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 귀국 (1) >
“별거 아니지만 받아주세요. 샌드위치입니다.”
다음 날 아침. 올리버와 야렐리는 바로 고아원을 떠나려고 했다.
하루가 될까 말까 한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장은 물론 고아원의 원생들까지 마중을 나와주었다.
“아이들이 안녕히 잘 가라고 하네요.”
야렐리가 아이들의 말을 통역해줬고, 올리버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똑같이 인사했다.
그리고는 샌드위치를 담은 바구니를 건네받으며 원장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잘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아멜린 원장.
올리버는 한 발짝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요안나 님 소식은 제가 알아보고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어젯밤 나눴던 이야기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역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속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제논 씨께서 만족스러운 답을 찾길 바랄게요.”
올리버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신의 축복이 두 분과 함께 하길 바라죠.”
아멜린 원장은 올리버가 흑마법사인 걸 알고 있음에도 진심을 담아 신의 축복을 빌어줬다.
아이들과 고아원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올리버와 야렐리는 언덕 아래로 내려가 마을 앞 도로에 멈춰 섰다.
올리버는 능숙하게 품 안에서 작은 자동차 모형을 꺼냈다.
실제로는 진짜 자동차였지만. 필립에게서 선물 받은 특별 주문 차량.
딱-!
올리버가 차량을 바닥에 놓고 필립의 흉내를 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자동차에 걸려 있던 마법이 풀리며 차량은 원래 크기로 돌아왔다.
“능숙하시네요.”
야렐리가 미세하게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게 자동차와 같이 복잡하고, 수많은 부품이 들어간 거대한 물건을 축소화하고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몹시도 어려운 것이었기에.
웬만한 마스터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수준.
그런데 올리버는 이를 능숙하게 해냈다. 마을에 머물고 고아원에 지내는 기간 동안 내내 말이다.
“필립 중장님께서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봤거든요. 타시겠습니까?”
올리버가 정중히 조수석을 가리켰다.
야렐리가 자동차 조수석 타자 올리버도 옆 운전석에 앉았다.
“어제 원장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죠?”
“아, 깨어 계셨습니까?”
“그냥 잠이 안 와서요.”
“가는 길에 설명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올리버가 양해를 구하며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필립이 선물해준 B사의 특별 주문 차량은 차분하면서도 힘차게 진동했다.
“예."
“그럼. 어디로 가야 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왔던 길로 되돌아갈까요?”
야렐리가 잠시 고민하더니 올리버에게 지도를 달라 부탁했다.
올리버가 지도를 건네자 그녀는 지도를 살피더니, 한 지점을 짚었다.
현재 자신들이 있는 곳을 기준으로 남서쪽에 있는 도시였다.
“쌩또르메?”
“예, 이쪽으로 가주실 수 있나요? 이쪽으로 가는 게 가장 빠를 거예요.”
올리버는 고개를 갸웃댔다.
해안 도시가 아닌 내륙 도시인데 말이다.
‘기차를 타서 해안 도시로 갈 생각인가? 그렇게 가면 차로 가는 것과 비슷할 텐데?’
올리버는 의문이 들었지만, 야렐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액셀을 밟아 흙먼지를 일으키며 차를 몰았다.
***
“아, 이런 뜻이군요.”
올리버가 좌석 옆 창문 밖 풍경을 보며 말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푸른 하늘과 바다, 하얀 구름으로, 도시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광활한 하늘과 바다는 그 이상의 진풍경을 연출했다.
“제논 씨는 어떤 걸 생각했길래요?”
비행선 비즈니스 객실. 맞은편 좌석에 앉은 야렐리가 물었다.
그녀는 서비스로 제공되는 커피와 고아원에서 선물 받은 샌드위치를 함께 먹으며 수첩에 뭔가를 필기하고 있었다.
“전 쌩또르메에서 기차를 타 항구로 이동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것도 방법이지만, 배보다는 비행선이 더 빨라서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또르메의 거대한 탑이자 비행 정거장을 떠올렸다.
도시 외곽에 우뚝 솟은 거대한 건물 꼭대기에는 넓은 공간이 갖춰져 있어, 몇 시간마다 거대한 비행선을 내보내거나 받아들였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확실히 빠르네요.”
올리버가 순식간에 갈로스를 떠나 바다 위를 비행하는 비행선을 보며 대답했다. 멀리서 보던 것과 달리 꽤 빨랐다.
“비행선은 처음 타보시나요?”
"예? 아, 예……. 탈 기회가 없었거든요. 사실, 배도 저번에 처음 타봤습니다. 이래저래 소란이 있었지만, 이번 학회에 잘 온 것 같다는 생각이네요. 이것저것 많은 걸 얻어서요.”
올리버는 진심으로 말했다.
학회 중간 생명학파와 생명 연금술 학파의 배신으로 약간의 소란에 휘말리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것을 얻었기에.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테어도어의 의학 및 생명학파 지식을 배울 수 있었고, 요안나의 고아원을 방문했으며, 배와 비행선을 탄 것 역시 뜻깊은 경험이었다.
짧은 시간 사이 많은 것을 경험해 볼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쌩또르메를 둘러보지 못한 건 조금 아쉽지만요.”
올리버가 잠시 방문한 갈로스의 도시 쌩또르메를 떠올렸다.
란다와 비할 게 못 되는 작은 소도시에 낙후된 분위기였지만, 다른 국가라 그런지 란다와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었다.
분노에 찬 벽보라든가, 각기 다른 색의 재킷을 입고 싸우는 청년들이라든가, 거리 한복판에서 일어난 칼잡이들의 결투라든가 말이다.
이에 관해 설명하자 야렐리가 말했다.
"갈로스는 거대하고 부강하지만 동시에 몹시도 혼란스러운 국가거든요.”
“뭔가 아시는 게 있나요?”
야렐리는 수첩을 덮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마탑이라도 꼭 마법만 배우는 건 아니에요. 마법이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학문이지만, 그 외에도 다른 지식을 배우기도 해요. 특히, 마탑 같은 기관이면 정치나 사회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는 편이죠. 마법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현실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요.”
“오, 친절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제논 씨도 제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줬으니까요……. 어쨌건 갈로스는 왕국보다 사회 갈등이 심한 편이에요. 한때는 자유주의를 표방하며, 왕의 목을 자르고, 귀족들을 축출했지만, 현재는 새로운 왕이 생기고 귀족들이 다시 돌아왔거든요.”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보통 그러나요?”
“아뇨. 그래서 혼란스럽다고 하는 거죠. 새롭게 돌아온 왕은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식민지 전쟁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돌아온 귀족들의 재산을 되돌려주는 법안을 통과시켰죠. 덕분에 새로운 주류 계층으로 부상한 자본가들과 귀족들이 싸우고 있고요. 법적인 분쟁과 정치적인 방법뿐 아니라 일차원적인 폭력까지 불사해서요.”
“아……. 혹시, 거리에서 싸운 푸른 재킷과 보랏빛 재킷 사람들이 그거인가요?”
촉이 발동한 올리버가 물었고, 그 촉은 적중했다.
“예, 푸른 재킷을 입은 쪽이 귀족파고, 보라색 재킷을 입은 쪽이 평민파죠.”
“꽤 거칠게 싸우던데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정도로요.”
올리버가 두 패가 싸우는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주로 몽둥이로 싸웠지만, 폭력의 수위는 상당했다. 어찌나 상당한지 주변에 있던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조차 싸움에 휘말려 피를 볼 정도였다.
“예. 제가 알기로는 경찰도 그들끼리의 싸움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힘없는 일반인들의 삶은 더 고달파지고요.”
올리버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라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야렐리의 설명을 들어보니 확실히 혼란한 것 같았다.
어찌해 인육 요리사가 갈로스의 범죄 제국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역시, 아쉽네요. 좀 더 둘러보면 좋았을 텐데요.”
올리버가 쌩또르메를 떠올리며 말했다. 나중에 한번 가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았다.
란다도 여전히 흥미롭긴 했지만, 갈로스의 도시도 생각보다 재밌는 게 많은 것 같았다.
“아쉬워도 어쩔 수 없어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관광하러 간 게 아니니까요.”
올리버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야렐리 씨. 뭐 하나 여쭤볼 수 있겠습니까?”
“뭐죠?”
“이후 제가 마탑에서 어떻게 될지 혹시 예상 가시는 게 있습니까?”
올리버가 아주 뒤늦게 마탑에서의 자기 처우를 궁금해했다. 도서관 출입금지라든가 수업을 못 듣는 건 역시 아쉬웠기에.
“뭐가 됐건, 전 흑마법사였고, 해결사 일도 하고 있으니까요.”
올리버로서는 예상하기 쉽지 않은 문제. 야렐리라도 다르지 않은지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글쎄요…….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이라서요. 거기다 저도 학생이고요.”
“아, 죄송합니다. 야렐리 씨는 늘 똑똑하고, 어른스러우셔서 저도 모르게……. 실례했습니다.”
올리버가 사과의 의미로 말했으나, 야렐리의 감정은 약간 동요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잘 모르겠네요. 다만, 절차상의 문제로 접근하면 제논 씨는 마탑을 나가셔야 할 거예요. 제논 씨의 배경이 배경이다 보니까요.”
올리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긴 했지만 마탑의 규칙이라든가, 기조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기에 납득했다.
애당초 흑마법사 해결사가 마탑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허나, 그렇게 안 될 수도 있어요. 이번 일 자체가 너무 특수한 경우라서요……. 어쩌면, 정치적으로 처리될 수도 있죠.”
“정치적요?”
올리버가 되묻는 순간 기내에서 곧 착륙할 거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모두 안내 방송에 맞춰 좌석에 앉거나, 서둘러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했다.
“정치적이라는게 뭐죠?”
“제 할머니와 필립 중장님, 아카이브와 같은 마탑 지도부의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는 거예요. 때때로 규칙만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아카이브와 원마스터, 명예 그랜드 마스터에 의해 올리버의 처우가 결정된다라……. 그렇게 진행된다면 왠지 희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잘 됐으면 좋겠네. 아직 읽고 싶은 책이랑, 듣고 싶은 수업이 많은데.’
“제논 씨는 돌아가서 어찌할 생각이죠?”
"예?”
“돌아간 후 어찌할 생각이냐고 물어봤어요.”
예상치 못한 급작스러운 질문. 올리버는 무엇을 할지 머릿속에서 저절로 생각됐다.
우선 테어도어의 지식을 노트에 전부 적어 정리할 예정이었고, 그를 기반으로 그의 육체 파편을 연구해볼 생각이었다. 써먹을 방법이 보였기에.
또, 내무부 장관 카버를 만나 요안나에 대해 더 알아봐 달라 부탁할 생각이었다. 개인적인 호기심을 위해, 또 아멜린 원장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전 그걸 물어본 게 아니에요.”
사람들 사이에 섞여 비행선에서 내리던 중 야렐리가 말했다.
“그쪽 일을 계속할 거냐고 물은 거예요. 해결사 일요.”
“음……. 아마도요?”
“제가 상관할 게 아니지만, 마탑에 완전히 소속되고 싶다면 어느 순간에는 손을 떼야 할 거예요. 묠니르 학파의 경우 그런 수련을 장려하지만, 그것도 한때니까요.”
“글쎄요. 저는-”
-삐 -삐 -삐 -삐
올리버가 대답하려는 찰나 품 안에 넣어둔 통신 장치가 울렸다.
포레스트 직통 통신 장치로, 실로 오랜만에 울린 거였다.
올리버는 야렐리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한쪽으로 가 통신 장치를 받았다.
“예, 포레스트 님.”
[아, 드디어 받는군. 그동안 잘 지냈나?]
“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받는다니요?”
[앞서 몇 차례 연락했거든. 한 열 번 정도. 그런데 도통 통신이 안 가더군.]
“아……. 제가 잠시 란다 밖으로 나갈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길래 그만큼이나 연락하셨습니까?”
[물어볼 게 있어서 그렇네.]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글쎄, 이걸 문제라 해야 할지 말지 당장 나도 모르겠군. 잠시 이쪽으로 와줄 수 있겠나?]
“어……. 혹시, 급하신 겁니까? 저도 지금 일이 있어서요.”
대답을 듣자 통신 장치 너머로 잡음이 들렸다. 포레스트가 한숨을 쉬며 통신 장치를 고쳐 잡는 거였다.
[그럼, 딱 하나만 물어볼 테니 대답해 줄 수 있나?]
“말씀하시죠.”
[혹시, 자네 마탑 소속인가?]
"......지금 바로 가면 되나요?”