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 그런 놈 (1) >
“가령, 네가 와인햄에 생긴 사이비 종교의 신이라는 사실 같은 거? ……그게 널 부른 이유야.”
에디스가 올리버와 눈을 마주친 채 또박또박 말했다.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올리버는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호오……. 신이라는 사실을 부정 안 하는 건가?”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발언. 올리버는 생각을 정리한 후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음……, 에디스 님. 일단, 전 신이 아닙니다. 당연한 거지만요. 다만, 그와 별개로 절 신으로 모시는 집단이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 집단의 이름이 ‘선택받은 사람들’입니까?”
에디스가 흥미를 보였다. 탐욕이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흥미를 말이다.
“그래. ‘선택받은 사람들’ 맞아……. 이 이름이 왜 선택받은 사람인지 아나?”
“그걸 왜 여쭤보시는 건지요?”
“질문은 내가 먼저 했고, 이야기 주도권도 내가 쥐고 있지. 나라면 닥치고 순순히 대답할 거야……. 젠장! 기분 좋구만. 내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니!”
에디스가 진심으로 통쾌해했다.
올리버는 해당 주제 자체가 거북했지만, 에디스의 말에 따랐다. 그의 말이 맞았으니까.
“이름 그대로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그렇게 지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구한테 선택 받았지? 신?”
"아뇨……. 저한테 선택받았다고 했습니다.”
“했습니다? 마치, 넌 모르는 남의 일인 것처럼 말하네?”
올리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매장 사건 후 마리와 재회했을 때를 떠올렸다. 참으로 당혹스러웠던 순간이었다.
분명, 올리버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라고 떠났건만 패밀리는 자신에게 더욱 종속된 종교단체로 변모했고, 마리는 자신을 구원자라 칭하며 종교 단체를 만들어 놀라운 성과를 이뤘다.
참으로 기묘하고 복잡한 심정이었다.
뭐라고 할까……. 개인적으로 거북스러웠지만, 마리의 진심과 노력, 성과는 감탄스러웠다.
어쩌면 그래서 전투 후 마리에게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르고, 자신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선에서 구원자라 믿어도 된다고 허락해준 걸지도 몰랐다.
마리가 쌓은 노력을 감히 자신이 부정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말이다.
“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넌 그들에게 있어 신이잖아? 신은 뭐든지 요구할 수 있다고.”
“에디스 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신이 아닙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걸요. 그러니 그런 요구도 해선 안 되지요……. 설사, 신이라 해도 그래선 안 되는 거고요.”
올리버가 미묘하게 정색하며 선을 긋자, 에디스가 양 손바닥을 보이며 물러섰다.
아주 미세한 변화였지만, 평소 모습 탓인지, 더 무게가 남달랐다.
“좋아, 그럼 장난은 여기까지……. 그래도 내 질문에 대답해. 왜 마지막에 허락해준 거지? 그럼, 너도 책임이 있는 셈이잖아?”
올리버는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올리버는 마리에게 자신을 숭배하는 걸 허락해준 셈이었다.
“믿음 자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됐지만, 마리는 온 진심을 담아 노력했고, 성과를 냈으며, 실제로 도움받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올리버는 마리가 소유한 감정 입자를 불태워 흡입했을 때를 떠올렸다. 폐를 가득 채우며 감정 입자의 기억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올리버는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뒤섞인 감정과 삶의 파편을.
너무나도 단편적이고 정보량이 많아 전부 살펴볼 수 없었지만, 올리버는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보고, 그들에게 있어 이 신앙과 믿음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마리의 노력. 올리버는 자신이 그걸 부정할 권리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허락해줬다?”
“예…… 대단하지 않습니까. 전 제 한 몸만 보살폈는데, 마리는 그 이상을 했으니까요.”
"참 신기하군.”
올리버를 빤히 바라보던 에디스가 대뜸 말했다. 올리버가 물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다른 놈이 그런 이야기를 했으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넌 진실성이 느껴지거든.”
“진실성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더럽게 가증스러운 존재들이라, 개새끼 씹새끼들도 좋은 사람인 척, 욕심 없는 척하려고 해. 이 나라의 여왕과 총리, 의원, 사업가, 하물며 그 연놈들 애미애비도 마찬가지지. 난 욕심 없다, 모두 너희를 위해서다. 뒷구멍으로는 다 딴생각하고 있으면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씨불이지. 그래서 난 절대 안 믿고……. 그런데 넌 좀 믿음이 가는군. 둘 중 하나란 이야기야.”
“뭐죠?”
“넌 엄청난 사기꾼 아니면 또라이라는 거지.”
“어…….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아, 그렇군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도 질문 하나드릴 수 있겠습니까?”
어느 정도 의문을 해소했는지 에디스는 허락해줬다. 올리버는 바로 질문했다.
“선택받은 사람들은 왜, 어떻게 찾으신 겁니까?”
“별거 있나?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알수 있는 질문이지.”
"......?"
“혼자 란다로 온 웬 흑마법사가 단 몇 년 만에 해결사들의 살아있는 전설을 죽이고, 시(市)에 비공식 동맹이 된 것도 모자라, 마탑에 비밀리에 들어가는 유례없는 미친 짓을 벌였으면, 당연히 뒷조사 한 번은 해봐야지. 거기다 난 네 본명도 알고 있는데.”
뭔가 확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되는 발언이었다.
“알아내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어. 네가 온 와인햄에 눈에 띄는 거라곤 그 사이비 교단밖에 없었으니, 그것부터 뒤져보면 각이 나올 것 같았거든. 방법이야 앞서 말했던 방식을 쓰면 되고.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에디스는 정말 기분이 좋은지 양손을 지휘자처럼 경쾌하게 움직였다.
올리버가 왜 그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물어보려는 찰나, 에디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참고로, 선택받은 사람들. 사이비 교단치곤 꽤 재밌는 집단이더군.”
"그렇습니까?”
올리버가 흥미를 보였다. 여전히 거북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관심이 갔다.
“그래. 나도 사이비 종교단체를 좀 아는 편이거든. 괴상의 이국의 신, 종말론, 악마 숭배 집단같은 거 말이야. 한때 관심 가진 분야기도 했고.”
"왜 관심 가지셨죠?”
“종교는 돈이 되거든. 그래서 별의별 놈들이 다 있어. 그래 봤자 하는 짓은 다 똑같지만.”
“무슨 짓을 하죠?”
“뭐긴 뭐야. 가진 거라고는 신앙밖에 없는 머저리들의 돈을 뜯고, 몸은 물론 가족마저 바치게 해 이거 땡기는 거지.”
에디스가 소시지같이 통통한 손가락을 탐욕스럽게 비볐다.
“그런데 선택받은 사람들은 좀 달라. 사이비 종교는 착취가 핵심인데, 그쪽은 아니거든……. 비교적 정상적인 종교 같지.”
“정상적인 종교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포교와 빈민 구호. 사이비 종교치고는 이례적이지.”
“빈민 구호요?”
"그래, 병신이 된 퇴역 군인, 낳아준 부모에게도 버림받은 고아 새끼, 늙고 쓸모없는 늙은이, 몸뚱어리와 자식새끼밖에 없는 과부, 바퀴벌레처럼 넘치는 도시 노동자, 진짜 버러지인 거지들 말이야……. 그런 놈들을 상대로 돈과 음식, 옷뿐 아니라 공장까지 손수 지어 일자리까지 제공하고 있어. 덕분에 낙후된 소도시를 중심으로 빠르게 교세를 퍼트리고 있고.”
과거 마리가 말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발언.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리는 처음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듯했다.
에디스가 계속해 설명을 이어나갔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제 신도 수가 만 명 단위는 되는 거 같더군. 한 3에서 4만 정도? 하긴 돈이랑 음식, 일자리까지 주는 데 믿어야지.”
선택받은 사람들의 근황을 들은 올리버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마리가 올리버를 회유할 때, 조직의 성장도 들먹였는데,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교세를 단 몇 년 만에 열 배 이상으로 키운 것 같았다. 정말 대단했다.
“정말……. 착취나 그런 게 없습니까?”
“글쎄.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문제라 뭐라 쉽게 대답하긴 힘들군……. 신도들의 감정을 일정량씩 추출해 필거렛과 같은 흑마법 상품으로 가공해 팔고 있긴 해.”
“감정요?”
“그래. 과하지 않게 적절히. 난 솔직히 이해해. 누굴 도와주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이란 게 그냥 생기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이걸 문제 삼는 놈들도 있지.”
"누구죠?”
“누구긴 누구야. 흑마법사를 싫어하고, 사이비 종교는 더 싫어하는 파테르교지. 지금 그들이 선택받은 사람들을 사냥하고 있어.”
***
에디스는 말했다.
와인햄을 중심으로 소도시로 퍼진 선택받은 사람들이 파테르교의 타겟이 돼 소탕되고 있다고 말이다.
“운 나빴다고 할 수 있지. 교단 내 극렬세력이 무슨 예언 때문에 예민하다 하던데, 그런 와중에 눈에 띄었으니……. 거기다 검은손 중 한 거대 계파가 공식적으로 마탑을 습격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한마디로 재수 옴 붙었다 할 수 있지……. 레이크 빌리지에서 마탑을 습격한 게 검은손 어느 계파라 했지?”
“인육 요리사 계파입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에디스는 그들에 대해 아는 게 있는지 중얼거렸다.
“인육 요리사면……. 갈로스 거기구만.”
“아시는 게 있습니까?”
“소문 정도는 들어봤지. 난 생각보다 발이 넓거든. 젊음과 정력을 미끼로 엄청난 커넥션을 가지고 있는 거대 범죄 조직. 갈로스 음지 상품 중 대표 격인 블러디 와인도 그쪽에서 생산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
‘블러디 와인이라 어디선 한번 들은 것 같은데…….'
올리버는 잠시 딴생각에 빠졌지만, 곧바로 본래 주제로 돌아왔다.
“음 …. 지금 선택받은 사람들 어떤 상황인지 아시는 바가 있습니까?”
“약간은. 민간인들이 주를 이루는 하위 지부는 괜찮은 편인데, 와인햄에 있는 본교는 엄청난 공세에 위기라 하더군. 협력자들은 체포됐고, 교주라는 여자는 도망 중이지. 하긴, 당연해. 흑마법사는 성기사 상대가 못 되니까.”
“자세히 알고 계시는군요.”
"파테르교에도 돈 좋아하는 사람과 뒤가 구린 인간이 있거든. 사실 존나 많지.”
“그럼, 어느 정도 피해를 입었는지도 아시나요?”
“글쎄……. 내가 아는 건 이대로만 가면 며칠 안에 소탕된다는 것뿐이야. 교주만 잡으면 끝이라더군.”
올리버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교주인 마리를 떠올렸다.
조셉 패밀리에서 처음 자신을 도와준 마리를.
이후, 자신에게 글자를 가르쳐준 마리를.
자신에게서 흑마법을 배운 마리를.
점점 자신을 의식하며 본연의 색이 퇴색한 마리를.
이후 다시 만나 이해할 수 없는 믿음과 신앙을 가진 마리를.
그 와중에도 엄청난 노력을 통해 자신도 부정 못 할 성과를 이룬 마리를.
“……에디스 님. 실례가 안 된다면 왜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시는 건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글쎄, 일단, 이야기해줘야 할 것 같아서? 세상만사에 꼭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에디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올리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기야, 꼭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지.
어쨌건 올리버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리와 마리가 만든 선택받은 사람들이 위기에 빠졌다니……. 갑자기 멀린과 나눈 종말론이 떠올랐다.
거대한 기계와 같은 종말론과 지옥의 왕자, 천사의 아들 등. 하지만 그중 가장 놀라웠던 건 종말론의 첫 장을 올리버가 시작했다는 거였다.
올리버 자신이 말이다. 참으로 이상했다. 자신이 그런 일을 하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어째 머리가 복잡한 것 같군.”
"......그렇게 보이십니까?”
“아주 약간. 네 표정은 포커페이스라 구분하긴 어렵지만……. 무슨 일 있나?”
“그냥……. 며칠 전 약간 신경 쓰이던 일이 떠올라서요.”
“그게 뭔지 궁금하구만.”
“음……. 혹시, 어떠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말이야?”
“제가 사이비 종교에서 신으로 취급받고 있는 걸 알았을 때 어떠한 생각이 드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이상하거나 놀랍거나 혹은 두렵지 않았습니까?”
질문을 들은 에디스는 다시 허기가 졌는지 파이를 하나 들어 우적우적 씹어 삼켰다.
“내가 널 두려워해야 하나?”
“아뇨,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럼, 다행이고. 난 네가 전혀 두렵지 않거든. 왜냐면 넌 나한테 일 잘하는 해결사 나부랭이에, 재미없는 농담밖에 못 하는 눈치 없는 놈에 불과 하거든.”
“……그렇습니까?”
“당연히 그렇지. 일은 잘하지만 농담도 못 하고 눈치도 없으니까.”
“아, 그렇군요……. 그런 거군요……. 에디스 님. 며칠만 더 있으면 소탕된다고 말씀하셨지요? 선택받은 사람들요”
“그래.”
“혹시……. 선택받은 사람들을 조사한 자료와 파테르교가 그들을 소탕하게 된 이유를 알고 계시면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될 수 있는 한 자세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