, 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존재라는 건 감히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인육 요리사를 포함한 검은손의 괴물들이 점점 움직이는 이 시국에선.’

포레스트는 자체적으로 조사한 정보를 떠올렸다.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 세상 곳곳에서 흉흉한 소문이 들렸고, 이런 불길한 상황에서 파테르교를 자극한다면 필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넘을지도 몰랐다.

웬만한 권력으로는 보호해 줄 수 없는.

포레스트는 한순간 해당 사실을 이야기해준 에디스가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솔직히 말해 중개인으로서 자넬 말리고 싶네. 하지만, 중개인이기에 말릴 수가 없군. 자네와 난 계약관계니까. 내 뜻을 강요할 수 없지.”

“예, 그리고 포레스트 님은 그게 가장 건전하다고 말씀하셨지요.”

“맞아. 결국, 중개인과 해결사는 서로의 필요로 맺어진 관계니······. 그리고 같은 이치로, 자네가 한 부탁 이상은 도와줄 수 없다고 미리 말하네.”

이후 올리버가 선택받은 사람들을 구하러 가는 행위에서 일체 아무것도 돕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포레스트 님은 이 일과 상관없고, 이곳 종업원 등 책임질 사람이 있으시니까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올리버가 포레스트의 감정을 꿰뚫어 보며 말했다. 그는 자신을 돕지 못한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꼈다. 참으로 부당한 감정이었다.

“······이후 어떻게 할 생각인가? 와인햄으로 바로 갈 건가?”

“예.”

“괜찮겠나? 바로, 간다 해도 아는 게 있어야 움직일 수 있을 텐데?”

맞는 말이었다. 강력한 무력은 분명 엄청난 가치를 가졌지만, 그 무력 역시 판을 제대로 파악해야지만 비로소 가치가 생겼다.

올리버 혼자 소도시로 간다고 무엇을 바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움을 청할 데가 있거든요.”

“도움?”

“예.”

올리버의 대답에 포레스트는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굳이 캐묻진 않았다. 이미 머리가 충분히 복잡했기에.

“하아······. 자네에게 행운이 함께 하길 빌겠네.”

“감사합니다······. 아, 맞다. 마지막으로 부탁? 의견?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의견?”

“예.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몰라서요. 좀 더 나중에 말할 생각이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야기 못 할 수도 있어서요······. 발언을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뭔가?”

“캔트 님에게 용서를 구하실 생각 없으십니까?”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그냥, 최근에 용서에 관해서 들었는데, 포레스트 님에게 필요한 것 같아서요······. 포레스트 님은 캔트 님에게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듣길 죄를 인지하면 직접 찾아가 용서를 빌어야 한다더군요. 죄로부터 멀어지는 게 아닌 다가가는 것요.”

“좋은 말이군······. 허나, 캔트가 날 만나줄지, 용서해 줄지가 두렵네.”

“그것 역시 포레스트 님께서 감당해야 할 고통이라 하더군요. 그럼에도 전 일단 가시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인가?”

“그래야만 캔트 님도 포레스트 님을 용서할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요.”

그 말을 들은 포레스트가 생각이 아닌 감정이 시키는 대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무사히 돌아오면 그때 생각해 보겠네.”

포레스트는 진심이었다. 그 감정을 본 올리버가 대답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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