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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흑마법사-360화 (360/633)

< 360. 처우 (2) >

“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가 있네. 제논……. 아니, 데이브에 관해서야.”

한 남자가 손을 들어 말했다.

그는 다름 아닌 묠니르 소학파의 원마스터(One Master) 토머스 닐센으로, 멀린과 테어도어와 같은 세대의 마법사였다.

묠니르 소학파답게 푸른색 머리카락과 수염을 거칠게 기른 그는 행색도 남달랐는데, 오래되고 해진 옷과 망토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었으며, 얼굴과 몸, 팔뚝에는 오싹한 고대 문신을 새겨져 있었다.

산업화를 이끌어 사회의 엘리트 계층으로 자리매김한 근대 마법사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

누가 봐도 괴짜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마탑에서 괴짜로 살만큼 뛰어난 실력자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웅성웅성웅성.

토머스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던 회의 참가자들이 동요했다.

왜냐면 자신들이 가장 따지고 싶었던 걸 입에 담아줬기에.

레이크 빌리지에 있었던 일 모두 충격적이었지만,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다름 아닌 제논 겸 데이브였다.

마탑 교수 개인 직원 겸 해결사인 흑마법사.

마탑의 역사를 통틀어 이렇게 족보도 없는 잡종은 처음 있는 경우였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면 생명학파의 배신, 검은손의 움직임보다는 사소한 것이었지만, 사람이란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인 존재.

그렇기에 마탑의 현 기득권인 그들에게 있어 데이브의 존재는 그냥 넘어가기 힘든 것이었다.

신성한 마법사들만이 발 디딜 수 있는 마탑에 더럽고 사악한 흑마법사라니……. 심지어 그 스승이 아카이브 멀린.

따지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묻기가…….'

‘어려웠지…….'

‘저분 때문에…….'

멀린의 눈치를 보며 침묵하던 마법사들이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생각했다.

"하지만 토머스 씨가 말씀하셨으니. 아카이브라도 이에 해명해야 한다.’

제논 겸 데이브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멀린과 토머스를 봤다.

신성한 마탑의 미래를 위해 말이다.

이윽고 모두의 시선을 인식한 멀린이 구석진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미 끝난 이야기인데, 또 무슨 이야기를 꺼내나?”

뻔뻔. 멀린의 말을 들은 이들 모두 그리 생각했다. 아카이브가 되기 전 모습을 보듯 말이다.

“이야기가 끝났다?”

“그렇네. 토마스……. 이미 내가 다 설명했잖나? 흑마법사 조직을 소탕하고 주운 아이라고, 재능이 뛰어나서 말이야."

멀린은 레이크 빌리지에서 했던 핑계를 마탑 지도부에도 똑같이 알렸다.

이미 올리버의 정체가 까발려졌으니, 수습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문제는 다른 마법사들이 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게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그 직책이 남다른 아카이브의 제자가 흑마법사라니, 감정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도 용납하기 힘든 문제였다.

이성이니, 합리니 떠들어도 마법사 역시 사람이었기에.

“재능 하나는 진짜요.”

모두가 불편하게 침묵하던 중 한 거구의 사내가 말했다.

그는 다름 아닌 필립 로어였다.

로어 가문의 수장이자, 왕실 마법사관학교의 교장, 왕실 마법연구부의 실장 겸 순수마력학파의 명예 그랜드 마스터.

“재능?”

“그렇소. 내가 본 것만 해도 그 친구는 천재요. 공간 마법이 가미된 대규모 결계에 간섭해 역으로 이용하고, 혈마법도 능수능란하게 사용했거든. 참고로 기존 혈마법 소학파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소.”

그 말에 사람들은 반응을 보였다. 혈마법은 생명학파에서 파생된 신생 마법 학문. 비밀이 많아 아는 것이 많진 않았으나, 그 효용성과 가치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어떻게……?”

“음……. 내가 들은 게 맞다면 제논 그 친구 마운틴 페이스에서 바토리와 싸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소?”

사람들이 다시 한번 웅성거렸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커 그때의 기억을 잠시 잊고 있었다.

생명학파 연구소를 마탑 몰래 점거한 바토리. 그 역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필립이 멀린에게 말을 걸었다.

“아키이브……. 제 추측에 따르면 그 친구가 거기서 혈마법을 배운 것 같은데 맞습니까? 아카이브께서 말씀하시길 웬만한 건 다 보고 그대로 흉내 낸다고 하셨잖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멀린에게 향했다.

"글쎄, 대답해주는 건 어려운 게 아니지만, 이 대화의 핵심이 뭔지 모르겠군……. 토머스, 제논을 꺼낸 이유가 뭔가?”

“흑마법사를 계속 마탑에 둘 생각인지 묻는 걸세……. 흑마법사지 않나?”

흑마법사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토머스에게 무언의 지지를 보냈다.

더 급한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용납하기 어려운 게 있는 법이었으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흑마법사가 마탑 안에 있으며 마탑의 귀중한 지식을 훔쳐 갈 수 있지 않습니까?”

“예, 들어보니, 그 데이브란 놈 마탑 도서관을 들쑤시고 다니며 책이란 책은 모두 읽는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내가 그러라고 시킨 거요. 자기 주도 학습이라고 말이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요즘 애들은 도서관을 너무 이용하지 않소. 우리 때는 가지 말라고 두들겨 패도 이용했는데……. 안 그렇나? 토마스.”

멀린이 토머스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건 그렇긴 해. 요즘 애들은 수업 끝나자마자 요 앞 거리로 나가 먹고, 마시고, 카드나 치지. 청춘이라며 말이야……. 어쨌든 제논. 아니, 데이브 건부터 마저 이야기하지. 말 돌리지 말고.”

멀린이 아쉬워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말 돌리기가 실패로 돌아간 것. 그때, 필립이 다시 한번 끼어들었다.

“제가 한마디 더 해도 되겠습니까?”

"뭔가?”

“일단, 전 제논 저 친구를 마탑에서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법사가 따졌다.

“이것 보시오. 필립 씨. 남의 일이라고 너무 함부로 말하는 것 아니오? 흑마법사요.”

“엄밀히 말하면 흑마법사였던, 마법사지. 아카이브의 제자라고 모두 듣지 않았소?”

필립이 아카이브를 언급해 해당 반박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제논을 의심하는 건 그 신원을 보증한 멀린을 부정하는 것이었으니.

마법사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른 마법사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탑은 한 개인을 위한 조직이 아닌, 여러 학파의 생존과 이익을 위한 집합체요. 그렇게 단순히-”

“-마탑을 위해서 이런 조언을 한 것이오. 나도 엄밀히 따지면 마탑 소속이지 않소? 그런 내가 쉽게 말하는 것 같소?”

아무도 부정하지 못했다. 분명 필립은 서류상으로는 명예직만 있는 외부인이었지만, 실질적으로 그와 그의 가문은 마탑 내부와 외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애당초 그래서 여기 있는 거였고.

“예를 들어볼까? 만약, 지금 데이브를 쫓아내면 외부에서 어떤 시각으로 볼 것 같소? 이미 시(市)에 해당 사건을 알려줬는데 말이오.”

"......."

“데이브를 쫓아내면 우린 데이브를 인정하지 않는 게 되어 버리고, 그 말은 즉, 외부인에게 일방적으로 도움받은 거라 시인하는 꼴이오. 그것도 흑마법사에게……. 그건 좀 창피하지 않소?”

모두 침묵했다. 필립의 말처럼 그건 망신이었다. 그냥 망신도 아니고 마탑의 미래에 악영향을 줄 개망신.

“레이크 빌리지 사건은 결코 숨길 수 있는 사안이 아니요. 한동안 우리 역시 주변의 눈치를 살펴봐야 한다는 거지. 그런 와중에 괜히 부스럼 만들고 싶소?”

“……그럼, 뭐 어쩌자는 거요?”

“어쩌긴 뭘 어째. 제논 그 친구 그냥 마탑 소속으로 받아들이자는 거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그를 받아들이면 감히 누가 뭐라 하겠소? 우리 특별 실험체라고 이미 시(市)에 말했는데."

실로 단순한 답변. 허나, 정확한 해결책이기도 했다.

포용이란 자신의 체면을 지키면서도, 힘을 강화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앞으로의 일을 고려해도 제논을 쥐고 있는 게 나을 거요. 듣자 하니 그 친구, 시(市)의 비공식적 동맹에, 크라임 펌, 내무부 장관과도 연결되어 있을 정도로 발도 꽤 넓은 거 같은데……. 쓸모가 많을 것 같지 않소?”

명분, 실리 모두 필립이 우세했다. 그러자 한 마법사가 제3의 이유를 가져왔다.

“마탑의 학생들과 다른 마법사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소? 흑마법을 배웠던 놈이 마탑 소속이라니 말이요……."

“그렇다면 테스트해 봅시다.”

필립이 명쾌하게 입을 열었다.

“테스트?”

“그렇소. 애당초 우리 마탑은 실력 제일주의였잖소?”

가만히 침묵과 중립을 지키던 스카디 소학파의 원마스터 틸다가 질문했다.

“테스트는 어떻게 치르자는 거죠?”

“케빈이라는 좋은 사례가 있으니, 불만 있는 마법사들과 대결을 시키는 게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오. 남자답기도 하고……. 물론, 지는 쪽은 엄청난 개망신이겠지만.”

모두 움찔했다. 다들 케빈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 한 번의 패배로 당시 혈기 넘치던 일부 마법사들은 그대로 마탑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누군가 말했다.

“마법사란 학자. 단순히 힘이 강한 게 전부가 아니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지만, 필립은 따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것도 맞는 말이오. 마법사란 학자지. 그럼, 제논 그 친구에게 논문 하나 써오라고 합시다. 논문 수준이 괜찮으면 마탑에 정식으로 받아들이는 거지.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오?”

군인 출신답게 우직하게 선택지를 하나하나 제거한 필립. 그 끝에 나온 결론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했다.

***

“도와줘서 고맙네. 필립.”

회의를 끝마치고 멀린과 필립은 은밀히 만났다.

키, 덩치, 외모, 복장, 분위기 등. 단순히 겉모습만 보면 둘의 우열관계는 필립이 우위여야 했으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허리를 살짝 숙여 말하는 필립의 모습이 증거였다.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논리적으로 판단해 제논 그 친구를 쥐고 있는 게 이득이라 생각한 것뿐입니다.”

“그런가?”

“예, 활약하는 걸 직접 봤고, 해결사로서 행적도 조사해봤거든요. 대단한 경력이더군요. 마탑 마법사들도 조심스러워해야 할 정도로요……. 뭣보다 아카이브가 직접 거뒀으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는 토머스 씨에게 하셔야죠.”

“눈치챘나?”

“당연하죠. 전 여러분과 꽤 오래 교류하지 않습니까?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비우호적인 사람이 먼저 의문을 제시하고, 이후 그 의문을 제거하면 나중에 뒷말이 나오기 힘들죠.”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술수를 단번에 파악한 필립을 보며 멀린이 작게 웃었다.

“하, 역시 자네 가문 문양은 사자가 아니라 여우여야 했네.”

“요즘 같은 시대에 사자의 용맹함뿐 아니라 여우의 간교함도 겸비해야지요……. 그런 의미에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아, 이제 본론인가?”

"하!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냥 테어도어와 대화를 나눌 때 의아한 게 있어서요……. 아카이브라면 알지 않을까 해 물어 보려는 겁니다. 두 분은 뭐가 됐건 친구였잖습니까?”

“뭐가 궁금한가?”

“테어도어가 저와 틸다 여사를 설득하려 했을 때 무슨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세상이 개벽(開關)한다는……. 혹시 무슨 말인지 압니까?”

필립이 별거 아니라는 듯 연기하며 물었다. 실상은 꽤 신경 쓰였지만.

그도 그럴 게 다름 아닌 테어도어가 한 말. 아무리 노망이 들고, 타락했다 해도 마법사로서 그를 인정했기에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잠시 후 멀린이 입을 열었다.

“혹시, 필립 자네 종말론에 관심 있나?”

“파테르교와 흑마법사들이 환장하는 그거 말입니까?”

“그래.”

“글쎄요? 전 속세에 더 관심이 많아서……. 혹시, 종말이라도 시작됐습니까? 그거 참 무섭군요.”

필립이 일부러 과장하며 말했다.

그런 필립과 대비되게 멀린은 차분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리 무서운 게 아니네.”

“……예?”

“그건 그렇게 무서운 게 아니라고. 정말 무서운 건 종말 자체가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야.”

"......종말이 나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까?”

“우리 관점에서는 아니지만, 세상의 관점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난 그게 무섭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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