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2. 호수의 약속 (2) >
“빅마우스. 이것도 삼켜주시겠어요?”
"꾸루루.......”
멀린의 대저택 서재.
올리버가 빅마우스와 함께 서재를 돌아다니며, 의학서적과 생명학파 서적 그리고 테어도어의 논문 등을 챙겼다.
모두 올리버의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멀린은 관대하게도 원하는 서적은 모두 챙겨가도 좋다 허락해줬다.
"이름이 빅마우스였나? 자네 먹보주머니.”
가만히 지켜보던 멀린이 대뜸 입을 열었다.
“예. 빅마우스 맞습니다.”
“어째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내 착각인가?”
“아뇨. 기분이 안 좋은 것 맞습니다.”
올리버가 의기소침한 빅마우스를 보며 대답했다.
이유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조만간 다른 먹보주머니와 다시 한번 사생결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그것도 2대 1로.
“이게 마지막이네요. 빅마우스. 부탁드려요.”
올리버가 테어도어가 쓴 세포 이식과 구축에 관한 논문을 내밀며 부탁하자, 빅마우스는 올리버를 향해 경멸의 감정을 내뿜으며 삐쭉 솟아난 입으로 책을 삼켰다.
그러더니 곧바로 쭈그러들었다.
올리버는 쭈그러든 빅마우스를 고이 접어 허리 뒤쪽 가죽케이스에 담았다.
"책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
“논문 쓰겠다는 건데 빌려줘야지. 그보다 정말 책을 빌리러 온 건 줄은 몰랐군.”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호수에서 한 약속을 언급해서 질문이나 왕창 하러 온 건 줄 알았거든.”
“아…….그것도 있긴 합니다.”
“역시. 그냥 넘어가나 했는데 세상사 마음대로 안 되는구만. 그래, 뭐가 궁금하지?”
멀린은 엄살 부리는 것과 다르게, 평소처럼 넘어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올리버의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그는 뭔가 마음먹은 눈치였다.
“우선, 테어도어 님이 어디 묻히셨는지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질문을 듣자마자 멀린은 서재 한쪽 창문을 가리켰다.
다가가 바깥을 보자 대저택 정원에 임의로 만든 소박한 무덤이 보였다.
작고 초라한 비석 위로 새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겉에는 얼음 결정이 맺혀 있었다.
“……추워 보이는군요.”
“딱이지. 나나 저 친구 묫자리로는.”
자조적인 발언. 올리버는 멀린이 왜 그런 발언을 하는지 알았다. 그 역시 한때 테어도어와 같은 인생을 살았으니.
‘그리고 아카이브가 된 후 갑자기 그만두셨다고 했지.......'
“테어도어의 무덤은 왜 물어보나?”
“어디 묻혔는지 궁금해서요……. 또, 신경 쓰이는 말씀도 하셨고요.”
올리버가 테어도어의 손이 자신의 몸을 관통했을 때를 떠올리며 멀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르신. 혹시, 세상 바깥 존재란 게 뭔지 아십니까?”
질문을 들은 멀린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세상 바깥 존재들을 일컫는 단어네. 우리가 사는 인간계 바깥 미지의 존재들.”
“그 미지의 존재들이 뭐가 있죠?”
"대표적인 게 정령이나 천사, 악마……. 혹은 그것에서 파생된 존재들이 있지. 최소한 내가 알기로는.”
“어르신께서 알기로요?”
“그래. 하나같이 희귀하고 인지하기 힘든 존재들이라 감히 뭐라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거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나?"
“테어도어 님께서 제가 세상 바깥 존재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테어도어 님께서 절 흡수하려 했을 때 생각하신 거지만요.”
멀린은 다시 침묵했다.
여느 때처럼 그의 감정은 두터운 마력 벽에 둘러싸여 있어 읽을 수 없었으나, 어째서인지 그렇게 놀라는 눈치는 아니었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올리버는 계속해 입을 열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전 인간으로서 꿈꿀 수 없는 모든 축복을 가졌다고 말하며, 저를 이용해 노화와 죽음의 저주를 극복하고, 종말을 이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던가?”
“저와 거래하는 중개인님과 케빈 교수님께서 제 가치가 중견기업 급이라고 했을 때와 비슷했습니다.”
“기뻤다는 건가?”
"아뇨.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전 제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도저히 와닿지 않더라고요. 와닿으려고 노력해보는데도요. 와닿지 않았습니다.”
올리버가 온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올리버는 늘 자신이 광산에서 일하던 고아라는 걸 잊지 않았기에.
같이 일하는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고, 감독관의 눈치를 보며, 벌레처럼 몸을 웅크려 화를 피하기 위해 애쓰고, 어떻게든 연명하기 위해 수프하나 나눠 먹지 않고 혼자 다 먹었던 고아 말이다.
어쩌면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올리버가 자신에게 관심 없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게.
시시해 빠진 존재인데 어찌 관심을 가지겠는가?
애당초 지금 누리고 있는 축복 역시 자신이 대단해서가 아닌 운 좋게 타고난 재능 덕분인데.
이 재능을 뺀 올리버란 인간 자체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 게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예, 어르신. 제가 광산에 나오고, 해결사로 자리 잡고, 어르신의 임시 제자가 된 것 역시 순전히 재능 때문이지 않습니까? 전 주인님이나 던칸 씨, 셰이머스 님 등. 제가 세상 밖으로 나와 만난 사람들처럼 강렬한 무언가는 없습니다. 그저 호기심만 있을 뿐이죠……. 저란 인간 자체가 뭐 그리 대단하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네요.”
멀린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깊은 공허와 슬픔이 느껴졌다. 안쓰러울 정도로.
올리버가 다시 질문했다.
“혹시, 종말론에서 언급되는 천사의 아들과 지옥의 왕자라는 것도 세상 바깥 존재입니까?”
“그런 셈이지. 인간계에 속한 존재는 아니니까.”
“그럼,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것인데, 종말론과 제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음……. 마텔에서 절 도와주시고, 제자로 받아들여 준 게 그거 같아서요.”
“……약간은 상관있을지도 모르지.”
***
멀린이 말했다.
‘[세상 끝에 거대한 구멍이 생기는 그 순간 바늘이 움직이노라…….] 이것이 종말론의 첫 장일세. 그리고 그 구멍이 자네와 내가 싸웠을 때 열렸지.’
올리버는 마텔에서 로스번과 아이들을 구출한 후 멀린과 얼음 땅에서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로 멀린에게 밀렸을 때를.
멀린은 인간의 가치가 힘이라 하였고, 올리버는 동의하지 않음에도 그 가치에 부합하기 위해 필거렛을 피웠다.
이후로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멀린이 말하길 그때 지옥의 문이 한순간 열렸다고 했다.
‘제가 연 건가요?’
‘그렇네. 네 감정을 추출해 사용하니 열렸어. 아주 큰 거로…….'
‘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로요.’
‘정상적인 반응이야. 나도 뒷수습한 직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거든. 선대 아카이브가 조사한 종말론의 첫 줄이 내 때 시작하니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
‘……혹시, 제가 종말론과 무슨 관련이 있는 겁니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예언, 종말론은 인간이 제대로 인지하기에는 너무 거대하고 복잡하거든. 인간이란 존재는 거대한 기계 속 개미에 불과해, 누가 주역이고, 누가 들러리며, 누가 제물인지도 조차 알 수 없어. 그렇기에 섣불리 단정할수 있는 게 아니야. 세상에 자칭 지옥의 왕자가 여럿 있으며, 추정되는 인물도 여럿 있거든. 천사의 아들도 마찬가지고…….'
‘천사의 아들은 누가 있죠?’
‘그건-’
"-꺄아아아악! 집중! 집중!”
올리버가 잠시 과거 대화를 떠올리는 순간 송장인형-바토리에 들어간 퍼스트가 소리를 질러 올리버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정신을 차린 올리버는 퍼스트에게 사과하며 눈앞에 있는 수조에 집중했다.
블랙마켓에서 특별 주문한 수조로, 안에는 대량의 혈액과 생명력, 소량의 포션이 뒤섞인 피 용액이 담겨 있었고, 피 용액 안에는 머리가 없는 여성의 시체가 알몸으로 떠다니고 있었다.
시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바토리의 제자인 송장인형-여성 흑마법사1로,
올리버는 던칸에게 테어도어의 살점을 이식하기 전 여성 흑마법사1에게 먼저 시험하는 중이었다.
마력으로 이뤄진 기계 손. 프타스 어시스턴트(Ptah's Assistant)를 이용해 말이다.
‘그러고 보면 참 운이 좋지.’
올리버가 피 용액 안에 형성된 마력 기계 손으로 작업하며 생각했다.
마력으로 이뤄진 기계 손은 바늘처럼 얇은 손가락을 이용해 여성 흑마법사1의 몸을 갈라, 그 안에 테어도어의 살점을 세포 단위로 이식했다.
테어도어의 본체(本體)를 건지지 못한 건 분명 아쉬운 일이었지만, 막판에 그의 몸이 터지면서 부산물이 나온 덕분에 본체(本體)만큼은 아니지만, 양질의 재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정말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양도 적은 편은 아니야.’
올리버는 한쪽 벽면에 설치한 거대 보존액 통 안에 들어있는 대량의 살덩어리를 보며 생각했다.
살덩어리는 사람 하나를 만들 정도로 그 양이 상당하였는데, 던칸에게 대량 이식하고도 남을 수준이었다.
‘문제는 남은 걸 어떻게 사용하냐는 건데.’
올리버가 고민했다.
테어도어의 육체 파편을 어찌 이용할지 말이다.
과거에는 좋은 걸 더하면 더 좋게 된다고 생각해 무조건 바토리와 셰이머스의 육체에도 테어도어의 살점을 이식했겠지만, 연구와 논문을 위해 공부한 결과 무조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송장인형-던칸의 경우, 테어도어의 육체 파편과 질적으로 차이가 심해 이식할 시 강력한 기능 향상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이미 한계까지 단련한 바토리와 셰이머스의 경우 던칸만큼 높은 효용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또, 상성도 문제고. 바토리 님이야 마법사이기도 하니, 테어도어의 살점에 거부반응이 없을 수 있지만, 셰이머스 님의 경우에는 아닐 텐데.......'
올리버가 계속해 작업하면서도 테어도어의 논문 내용을 떠올렸다.
해당 논문에는 세포의 성질에 따라 시너지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서로의 성질을 부딪쳐 기능 저하 혹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음……. 일단, 송장인형-여성 흑마법사1의 상태를 살펴보고 정하기로 할까?’
올리버가 테어도어의 살점 이식을 마무리하며 결정했다.
네 개의 방향에서 구성된 마력 기계 손은 작업을 마치며 헤집었던 송장인형-여성 흑마법사1을 완전히 봉합했고, 올리버는 그에 맞춰 옆에 있는 퍼트스에게 신호를 줬다.
신호를 받자마자 바토리 안에 들어간 퍼스트가 수조와 연결된 기계장치의 레버를 돌려 액화한 생명력을 피 수조 안에 추가 주입.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와 함께 액화한 대량의 생명력이 피 수조로 들어갔으며, 퍼스트는 혈마법을 사용해 수조 안의 피 용액과 생명력을 하나로 합치기 시작했다.
이미 피 용액에는 과도한 생명력이 깃들어 있던 터라, 더 이상 섞이기 힘든 상태였음에도, 바토리의 뛰어난 혈마법 능력이 이를 가능케 해줘 피 용액의 기능을 한계 이상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그 피 용액 안에 든 송장인형-여성 흑마법사1는 넘치는 생명력을 온몸으로 받아 이미 죽은 몸뚱어리가 아주 잠깐 활성화되며 이식된 테어도어의 살점을 자신의 것으로 융화하였다.
두근. 두근. 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